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150
150화
“형님! …불길한 예감이 듭니다.”
저녁 식사를 한 후 줄곧 무엇엔가 골몰하고 있던 용하가 한 말이다.
평소 같으면 쓸데없는 소리 집어치우고 그만 자라고 했을 장설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드르렁드르렁!
탁배기 한 잔을 반찬 삼아, 맛있게 저녁 식사를 한 인공은, 진작 곯아떨어져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았다.
“제 친구라는 개방의 무사가 왜 해서는 안 되는 줄 알면서 제 부탁을 들어준 걸까요?”
장설 또한 잠을 못 이루고 있었던지, 부스스 상체를 일으켰다.
“여태 그 생각을 하고 있었느냐?”
“지우려고 해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네요.”
“혹여 너무 깊이 생각하는 것은 아니 게냐?”
“제게 필요한 만큼만 생각했습니다.”
“필요한 만큼의 생각이라.”
장설은 깊은 시름에 빠져들었다.
“용하야, 네 고민이 무엇이냐?”
뜬금없이 그런 건 왜 묻는 건지. 보면 모르세요? 하고 되묻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장설이 왜 자신의 고민을 묻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릇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 조급해하지 말고 하나씩 차근차근 풀어나가 보자꾸나.”
장설이 하는 말이 왠지 푸근하게 들렸다. 여느 때 같으면 마음 한구석에서 제발 참견 좀 하지 마세요! 라는 생각도 꿈틀거렸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새겨듣거라. 여기서 말하는 일의 순서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아니라, 순리대로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이 말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야.”
용하는 강렬한 눈으로 장설을 바라보았다.
‘순리대로라니? 순리라는 게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때가 될 때까지 막연히 기다려야 하는 그것을 말하는가. 뜻하는 바는 계속 뒤로 밀리는데, 그걸 그냥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는.’
“장설 형님! 때를 기다리라는 말씀입니까?”
벌써 용하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때라니, 어느 때를 말하는 것이냐?”
“달리 얘기할 필요 있습니까? 형님이 말씀하시는 때라 하면, 방주의 부름이 있을 때겠죠.”
“남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건 때라고 하지 않는다. 때라고 하면 자기 의지여야 한다.”
모처럼 마음에 드는 소리였다.
“형님! 조금 전까지만 해도 순리에 따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순리에 따르라고 했지. 방주의 뜻에 따르라고는 하지 않았다.”
점점 마음에 들었다.
“형님…….”
용하는 저도 모르게 울먹였다.
“그렇게 나약한 사내였더냐?”
울먹이는 용하를 보고 장설이 나무라듯 한 말이다.
“아닙니다. 절대 나약하지 않습니다.”
“그럼 그 눈물은 무엇이냐?”
“외유내강(外柔內剛)입니다.”
“그 말은 지금 보이는 그 눈물은 거짓된 것이란 말이냐?”
“그런 뜻이 아닙니다.”
“그런 뜻이 아니라니, 조금 전에 그러지 않았느냐? 외유내강이라고.”
왠지 다시 말려드는 기분이었다. 이럴 땐 차라리 인정하고 빠져나갈 틈을 엿보는 게 상책. 용하는 서둘러 장설 앞에 납작 조아렸다.
“형님! 죄송합니다.”
“난데없이 죄송하기는! 대체 왜 이러는 것이냐?”
“제가 죽일 죄를 지었습니다. 조금 전 제가 외유내강이라고 한 건 거짓이었습니다.”
“무어라! 거짓이었다?”
“네, 형님.”
용하는 다시 한번 조아렸다.
“참으로 이상하구나. 어찌하여 소득도 없는 그런 거짓말을 한 것이냐? 사람이 때론 전술상 거짓말을 할 수도 있는 법. 특이 이 강호 무림에서는 그 정도 거짓말쯤 비일비재한 일.”
장설 앞에 그저 부끄러울 따름이었다.
“고개를 들라!”
장설이 명했지만,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용하가 고개를 드는 둥 마는 둥 하며 장설의 눈치를 살폈다. 장설은 개의치 않고 제 할 말을 시작했다.
“조만간 한 번의 기회가 올 것이다.”
“조만간 말씀입니까?”
조금 전까지 고개조차 들지 못하던 용하는 온데간데없고 솔깃해서 물었다.
“그러니 허황한 생각에 마음이 달떠서 우왕좌왕하지 말고, 그 시간에 어떻게 하면 단 한 번 주어질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인가 그것을 고민하도록 하라.”
용하가 어떤 반응을 보이든 상관없이, 장설은 제 할 말만 하고는 벌렁 누워버렸다.
“형님, 설마 이대로 주무시려는 건 아니겠죠?”
용하의 말이 딱 떨어졌을 때였다. 거의 동시에 장설은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기 시작했다. 코까지 골며 자다니, 지금까지 이런 적이 없는 장설이었다.
‘이를 어쩐다!’
용하는 장설이 거짓으로 잠들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차마 아는 체를 할 수 없었다. 그 대신 조금 전 장설이 한 말 가운데, 조바심 내고 있을 시간에 어떻게 하면 단 한 번 주어질 기회를 잡을 것인가를 고민하라고 한 것에 주목했다.
知彼知己 百戰百勝 (지피지기 백전백승).
방주와의 담판. 그날이 왠지 가까이 여겨졌다.
‘방주에 대해 알아야 해. 그에 대해 알아야 이길 수 있다.’
그런데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어찌해야 방주에 대해 알 수 있단 말인가.’
지금으로선 어떻게 해야 방주를 알 수 있을지 전혀 감이 안 잡혔다.
‘접촉조차 할 수 없는 사람을 어찌 알 수 있단 말인가.’
가장 만만한 게 친구라고 믿고 있는 개방의 무사였다. 그런데 얼마 전에 예전 용두방주의 궁이 어떻게 됐는지 물었을 때 그의 반응을 보았기 때문에 굳이 개입시키고 싶지 않았다.
‘개방의 무사조차도 말하기 두려워했다.’
갑자기 무슨 생각이 떠올랐던지 용하의 표정이 얼핏 주눅 든 사람 같았다.
‘무사조차도 두려워하며 대답하기를 꺼렸는데, 그렇다면 이것을 누구에게 물어본단 말인가.’
막다른 길에 선 기분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해 누구에게도 도움 청할 데 없는 망망대해에 서 있는 듯했다.
‘혹 장설 형님은 알고 계시는 걸까? 알면서 나를 시험하고 계시는 걸까?’
갑자기 장설은 알고 있을 것이라는 데 무게가 실렸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가 처한 상황이 어떠했든, 그는 분명 이곳 강호 무림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낱낱이 목도(目睹)하지 않았는가.
‘이제 믿을 곳은 장설 형님밖에 없다.’
용하는 잠든 듯 보이는 장설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다음 날 아침.
새벽닭이 울었음에도 인공은 잠에서 깰 수 없었다. 전 말 마신 막걸리 때문이었다.
진작 잠에서 깬 장설은 자기들만의 방법으로 몸을 정갈하게 하고 조식을 기다렸다.
“눈은 좀 붙였느냐?”
장설이 으레 하는 말로 물었다. 하지만 용하는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답을 안 하는 걸 보니, 뜬눈으로 밤을 새운 모양이구나.”
그러고 보니 용하의 눈 주위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네 녀석 눈을 보니 내일모레쯤 눈 밑에 검은 그림자 생기겠어.”
“눈 밑에 검은 그림자? 그게 대체 무슨……. 아― 다크써클!”
일순 의아했지만, 금세 알아들었다.
“뭐가 됐든 좋다. 방주를 만나는 날엔 그런 게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만 명심하라.”
“왜요? 다크써클이 뭐가 어때서. 사람이 피곤하면 자연스럽게 내려오는 건데, 그걸 가지고 트집이라도 잡겠다는 겁니까?”
“여기 강호 무림에서는 눈 밑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지면 귀신 들렸다고 해서 무엇보다도 우선해서 배척하는데 그것을 어찌 극복하겠느냐? 혹 강시는 본 적 있느냐?”
그제야 장설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강시를 본 소감이 어떠하더냐?”
용하는 대답 대신 부르르 떨었다.
“사람은 다 거기서 거기! 귀신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단호했다.
“알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런데 형님!”
“그런데 또 뭐? 무슨 할 말이 또 남은 것이냐?”
“제 생각엔 말입니다. 물론 추측입니다만…….”
“뭘 그렇게 꾸물거리느냐? 어차피 입 밖으로 나온 말, 주워 담을 수도 없을 터.”
“아네, 음……. 그게 말입니다.”
용하가 여전히 꾸물대자, 장설의 치켜뜬 두 눈이 용하를 훅 흘겼다. 장설과 얼핏 눈을 마주친 용하는 찔끔해서 입을 열었다.
“제 생각엔 말입니다. 그동안 열 번을 고쳐 생각해도 장설 형님은 제가 궁금해하는 걸 알고 계신다! …라는 게, 제 결론입니다.”
과감했다. 혹여 잘못 짚었다면 그 여파가 어디까지 영향을 미칠지 모를 일이니, 말이다.
장설은 긴 시간 고심했다. 어느새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벌써 조식을 배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서 말씀하십시오!”
용하의 목소리는 경각을 다투는 듯했다.
“용하야. 네 질문에 대한 대답이 뭐 그리 급하다고 이 호들갑이냐? 아침 먹고 쉬는 시간에 천천히 나눠도 되는 얘기가 아니더냐?”
맞는 말이었다. 괜히 마음만 조급했을 뿐 몇 시간 빨리 안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알겠습니다. 조식 맛있게 드십시오. 인공 형님도요.”
“용하, 너도 맛있게 먹어. 참, 그리고 네 친구라는 개방의 무사가 지나가면 멈춰 세우게.”
장설의 당부가 몹시도 궁금했지만, 여타 토를 단다거나 하지 않았다. 머리로 입으로 아는 것보다는 눈으로 보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였다.
“네, 알겠습니다. 형님.”
인공 앞에는 어김없이 막걸리 한 사발도 놓여 있었다.
“헤헷, 형님 여기 사람들 약속 하나는 정확하네요. 저잣거리 주막은 몇 번을 당부해야 겨우 지켜지는데 말입니다.”
“그리 좋으냐?”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알았다. 맛있게 먹거라.”
정확히 한 식경 남짓 지났을 때 세 사람은 식사를 마치고 작은 문으로 빈 그릇을 내놓았다.
여느 때 같았으면 상을 물리기 바쁘게 용하의 질문 공세가 빗발쳤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장설의 눈치를 살폈을 뿐 안달을 낸다거나 조급해하지 않았다.
‘녀석이 잘도 견뎌내는군. 지금쯤 입이 근질근질할 텐데. 조금만 더 지켜보고…….’
장설은 모르는 체하며 딴청만 피웠다. 용하의 눈에는 장설이 딴청을 피우는 게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스스로 관심 두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다.
‘앞으로는 조급해하지 말고 무던히 지내자. 알고자 한다고 알게 되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장설 형님이 말하고자 해야 알게 되는 것.’
장설은 곁눈질로 용하를 흘깃 보았다. 집념을 떨치려 애쓰는 게 여실히 보였다.
‘기특한 녀석. 이쯤에서 애 그만 태우고 말문을 열어 줘볼까.’
흠흠!
장설은 두어 차례 헛기침을 한 후 입을 뗐다.
“개방의 무사는 언제쯤 올 것 같으냐?”
“평소대로면 식사를 마치고 반 시진 남짓 되었을 때 왔었습니다.”
“반 시진이라, 그럼 그때까지 하던 얘기나 마저 할까 하는데, 용하, 네 생각은 어떠하냐?”
뛸 듯 기뻤다. 하지만 용하는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형님, 그러지 말고 제 친구인 개방의 무사가 다녀간 다음에 하는 건 어떨까요?”
장설은 내심 깜짝 놀랐다.
‘아니, 사람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저렇게 처연해질 수 있단 말인가.’
“불과 반 시진 차이인데 굳이 그때까지 기다렸다 할 이유가 있겠느냐?”
적잖이 능청스러웠다.
“서두를 것도 없습니다. 반 시진 먼저 이야기를 나눈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을 것 같고요. 괜히 지금 얘기 꺼냈다가 중간에 끊기느니 차라리 개방의 무사가 다녀간 뒤 차분히 나눴으면 합니다.”
“좋은 생각이구나. 개방의 무사에게 궁금한 것도 있고, 어차피 나 또한 그의 대답에 따라 할 말이 달라질 수 있으니, 그게 좋을 것 같구나.”
그 순간 용하의 눈빛이 번쩍 빛났다.
‘무사의 대답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