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147
147화
“아니, 그게 다 무슨 소리요?”
조금은 어설펐지만, 개방의 무사는 최선을 다해 시치미를 뗐다.
“친구야, 제발! 난 말이야, 궁금한 게 있으면 못 견디는 성격이란 말이야. 아마 이대로 그냥 내버려 둔다면 얼마 못 가 제 성질에 못 이겨 말라비틀어져 죽고 말 거야.”
어리광도 아닌, 그렇다고 하소연도 아닌 어정쩡한 태도로 매달렸다.
‘거짓이야. 저런 말에 현혹되면 안 돼!’
개방의 무사는 난처한 기색 아니, 안절부절못했다.
‘절대 입을 열어선 안 돼!’
내심 수없이 다짐했다. 지금까지 방주 궁에 대해 발설한 사람치고 온전하게 살아남은 자가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용하의 표정이 어찌나 간절해 보였던지 입을 열지 않고는 못 배길 것 같았다.
“알려고 하지 말라!”
“야, 야! 무섭게 왜 그래? 친구한테 그렇게 말하는 거 아냐. 그건 적에게나 하는 말이지.”
“친구라서 해주는 말이야. 자꾸 알려고 들지 마. 알면 다쳐!”
그 순간 용하의 눈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알면 다친다고? 뭔가 있다는 소리인데.’
더 궁금해졌다. 도저히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될 무엇인가 숨겨져 있다는 생각이 압도적으로 뇌리를 사로잡았다. 본능적으로 낮은 자세를 취했다.
“이보시게, 친구~”
“왜 그러는가, 친구. 징그럽게…….”
“아니, 친구. 무슨 말을 그렇게 하시는가. 우정이 느껴져서 그것을 표했거늘 징그럽다니.”
“아, 그러한가? 미안하네. 내가 자네 마음을 몰라준 것 같네그려.”
손등에 닭살이 돋기 시작했다. 그건 단지 용하뿐 아니었다. 개방의 무사도, 인공도, 장설도 마찬가지였다.
“자꾸 이러지 말게. 자네가 무엇을 알고자 하는지, 또 얼마나 궁금해하는지. 다 알고 있네. 하지만 내게서 그것을 알고자 하지 않았으면 좋겠네.”
“참으로 이상하네, 친구. 분명 자네가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어찌하여 친구인 내게 말하기를 꺼리는 것인가? 무슨 말 못 할 사연이라도 있어서 이러는가?”
얼토당토않은 질문이었다. 사지선다형 답안 찍듯 과감하게 넘겨짚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자네가 날 좀 이해하게. 내가 입을 뗀다는 건 나는 물론이고, 친구까지 사지로 몰고 가는 것일세.”
“알면 다친다는 말이 그것 때문이었는가?”
“…….”
개방의 무사는 더는 말을 아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용하는 더욱 집요했다.
“이보게, 친구! 만약 내가 자네를 위해 목숨을 내놓겠다면, 자네도 그럴 수 있겠는가?”
배수진을 친 전장의 장수 같았다. 개방의 무사는 선뜻 대답을 못 하고 딸막거렸다.
“왜 대답을 못 하는 것인가?”
그제야 무사는 조금은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물론 친구를 위한 일이라면 이깟 몸 하나 기꺼이 던질 수 있네. 하지만 조금 전 그 질문엔 대답할 수 없네.”
“대체 왜 그러는가? 얼마나 큰일이 있었기에 그리도 완강한 것인가, 친구!”
“…이보다 더 의미 없는 개죽음은 세상에 없을 테니까.”
무사는 꺼져가는 목소리를 남겼을 뿐 더는 말을 하려 들지 않았다.
‘이대로 입을 닫아 버리게 두고 볼 수만은 없다. 어떻게든 저 입이 굳게 닫히기 전에 다시 열어야만 한다.’
“이보게, 친구! 자네 사나이가 맞는가?”
사나이임을 의심하는 용하의 말에 무사는 적잖이 자극된 것 같았다.
개방의 무사는 눈가에 경련을 일으키며 대답했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가. 나의 기백을 하찮게 여긴다는 것인가?”
“흥분하지 말고 듣게.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고, 자네가 정녕 사나이요, 무림의 협객이라면 대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그것이 궁금해서였네.”
“나는 분명 사나이요, 무림의 협객이네. 그래서 지켜야 할 것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기필코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네.”
“대체 무엇이 자네에게 목숨을 걸고서라도 그것을 지키도록 하는 것인가?”
“누가 시켜서 하는 건 결코 아닐세. 단지 그것이 명예로운 것이니 따르는 걸세.”
도저히 뚫을 수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점점 단단해졌다.
‘어찌해야 저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단 말인가.’
용하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떨구었다.
‘이대로 미궁으로 빠지고 마는 것인가.’
좌절의 문 앞에서 서서히 무너지고 있을 때였다.
“이보게, 친구!”
용하는 고개를 들어 퀭한 눈으로 개방의 무사를 쳐다보았다.
“자네가 굳이 그 사건을 알아야 하는 이유!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명예롭다면, 그것을 내게 말해 보게.”
‘더 명예로울 이유가 있었던가?’
기로에 설 수밖에 없었다. 방주의 궁이 사라진 이유와 창의부흥원이 방주의 궁이 된 이유를 알아내고 친구를 희생시킬 것인가. 아니면 친구를 위해 알고자 하는 걸 포기할 것인가.
‘이런 결정을 해야 한다니, 쉽지 않군.’
어느 쪽도 선택할 수 없었다. 결국 용하는 차차 알아가기로 마음을 정했다.
“알았네. 내가 자네를 너무 몰아세운 것 같으니, 이쯤에서 그만두세.”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필사적으로 알려고 들던 용하가 갑자기 태도를 바꾸자 개방의 무사는 그것이 더 의심스러웠다.
“그나저나 오늘도 곡식 창고로 가는 것인가?”
“어쩔 수 없을 것 같네. 다른 명을 받은 바가 없으니 말일세.”
“방주의 심사도 거쳤는데, 이건 너무 하지 않은가?”
“심사 과정을 거친 것이지, 아직 통과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얼마나 기다려야 심사 결과를 알 수 있을 것 같은가?”
“아직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네. 그러니 마음 비우고 기다려보도록 하세.”
“…….”
“미안하네. 친구로서 이렇게밖에 할 수 없어서.”
이래저래 궁금증만 남긴 채 용하 일행은 다시 곡식 창고에 갇혔다.
칠흑 같은 곡식 창고에 갇힌 세 사람은 한동안 침묵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용하가 먼저 입을 뗐다.
“그런데 형님들! 혹시 방주의 얼굴을 보신 분 계십니까?”
인공과 장설. 두 사람 다 묵묵부답 서로의 얼굴만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이상하죠? 왜 방주는 베일 뒤에서 심사를 진행한 걸까요?”
적잖이 의구심을 드러내는 용하의 물음에 인공이 분연히 대답했다.
“용하야, 너 같으면 대장이 졸개들하고 똑같이 하고 싶겠니? 그게 다 가호 잡으려고 하는 짓이야. 그러니 너무 마음 쓰지 말고 그냥 받아들여. 정신건강에 해로워.”
결코 아니었다. 인공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을 순 없었다. 사람이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세상에 어느 누가 단순히 가호를 잡기 위해.
용하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절대 가호 잡으려고 그런 건 아닐 겁니다.”
“가호 잡는 게 아니면, 용하 넌 뭐라고 생각하느냐?”
“이상주의자가 권력을 갖게 되면, 쉽게 빠져드는 게 다름 아닌 신비주의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적당한 크기의 원한까지 가세한다면…….”
용하는 하던 말을 멈추고 말았다. 온몸에 소름이 끼쳐서 더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니, 왜?’
그 순간 저도 모르게 한 사람이 아주 잠깐 뇌리를 스쳤기 때문이다.
‘그럴 리 없어. 그럴 리가 없잖아.’
마음껏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용하였기에 고개를 내저었다. 그렇게라도 혹시나 세상에 존재할지 모를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서였다.
“…아닐 거야. 상상 속에서나 있을 그런 일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거잖아.”
자기도 모르게 속으로 해야 하는 말이 입 밖으로 새 나오고 말았다.
“대체 뭐라고 중얼거리는 거야?”
인공은 다소 짜증스러운 목소리를 내며 용하를 바라보았다.
“이보게! 대체 지금 뭐라고 중얼거리는 거야? 알아듣게 좀 얘기해봐.”
그제야 현실을 직시한 용하는 조금은 당혹스러웠다.
“네? …제, 제가 뭐라 하던가요?”
어리둥절 인공을 바라보는 용하를 향해 장설이 한마디 했다.
“이래서 사람은 인간들 속에서 서로 보대껴가며 살아야 하거늘.”
장설의 말에 인공이 괜히 시비를 걸었다.
“아니, 형님은 무슨 말을 그렇게 하시는 겁니까? 그럼 뭐, 형님도, 저도, 용하 이 녀석도, 우리 다 사람이 아닙니까? 우리 셋은요, 형님! 단 한 번도 사람들을 떠나 살아본 적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장설은 의연하게 대응했다.
“그렇게 들렸다면 내가 사과하마.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고, 이런 곡식 창고에 너무 오래 감금돼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외골수가 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안타까워서 한 말이었다.”
“형님의 깊은 뜻은 아우인 제가 어찌 다 알겠습니까?”
인공과 장설. 두 사람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아무렇지 않게 서로에게 사과했다.
‘뭐야, 나 들으라고 저러는 건가?’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용하는 내심 찔끔했다.
하지만 곧.
‘마음대로 하시오. 난 하루라도 빨리 이 지긋지긋한 곡식 창고에서 나가기만을 학수고대할 것이니.’
개방에 입문하기 위한 마지막 심사를 치른 지도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하루 세 번 배식을 위해 쪽문이 열렸을 뿐 별다른 소식은 전해지지 않았다.
“형님! 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걸까요?”
다들 기다림에 지쳐 보였다.
“그나저나 자네 친구라고 했던 자도 얼굴 보기 어려워진 거야?”
“그러게요! 제가 하도 이것저것 물어보는 게 난처했나 보죠.”
“어디 난처하기만 했겠냐? 좀 귀찮게 해야지.”
혼잣말처럼 구시렁거리는 인공이 왠지 못마땅했다.
“형님! 지금 제 얘기 한 거죠?”
두 눈을 부리라는 게 득달같이 달려들 기세였다.
“너! 무슨 스타 못되면 죽는 병 걸렸냐? 왜 모든 일의 중심에 네 녀석이 서 있기라도 한 듯 지랄이야, 지랄이!”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말이 있다. 인공은 마치 용하가 할 다음 행동을 알고 있었다는 듯 먼저 선수를 쳤다. 인공의 위세에 용하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닌가?”
용하는 곁눈질로 인공을 보았다. 그러는 통에 자기가 이겼다는 생각에 키득거리던 인공이 짐짓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뭐지? 왜 눈을 피하는 거람.’
그때였다.
“사람이 좋아야 친구가 있는 거란다.”
인공의 빈정거림에 울화가 치밀어오른 용하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형님! 지금 불난 집에 기름 붓는 겁니까?”
“왜 소리를 지르고 지랄이야. 다 같이 곡식 창고에 갇힌 주제에 잘난 사람이 누가 있다고.”
“저도 지금 후회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발 남의 속 좀 긁지 마시죠?”
“내 말 너무 곡해하지는 말아라. 나는 말이다. 지금 우리 처지가 물불 가릴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서 하는 소리니까.”
“물불 가릴 때가 아니라는 걸 누가 모릅니까? 그러니까 저더러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정말 모르겠느냐?”
“네, 정말 몰라서 그러니 제발 좀 가르쳐주십시오.”
“무릇 전투에서 승리하려면 지형지물을 잘 활용하라고 했다.”
그 순간 용하의 두 눈이 번쩍 빛났다.
“지형지물?”
그런 용하를 바라보는 인공의 표정에 기대감이 엿보였다. 한참을 고민하던 용하가 마침내 입을 뗐다.
“형님!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제게 지형지물이라고는 형님들밖에 없는데요.”
하, 안타까움에 한숨만 나왔다.
“용하야, 침착하고! 이제 거의 다 왔어. 자, 안타깝게도 장설 형님과 나는 너와 함께 여기 곡식 창고에 갇혀 있는 신세인데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 하지만 밖에 있는 네 친구인 개방의 무사는 충분히 너의 지형지물이 돼 줄 수 있지 않겠느냐?”
시종일관 달콤한 속삭임이었다. 용하는 인공의 말에 구미가 당겼던지, 언제부턴가 인공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어떠하냐? 이참에 그자가 진정 너의 친구인지 확인이라도 한번 해보지 않겠느냐?”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내친김에 인공은 발끈하는 힘으로 승부수를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