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146
146화
“아니, 그게 다 무슨 소리요?”
용하는 제 귀를 의심하며 어리둥절해서 중얼거렸다.
그리고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급기야 상황을 파악하고 소리쳤다.
“여보시오! 심사가 일방적으로 취소되다니, 그게 무슨 소리요?”
용하는 곡식 창고 문에 매달려 절규했다.
“이럴 순 없소이다. 세상에 이런 일이 어찌 있을 수 있다는 것이오.”
“…….”
하지만 더는 밖에서 인기척을 들을 수 없었다.
절망적이었다. 기약도 없이 툭 던져진 일방적인 취소였다.
“형님, 이제 어찌하면 좋습니까?”
“무림은 이게 문제야. 항상 권력자들은 상대는 안중에도 없고 자기 맘대로 일방적인 행보를 한다니까.”
“한 가지 궁금합니다.”
“무엇이 그리 궁금한지 말해보아라.”
“이곳 무림은 검이 곧 법이라 하였습니다.”
“그것이 왜?”
“그럼 검을 잘 쓰는 자가 권력자입니까?”
“꼭 그렇다고 할 순 없다. 진정한 권력자는 세력을 가진 자다. 세력을 갖기 위해 남의 것을 빼앗았을 것이고, 그러기 위해 검을 사용했겠지.”
“저는 형님 말씀이 왠지 그 말이 그 말처럼 들립니다.”
“그 말도 크게 틀린 건 아니다. 하지만 권력자들은 권력을 갖기 위해 검 이외에도 수많은 시간과 공을 들였을 것이다.”
“그 말씀은 그렇게 잡은 권력은 절대 놓을 수 없을 것이라는 말로 들립니다.”
“바로 맞췄다. 권력자들은 한번 잡은 권력을 절대 놓지 않는다.”
“그렇다면 권력자의 눈 밖에 난다는 건 스스로 불행을 자처하는 거네요?”
“현재까지 무림에서는 다들 그렇게 알고 있다. 그러니까 용하 자네도 잘 생각해서 처신해. 지난번처럼 앞뒤 가리지 않고 경거망동해서 일을 그르치지 말고.”
그 순간 뒤통수를 때리며 용하의 뇌리를 스치는 게 있었다.
‘그렇다면 혹시 첫 심사 때 난동 부린 걸 가지고…….’
용하의 입이 저도 모르게 굳게 다물어졌다.
‘방주라는 자! …앞으로 조심해야겠다. 뒤끝 있는 인간이야.’
수도 없이 곱씹고, 수도 없이 되새겼다.
마지막 심사를 눈앞에 두고 연기됐던 심사일이 다시 잡혔다. 불과 사흘만이 일이었다.
“형님! 생각보다 빨리 잡혔네요? 전 적어도 보름은 기다려야 하는 줄 알았는데 말입니다.”
“그러게나 말이다. 방주 앞에 가면 납작 조아리고 감사의 말씀 꼭 드리거라.”
“네, 그리하겠습니다. 형님.”
용하가 순순히 대답하자 인공은 고개를 갸웃했다.
‘녀석이 애가 타긴 탔던 모양이군.’
세 사람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방주의 심사가 변함없이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도하기 위함이었다. 그 광경이 마치 세 개의 부처를 연상시켰다.
오후가 되었다.
변함없이 세 사람은 가부좌를 틀고 앉은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때였다. 용하의 한쪽 눈이 빼꼼하게 떠졌다. 칼날같이 비좁은 문틈을 비집으며 스며드는 가느다란 햇빛을 보기 위해서였다.
‘해가 기울기 시작했군.’
그 순간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용하는 슬그머니 두 눈을 뜨고 옆에 앉은 인공을 흘깃 바라보았다. 변함없이 어엿한 자세였다.
‘참 이상도 하지. 시간이 꽤 흘렀는데 궁금하지도 않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지금까지 있었던 심사를 돌아보면 대체로 오전에 시작해서 늦은 오후에 끝나기 일쑤였다. 이대로 간다면 짧게 끝내거나 늦은 밤까지 하게 될 텐데.
“형님.”
바로 옆 사람에게조차 들릴 듯 말 듯 한 작은 목소리였다.
“꿈쩍도 하지 않네! 목소리가 너무 작았나?”
분위기를 살피며 어느 정도의 목소리가 적당할까 생각해 보았다.
“형님……. 형님……. 음, 형님!”
지금 분위기에 걸맞은 적당한 음색과 크기의 목소리를 찾기 위해 용하가 다양한 목소리로 다양한 톤의 소리를 내고 있을 때였다.
“기도하다 말고 뭐 하는 짓이냐?”
분위기에 딱 맞는 적당한 음색에 적당한 톤의 목소리로 인공이 물었다.
“형님, 오후가 되었습니다.”
“그건 진작 알고 있었다. 아까 배꼽시계가 한동안 난리를 치더구나.”
“그런데 왜 이대로 계시는 겁니까?”
“하던 기도는 마저 해야 하지 않겠느냐? 게다가 장설 형님도…….”
인공은 말을 하다 말고 옆자리의 장설을 흘깃 보았다. 그러고는 바로 말을 이어갔다.
“변함없이 기도에 집중하고 계시지 않느냐?”
인공은 더는 용하의 말에 대꾸하는 일 없이 기도에 집중했다.
“뭐야, 되는 일 하나 없는데 기도만 올리면 대수인가, 뭐!”
그때였다. 장설이 금방 잠이 들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모름지기 기도란 이루어질 때까지 올리는 것이다.”
장설의 말에 질색한 용하는 입 모양으로 겨우 대답했다.
“네, 형님…….”
그러고는 바로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렇게 또 한 시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두 시간을 더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더니 이제 다리가 펴지지도 않는다.
“형님들, 이제 그만하시죠. 이번에도 그른 것 같습니다.”
그때였다. 장설이 진노해 소리를 질렀다.
“네 녀석은 늘 그렇게 이 장설의 말을 귓등으로 듣는 것이냐?”
찔끔 놀란 용하는 장설 앞에 조아리며 대답했다.
“형님! 형님 말씀을 귓등으로 듣다니요. 그럴 리 없습니다. 제가 그럴 리가 없지 않습니까?”
“아까 내가 뭐라고 했더냐?”
언제를 말하는 건지 몰라 잠시 어리둥절했다.
“아까 내가 분명 말했다. 기도란 기도 내용이 이루어질 때까지 지극정성으로 올려야 하는 거라고. 그런데 한 시진도 채 못 돼 이렇게 흐트러진 자세를 보이는 것이냐?”
“죄송합니다. 제가 또 경망스러운 짓을 했습니다.”
용하가 바로 뉘우치고 가부좌를 틀려고 할 때였다.
“지금 바로 방주 궁으로 이동할 것이니, 그리 알고 준비하라!”
개방의 어느 무사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들렸다. 용하는 귀가 번쩍 열렸다. 자금 바로 방주 궁으로 간다니, 무엇보다도 반가운 소리였다.
용하는 가부좌를 틀려다 말고 벌떡 일어섰다.
“형님들! 지금 뭐하고 계세요? 우리가 지극정성으로 올리는 기도에 부처님께서 크게 감동하셨나 봅니다. 지금 곧 방주 궁으로 간다는 걸 보니 말입니다.”
방주 궁에서 심사가 있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또 경망스럽게 구는구나. 마음 가라앉히고 생각 좀 해보자꾸나.”
용하가 들떠서 날뛰자 장설이 그를 눌렀다. 하지만 용하는 조금도 눌리지 않고 기고만장해 대들었다.
“생각이라니, 무슨 생각이요?”
“그동안 심사장에 오가면서 방주 궁을 본 적이 있었느냐?”
땡!
장설의 말에 용하의 시계가 잠시 멈춰버린 듯했다.
“방주 궁!”
백일이라는 세월이었다. 보름을 두고 심사장으로 오갔지만, 방주 궁을 본 기억은 떠오르지 않았다.
“함정일까요?”
용하는 망연자실해 물었다.
“함정은 아닐 것이다. 도마 위에 놓인 물고기에게 무슨 해코지가 더 필요하겠는가?”
장설의 말에 용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새로 추대된 방주라는 작자. 신비주의에 게임을 즐기는 사람인가?’
왠지 게임 속 같았다. 개방으로 붙잡혀 와서 곡식 창고에 갇히는 순간부터, 이 모든 것들이 마치 게임 속에서 펼쳐지는 한 장면 한 장면 속에 있는 듯한. 그 순간 용하의 뇌리에 불현듯 무엇인가 떠올랐다.
‘피할 수 없거든 즐겨라!’
“그래 즐기자! 죽을 때 죽더라도 마음껏 즐겨보자.”
그렇게 외치는 용하는 인공과 장설은 미친놈 보듯 쳐다보았다.
그때였다. 곡식 창고 문이 열리며 개방의 무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보안 때문이니, 지금부터 우리가 하는 일에 추호의 의심도 하지 말고 따라 주시오.”
“보안?!”
개방의 무사들은 일사불란하게 세 사람의 눈을 가리고 팔을 뒤로 돌려 포박했다.
“지금 뭐 하는 짓들이시오?”
소리치며 뿌리쳐보려 했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개방의 무사들에게 에워싸인 세 사람은 얼핏 형장으로 끌려가는 사형수를 연상시켰다.
아직 해가 완전히 저물지 않았음에도 칠흑 같은 어둠 속을 걷는 듯했다.
저벅저벅, 저벅저벅!
움직일 수 있는 감각기관이라고는 후각과 청각뿐이었다. 일단 귀에 들리는 소리라고는 개방 무사들의 발걸음뿐이었다. 코에서 느껴지는 냄새는 싱그러운 풀냄새와 평화로움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걸음을 멈춘 개방 무사들이 세 사람을 강압적으로 멈춰 세웠다.
‘거의 다 왔나 보군.’
하지만 그것도 잠시. 라벤더 향이 그윽한 곳으로 끌려가기 시작했다. 향긋한 풀냄새가 더는 나지 않는 걸 보니 실내로 들어선 게 분명했다.
두근두근! 콩닥콩닥!
오늘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곧 방주를 만나게 될 거로 생각하니 심장이 벌렁거렸다.
이윽고 무사들의 강압적인 손이 세 사람의 어깨를 짓눌러 무릎을 꿇렸다.
‘다 왔나 보군.’
무사들의 우격다짐 따위 견딜 만했지만, 용하는 일말의 저항도 하지 않고 그들이 의도하는 대로 무릎을 꿇었다.
용하가 순순히 따르자, 곧 눈을 가렸던 두건이 벗겨졌다. 그 순간 용하의 눈에 화려한 실내 공간이 펼쳐졌다. 눈이 부셔 정확히 볼 수 없었다.
용하 일행은 수차례나 눈을 껌벅이며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려고 애썼다. 그리고 마침내 세 사람의 시야에 들어온 것들이 그리 낯설지 않았다.
‘이게 다 뭐란 말인가. 어찌하여 낯이 익은 것인가.’
용하의 놀란 두 눈이 다시 한번 커졌다. 그곳이 어디인지 기억해내는 데 걸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아니, 이곳은!!’
개방의 무사들이 방주 궁이라며 안내한 곳은 다름 아닌 창의부흥원이었다.
‘대체 무슨 사연이 있었기에 창의부흥원을 방주 궁이라고 하는 것인가.’
시간이 지나면서 인공과 장설도 그곳이 어디인지 알아차린 기색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의아하다는 듯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간혹 용하를 바라보기도 했지만, 용하는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이곳이 창의부흥원이든 방주의 궁이든 그런 건 중요치 않다.’
용하는 조금 멀리 시선을 두고 두리번거렸다.
‘대체 방주는 어디 있단 말인가.’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방주를 찾을 수 없었다.
바로 그때였다. 용하의 시야에 커다란 흰색 베일이 보였다.
‘뭐야, 저건?’
그리고 베일 뒤로 사람으로 보이는 형태가 어렴풋이 보였다.
‘분명 사람이지? 그렇다면 저 작가가 방주?’
콩닥콩닥! 두근두근!
갑자기 심장이 이리저리 나대기 시작했다.
개방의 방주. 그 자리가 원래 그런 거였다. 때로는 사람을 긴장하게도 하고 설레게도 하는 바로 그런 자리.
방주의 심사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짧게 끝났다.
‘무슨 심사가 이래? 개방의 우두머리라는 자의 심사가 고작 십여 분이라니.’
세 사람의 눈이 다시 두건으로 가려졌다.
‘뭘 굳이 이렇게까지.’
용하는 속으로 한껏 비웃었다.
‘이것들이 창의부흥원 뒷길도 알고 있을까?’
간혹 뒷길을 이용해 용두방주를 속였던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지나갔다.
그러는 사이 방주 궁을 나와 다시 곡식 창고로 돌아가고 있었다. 비록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싱그러운 풀냄새가 그것을 말해 주었다. 아직은 별 탈 없이 평화로웠다.
그때였다.
“친구야!”
개방의 무사는 용하를 흘깃 바라보았다. 비록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그의 눈빛은 어느덧 용하의 부름에 대답하고 있었다.
“뭐 하나 물어봐도 되겠니?”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개방의 무사 반응에 용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입을 뗐다.
“예전의 용두방주 궁은 대체 어디로 어떻게 사라진 것인가?”
용하의 기습 질문에 개방의 무사는 새파랗게 질려 사시나무 떨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