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148
148화
“형님!”
인공은 벌써 부담스러웠다.
“얘, 용하야! 제발 부탁인데…, 그런 목소리로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그런 목소리라니, 제 목소리가 어디가 어때서요? 남들은 다들 좋다고만 하던데.”
“아, 그게 말이다. 네 녀석이 그렇게 부르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더라고.”
“참, 이상하네요! 전 항상 똑같은데. …그건 그렇고, 혹시 제 친구인 무사의 목소리를 기억하십니까?”
인공은 조금은 의아한 기색으로, 뭘 그런 걸 다 묻느냐는 표정이었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십시오. 확실히 하려고 그러는 것이니.”
이번에도 인공은 조금은 의심스러운 눈으로 용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무슨 생각에서인지 곧, 무조건 믿어보겠다는 태도로 바뀌었다.
“하루에 한 번은 꼭 들리더구나.”
“아, 그래요?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용하의 물음에 숨이 막혔던지, 인공은 자기 가슴을 탁! 치며 대답했다.
“아니, 그걸 왜 몰라? 그 친구는 말투부터가 다르던데.”
“말투부터가 달랐다고요, 어떻게 다르던가요?”
“다른 놈들은 돼지 멱따는 소리로 정이라고는 요만큼도 느껴지지 않은데, 그 작자는 그래도 부드러워. 개방의 최전방을 지키는 무사가 그런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건…….”
하던 말을 멈추고 고개를 내저었다. 그리고 곧 숨을 가다듬더니 다시 말을 이어갔다.
“아무튼 지극정성이야. 개방의 무사가 그렇지 않고서는 그런 목소리를 낼 수 없어.”
인공의 말에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우정을 그렇게 소중히 여기는 자라면, 적어도 친구를 대상으로 해코지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겨서였다.
“한번 해보겠습니다. 무엇을 요청할까요?”
“뭐긴 뭐겠어. 일단 우리가 여기서 나가야 뭘 해도 할 것 아냐.”
“그 문제라면 좀 더 기다려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한시가 급하다던 놈은 바로 너야.”
“그건 그런데… 공교롭게도 우리가 이곳에서 탈출함과 동시에 방주가 심사 결과를 긍정적으로 내놓으면요.”
용하의 말에 할 말을 잃은 건 다름 아닌 인공이었다.
“우리가 뭐, 그렇게 재수 없는 편은 아니지만, 세상일은 모르는 거잖아요.”
“아니, 재수 없는 거 맞는 것 같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되지 않았느냐.”
“형님 뜻에 맞서려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이번 일은 좀 기다려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괜히 섣불리 움직였다가 지금보다 더 궁지에 몰릴 수도 있지 않습니까?”
용하의 말에 인공은 무엇인가 반대 의견을 말하려고 입을 벌렸다. 바로 그때였다. 장설이 먼저 갈라진 두 사람의 의견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번엔 용하 말이 옳은 것 같구나. 좀 더 기다려보자꾸나.”
“아니, 형님!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세요? 자그마치 석 달입니다. 석 달을 넘게 이 칙칙한 곳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더 기다리자는 겁니까?”
“석 달도 기다렸는데, 며칠을 더 못 기다려?”
더는 대항할 말이 없었다.
“형님! 어디 학원 다니세요? 어떻게 그렇게 말을 잘하세요?”
“학원! …뭐 하는 곳이냐?”
“아,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냐? 배울 학(學)에 담 원(院)을 쓰느냐?”
“네, 맞습니다.”
“그럼 네 녀석은 지금, 나더러 배움과는 담을 쌓으라, 이 말이 하고 싶은 것이냐?”
“와―, 와―”
인공은 감동이라고 하기엔 조금은 변형된 기괴한 비명을 수차례나 질러댈 뿐이었다.
“어떻게 학원을 그렇게 해석합니까? 와― 정말 기도 안 찹니다.”
그때였다.
“재미있으세요? 그러고 노니까 재미있으시냐고요?”
“너, 너는 그…, 어른한테 무슨 말버릇이야?”
“아무래도 잘못 온 것 같습니다.”
“잘못 온 것 같다고?”
놀란 인공의 얼굴은 보기조차 민망했다. 쭈글쭈글해진 이마는 몇 개의 주름이 길게 늘어져 있었고, 미간은 심하게 찌그러져 있었으며, 두 눈은 금방이라도 눈동자를 쏟아낼 듯 커졌다. 게다가 떡 벌어진 입을 다물어질 줄을 몰랐다.
“여긴 개방이 아닙니다.”
“개방이 아니라니, 대체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것이냐?”
개방이 아니라는 말에 인공은 펄쩍 뛰었다.
“확실히 개방이 아닙니다. 개방에는 방주의 궁이 있어야 하고, 창의부흥원이 있어야 하며 그 옆에 호위무사들의 숙소가 있어야 합니다.”
“네 녀석이 오랜 옥고 끝에 실성한 모양이구나!”
“그럴 리가요?”
“그런데 어찌하여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것이냐? 다른 건 몰라도 창의부흥원이 건재한 것은 확인하지 않았느냐?”
“창의부흥원이 건재해요? 어디서 어떻게 건재하던가요?”
“이 녀석 좀 보게. 우리가 마지막 심사를 받은 곳이 창의부흥원이라는 걸 몰랐단 말이냐?”
“거긴 창의부흥원이 있던 건물이고 지금은 방주의 궁입니다. 결코 창의부흥원이 건재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웬일인지 용하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그제야 용하의 깊은 속을 헤아린 인공은 입을 꾹 다물었다.
“이제 어찌할 생각이냐?”
“장설 형님 말씀대로 기다려볼 생각입니다.”
“기다린다고 별 뾰족한 수가 생기겠냐?”
“왜, 갑자기 비관적인 거죠?”
“예전의 용두방주는 폐물이 돼 저세상으로 갔고, 네 녀석 머물던 창의부흥원은 새로 추대된 방주가 차지했고, 우리는 지금 누구의 집인지도 모를 곡식 창고에 석 달이 넘게 갇혀 있는데, 무슨 희망이 있겠니? 당연히 비관적일 수밖에.”
한 마디도 틀린 말이 없었다. 세 사람에게서 어떤 희망을 기대한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게다가 유월이 안전도 이제 보장할 수 없는 처지였다.
“유월인 괜찮은 걸까요?”
“그건 네 녀석 친구한테 물어봐야지, 나한테 물으면 어떡하겠다는 거니?”
불확실해진 미래 때문이었을까, 다들 짜증이 극에 달해 고운 소리를 듣는다는 건 기대하기 어려울 듯했다.
그때였다.
“별일 없는가?”
개방의 무사 목소리가 들렸다.
“용하야, 네 친구!”
인공은 무사의 목소리를 단번에 알아듣고 나직하게 속삭였다.
“아, 그래요?”
용하 또한 입 모양으로만 대답했다.
“어찌하여 대답이 없는가? 뭐 필요한 것은 없는가?”
비교적 온화한 목소리였다. 용하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가장 궁금했던 것부터 말문을 열었다.
“이보게, 친구!”
“말하게.”
“유월이는 어찌 되었는가?”
“그건 일전에도 말하지 않았는가. 내가 잘 데리고 있다고.”
“그사이 나와 조금은 소원해지지 않았는가. 그래서 물어본 걸세.”
“살다 보면 간혹 소원해질 때도 있는 법! 그렇다고 우정에 금이 가서야 쓰겠는가.”
역시 듬직했다.
“고맙네. 일단 내가 여기서 나갈 때까지 유월이를 부탁하네.”
“알겠네.”
“그리고 약속했던 건 내가 나가는 대로 반드시 지킬 걸세. 그러니 그것 때문에 괜한 신경 쓰지는 말게.”
“…….”
더는 밖에서 어떤 말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자 인공이 용하에게 빠짝 다가서며 말했다.
“자네가 사람 복은 있나 봐. 인제 보니, 저 친구가 아주 진국이야.”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그럼! 지금부터 저 친구 믿고 유월이 걱정은 당분간 내려놔도 될 것 같구나.”
“정말 그래도 괜찮을까요?”
“현재로선 최선이야. 그리고 방주를 만나면 실수하지 말고 예전처럼 승승장구하길 바라네.”
꿈같은 얘기였다. 곡식 창고에 갇혀서 감히 예전의 부귀영화를 꿈꾸다니.
“잘 될까요? 세상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세상이 달라졌다한들, 사람 보는 눈까지 달라졌겠느냐?”
“정말 그럴까요?”
용하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인공의 말이 적잖이 힘이 되어서였다.
“장설 형님께 여쭙겠습니다.”
“무엇이 그리도 궁금한 게 많은 것이냐? 어디 말해 보아라.”
“소희 낭자를 기억하십니까?”
“기억하다마다. 일전에 소희 낭자에 대해 말한 적이 있는데, 그새 잊은 것이냐?”
“아닙니다. 잊은 게 아니고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어서입니다.”
“자세히 듣고 싶다. 무엇을 듣고 싶은 것이냐?”
“인공 형님과 제가 떠난 후 소희 낭자는 어찌 되었습니까?”
장설은 대답은 하지 않고 지그시 눈을 감은 채 무엇인가 회상하는 듯했다.
용하는 잠시도 장설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묵묵히 기다렸다.
잠깐이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장설의 얼굴은 수차례나 표정을 바꿨다. 그사이 장설에게 질곡의 삶이 펼쳐졌다는 것을 대신해 주기라도 하듯 말이다.
이윽고 장설의 눈이 떠졌다.
“형님!”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에 조금도 흔들리지 말고 듣도록 하라.”
“네, 형님.”
“내가 하는 말에 일부는 들은 것이고, 일부는 목도(目睹)한 것이니, 그것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형님.”
장설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대체 얼마나 큰일이 있었기에 장설 형님이 저렇게 긴장하는 것일까?’
장설.
여간해서 긴장한다거나 감정의 변화를 일으키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용하도 덩달아 긴장감에 휩싸였다.
“…일전에도 말했듯이 소희 낭자는 자네를 뒤쫓다가 서역의 얼음산에서 떨어져 크게 다친 채로 돌아왔네. 그 이후 그의 아비 용두방주는 딸의 부상을 치료하느라 백방으로 애를 썼어.”
장설은 하던 말을 멈추고 눈물을 꾹꾹 찍었다. 그것만으로도 그때의 비통함이 전해졌다.
“결국 소희 낭자는 치료하기 위해 서천서역국으로 길을 떠났고, 딸이 완쾌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술로 세월을 보내던 용두방주는 결국…….”
장설은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용하도 더는 들을 이유가 없었다. 용하가 무림을 떠난 이후 개방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파노라마처럼 상상의 나래를 펼쳤기 때문이다.
“그 이후 소희 낭자에 관한 소식은 들은 게 없으신가요?”
“개방에 머무르다간 죽게 생겨서 야반도주한 사람이 그 뒤를 어찌 알겠는가?”
“알겠습니다, 형님. 더는 지난 일로 형님을 힘들게 하는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정녕 그리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럼요! 저는 그저 형님이 살아계신 것만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날 이후 사흘 밤낮을 꼬박 새우고 소희 낭자의 행방을 추론해 보았다. 그 결과 몇 가지 가설이 세워졌다. 일단 생사를 놓고 보자면, 죽었거나 살았거나. 그리고 생존해 있다면 서역에 있거나 무림에 있거나.
“형님들! 음, 그러니까 중요한 건 아니고, 단지 그냥 참고를 좀 할 게 있어서 몇 가지 물어보려고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예전 같지 않았다. 뭐 한 가지 물어보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다들 아픔이 있을 거라는 걸 전혀 예측하지 못한 채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뛴 것에 대해 가책이 느껴져서였다.
“기탄없이 물어보아라.”
장설이 먼저 자기 의사를 표했다. 그러자 옆에서 쭈뼛거리던 인공도 마지못해 대답했다.
“말해 보아라. 아는 만큼 협조하도록 하마.”
“알겠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묻는 건, 모든 게 가설이니 부담 갖지 말고 대답해 주세요.”
“알았으니까, 본론으로 들어가세.”
“…먼저 소희 낭자에 대해서입니다. 소희 낭자가 살아 있을까요, 죽었을까요?”
용하의 물음에 장설이 먼저 불쾌감을 드러냈다.
“죄송합니다, 형님. 언짢으시다면 그만두도록 하겠습니다.”
“보기 딱하구나. 소희 낭자에게 벌어진 일들은 다 자네로부터 비롯되었네.”
이렇게 말하는 장설도 씁쓸한 표정이었다. 아직 장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용하의 볼에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소희 낭자는 어떻게 됐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