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143
143화
“얍!”
개방의 무사. 그의 기합 소리는 기개가 넘쳤다.
휙!
거의 동시에 예리한 검이 전광석화처럼 눈앞으로 지나갔다.
시간이 멈춰버린 듯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곧 누군가의 목에서 떨어져 나온 머리 하나가 땅 위로 나뒹굴었다.
헉!
거의 동시에 인공과 장설의 눈길이 땅 위에 나뒹구는 머리로 향했다.
후~
두 사람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새 나왔다. 땅 위를 나뒹구는 머리는 용하가 아닌, 용하를 해하려고 검을 빼 들었던 무사의 것이었다. 인공과 장설의 놀란 시선은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칼끝을 따라 올라갔다.
이윽고 두 사람의 시선이 머문 곳에 낯설지 않은 사내가 용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내를 본 인공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어! 어디서 봤지?’
다짜고짜 떠오른 생각이었다. 인공은 칠흑 같은 밤길을 걷는 기분이었다. 분명 낯설지 않은 얼굴인데 어디서 봤는지 전혀 떠오르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곧 체념하고 말았다. 21세기와 14세기를 몇 차례나 오갔으니 비슷하게 생긴 사람 하나쯤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으로 말이다.
‘뭐… 어디에선가 본 적 있는 사내라면 차차 생각나겠지?’
“반드시 생포해야 한다는 말을 잊은 것이냐?”
포효하는 듯한 사내의 목소리에서 뜨거운 열기가 전해졌다.
“순순히 따른다면 포박은 하지 않겠다.”
사내의 말에 용하의 판단 기능이 빠르게 작동했다.
‘포박하지 않겠다고?’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포박된 채 끌려가야 개방까지 아무 탈 없이 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 생각에서인지 어떻게든 포박당해야만 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렇다면…….’
용하는 갑자기 돌변해서 난동을 피웠다. 그 광경을 아무 대책 없이 지켜봐야만 하는 인공과 장설은 안절부절못하며 가슴을 조였다. 반면 유월은 용하를 공격하는 개방의 무사에게 분연히 달려들어 물고 뜯으며 용하를 보호했다.
“도저히 안 되겠구나. 저들을 포박하라!”
세 사람을 포박한 삼줄 끝이 말 꽁무니에 묶였다.
“아니, 이렇게 하고 개방까지 가겠다고?”
인공의 머릿속에 뙤약볕 아래 매달려 바짝 말라가는 굴비가 떠올랐다. 그래서인지 매서운 눈으로 용하를 흘겨보았다.
“이게 다 용하 네 녀석 때문이라는 것만 알고 있거라.”
말투가 왠지 두고 보자는 것처럼 들렸다. 그러고는 입엣말로 투덜거렸다.
“용하 저 녀석만 아니었으면 제일 어리석어 보이는 놈 잘 꼬드겨서 말 궁둥이 좀 얻어 타고 갈 수도 있었는데 말이야.”
역시 처세술의 왕, 인공만이 할 수 있는 발상이었다.
“저기요!”
용하는 조금 전 자기 목숨을 구해준 무사를 불러세웠다.
“아까는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를 좀 더 험하게 대해주십시오. 대신 허리도 제대로 못 펴는 저 노인은 선처해 주시기 바랍니다.”
“선처? 어찌 선처해 주면 좋겠느냐?”
“제일 마지막에 선 무사가 탄 말 엉덩이라도 좀 빌려 탈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그것이 네 녀석이 말하는 선처란 말이냐?”
“네, 그렇습니다.”
개방의 무사는 무엇인가 생각하는 기색이었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
“좋다. 그리하도록 하겠다. 그런데 너는 내게 무엇을 해주겠느냐?”
용하는 이미 예상이라도 하고 있었다는 듯 선뜻 대답했다.
“아까 보았던 그 신통한 물건을 하나 더 드리겠습니다.”
개방의 무사는 전동휠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것 말이냐?”
“네.”
개방의 무사는 용하의 제안에 구미가 당겼던지, 비릿한 미소로 용하의 귀에다 대고 무어라 속삭였다. 듣고 있는 용하의 표정이 서서히 긍정적으로 변해갔다.
“알겠습니다. 그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개방의 무사는 가장 말석으로 보이는 무사를 불러 지시했다.
“방금 이 작자가 하는 말 들었느냐?”
“네, 들었습니다.”
“들은 대로 실행하도록 하라!”
“네.”
간결하게 예를 갖춘 말석 무사는 장설을 번쩍 들어 올려 자기 뒤에 앉혔다. 말 등에 앉은 장설을 보는 용하는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한편 인공은 부러움과 시기심이 교차하는 눈으로 장설과 인공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때였다.
“준비되었느냐?”
“네, 준비됐습니다!”
나머지 무사들은 입을 모아 대답했다.
“그럼 지금부터 개방에 닿을 때까지 쉬지 않고 달릴 것이다. 알겠느냐?”
“네, 알겠습니다.”
개방의 무사 말에 나머지 무사들은 이번에도 일제히 입을 모아 대답했고, 인공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금 인공이 보이는 저 표정은 포박의 의미를 이제야 깨달았다는 말을 대신해 주었다.
“아, 아니! 이, 이 상태로 말을 따라 달리란 말이오?”
잔뜩 주눅 든 목소리였다. 그런 인공에게 장설이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입 좀 다물어. 너 인마! 일전에도 아미파에 작전상 포로로 잡혀가서 상전 노릇 하다가 주화입마에 빠져 뒈질 뻔했잖아.”
“형님, 사람 약 올리는 거요? 오호라, 형님은 말 타고 편하게 간다!”
그러더니 개방의 무사를 향해 아부성 짙게 말했다.
“하, 제 일행들이 이렇습니다. 그러니 대인께서는 이 늙은이를 불쌍히 여기셔서 제발 쉬지 않고 개방까지 간다고 한 말은 취소해 주시기 바랍니다.”
개방의 무사는 인공의 하소연 따위는 들을 체도 하지 않았다.
“자, 출발하라!”
개방의 무사가 크게 외치자, 나머지 무사들은 조금씩 말을 움직여 하나의 대열을 만들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대열은 일사불란하게 대평원을 달리기 시작했다.
길게 늘어진 흙먼지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어느덧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앞서 달려가던 개방의 무사가 수신호를 보냈다.
바로 그 순간, 마치 약속이라도 된 듯 대열이 일제히 멈췄다.
“이제 곧 개방으로 들어갈 것이다.”
무사의 말에 주검이나 다를 바 없었던 용하의 표정이 화사하게 변했다. 비록 몸은 지치고 메말라 차마 두 눈 뜨고는 볼 수 없는 몰골이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서는 청량감을 엿볼 수 있었다.
아마도 조금 전 개방의 무사가 한 말 때문이 아니었을까.
개방(丐幇).
이때까지만 해도 용하 일행은, 방주의 별도 지시가 있을 때까지 칠 결 장로의 집 곡식 창고 안에 갇히게 된다는 사실을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제아무리 장로의 집 사고에 갇히게 된다 해도, 오 결 당주 이상 팔 결 후개까지 분명 용하 일행을 보려고 눈에 쌍심지를 켜고 기다릴 텐데 지금 이런 몰골로 그들에게 보일 순 없었다.
“개방으로 들어가기 전 목욕재계를 하고 환복의 과정을 거칠 것이다.”
용하는 그 와중에도 속으로 키득거렸다.
‘거지들 주제에 목욕재계라니, 지나가던 개다 다 웃겠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들이 아닌, 용하 일행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아니, 자기들이 아니고 우리 말인가? 음, 환복도 해야 한다고 하는 걸 보면, 우리 같은데.’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으로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한 가지 확답을 들어야 할 것이 있다.”
‘확답이라니, 이 마당에 무슨 확답을 듣겠다는 것인가.’
용하가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도마 위 물고기에게 무슨 선택의 기회가 있단 말인가. 용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심 중얼거렸다.
‘자기들이 알아서 요리하면 되는 거 아닌가?’
그때였다.
“저잣거리에 나돌던 소문과 관련해서 몇 가지 묻겠다.”
이 말이 왜 안 나오나 했다. 용하는 속으로 다시 한번 쾌재를 질렀다.
‘앗싸! 제대로 걸려들었다.’
작전대로 척척 들어맞고 있다는 걸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무엇이든 좋으니, 말씀하십시오. 제가 할 수 있는 대답이라면 단 하나도 빠짐없이 성실히 답하겠습니다.”
용하는 일부러 더 절도 있고 신뢰감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능청을 떨었다.
“음, 시원시원해서 좋구나!”
개방의 무사 반응은 용하에게 조금은 호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개방의 일원이 되고 싶어 한다고?”
“네, 그렇습니다.”
용하는 납작 조아릴 기세로 대답했다.
“그럼 개방의 일원이 되고자 하는 자는 자기가 가진 전 재산을 모두 처분해야 한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느냐?”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그 이유는 모르겠으나 알고는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하다. 개방은 힘없는 거지들이 모여서 지금의 개방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무사의 말에 용하를 고개를 갸웃했다.
“몰랐을 땐 그런가 보다 했는데 알고 보니 참으로 이상합니다.”
“지금 이상하다고 하였느냐?”
“네.”
“무엇이 그리도 이상한지 소상히 말해 보아라. 어디 한번 들어나 보자꾸나.”
“전 재산을 처분하고 들어오라고 하면서 정작 매듭이 많아질수록 재력가로 거듭나고 있지들 않습니까? 왜 그런지, 저는 그것이 궁금합니다.”
“그것이 그리도 궁금하였더냐?”
용하는 황급히 무릎을 조아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무사는 잠깐의 뜸을 들였다. 나머지 말을 기다리는 용하는 오금이 저릴 만큼 궁금했다. 그 순간 용하의 눈에는 오직 무사의 입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무사가 입을 뗐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개방은 평등해야 하기 때문이다.”
‘평등? 지금 저작자가 평등이라고 한 거 맞아?’
내심 이런 생각에 골몰해서인지, 용하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직도 의문이 풀리지 않은 모양이구나.”
용하는 아직도 평등이란 말에 사로잡혀 무사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 말을 듣고 있는 것이냐?”
무사는 다소 목청을 높였다. 그제야 용하는 제정신이 돌아왔는지, 고개를 흔들어 각성했다.
“추호도 궁금증이 남아 있어서는 안 되니, 잘 들어야 하느니.”
“알겠습니다. 잠시 다른 생각에 빠져 제가 그만 결례를 범했습니다.”
“같은 실수를 두 번 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용하는 고개를 깊이 숙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개방은 거지들의 결의로 만들어져 지금은 강호 무림에서 꽤 영향력을 행사하는 세력으로 커졌다. 초심을 잃지 않고자 처음 개방의 일원이 되는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해 각자의 노력으로 구리동전을 하나하나 모아 재산을 형성하는 것이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이 있지 않더냐.”
“지금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그리 말했다. 왜, 그 말이 이상하게 들렸던 것이냐?”
용하를 바라보는 무사의 눈은 부리부리했다.
하지만 용하는 조금도 굴하지 않고 피식 웃으면 대답했다.
“지나가던 개가 웃겠습니다.”
“무어라! 지나가던 개가 웃는다?!”
“티끌은 모아 봤자 티끌일 뿐입니다. 무일푼인 사람이 부자가 되는 길은 한 가지뿐입니다.”
“무어라! 지금 한 가지뿐이라고 대답하였느냐?”
이번에도 용하는 어금니를 꽉 깨물며 결연히 대답했다.
“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 한 가지가 무엇이냐?”
“못된 짓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절대 부자가 될 수 없습니다.”
용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그리고 개방의 무사는 그 말에 깊이 공감하는 기색이었다.
“네 말도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결과는 인정해야 할 것이다.”
결과!
용하는 형형한 눈으로 개방의 무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개방의 무사는 개의치 않고 하던 말을 계속 이어갔다.
“만약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재산이 남아 있었다면, 우리는 결코 지금의 개방을 만들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두 사람 사이에 더는 군소리 따위 필요치 않았다.
‘부디 내 편이 되어 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