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139
139화
“누구 머리에서 나온 것이냐?”
무엇 때문에 심사가 뒤틀렸는지, 서슬 퍼런 목소리가 심장을 짓눌렀다.
용하와 인공은 마른침을 삼키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저분, 사람 맞아?’
‘그러게요, 사람 목소리에 땅이 다 흔들리네요!’
찰나에 불과한 시간, 두 사람이 나눈 무언의 대화였다.
“누구 머리에서 나온 게 뭐가 그리 중요합니까? 용하 머리에서 나왔든 제 머리에서 나왔든, 중요한 건 뜻한 바를 이룰 수 있는 기가 막힌 방법이라는 거죠.”
힘겹게 목청을 빠져나와 입안에서만 맴돌 것 같던 목소리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우쭐해져서 너스레를 떨고 있었다.
“우리가 하려는 게 뭐, 그렇게 나쁜 짓도 아니고 말입니다.”
장설의 귀에는 인공이 쏟아내는 너스레 따위는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인공 자네도 문제야! 철없는 용하가 졸라대면 말릴 줄도 알아야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다 들어주지를 않나. 또 그걸 부추기고 말이야.”
“형님, 무슨 말씀을 또 그렇게 하십니까? 용하 듣습니다.”
“들으라고 하는 것이야. 이것들아!”
“아니 형님, 제발 그만 좀 하십시오. 용하 이 녀석, 앞길이 구만리 같은 어린 새싹입니다. 그런 어린 것을 이렇게 무자비하게 짓밟는다는 건…….”
인공은 괜히 하던 말을 멈추고 훌쩍거렸다.
“아니, 왜 그러느냐? 왜 말을 하다 말고 눈물을 찔끔거리고 지랄이야?”
“제발 우리 어린 용하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옆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는 용하는 그저 혼란스러울 따름이었다.
‘둘 다 왜 저러는 거람!’
“좋다. 네 녀석 하는 소리 들어봐서 자비를 베풀든가 말든가 하겠다. 그래! 그런 방법으로 개방에 가겠다는 발상은 누구 머리에서 나온 것이냐?”
“실은 그게 제 머리에서…….”
“딱 너 같은 발상이구나. 일전에도 작전상 포로가 되겠다고 해놓고 주화입마에 들어 해탈은커녕 비명횡사할뻔하지 않았느냐.”
“하, 형님도 참. 비명횡사라니요. 저 그때 가만히 뒀으면 해탈의 경지를 훌쩍 뛰어넘어 입적할 기회였습니다.”
“뭣이라! 그래도 이것이.”
장설의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인공은 찔끔해서 몸을 움츠렸다.
“넌 인마 그때 저 어린 것 아니었으면 영락없이 까마귀밥이 되고 말았을 거야. 저 어린 것이 앞뒤 재지 않고 죽기 살기로 덤벼들어서 구해줬더니 뭐? 이번엔 또 작전상 포로가 되어 개방으로 들어가겠다고!?”
“형님, 무림에 정해진 게 있습니까? 되든 안 되든, 한번 해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시도도 하지 않고 포기한다는 건 무사로서 할 짓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무사! 누가 무사야?”
“아니, 형님은 이 아우를 무사 취급도 안 하는 겁니까?”
“우리가 왜 무사야? 우린 그냥 부처를 섬기는 구도자야. 정신 차려 이것아.”
“아, 형님!”
인공은 당장에라도 눈물을 쏟을 듯 징징거렸다.
“그만해! 속 시끄러워.”
“전 이대로 포기할 수 없습니다. 사내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쪼개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아, 글쎄 말은 좋은데. 너도 머리가 있으면 생각을 좀 해봐라. 좋든 싫든 아미파 여인들은 부처를 섬기는 자들이 아니더냐. 그러니 너나 나를 보면 부처의 가르침이 떠오를 테고, 그럼 살생을 자제하려는 본능이 앞서지 않았겠느냐?”
장설의 말에 인공은 적잖이 감동한 기색이었다.
“아, 그러네요!”
“그런데 개방은 거지들이 무리 지어 떠돌아다니며 동냥이나 하다 결성된 조직이 아니더냐. 모르긴 해도 그들 눈에는 우리 같은 구도자 따위는 같잖게 보일 뿐이야. 아니지! 너 같은 건 그냥 땡추야, 땡추!”
“뭐, 땡, 땡추요?”
“그래, 이것아! 자꾸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입 아프니까.”
그때였다. 두 사람의 실랑이를 지켜만 보던 용하가 마침내 입을 뗐다.
“두 분! 형님들!”
지나치게 진지했을까. 인공과 장설은 토끼 눈을 뜨고 용하는 바라보았다. 둘의 눈이 조금은 섬찟했다. 용하가 감당하기엔 두 사람의 경지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두 분 형님께 막내가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정작 인공과 장설이 놀란 이유는 따로 있었다. 매 순간 짓궂고 장난스럽고 가벼웠던 용하가 사뭇 진지했기 때문이다.
“모든 게 탁상공론입니다.”
이번에도 변함없이 진지했다. 인공은 형형한 눈으로 용하를 바라보았다.
“용하야, 너 점심 못 먹은 게 억울해서 그래?”
어이없는 인공의 말에 용하는 김빠지는 소리로 답했다.
“형님! 지금 그깟 밥 한 끼 못 먹은 게 대수입니까? 저는 말이죠…….”
그때 용하의 말문을 막으며 인공은 하소연하듯 말했다.
“나는 말이다. 용하야. 그깟 밥 한 끼 못 챙겨 먹은 게 못내 한이 되는구나.”
“형님! 지금 농담할 때 아닙니다.”
“나도 농담하는 거 아니다. 인석아. 나 지금 배고파 죽겠어.”
“인공 형님! 저는 말입니다. 그깟 밥 한 끼쯤 중요치 않습니다. 제가 만약 끝내 개방에 가지 못하면 그것이 한으로 남아 영원히 풀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 와중에도 용하는 구구절절 장설에게 자신의 간절함을 호소했다. 애타는 용하의 심정을 간과하지 않았던지, 장설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일단 개방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도록 하자꾸나.”
장설의 말에 인공이 우뚝 돌아보며 치켜뜬 눈으로 물었다.
“형님,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개방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고 했다. 무엇이 잘못되었느냐?”
“아니, 잘못된 건 아니지만, 왜 갑자기…….”
“용하 저 녀석 말하는 걸 듣고도 그런 질문이 나오느냐?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산 사람의 소원을 외면한다면 우리가 어찌 구도자라 할 수 있겠느냐?”
농담이 아님이 확실했다. 그것을 확인한 용하와 인공은 청량감 있게 미소 지으며 장설 앞에 무릎을 조아렸다.
“됐다. 그만들 일어나거라. 어차피 하기로 한 것이니 지체할 필요가 있겠느냐? 지금 바로 출발하자꾸나.”
인공이 놀란 눈으로 말했다.
“지금 바로 말입니까?”
“왜, 지금 바로 출발하는 데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것이냐?”
“아니, 저는 밥도 못 먹었습니다. 그런데 어찌 그 먼 길을 가자고 하십니까? 뭘 시키더라도 밥은 먹여놔야 할 것 아닙니까.”
“몸이 무거우면 오래 못 걸어.”
“그럼 형님은 오래 못 걷겠네요.”
“왜 내가 오래 못 걸을 것으로 생각하느냐?”
“형님은 밥을 맛있게 드시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몸이 무거워서 어찌 걷겠습니까?”
“어허, 사람이 어찌 다 같을 수 있겠느냐. 나 같은 노인은 밥을 든든히 먹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기운이 없어서 못 걸어.”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런 말이 어디 있습니까?”
“쓸데없는 소리 자꾸 하지 마. 배 꺼져.”
그렇게 세 사람은 굳은 각오로 개방을 향해 길을 나섰다. 무거운 걸음을 내딛는 세 사람의 표정엔 이전에 보였던 설렘보다는 긴장감으로 얼룩져 있었다. 특히 인공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더해 상기돼 있었다.
그리고 용하의 얼굴에는 두 감정이 겹쳐있었다. 이를테면 설렘이라는 셀로판과 긴장이라는 셀로판 겹쳐 또 다른 색으로 빛을 발했다. 그 색은 예컨대 결연함이랄까.
“김용하!”
“네, 형님.”
“인공!”
“네, 네네, 형, 형님”
딸꾹!
인공은 부들부들 떨며 대답하더니 끝내 딸꾹질까지 했다.
“인공! 지금 떨고 있는 것이냐?”
“아, 아아, 아닙니다. 형님.”
“원래 그렇게 말을 더듬었느냐?”
“아아, 아닙니다. 형님. 워, 원래는 아니고 간혹 이럴 때가 있, 있습니다.”
“인공은 잠시 운기조식을 하여라.”
“네, 알, 알겠습니다. 우, 운기조식…….”
“표정이 왜 그러느냐?”
“제, 제 표정이 어, 어때서요?”
“운기조식을 하라고 한 게 그리도 불만스러운 일인 게냐? 그렇다면 인공은 지금 저잣거리 국밥집으로 돌아가 기다리도록 하라. 우리가 안전하다고 판단되면 그때 은밀히 부를 것이니, 그곳에서 기다리도록 하라.”
“네! 국, 국밥집에서요?”
국밥집에서 기다리라는 말에 인공은 웬일인지 경악했다.
“왜, 복에 겨워 몸 둘 바를 모르겠느냐?”
“형님! 지금 농담할 때입니까? 그러니까 형님 말씀은 지금 나만 때어놓고 가겠다 뭐, 그런 말씀이잖아요.”
인공은 입이 댓 발 나온 입으로 새초롬하게 투덜거렸다.
“내 말이 그렇게 들리더냐?”
“아님요?”
“용하야! 너는 어찌 들리더냐?”
“특별한 배려라고 생각했습니다.”
용하의 대답이 왠지 자기를 엿 먹이려고 하는 걸로 들렸다.
“용하 너!”
무슨 말로든 꾸짖으려 했지만, 장설이 의식돼 입을 다물고 말았다.
“왜요? 제 말이 하릴없이 하는 말로 들리셨습니까? 저는 말입니다. 조금 전 그 상황을 군 복무할 때 천 리 행군하잖아요. 그때 대대장이 병사들 가운데 딱 한 명을 선출해 상황실에서 대기하라고 하잖아요. 그렇게 보였습니다.”
“이야, 김용하! 너 정말 대단하다.”
“시끄럽다! 어찌할 것이냐? 국밥집으로 돌아가서 기다릴 것이냐, 운기조식으로 마음을 진정시키고 우리와 함께 가겠느냐?”
장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인공은 이미 운기조식을 하고 있었다.
후, 후, 후, 후흡! 후우우우우우~
“걸음을 지금보다 두 배로 빠르게 움직이도록 하라!”
운기조식을 하던 인공의 표정이 무슨 말인가 하고 싶은 눈치였다. 이를테면 하고 싶은 말을 참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마침내.
“형님! 개방으로 가는 길은 알고 가자는 겁니까?”
조금은 빈정거리는 말투였다.
“아직 갈필을 잡을 수가 없구나.”
“그런데 빨리 걸어서 뭐 합니까? 길도 모르면서.”
“그럼 자네처럼 운기조식하며 산청유람이나 할 것이냐?”
“뭐, 뭐요? 산, 산청유람이요. 형님도 참, 대체 사람을 어떻게 보고 그런 말씀을…….”
“내가 뭐 아닌 말이라도 했단 것이냐?”
“형님! 저, 포천 주금산의 인공사 주지입니다. 저란 사람은 말입니다. 지금은 때가 아니어서 가만히 있지만 말입니다. 아니, 형님 같은 노인에게 당하고만 있지만 말입니다. 다 때가 되면 어떻게든 제 몫은 하는 사람입니다.”
작정하고 하는 말에, 옆에 있는 용하는 혀를 내둘렀다.
“네 녀석 인공이 제발 그래 줬으면 하는 바람이구나.”
웬일인지 장설은 껄껄껄 웃으며 빠르게 걸음을 내디뎠다.
“형님! 형님 좀 천천히 가십시오.”
입 안에 단내가 날 정도로 빠르게 걸음을 내디뎠지만, 세 사람은 해 질 녘이 되도록 흙먼지 날리는 광활한 평야를 벗어나지 못했다.
“형님! 해가 서산에 걸렸습니다.”
“해가 서산에 걸린 것과 우리가 개방으로 가는 게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오늘 하루 묵어갈 곳이라도 찾아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인공, 네 녀석이 그럴 재주 있으면 한번 찾아보도록 하라. 오늘 하루 묵어갈 곳을 찾아만 준다면, 이 장설이 네 녀석 앞에 백번이고 천 번이고 무릎 꿇어 조아리도록 하마.”
지나치게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저 말은 절대 오늘 하루 묵어갈 곳을 찾을 수 없을 것이라는 뜻이렷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듯했다.
‘아니, 그렇다면 노숙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인공은 잔뜩 찌푸린 얼굴로 용하를 흘깃 쳐다보았다.
‘아니, 저 녀석은 왜 한마디도 안 하는 거야?’
그러고는 곧 울상이 되었다.
‘아이고, 내 팔자야. 늘그막에 노숙이라니, 이게 다 웬 말이란 말이냐.’
그때였다.
“이보게, 인공! 자네, 그 사이 어딜 다녀온 게야?”
“네? 그, 그건 왜요?”
“대체 무엇을 하고 지냈는지는 모르지만, 바보가 돼서 돌아온 게 이상해서 하는 말이야.”
“바, 바보가 돼서 돌아왔다고요?”
“강호 무림에서, 더군다나 이렇게 척박한 대지 위를 걸으며, 언제 우리가 잠자리를 찾았던 적이 있었느냐?”
장설의 말에 인공은 더욱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 형님! 그게 다 무슨 말씀입니까? 해가 빠졌으니 잠자리를 찾는 건데, 그게 그렇게 이상합니까? 아니, 바보 같은 짓입니까?”
“어허, 제법 찰지게 대드는구나.”
“아니, 대드는 게 아니고, 세상 이치를 말씀드리는 겁니다. 지금!”
마치 호통이라도 치는 듯했다.
“내 귀에는 네 녀석이 지금, 세상 이치를 말하는 게 아니고, 억지를 부리며 나를 가르치려 드는 것으로 들리는구나.”
“누가 누굴 가르치려 든다고요?”
세상 둘도 없이 얄미운 말투였다.
그렇게 입씨름으로 하루의 피로를 달래며 걷고 있을 때였다.
“형님! 저것이 무엇입니까?”
격앙된 목소리가 짙은 어둠을 갈라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