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15
15화
“형님! 주먹 쓰는 애들은 제가 책임지고 처리할 테니까, 무기 쓰는 애들 좀 부탁합니다. 용하 저 아이도 작대기는 좀 다룰 줄 알거든요.”
다급해진 인공이 숨도 쉬지 않고 쏟아낸 말이다.
“정말 그래도 되겠느냐?”
“자꾸 말만 하지 말고 싸움에 집중 좀 하세요. 산만해서 싸움이 안 되네.”
“나중에 서운해하지 말거라.”
“서운해할 일, 1도 없을 것이니, 그런 염려는 마십시오. 비록 부처님을 모시는 불제자이기는 하나, 주먹 싸움 하나는 어디 가서 꿀리지 않습니다.”
바로 그 순간 정체 모를 협객 하나가 인공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인공은 당황한 기색 하나 없이 두 눈을 희번덕이며 끝까지 협객의 주먹을 따라가 그의 공격을 회피했다. 그러고는 곧 전광석화 같은 직권을 수차례나 날려 상대를 제압했다.
물레방아 돌 듯했던 인공의 직권을 본 장설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건 무슨 권법이냐? 공격과 방어에 아주 효율적이구나.”
“공격 즉 방어, 방어 즉 공격! 영춘권의 철학입니다.”
“영춘권! 음, 처음 듣는 무술이구나.”
“처음 듣는다고요? 영춘권을요?”
장설의 말에 인공은 다소 경악하는가 하면, 적잖이 의아한 기색이었다. 하지만 곧 장설의 반응을 이해할 수 있었다. 중국의 무술 가운데 제일 마지막에 만들어져 꽃을 피웠던 남파계열의 근접무술.
“대충 알았으니, 그건 나중에 다시 거론하기로 하고 일단 이것들부터 좀 치우고 보자꾸나.”
그때였다. 맨손의 몇몇 협객이 인공을 향해 득달같이 공격을 퍼부었지만, 이번에도 인공은 차분하게 여러 협객들의 공격을 미리 합이라도 맞춰 본 것처럼 척척 잘도 처리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장설은 신박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인공의 눈에 칼을 뽑아 든 협객이 용하와 장설을 향해 접근하는 모습이 보였다. 무슨 수를 써야 했지만 달리 그럴 겨를이 없었다. 지금 인공이 할 수 있는 건.
“형님! 용하야!”
피를 토하는 외침뿐이었다. 인공이 악을 쓰며 경악하자, 장설과 용하는 정신이 번쩍 들어 사주를 경계했다. 그리고 곧 뒤늦게나마 협객의 공격을 알아차리고 시퍼런 칼날을 세워 공격해 들어오는 협객을 대적했다.
“장설 어른! 괜찮으시겠습니까?”
협객들이 휘두르는 칼에는 시퍼렇게 날이 서 있었다. 살짝만 닿아도 치명상을 입을지 모를 칼날 앞에 용하는 가장 연장자인 장설의 안녕이 염려되었다.
“내 염려는 말고, 公이나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시오!”
용하는 검도를 수련한 사람답게 전각과 퇴각을 번갈아 유효적절하게 사용하며 날렵하게 칼을 피했다. 협객들이 휘두르는 검은 무용지물이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인공과 장설은 흐뭇한 표정이었다.
검이 없는 검도 수련자에게 달리 공격할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상대의 공격을 피하며 시간을 끄는 수밖에. 그래서 상대가 제풀에 지쳐 쓰러지도록 하는 수밖에.
용하는 여전히 장설이 염려가 되었다. 간혹 장설에게 눈길이 흐르고는 했는데, 용하의 눈에는 지금 장설이 선무도를 시전하는 것으로 보였다.
속도감은 다른 무술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지만, 유연함과 파괴력만큼은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스님들의 전유물 같은 무술 선무도.
그때였다.
“형님!”
“왜? 인석아.”
“용하야!”
“왜요?”
“이 자식들 절대 죽이면 안 됩니다.”
“그게 다 무슨 소리냐? 알아듣게 좀 얘기해 보거라.”
“형님, 제가 지금 그렇게 여유롭지 못하거든요. 이놈들 끈질긴 공격에 죽을 맛입니다.”
“그래, 알았다. 네 녀석 심정 충분히 이해한다. 반드시 대답할 필요 없으니, 부디 살아야 한다. 알겠느냐?”
“명심하겠습니다. 이 녀석들이 살아 있어야 하는 이유는요, 우리가 여기서 빠져나가려면 이것들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알았어. 알았으니까 싸움에 집중해. 놈들 칼날을 보니 살짝만 스쳐도 치명적일 수 있어.”
“설마 맨손으로 겨우 목숨을 연명하고 있는 사람을 죽이기야 하겠어요. 홋. 그나저나 장설 어른의 무술은 마치 나비가 춤을 추는 것 같습니다.”
용하의 마지막 말에 인공이 아는 체를 하며 나섰다.
“선무도를 처음 보느냐?”
“아, 지금 장설 어른이 시전하는 무술이 선무도입니까?”
“내가 알고 있는 선무도와는 뭔가 다르기도 해. 하지만 내 눈에도 선무도와 비슷해 보여.”
* * *
정체 모를 협객들을 상대로 일대 격전을 치른 인공과 장설 그리고 용하.
세 사람은 협객들 덕분에 무사히 객잔을 탈출할 수 있었다.
“오늘 두 분 어른의 활약을 보니 마음이 한결 놓입니다.”
“네 녀석이 우리 늙은이를 걱정이라도 했다는 말이냐?”
“당연하죠. 항상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 같았습니다.”
용하의 말에 인공과 장설은 박장대소했다.
“형님! 아까 시전한 무술이 선무도가 맞죠?”
장설은 인공을 획! 돌아보며 되물었다.
“선무도? 그것은 위빠사나라고 하는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전수 돼 온 수행법이 아니더냐?”
“형님, 저는 선무도에 대해 그렇게 자세히는 모릅니다. 처음 출가해 사찰에 입문했을 때, 큰스님께서 하라는 대로 따라 했던 게 전부입니다.”
“자네야말로 요가와 명상만 배웠겠구먼.”
“아뇨, 투로도 좀 볼 줄 압니다.”
“그런데 내 무술이 선무도로 보였단 말이냐?”
“네, 제 눈에는 선무도의 투로와 비슷해 보였습니다. 혹시 선무도가 아니면 무엇이었습니까?”
“팔극권이다.”
그제야 인공은 장설이 시전한 무술이 선무도보다는 한 수 위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아, 그래서 진각을 내디디신 거로군요.”
“어허, 진각을 아는구나. 그럼 어찌하여 작은 체구에서 그런 힘이 나올 수 있었는지도 알았겠구나.”
“발경이었군요?”
장설은 더는 입을 떼지 않았다.
“형님, 그나저나 이제 어디로 가야 하죠?”
“조용해질 때까지 몸을 숨길 생각이다.”
“몸을 숨기다니, 어디로 말입니까? 우리가 뭐, 두더지여서 땅속으로 숨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날개가 있어 하늘로 숨을 수 있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중원에서는 개방(丐幇)이 가장 안전한 곳이다.”
“개방? 개방이라면 9파 1방의 그…….”
“인공 자네가 아홉 개 정파와 개방을 어찌 아는 것이냐?”
“아, 그거 무협지에서 봤죠.”
“무협지? 그건 또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아, 그런 게 있습니다. 그냥 무술 서적쯤 된다, 생각하시면 됩니다.”
인공이 장설의 추궁을 대충 얼버무렸을 때였다. 묵묵히 걸음을 내디디던 용하가 물었다.
“장설 어른, 그럼 지금 개방으로 가시는 겁니까?”
“그럴 리 있겠소.”
장설의 대답에 인공이 역정을 냈다.
“형님! 서열 정리도 됐고, 제가 장설 어른을 형님으로 모시기로 했는데, 형님이 용하 저 아이를 대하는 모습이 저는 영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냐?”
“예를 갖추는 것으로 보여 그렇습니다.”
“예를 갖추는 건 당연한 것이거늘, 어찌하여 자네가 역정을 내는 것인가?”
“형님도 참, 그게 아니죠. 제가 형님을 형님으로 모시는데, 형님은 내 가방모찌 같은 저 아이에게 예를 갖추고… 세상에 이런 개족보가 어디 있습니까?”
점점 고성이 오가자 용하가 중재하기 위해 나섰다.
“두 분 어른께 한 말씀 청하겠습니다.”
“말해 보시오.”
“또 그러신다. 그래 말해 보거라.”
“이렇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두 분 어른께 장설 어른, 인공 어른, 이렇게 불렀으면 하고, 두 분은 막내인 저를 용하라고 불러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인공 스님에게 스님이라 부르지 않을 건데, 괜찮으시겠어요?”
인공과 장설은 수긍한다는 기색으로 하염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서열 정리는 끝났고, 우리 셋은 지금부터 공동체 운명입니다.”
용하의 말에 인공은 한술 더 떴다.
“의리! 오늘부터 우리 세 사람은 의리에 죽고 의리에 사는 의형제입니다. 오케이!?”
세 사람은 가벼운 걸음을 내디뎌 저잣거리로 향했다.
* * *
어느새 세 사람은 저잣거리 초입을 걷고 있었다.
“장설 어른. 개방으로 가신다더니 저잣거리로 온 까닭이 무엇입니까?”
“남채화를 수소문하기 위해서 이곳으로 온 것이다.”
“남채화! 굳이 남채화를 수소문해야 하는 이유를 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개방은 가고 싶다고 해서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니요?”
“개방이라 함은 남채화의 안내를 받아야만 갈 수 있는 곳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침입자로 간주해 그 자리에서 사살당하고 말 것이야. 그리고 행여 개방에 들어간다고 해도 그것으로 다 되는 것은 아니다.”
“다 된 게 아니라니요? 그럼 또 뭐가 남아 있는 겁니까?”
“남채화의 추천을 받아 개방의 부급 용두방주와 면접을 치러 합격해야 비로소 개방에 머물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는 것이다.”
“아이고, 산 넘어 산이네요.”
“살기 위해 어쩌겠느냐. 그렇게 해서라도 기구한 우리네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면, 한번 해봐야 하지 않겠느냐?”
용하는 더는 그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
“어떤 자를 찾으면 되는 겁니까? 남채화의 용모라도 좀 알려 주셔야 찾아볼 거 아닙니까?”
“그리하마. 인공 자네도 잘 들어.”
“네, 형님.”
“남채화의 용모파기를 간략하게 말하자면, 일단 여자이니라. 아니, 정확히 말해 할망구다.”
여자라는 말에 잠시 입꼬리가 꼼지락거렸던 인공이 할망구라는 말에 크게 실망하며 입 끝에 파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저잣거리를 걷다 보면, 푸른색 도포를 몸에 두르고 한쪽 발엔 버선을 신고, 다른 한쪽은 맨발로 걸으며 사람들에게 동냥하는 자가 있을 것이다. 그자가 바로 남채화이니라. 참, 그리고 남채화는 동냥을 할 때 지팡이를 마구 흔들어 댄다는 것도 기억해 두도록 하게.”
“네, 알겠습니다. 형님.”
“명심하겠습니다. 장설 어른.”
세 사람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저잣거리를 뒤지고 다녔다. 그렇게 반나절이 지나고 폐장을 눈앞에 두고 있을 때였다.
“이제 어찌합니까?”
한숨 섞인 용하의 목소리였다. 절망감 때문인지 다리가 풀려 더는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결국 용하는 투덜거리며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때였다.
“일어서거라!”
웬일인지 장설은 단호한 말로 용하를 일으켜 세웠다.
“이곳에서 지쳤다거나 약한 모습을 드러내서는 아니 되느니라. 항상 기개가 있고 강해 보여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라는 걸 잊어서는 아니 된다. 알겠느냐?”
장설의 근엄한 태도에 용하는 예를 갖추며 대답했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바로 그때였다. 저잣거리 초입에 푸른색 도포를 두른 구부정한 여인이 보였다.
“장설 어른, 남채화를 찾은 것 같습니다.”
용하의 말에 장설과 인공은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뭣이라, 남채화를 찾았다고?”
두 사람이 입을 모아 확인하듯 한목소리로 물었다.
“네. 아직 확실한 건 아니지만, 아까 말씀하신 용모파기와 흡사합니다.”
“확인해 보거라. 한쪽 발에 버선을 신었느냐?”
“멀어서 아직 거기까진 알 수 없습니다.”
그 순간 용하는 무슨 생각을 떠올렸는지, 황급히 스마트폰을 꺼내 전원을 켰다.
“휴대전화는 무엇에 쓰려고 꺼낸 것이냐?”
인공이 의아해서 물었다.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저자가 남채화인지 아닌지, 금방 확인시켜 드리겠습니다.”
스마트폰이 켜지자 용하는 카메라 모양 아이콘을 터치했다. 이윽고 카메라 앱이 작동하자 렌즈를 남채화라 추측되는 여인에게로 향하고 줌으로 피사체를 당겼다. 그리고 화면을 위아래로 올렸다, 내렸다, 하며 설명했다.
“푸른색 도포 맞고요. 음, 한쪽 발에 버선을 신었고, 다른 쪽은 맨발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향해 지팡이를 흔들어 대며 동냥을 하고 있습니다.”
용하의 설명을 다 들은 장설이 남채화임을 확신하며 해맑은 표정으로 물었다.
“음, 남채화가 확실하구나! 그런데 용하야, 그 신박한 물건은 무엇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