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141
141화
“사천성(四川省) 제일 갑부가 개방(丐幇)의 일원이 되고자 한다!”
저잣거리를 둘러싼 인근에 일파만파 퍼지고 있는 소문이었다. 제일 갑부가 개방의 일원을 자처한다니, 당연히 헛소문이었다. 개방이 솔깃해서 찾아오게 만들 미끼.
장설과 인공이 군중을 부추기는 동안 용하는 사천성 제일가는 포목점에서 최고의 옷쟁이가 지은 금장옷을 입고 하루 두 차례 저잣거리를 거닐며 시간을 보냈다. 혹여 개방의 염탐꾼이 보고 방주에게 보고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용하야! 금장으로 지은 옷으로는 씨알도 안 먹히는 것 같으니, 뭐 좀 특별한 걸 찾아보는 게 어떻겠느냐?”
“특별한 거요?”
찰나에 불과한 짧은 시간, 용하의 뇌리를 불현듯 스치는 게 있었다.
“있습니다.”
징설의 짐짓 놀라 기색으로 용하를 바라보았으나 곧 깊은 호기심으로 바뀌었다.
“무어라! 지금 있다고 대답하였느냐?”
“네, 형님. 아주 완벽히 인상 깊게 해줄 만한 게 있습니다.”
장설은 고개를 이리저리 갸웃거렸다. 그러기를 수차례나 하고도 멈추지를 않았다.
“내가 모르는 그런 기묘한 것이 있었느냐?”
“형님이라서 모르는 겁니다. 여기 인공 형님에게 물어보십시오.”
“이보게, 인공. 자네도 아는 것인가?”
장설이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바로 물었지만, 인공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이유는 사실 용하가 지금 어떤 생각으로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기 때문이다. 인공이 쩔쩔매는 기색이자 용하는 서둘러 말을 돌렸다.
“형님! 그만 하세요. 괜한 일로 시간 낭비하지 마시고요.”
“시간 낭비라, 이럴 때는 시간 낭비도 좀 하고 그러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네 녀석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는 모양이지?”
“저는 지금 온통 그 생각뿐입니다.”
“다짜고짜 그 생각이라니,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기에 그렇게 자아도취에 빠진 것이냐?”
“아, 그거요? 음, 제가 은밀하게 준비한 것을, 내일 저잣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그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뭐 그런 생각으로 많이 설렙니다.”
기대 이상의 호언장담을 들은 인공과 장설은 순식간에 호기심에 휩싸였다.
인공은 가늘게 뜬 눈으로 용하를 훔쳐보며 생각했다.
‘또 무슨 생각으로 저렇게 큰소리를 치는 걸까?’
용하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기는 장설 또한 마찬가지였다.
‘녀석이 또 뭘 가지고 허풍을 떠는 거지? 왠지 불안해.’
호기심 뒤에 감춰진 또 다른 감정, 의심이었다.
그날 저녁.
“유월아! 유월아!”
국밥집 마당을 서성거리는 인공은 하염없이 유월을 외쳤다.
“유월아~”
그때였다. 장설이 툇마루를 딛고 서서 물었다.
“늦은 밤이다. 유월이가 안 보이는 것이냐?”
“네, 형님. 초저녁까지 분명 저와 놀고 있었는데, 잠깐 측간에 다녀와서 보니 안 보입니다.”
“측간엔 얼마나 오래 있었느냐?”
“하루도 거른 적 없었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소식이 없기에, 그냥 건너뛰나보다 하고 있다가 갑자기 아랫배가 살살 아파 갔으니, 아마 시원할 때까지 앉아있었을 겁니다.”
“꽤 오랜 시간 자리를 비웠다는 말이렷다?”
“한 식경은 족히 될 것입니다.”
“한치도 틀림이 없이 정확하구나.”
“왜요, 형님도 무슨 일 있었습니까?”
“정확히 한 식경이다. 용하도 한 식경 남짓 보이지 않는구나.”
그 순간.
‘뭣이라, 그렇다면 용하 녀석이 유월이를 데리고 나갔다는 말인데.’
인공의 뇌리에, 용하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빠르게 스쳤다.
‘그렇다면 낮에 호언장담했던 게…….’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인공은 순식간에 태도를 바꿨다.
“형님! 아마 산책하러 갔을 겁니다. 형님과 재회하기 전부터 용하는 이 시간만 되면 유월이 데리고 산책하러 나가고는 했으니까요. 유월이 녀석이 좀 별나야죠. 녀석이 하루만 산책을 안 시켜주면 있는 성질 없는 성질 다 부리니 말입니다.”
“하긴, 여느 강아지와 달리 기운이 펄펄 넘치기는 하더구나. 알았으니 그럼 들어가서 잠을 청하도록 하라. 나도 다시 잠을 청해야겠구나.”
장설은 어기적어기적 툇마루를 걸어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인공 또한 자기 방으로 가는 척하다가 황급히 몸을 돌려 장설이 들어간 것을 확인하고는 빠르게 국밥집을 벗어났다.
국밥집을 나선 인공은 빠르게 걸음을 내디뎠다.
“한 식경을 걸었으면 대충 어디쯤 가고 있는지 눈에 선하다. 서두르자. 예서 더 멀어지면 결코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다.”
인공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빠르게 어둠을 뚫고 멀어져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조금 전 인공이 밟고 지나간 자리를 빠르게 내딛는 또 다른 발걸음이 있었는데, 그는 다름 아닌 장설이었다.
유월이 일전에 시공간 이동체의 변신 트럭을 찾아냈던 기억을 더듬으며 킁킁! 킁킁! 앞장서 걸었다. 그 뒤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따라 걷는 용하, 인공, 장설. 어스름한 달빛이 세 사람이 가는 길을 조용히 밝혀주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멍멍! 멍멍!
동이 트려는지 세상이 서서히 코발트 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유월! 찾았어?”
멍멍!
유월은 종종걸음으로 시공간 이동체의 변신 트럭이 숨겨진 숲으로 달려갔다. 용하는 주변을 크게 두리번거리고는 유월이 지나간 자리를 빠르게 달려갔다. 어느새 유월은 보이지 않았지만 시공간 이동체의 변신 트럭이 어디 숨겨져 있는지는 알 것 같았다.
“곧 해가 뜨겠군. 서둘러야겠다.”
용하가 시공간 이동체의 변신 트럭에서 저잣거리 사람들을 놀라게 해줄 물건을 가지고 다시 모습을 나타내는 데 걸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조금 전 용하가 지나갔던 자리에 인공이 지친 다리를 질질 끌며 모습을 나타냈을 무렵, 용하는 이미 유월과 되돌아오고 있었다.
“후, 이렇게 편한 걸 두고…….”
그런데 이상했다. 용하는 유월과 나란히, 그러니까 누구 하나 앞서지도 뒤처지지도 않으며 나란히 이동했는데, 표정에 지친 기색 하나 없이 화사했다.
누군가 자기를 미행했다는 사실은 까맣게 모른 채 서둘러 국밥집으로 가고 있는 용하.
그렇게 얼마나 갔을까, 용하의 눈에 지칠 대로 지친 인공이 보였다.
“아니, 저 노인네 어떻게 알고 미행을 한 거지?”
이맛살을 찌푸렸지만, 이미 늦은 듯 보였다. 인공의 눈에도 조금씩 거리를 좁혀오는 용하와 유월이 보였다.
“하이고, 이제 헛것이 다 보이네그려. 용하 녀석이 지친 기색 하나 없이 유월이와 나란히 오고 있으니 이게 다 무슨 조화래.”
이때까지만 해도 그냥 헛것을 보는 것으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잠시 후 눈 비비며 바라본 인공의 두 눈이 별안간 휘둥그레졌다. 유월과 함께 바르게 거리를 좁혀오는 용하는, 엉뚱하게 전동휠을 타고 있었다.
이윽고 인공 앞에 서는 용하는 다짜고짜 인공을 꾸짖었다.
“형님! 지금 뭐 하는 짓입니까?”
“뭐? 너 지금 나한테 뭐 하는 짓이냐고 했니?”
화가 머리끝까지 났으면서도 지칠 대로 지쳐 목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했다. 그러더니 이번에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물었다.
“그나저나 용하야! 이거 실화니?”
“형님도 참, 잠깐 산에서 내려왔으면서, 어느새 그런 말까지 배웠습니까?”
“이놈 좀 보게. 그새 잊은 것이냐? 나, 인플루언서야.”
“아, 맞다! 형님 SNS에서 입덕 완료하신 인플루언서죠?”
“이제 알았느냐? 그런 내게 뭐? …뭐 하는 짓이냐니?”
“아, 제가 뭐, 억하심정이 있어서 그런 건가요? 그러다 길이라도 잃고 이 척박한 광야를 헤매다가 돌아가시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짜증이 잔뜩 묻어 있는 용하의 얼굴 한구석은 울먹이고 있었다.
“유월! 지난번에 했던 거 잊지 않았지?”
멍멍!
유월은 꼬리를 살랑거리며 인공 쪽으로 등을 내주었다.
“형님도 기억하시죠?”
매번 성가시게 하는 인공을 곱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기억이야 한다만 미안해서 원.”
인공은 힘없는 목소리로 겨우 대답하고는 고개를 돌려 용하의 눈길을 피했다.
“저한테 미안해하실 거 없어요. 유월이한테 고맙게 생각해야지.”
그제야 인공은 유월을 덥석 끌어안으며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고, 내 새끼. 어디서 이렇게 이쁜 게 내 앞에 나타났을까?”
“형님 앞이 아니고, 우리 앞이죠. …어서 유월이 등에 올라타세요.”
인공은 조금은 미안한 기색을 보이며 유월의 등에 올라탔다.
“자, 유월아! 출발하자.”
유월이 멍멍 짖으며 저만치 달려 나갔다. 어느새 해가 떠올라 유월이 뒤로 뿌옇게 피어나는 흙먼지가 반짝거렸다. 용하도 몸을 앞으로 기울여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앞서 달려가던 유월이 몸을 흙바닥에 끌며 가까스로 멈춰 섰다. 유월이 갑자기 멈춰서는 바람에 인공이 땅바닥으로 굴러떨어지고 말았다.
“유월아, 대체 이게 다 무슨 일이냐?”
유월은 무엇인가를 내려다보며 안절부절못했다.
이윽고 용하가 달려가서 보니, 탈진한 장설이 혓바닥을 길게 늘어뜨린 채 쓰러져 있었다.
“아니, 정말 이 노인네들이 왜들 이러는 거야? 내가 속이 시커멓게 타서 죽는 꼴을 봐야만 정신들을 차리시려나.”
용하가 저 혼자 화가 나서 입에서 나오는 대로 투덜거렸지만, 그 말을 듣는 인공은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뭐 하나 뜻대로 되지 않아 속이 상할 대로 상한 용하의 새카맣게 그을렸을 허파가 훤히 보였다. 그런데도 정신 나간 노인네 취급받는다는 건 좀 그랬다.
“형님!”
“왜? 왜 또 부르는 건데.”
“제가 지금 말고 또 부른 적이 있었나요?”
“알았어. 알았으니까 용건이나 말해 봐.”
“형님은 좀 견딜 만하죠?”
“왜, 견딜 만하면 유월이 등에서 내려서 걸어가라는 거지?”
“괜히 기운 빼지 마시고 일단 좀 내려보세요.”
인공이 능청을 떨며 버티자, 유월이 몸을 흔들어 인공을 땅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에구에구 에구구, 아니 이것들이 편을 먹었나. 쌍으로 나를 무시하네그려.”
“형님! 무시한 거 아니니까 성급하게 판단하지 말고 조금만 기다리세요.”
“기다려? 기다리긴 뭘 기다려. 안 봐도 비디오지.”
“형님, 제발 좀!”
참다못한 용하가 마침내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제야 인공은 움찔 수그러들며 입엣소리로 구시렁거렸다.
“하, 이것들이 정말! 이제 하다 하다 개까지 나를 개똥 취급하네! 그려.”
그러거나 말거나 용하는 인공의 넋두리 따위 들어줄 새 없었다. 서둘러 축 늘어진 장설을 유월의 등에 안전하게 눕히고는 무거운 심정으로 말했다.
“유월! 부탁한다. 큰할아버지 아프지 않게 살살 잘 모시고 가. 국밥집 알지?”
멍멍!
유월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용하의 얼굴을 두어 차례 핥더니 바로 출발했다.
용하와 인공. 단둘이 남은 두 사람은 왠지 데면데면했다.
“형님! 형님, 전동휠 타실 수 있겠어요?”
“그건 왜 묻는 것이냐? 어차피 전동휠은 네 녀석이 타고 갈 거면서.”
“형님!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비록 의형제지만 인공 형님은 제 일을 자기 일처럼 앞장서서 해주신 세상에 둘도 없는 제 형님입니다.”
인공은 조금은 의심스러운 눈으로 용하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 말 진심으로 하는 말이냐? 혹시 또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니겠지?”
“게다가 형님도 아시다시피, 칼부림이 난무하고 피비린내가 코를 찌르는 이곳 강호 무림에 우리 두 사람 말고 또 누가 있습니까?”
“조금 전에 네 녀석이 깍듯이 대접해서 먼저 보내준 장설 형님이 있지 않으냐?”
인공이 삐질 대로 삐져, 속에도 없는 소리를 저도 모르게 한 것이다.
“네, 물론 장설 형님도 계십니다. 하지만 장설 형님은 21세기를 모르지 않습니까. 앞으로 제가 얼마나 많은 21세기의 문물을 이곳 강호 무림에 전파하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걸 저 혼자 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하세요?”
그제야 잔뜩 쀼루퉁해져 있던 인공의 눈에 방울방울 눈물이 맺혔다.
“미안하다, 용하야. 네 녀석 속에 그렇게 깊은 뜻이 있는 줄은 미처 몰랐구나.”
“전동휠은 형님이 타고 가세요.”
“정말 그래도 되겠느냐?”
“그럼요, 되고 말고요. 어서 출발하세요. 시간 없어요. 유월이 놓치면 길도 모르잖아요.”
“용하 너는 어떻게 하려고…….”
“저는 아직 젊잖아요. 부지런히 걸으면 오전 중에는 도착하겠죠. 제가 아무리 어리석어도 왔던 길 그대로 돌아가는 건데, 설마 그것도 못 하겠습니까?”
“용하야…….”
“제 걱정은 하지 말고, 어서요!”
인공은 눈물을 뒤로한 채 아득하게 보이는 유월의 뒤를 부지런히 따라 전동휠을 굴렸다.
홀로 남은 용하는 쓸쓸한 마음을 달래며 저잣거리를 향해 결연히 발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