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149
149화
“몇 날을 밤낮으로 고민한 네 녀석 생각부터 들어보자꾸나.”
“의견을 수렴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접니다.”
“그 설문에 응하는 사람들은 다름 아닌 우리, 나 인공과 장설 형님이시다.”
잠시 냉기가 흘렀다. 하지만 강호 무림이든, 21세기든, 설문을 받고자 하는 쪽이 약자임은 틀림없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음, 그래 어디 들어보자꾸나.”
그 순간 인공과 장설은 자세를 고쳐 앉았다. 대체 무슨 기대감에서였을까. 그들의 태도에 용하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는 소희 낭자가 서역 또는 여기 강호 무림에 살아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아니, 어쩌면 개방에 말입니다.”
단호했다.
“그리 단언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서역은 이곳에서 먼 곳입니다. 험난한 길을 몇 날 며칠을 걸어야 합니다.”
“그야 두말하면 잔소리지. 여기 서역국 안 가본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인공이 경망을 떨자, 두고 보던 장설이 옆구리를 쿡 찔렀다.
“나와보긴 뭘 나와보느냐? 이것아. 그러는 넌 가봤어?”
“이 형님이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저 말입니다. 이 인공이 에베레스트에서 뛰어내린 놈입니다.”
큰소리쳐놓고는 들릴 듯 말 듯 구시렁거렸다.
“내가 미쳤지. 거기가 어디라고.”
“저도 실은 서역이란 곳엘 가보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앞선 지식으로 추론해 보았습니다.”
“그보다 훨씬 앞선 지식이란 게 무엇을 말하는 것이냐?”
장설이 조금은 못마땅한 기색으로 물었다.
“아, 그런 게 있습니다.”
“그런 게 있다? 그럼 됐다. 나는 이 설문에서 빠지겠다.”
적잖이 삐진 장설은 그대로 돌아앉았다. 그러더니 깽판까지 놓았다.
“이보게, 인공! 자네는 뭐 하고 있는 게야? 훨씬 앞선 지식으로 추론했다잖아. 우리 같은 구닥다리가 하는 말이 어디 저 녀석 귀에 들어가기나 하겠어?”
하지만 인공은 용하가 하는 말을 알아들었고 충분히 공감했다.
“형님! 용하 녀석의 말을 너무 고깝게 듣지 마십시오.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러는 것이니.”
“뭣이라! 그럼 네 녀석도 용하 녀석이 하는 말을 알고 있다는 것이냐?”
“에이 참, 형님도……. 정말 모르세요?”
인공의 떨어대는 능청에 장설은 잠시 어리둥절했다.
“대체 넌 무슨 근거로 내가 알고 있을 거라고 하는 것이냐?”
인공의 능청은 한 수 더했다.
“참 이상하네. 어떻게 형님이 그 쉬운 말을 모르고 계셨을까?”
“말해 보아라. 어디 한번 들어나 보자꾸나.”
“용하 녀석이 한 말 가운데 ‘훨씬’이란 말은 ‘꽤’, ‘많이’ 뭐 그런 말로 바꿔쓸 수 있잖습니까? 그리고 ‘앞선’, ‘앞선’은 지금 시대보다 조금 나아간 미래! 그다음 지식은 말 그대로 머릿속에 든 거! 이 모든 걸 한마디로 말하면, 미래의 지식! 아시겠습니까? 형님!”
인공의 지나치게 자신감을 보여 장설조차 얼떨떨했다.
“형님! 제 말이 혹시 귀에 거슬렸다면, 그냥 상상력이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서역이란 곳이 어떤 세상인지, 제 나름대로 상상해 볼 수 있는 거잖아요.”
상상이란 말은 공감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장설은 금세 화가 풀려 다시 돌아앉았다.
“상상력?”
“네, 상상력 말입니다.”
“옳거니! 상상이라. 상상은 누구나 해볼 수 있는 거지. 돈 안 들이고 떠나는 여행이라, 그거 마음에 드는구나.”
“그럼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제 상상력에 비추어 보면, 소희 낭자가 그 먼 곳까지 갈 수 있었다는 건 죽을병은 아니었다는 겁니다. 그러니 당연히 어디엔가 살아 있겠죠? 그럼 그곳이 어디일까요?”
그때 인공이 짜증을 내며 말했다.
“자꾸 묻지 말고 그냥 네 녀석이 알아서 브리핑해.”
잠시 생각에 잠겼던 용하가 되물었다.
“차라리 그게 나을까요? 장설 형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처음부터 그렇게 했어야지. 막내가 말이야 어디 건방지게 의견을 수렴하네! 마네 떠들고 말이야. 그때부터 나는 귀에 좀 거슬렸어.”
“죄송합니다. 두 분 다 브리핑을 원하시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곧, 길고 지루한 용하의 브리핑이 이어졌다.
아함~
인공과 장설의 입에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픔이 터졌다.
“형님들! 벌써 졸리십니까? 아직 드릴 말씀이 많은데.”
“야, 야, 김용하! 대충 끝내.”
“대충 끝내라고요?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그래도 돼. 괜찮아.”
“알겠습니다. 그럼 마무리 짓겠습니다. …정리하자면 소희 낭자는 지금 개방 어딘가에 살아 계신다는 게, 제 결론입니다.”
“음, 그럴듯한 추론이야. 형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음, 인공 자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자, 그럼 여쭙겠습니다.”
그 말에 인공과 장설은 적잖이 긴장하는 모습이었다.
“소희 낭자가 있을 만한, 아니, 숨어지낼 만한 곳이 어디일까요?”
“그 얘기를 지금 들었는데, 바로 대답할 수 있겠느냐? 지금부터 그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할 것이니, 조만간 다시 거론하자꾸나.”
조금은 못마땅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집부릴 처지도 못 되었다.
“네, 알겠습니다. 형님들, 오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용하 일행은 서서히 곡식 창고에 갇혀 사는 게 만성이 되어갔다. 언제부터인가 더는 불편함도 없었고, 바깥세상이 궁금하지도 않았다. 오직 방주가 다시 불러주기만을 기다리며 이것저것 추론하는 재미로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었다.
“끼니마다 탁배기 한 잔씩만 마실 수 있다면, 이보다 천국이 없을 텐데 말이야.”
인공의 넋두리에 장설은 못마땅한 기색을 내비쳤다.
“이보게, 인공!”
“네, 형님.”
“있을 만한가 봐?”
“형님도 참,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렴 바깥세상보다 나을까요. 저는 우선, 이 탁배기 한잔 못 마신다는 게 생지옥입니다.”
“그럼 탁배기만 있으면 여기서 평생 늙어 죽어도 좋다는 얘기냐?”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조금 전 탁배기 한 잔만 있으면 곡식 창고가 천국이라고 했던 말은 온데간데없었다. 장설은 비릿하게 미소 지으며 용하의 귀에다 뭐라고 속삭였다.
“그게 다예요? 뭐 다른 건 없어요? 이왕 신세 지는 거 이참에 한꺼번에 부탁하죠, 뭐.”
“아냐, 그거면 돼. 꼭 필요한 거 아니면 신세 지려고 하지 마. 어차피 그게 다 빚이야.”
“알겠습니다. 그 정도 부탁이라면 어렵지 않을 겁니다.”
지켜보던 인공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
‘대체 무슨 일을 벌이려고 저렇게 둘이서만 쑥덕거리고 야단이래?!’
“뭘 그런 눈으로 보는 것이냐?”
“제가 뭘요? 제 눈이 어때서요. 대체 어떤 눈으로 봤다고 그러는 겁니까?”
단단히 삐진 인공은 속사포처럼 쏟아내며 화풀이했다.
“아이고 저거, 저거! 언제 철들려고.”
“그 걱정을 왜 형님이 하십니까? 제가 알아서 살다가 철들면 죽을 거니까, 형님은 그런 거 염려하지 마시고 형님 할 일이나 잘하십시오.”
“어허, 큰일이로다. 강호에 질서가 무너졌어. 질서가…….”
인공의 넋두리를 받아주는 것도 여기까지였다.
그날 저녁.
용하 일행의 시선이 배식을 위해 만들어 놓은 작은 문에 꽂혀있었다.
웬일인지 용하와 장설을 수차례나 마른침을 삼켰다. 그들의 표정으로 보아 무엇인가 간절히 기다리는 듯했다. 그리고 곧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와, 배식이다!”
용하는 저도 모르게 환호성을 질렀다.
‘뭐야, 이 녀석은! 오늘따라 왜 이래?’
흘깃 용하를 바라보는 인공의 표정에 적잖이 의아하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지금까지 배식을 코앞에 두고 용하가 이렇게 경망스러운 행동을 보인 적은 처음이었다.
“왜, 안 하던 짓을 하고 지랄이야!”
밥그릇 싸움이라도 하려는 걸까. 인공은 용하를 밀쳐내며 소리를 빽 질렀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인공은 경멸하는 눈으로 용하를 흘겨보았다. 하지만 용하는 본 체도 하지 않고 배식을 옮기는 데만 집중했다. 이제 막 마지막 배식이 들어오고 작은 문이 닫혔다.
‘뭐야, 왜 그냥 닫히는 거야?’
용하와 장설은 작은 문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인공은 평소 하던 대로 게걸스럽게 입에다 밥을 욱여넣었다. 그때였다. 닫혔던 작은 문이 다시 열렸다.
그 순간 누구보다 놀란 사람은 인공이었다. 지금까지 이런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용하는 기다렸다는 듯 인공을 향해 말했다.
“형님! 뭐가 하나 더 왔는데, 이거 형님 드릴까요? 아차, 그게 아니지! 장유유서이니 장설 형님께 드려야겠네요.”
“그러든가 말든가.”
인공은 본 체도 않고 밥 먹는 데만 정신이 팔려있었다.
“정말 그래도 괜찮겠어요?”
떠보듯 다시 물었지만, 인공의 반응은 달라진 게 없었다.
“괜찮다니까. 그런데 갑자기 창고 안에 웬 메주 쑤는 냄새가 나는 것이냐?”
“메주 쑤는 냄새라니, 그럴 리가요. 그럼 이건 형님 말씀대로 장설 형님께 드리겠습니다.”
용하의 손에 들린 주병 하나가 인공을 지나쳐 장설 앞에서 멈췄다. 뒤늦게 주병을 발견한 인공의 입이 귀에 가서 걸렸다.
“아니, 이것이 무엇이냐? 탁배기가 아니냐?”
인공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주병을 빼앗듯 해 얼싸 끌어안았다.
“형님, 갑자기 왜 그러세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거들떠보지도 않으시더니. 게다가 뭐! 메주 쑤는 냄새가 난다고요?”
“아, 그야 이 칙칙한 곡식 창고에 탁배기가 있을 리 만무하니, 탁배기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하고 한 소리였지.”
“그래서요? 그래서 아무런 값도 치르지 않고 맨입에 탁배기를 꿀꺽하시겠다고요?”
“값을 치르라고! 감옥이나 다름없는 이곳에 갇혀 있는 나더러?”
“네. 순리대로 했으면 그냥 드실 수 있었을 텐데, 경거망동하셨으니, 어떤 방법으로든 그에 따른 값을 치르셔야죠.”
용하는 약 올리듯 말하고는 장설을 향해 동의를 구했다.
“안 그래요? 형님!”
“암, 합당한 값을 치러야 하고말고. 모든 일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 책임도 지지 못 할 일을 저지르고 나 몰라라 한다는 건 누가 봐도 어른이라 할 수 없을 것이야.”
탁배기에 눈이 뒤집힌 인공은 무엇이든 할 기세였다. 묵묵히 그 광경을 지켜만 보던 장설은 이쯤에서 인공을 진정시켰다.
“이보게, 인공. 이제 됐으니, 그만하게. 앞으로 끼니때마다 많은 건 아니지만, 목을 축일 수 있게 막걸리 한 사발이 들어올 것이니, 그것으로 곡식 창고에 갇힌 신세를 달래도록 하라.”
“고맙습니다. 형님!”
감동이 넘쳐나는 애절한 목소리였다.
“나한테 고마워할 필요 없어. 다 용하 녀석이 제 친구에게 부탁해서 한 일이니까.”
인공은 서서히 고개를 돌려 용하를 바라보았다.
“고맙다 용하야…….”
그러고는 흐느꼈다. 그런 인공을 지켜보는 용하와 장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깟 막걸리 한잔이 뭐라고 저렇게 감동해 눈물까지 보이는 것인지.
“자, 그만들 하고 밥 먹자꾸나. 모처럼 즐거운 식사 시간이 될 줄 알았는데.”
“형님! 행복합니다.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다 나네요. 형님도 맛있게 드십시오. 용하 너도!”
그런데 사실 용하는 작은 문으로 막걸리가 들어오는 걸 보는 순간 절망감도 없지 않았다. 비록 작은 부탁일지만 곡식 창고에서 나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굳이 위험을 감수해가며 들어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대체 얼마나 더 갇혀 있어야 한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