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14
14화
“선언하노라!”
객주는 많은 사람 앞에서 자기의 결정을 공고히 했다.
“지금부터 장설! 인공! 김용하! 이 세 사람은 본 객잔의 노예가 되었음을 선언한다. 세 사람은 이 사실을 전면 인정하겠는가?”
형(刑)을 집행하듯 내려진 객주의 선고였다.
‘뭐야, 자기가 무슨 판사쯤 되는 줄 아나 봐! 뭐, 노예? 무전취식 하루 했다고 노예로 부리면, 무전취식 두 번 했다가는, 사람 털도 안 뽑고 날로 잡아먹으려 들겠네!’
인공과 장설의 뇌리에 동시에 스친 생각이었다. 당연히 쉽게 대답이 나올 리 없었다.
세 사람 중 아무도 성에 차는 대답을 하지 않자, 객주는 크게 분노해 소리쳤다.
“흠, 대답하기를 망설이는 걸 보니, 내 결정에 불만이 있는 모양이군. 그럼 스스로 인정할 때까지 호되게 맞아야 하겠구나.”
맞는다는 말에 용하, 인공, 장설, 세 사람은 앞다퉈 입을 열었다.
“아, 아닙니다. 인정! 무조건 인정합니다. 깔끔하게!”
“아니다. 굳이 내가 입을 대서 답을 들어야 하겠느냐? 노예가 될 만한 짓을 한 자들에게 자비란 없다. 조금 전 그 대답은 못 들은 거로 하고 내 방식대로 집행하겠다.”
“아이고, 왜 이러십니까? 형님인지, 누님인지는 모르겠으나, 저희가 퍼펙트하게 인정한다고 몇 번을 말씀드립니까, 지금!”
“여전히 말이 많구나! 인정하든 안 하든, 내 마음대로 할 것이니 그리 알라! 알겠느냐?”
대답을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아니라고 대답해도 깨질 게 분명하고, 그렇다고 대답하면 진짜 제 맘대로 할 텐데.
시간이 지체될수록 객주의 표정은 차갑게 변해 갔다.
“좋다! 끝까지 대답을 안 하고 버티겠다면, 네놈들 굳어 버린 입을 내 손으로 말랑말랑하게 해 주마. 얘들아!”
객주의 호령에 협객들이 두어 걸음씩 물러나고, 그 자리에 쇠몽둥이를 든 거구의 사내들이 용하와 인공 그리고 장설을 에워쌌다.
그 광경을 본 인공이 무슨 말인가 하려고 입을 벌리려고 할 때였다. 순식간에 쇠몽둥이가 급습하듯 세 사람을 덮쳤다.
“아이고! 아이고! 이놈들이 사람 잡네, 사람을 잡아! 이 나라는 법도 없소? 어찌하여 사람을 이리 패는 것이오.”
세 사람의 입에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무차별 비명에 가까운 아우성이 터져 나왔다.
쇠몽둥이의 매질은, 축 늘어진 세 사람이 미동도 하지 않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주검과도 같은 세 사람을 내려다보는 객주. 표정에 딱하다는 기색이 역력하다.
이윽고 객주가 턱짓으로 신호를 하자, 또 다른 일단의 사내들이 커다란 물통을 들고 와, 세 사람에게 정신이 번쩍 들도록 거세게 쏟아부었다.
―푸훗! 푸풋! 하푸, 하푸!
갑작스러운 물고문에 새파랗게 질려 의식을 되찾는 용하와 인공 그리고 장설.
그들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두리번거렸다.
‘이게 다 어찌 된 일이란 말인가.’
세 사람의 뇌리에 동시에 떠오른 생각이었다.
객주는 세 사람에게 조금 전 있었던 일들을 새삼 상기라도 시켜 주려는 듯 물었다.
“어찌하겠느냐? 내 말에 승복하겠느냐?”
세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여전히 어리둥절한 기색이었다.
“아직 정신을 못 차린 모양이구나. 얘들아!”
바로 그 순간 치도곤을 당하기 바로 직전인 세 사람의 뇌리에 기적처럼 같은 생각이 스쳤다.
“아니! 아닙니다. 승복합니다. 무조건 승복하겠습니다. 아무렴 승복하고 말고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일사불란하게 새 나온 말이었다.
마치 오랜 시간 함께 입을 맞추며 연습해 온 사람들처럼 토시 하나 틀리지 않고 정확히 일치한 그들의 말에 객주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진작 그럴 것이지. 꼭 얻어터져야 말을 듣는다니까.”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빈정거리는 객주를 경멸하듯 바라보는 장설.
“다시 한번 묻겠다. 지금부터 너희들은 본 객잔의 노예가 되었다. 이 모든 사실을 인정하겠는가?”
객주의 호령에 세 사람은 입을 모아 대답했다.
“네, 인정합니다.”
세 사람이 깔끔하게 인정하자, 객주는 흡족한 표정으로 다음 말을 이어 갔다.
“지금부터 본 객잔의 노예가 된 너희들에게 객주로서 명하겠다. 너희 노예들은 객잔 안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일에 대해, 그것이 궂은일이든, 그렇지 않은 일이든, 군소리 없이 즉시 처리해야 하는 사명을 잊어서는 안 되며, 게을리해서도 안 되느니라. 알겠느냐?”
“네, 알겠습니다.”
* * *
세 사람이 객잔의 노예가 된 지도 어느덧 며칠이 흘렀다.
“그새 잊은 것이냐?”
객잔의 정원에 잔악한 객주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분노가 극에 달한 객주의 어금니에서 새어 나오는 소리였다.
‘으이그, 저 지긋지긋한 소리! 대체 같은 말을 하루에 몇 번이나 들어야 하는 거야?’
이제 어느 정도 노예 생활에 적응이라도 된 걸까. 용하와 인공 그리고 장설의 뇌리에 동시에 떠오른 생각이었다. 그리고 곧 입을 모아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닙니다. 절대 그럴 리 없습니다.”
“그런데 왜 하루가 다르게 일을 게을리하는 것이냐?”
“아닙니다. 하루하루 몰라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주책없이 인공이 혼자 한 말이었다.
“그래? 몰라보게 발전했다.”
“네… 네!”
이번에는 조금 전보다 더 주눅 들어 보이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그럼 넌 오늘부터 객잔 전체를 따뜻하게 해 줄 나무를 구해와 장작을 패거라.”
“네?”
인공이 경악하는 이유는 객잔에서 가장 힘들다고 소문난 일이 바로 장작 패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소문에 의하면 객잔이 생긴 이래, 1년 이상 장작 패는 일을 해 본 사람이 없다고 했다.
어떤 이유로 장작 패는 일을 하게 된 노예들 대부분이 1년 안에 죽거나 아님, 몸이 망가져서 드러누웠기 때문이다.
인공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그것을 본 장설이 인공의 귀에 속삭였다.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되네. 자네 정도면 요령껏 잘할 수 있을 거야.”
바로 그때였다.
“거기! 장작 패는 일에 자원이라도 하겠다는 것인가?”
장설은 잔뜩 겁에 질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 아닙니다. 그, 그럴 리가요. 절대 그런 일 없으니 제발, 제발 좀 선처를 바랍니다요.”
객주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한 일종의 비위 맞추기식 대답이었다.
“아냐? 그런데 왜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이는 거지. 일단 보류하고 지켜볼 것이니 조심하라!”
장설을 흘깃거리는 인공의 표정에 부러움이 만연했다.
‘쳇,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더니.’
“지금부터 객잔에서 발생하는 일에 대해, 그것이 궂은일이든, 그렇지 않은 일이든, 군소리 없이 즉시 처리하는 게 너희들의 사명이다. 알겠느냐?”
단숨에 쏟아내는 객주의 말을 노예들은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평소 얼마나 여러 차례 같은 말을 입에 달고 살았는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객주는 흡족한 표정이었다.
모든 노예가 알아들은 이 말을 사실 인공만 알아듣지 못한 채 눈동자를 굴렸다.
“부디 나를 실망하게 하는 일 없도록! 알겠는가?”
“네, 알겠습니다. 주인님.”
결국 분위기 파악이 안 된 인공만 목이 터져라, 대답했다. 그런 인공을 측은하게 바라보는 객주는 생각했다.
‘둔한 것! 끝내 혼자만 말귀를 못 알아들은 게로군.’
객주는 마치 레드카펫 위를 걷듯 우아하게 멀어져 갔다.
득달같이 모여들었던 객주의 수하들 그리고 다른 하인들도 순식간에 흩어졌다.
그제야 세 사람은 긴장감을 늦출 수 있었다.
“어떻게 좀 해 보시오. 매일매일 피가 마르는 듯해 더는 살 수가 없을 것 같소.”
“지금 나한테 하는 소리오?”
“아님, 누구한테 한 말인 것 같소? 설마 내가 아직 귀가 새파란 애한테 한 소릴 것 같소?”
용하는 자신을 바라보는 인공의 눈을 따갑도록 흘겼다.
‘애가 뭐야, 애가. 내일모레면 불혹의 나이를 바라보는 사람한테. 도저히 정을 줄 수가 없는 징글징글한 진짜 꼰대.’
* * *
드넓은 대지를 짓누르는 무거운 발걸음이 향하고 있는 곳은 객잔이었다.
산더미 같은 원목을 짊어진 발걸음의 정체는 다름 아닌 인공이었다.
그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광야를 죽을힘을 다해 걸었다.
굳게 닫힌 입술, 초점 없는 원망의 눈동자.
지금 인공의 뇌리에는, 모른 척하고 다 같이 입을 모아 같은 대답을 했다면 혼자 체벌을 받는 일은 없었을 텐데, 라는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용하와 장설이 원망스러웠다. 미운 사내들.
그렇게 남은 반나절을 걸었을 때였다. 손을 뻗으면 닿을 만한 거리에 객잔이 어른거렸다.
객잔을 바라보는 인공은 가슴이 벅찼다.
“죽으란 법은 없다더니, 과연 돌아올 수 있을까, 라고 생각했던 먼 거리였는데.”
이제 다 왔다는 생각에서인지, 초점이 흐려졌던 눈동자에 생기가 돌았다.
인공은 이글이글 불타는 듯한 눈을 들어 객잔을 바라보았다.
보면 볼수록 무섭게 되살아나는 기억들.
인공은 고개를 내저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더는 두고 볼 수 없다. 오늘 중으로 무슨 수를 내든지 해야지, 이러다가 나무꾼으로 세상 하직하겠어.”
결심이 굳어지자 공들인 지게조차 무용지물처럼 느껴졌다.
인공은 지게를 벗어 던지고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한달음에 객잔을 향해 내달렸다.
이윽고 객잔의 대문이 보였을 때 진각을 내디뎌 걸음을 멈췄다.
‘차라리 이대로 도망쳐 버릴까?’
인공은 곧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아니! 그건 절대 안 돼. 나 혼자 살겠다고 달아난다면, 용하 녀석과 장설은.’
그토록 모질게 마음먹고도 결국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도 정 때문이 아닐까.
인공은 아직도 팔뚝에 매여 있는 감색 천을 확! 끌러 내팽개치고 발로 짓이겨 버렸다.
“어차피 하인들은 상대도 안 되는 인간들, 그냥 머릿수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호위무사들 일곱 놈만 아니, 일곱 년만 작살내면 되니까, 죽기 살기 한번 해볼 만 하지 않은가.”
하지만 정작 적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인공이 대문을 박차고 들이닥쳤을 때였다.
대문 앞에서 미리 예견이라도 하고 기다렸다는 듯 장설이 전광석화처럼 인공의 혈도를 짚어 그 자리에 기절시켜 버렸다. 그리고 용하를 향해 외쳤다.
“아무도 모르는 깊은 창고에 가둬 두도록 하라!”
용하 또한 모든 걸 알고 있었는지, 군소리 없이 장설이 시키는 대로 따랐다.
그리고 두어 시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퀴퀴한 냄새로 속이 뒤집힐 것 같은 창고에 용하와 장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인공은 아직도 의식을 되찾지 못한 채였다.
“장설 어른! 아직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무예를 닦았다는 사람이 이렇게 둔해서야 원.”
장설은 혀를 끌끌거리며 인공의 혈맥을 찍어 눌렀다. 그러자 인공은 놀랍게도 두 눈을 번쩍 뜨며 의식을 되찾았다.
“정신이 들었느냐?”
장설의 갑작스러운 반말에 인공은 얼핏 어리둥절한 기색이더니 곧 두 눈을 치켜떴다.
“이보시오, 장설. 왜 나한테 반말을 하는 것이오. 아무리 우리가 노예 생활을 하고 있어도 그렇지 이건 너무 하는 거 아니오. 예의를 갖추시오.”
예의 단호한 인공의 말투에 장설은 코웃음을 지었다.
“정신 차려, 인석아! 죽은 목숨 살려 준 게 누군데 감히.”
장설의 말에 인공은 어리둥절했다. 그런 인공에게 용하가 은밀하게 말을 건넸다.
“스님, 스님께서 왜 이런 곳에 계신다고 생각하세요?”
용하의 말에 인공은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렇게 거슬러 오르던 기억이 어디쯤에서 멈췄던지, 인공은 다소 놀란 기색으로 장설을 바라보았다.
“이제 알겠느냐? 이래도 내가 반말 할 만하지 않다고 생각하느냐?”
그제야 인공은 지금 자신이 처한 현실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기색이었다.
“아, 맞네요. 더군다나 저보다 나이도 훨씬 많으실 텐데, 제가 앞으로 형님으로 모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얼추 서열 정리가 되어 갈 무렵.
―와장창!
창고 문이 부서지며 일단의 무리가 득달같이 급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