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145
145화
“그대들이 백의개(白衣丐)를 자처한 자들인가?”
개방의 무사들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강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들은 다름 아닌, 사결(四結)인 각 당의 호법들이었다. 스무 명의 호법들은 제각각 예리한 눈으로 용하 일행을 바라보았다.
그 앞에 조아린 용하, 인공, 장설.
세 사람은 죄지은 것도 없으면서 죄인처럼 조아린 채였다.
“혹 타의에 의한 것인가?”
각 당의 호법들 가운데 하나가 물었다.
용하 일행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어떤 대답을 해야 심사에 통과할 수 있는지 감조차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심사 전 어떤 귀띔도 없었다.
처음 치루는 심사에다 극도의 긴장감이 조성돼 사고체계를 막아버렸다.
심사를 주관하는 자들의 물음에 어느 한 사람 대답하려 하지 않았다. 꿀 먹은 벙어리처럼 눈치만 살피자, 각 당의 호법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의아해했다. 아니, 우왕좌왕했다.
“거, 혹시 말 못 하는 자들이라는 말을 들은 사람 있습니까?”
“이번 심사자들 가운데 그런 특이 사항이 보고된 자는 없습니다.”
“혹 보고자가 실수로 누락하지는 않았습니까?”
“그럴 리 없습니다. 지금까지 면접자 인적을 누락 하는 실수를 범한 적은 없습니다.”
심사장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마침내 용하가 정적을 깼다.
“방주를 만나고자 합니다.”
그 순간 심사를 지켜보던 개방의 무사가 목 뒤를 움켜잡았다.
“아뿔싸!”
그날 첫 번째 심사는 허무하게 무산되고 말았다.
그리고 용하 일행은 다시 햇볕 한줄기 스며들지 않는 곡식 창고에 들어가 보름을 기다려야 했다.
“야, 김용하! 너 왜 매번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 산통을 깨는 거니?”
“형님! 그럼 저들이 하라는 대로 다 할 겁니까?”
“개방에서 뜻을 이루고자 하는 놈이 여기서 하라는 대로 해야지 달리 무슨 방법 있어?”
곡식 창고에 다시 갇힌 용하 일행은 조금도 물러서는 일 없이 자기네들끼리 팽팽하게 맞서 싸웠다.
“개방에서 하라는 대로 따르자고요? 형님! 진짜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닙니까?”
“뭐야, 인석이!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냐고?”
“생각 좀 해보십시오. 오늘 우리를 심사하러 나온 사람들 말입니다. 그 사람들에 대해서 좀 아세요? 그 사람들 각 당의 호법들이었습니다.”
“호법?”
“네, 겨우 사결(四結)이란 얘기입니다.”
“사결… 호법……, 그런데 그게 그렇게 중요하니?”
“중요합니다. 사결 호법이라는 그 사람들의 자격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판국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빤히 보인다는 게 문제입니다.”
용하의 말에 인공은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대체 뭐가 문제길래 그러는지는 모르겠다만, 일이 어찌 됐든 뭘 좀 알아야 함께 고민해도 할 것 아니겠느냐.”
“오늘 심사하러 나온 자들, …사결이었습니다. 만약 제가 소란 피우는 일 없이 오늘 심사를 통과했다 가정합니다. 보름 뒤에 다음 심사가 치러지겠죠? 그때는 오결(五結)이 나올 겁니다. 물론 사결도 참관인으로 나오겠죠. 그때도 무사히 심사를 통과하면 그다음 보름 뒤에는…….”
“뭐, 육결(六結)이 나오겠구나!”
“맞습니다. 방주는 구결(九結)입니다. 저는 방주와 담판을 지으려는 거지. 저런 조무래기들 상대하려고 21세기에서 여기까지 온 게 아니란 말입니다.”
“용하, 네 말대로면, 우리가 방주를 보는 날은 삼 개월 뒤가 되겠구나.”
“아무 탈 없이 진행된다면요.”
“그렇지. 그런데 오늘처럼 사고치고 그러면…….”
인공은 고개를 내저었다.
“저는 말입니다. 죽어도 개방의 절차대로 할 수 없습니다.”
“여기 절차대로 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게?”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을 겪었으니, 이제부터 생각해 봐야죠.”
인공은 한숨을 쉬었다.
“형님! 혹시 심사장으로 오가면서 용두방주의 궁을 보셨습니까?”
“그러잖아도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궁금해서 두루 살펴보았는데, 용두방주의 궁은 보이지 않더구나.”
“좀 이상하지 않아요? 용두방주의 궁은 개방에서 가장 큰 건축물입니다. 그래서 어지간한 곳에서도 보일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아무리 둘러봐도 안 보이더라고요.”
그제야 인공도 의아한 기색을 역력히 드러내며 고개를 수차례나 갸웃거렸다.
“용하야, 미안하구나. 내가 생각이 짧았다.”
“미안하다니요, 형님도 참, 별말씀을 다 하세요.”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지 못했어.”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인공이 먼저 입을 뗐다.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둘 중 하나인 것 같아.”
인공의 말은 받아 용하가 그다음을 이어갔다.
“…여기가 개방이 아니거나, 그사이 개방에 많은 변화가 생겨 방주 궁이 없어졌거나.”
한마디도 개입하지 않고 듣고만 있던 장설이 마침내 입을 뗐다.
“어디까지 가나 지켜보려고 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접근하는구나.”
장설은 뭔가 알고 있는 듯했다. 그 순간 용하와 인공의 시선이 일제히 장설에게로 향했다.
“형님!”
“자네 두 사람이 어느 날 홀연히 개방을 떠나고 난 후, 이곳 개방은 단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어. 딸의 부상을 자책한 용두방주는 술독에 빠져 살았고, 그 분노의 칼날은 죄 없는 착한 사람을 향했다. 매일 사람이 죽어 나가고 피로 물든 용주방주의 궁은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장설의 말을 듣고 있는 용하와 인공은 침통함을 떨칠 수 없었다.
“딸의 부상이 얼마나 컸습니까?”
“서쪽 끝에 있는 만년 설산에서 떨어졌다는 소리만 들었을 뿐이다.”
그 순간 용하와 인공은 거의 동시에 치켜뜬 눈을 들어 장설을 직시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경악했음을 알 수 있는 눈빛이었다.
“장설 형님! …혹시 그 사람이 소희 낭자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사뭇 진지했다. 하지만 장설은 쉬이 대답하지 않았다. 비록 장설의 대답은 듣지 못했지만, 인공은 확신한 듯한 눈으로 용하를 바라보았다.
“장설 형님. …외람되지만 그다음 이야기를 좀 더 들을 수 있겠습니까?”
“…….”
피 끓는 듯한 목소리로 애원했지만, 장설의 무거운 입은 쉬이 열릴 것 같지 않았다.
옆에서 무거운 표정으로 지켜보던 인공이 힘겹게 물었다.
“이제 어찌할 생각이냐?”
무슨 이유에서인지 인공의 물음에 용하는 묵묵부답이었다.
지옥 같은 침묵은 한동안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수일 내로 방주를 만날 것입니다.”
“묘안이라도 떠올랐느냐?”
“더는 두고 볼 수가 없습니다. 정면 돌파라도 하는 수밖에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개방에서 개방을 정면 돌파로 치겠다?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니?”
그때였다.
“경거망동하지 말아라!”
장설이 나섰는데, 심장을 짓누르는 듯한 무거운 목소리였다.
“달리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나름 결연하게 말했지만, 장설의 귀에는 그저 어리광으로 들렸다.
“정면 돌파를 하느니, 차라리 아홉 개 정파와 연합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
“아홉 개 정파에 힘을 실어주자는 말씀입니까?”
“감히 힘을 싣다니, 우리에게 그만한 힘이 있었더냐?”
“세력이 커질 대로 커진 개방은 각 정파와 대등함을 넘어 아홉 개 정파를 위협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아홉 개 정파에 힘을 싣는다는 건 개방을 위협하는 게 되지 않겠습니까?”
잠시 정적이 흘렀다. 찰나에 불과한 짧은 시간이었다.
“듣고 보니 그럴듯한 얘기로구나. 비록 작은 힘이지만 지금처럼 무림의 질서가 팽팽할 때는 큰 힘으로 작용할지도 모를 일.”
“차라리 애초에 그 길을 선택하는 게 현명하지 않았을까요?”
“그렇게 해서는 알 될 일이었다. 어차피 세상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 어느 쪽과 손을 잡든 용하 네 녀석이 하고자 하는 무림검도관만 건립하면 되는 것 아니겠느냐?”
“그러합니다.”
“궁극적으로 무림검도관 건립이 목적이니, 이왕이면 일면식이라도 있는 개방을 먼저 타진한 건 현명한 일이었다.”
“그리 생각하신다니, 저는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대의를 위해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 삼 개월이든 삼 년이든 말이다.”
“제가 성급했습니다.”
“다음 사결(四結) 호법의 재심 때는 잘할 수 있겠느냐?”
“오늘 일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일이 술술 풀리자 인공은 경외하는 눈으로 장설을 바라보았다.
그로부터 삼 개월 뒤.
조금 전 팔결(八結) 방주를 계승할 자들의 심사를 치렀다.
“형님들! 이제 방주만 남았습니다.”
“장하구나! 쉽지 않았을 터인데, 잘 견디어주었어.”
“장설 형님 말씀대로, 삼 년을 보고 달려와서인지, 그리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영특한 녀석 같으니, 내 말을 찰떡같이 알아들었구나.”
“옛말에 그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어른들 말 잘 들으면 자다가 떡을 얻어먹는다고.”
오랜만에 곡식 창고에 웃음꽃이 피었다.
그 앞을 순찰하던 개방의 무사 입에도 옅은 미소가 그려졌다.
그로부터 또 보름이라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 흘렀다.
“용하야. 오늘은 유독 외모에 신경을 쓰는 것 같구나.”
인공의 목소리 또한 경쾌했다.
“그 이유를 형님이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때였다.
“참, 내가 깜박 잊은 게 한 가지 있구나.”
장설의 말에 용하와 인공은 토끼 눈이 돼 장설을 바라보았다.
“깜박 잊은 게 있다니, 그것이 대체 무엇입니까?”
이 긴말을 한 치의 어긋남 없이 입을 모아 말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두 사람의 호흡이 척척 맞는다는 게 장설에게는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 때문인지 장설의 얼굴에 잠시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졌다.
‘왠지 이번에도 저 두 사람과 평행선을 달릴 것만 같구나.’
일전에 혼자 남겨진 것에 대한 원망이 스멀거렸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 장설이 아니었다면 분노가 극에 달한 용두방주의 칼에 목이 날아갔을 것이다. 복수에 눈이 먼 용두방주는 호시탐탐 장설을 노렸다. 장설은 한시도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용두방주의 추격을 피해야 했다.
‘생각하기조차 힘겹고 벅차구나…….’
그렇게 쫓기는 세월이 얼마나 흘렀을까. 어느 날부터인가 용두방주의 추격이 느슨해졌을 때 저잣거리에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개방의 우두머리가 죽었다는데 그게 사실이야?”
“그러게, 어제부터 그런 말이 나도는데, 이걸 어디 가서 확인해야 하나?”
“지금의 방주가 워낙 연로하여 호상이라는 말이 있던데.”
등등. 한동안 용두방주에 대한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렇게 무성했던 소문은 새로운 방주가 추대되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 쑥 들어갔다.
그때만 생각하면 치가 떨렸다.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그게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장설은 가늘게 뜬 눈으로 용하를 몰래 훔쳐보며 곱씹었다.
‘이번엔 지난번처럼 넋 놓고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장설은 조금 있으면 있을 방주의 심사를 앞두고 갑자기 발생할지 모를 돌발상황을 염두에 두고 만반의 준비를 했다.
이번에는 인공을 곱지 않은 눈으로 훔쳐보았다.
‘저놈이 더 나빠. 용하 녀석이야 철이 없어서 그렇다 치고, 저건 나이 먹을 만큼 먹은 놈이 저 혼자 살겠다고 나한테는 끝까지 입도 뻥긋하지 않고 그 엄청난 수작을 꾸몄으니.’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하지만 방주의 심사를 기다리는 세 사람에게는 지루하리만치 더디 흘렀다.
그때였다. 곡식 창고 밖에서 목청을 긁는 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심사는 취소되었다. 그리 알고 다음을 기약하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