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151
151화
적잖이 궁금했다. 하지만 견뎌내야만 했다.
“괜찮겠느냐?”
“괜찮으냐니, 뭐 말씀하시는 건가요?”
마음 같으면 얘기해 달라고 덤비고 싶었지만, 참고 또 참으며 능청을 떨었다.
그때였다.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용하는 저도 모르게 시선을 문 쪽으로 보냈다. 하지만 곧 장설을 의식하고 딴청을 피웠다. 그때였다.
“아침 식사는 맛있게들 하셨소?”
무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변함없이 온화했다.
“형님, 어떻게 할까요?”
용하는 장설에게 나직하게 물었다.
“우선 대답부터 해.”
장설 또한 나직하게 대답했다.
“우리는 잘 먹었네. 자네 또한 맛있게 먹었는가?”
“덕분에 잘 먹었네. 뭐 필요한 건 없었는가?”
“넉넉한 찬에 넉넉한 밥, 더할 나위 없이 풍족한 밥상이었네.”
“거, 다행이군, 매 식사때마다 적잖이 마음이 쓰인다네. 온종일 햇빛도 못 보는데, 식사라도 맛있게 먹을 수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개방 무사의 온화한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 가슴이 울먹였다.
“마음만으로도 차고 넘치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네. 참 그리고 장설 형님께서 긴히 할 말이 있다고 하는데 시간 좀 내 줄 수 있겠는가.”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역시 사적으로 시간을 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어려우면 못 들은 걸로 하게.”
그리고 또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마침내 곡식 창고의 문이 열렸다. 눈이 부시도록 새하얀 햇볕이 창고 안을 덮쳤다.
문 앞에 우뚝 선 개방의 무사는 유독 커 보였다.
“한마디만 하겠소.”
적잖이 단호했다.
“비록 사가의 곡식 창고이긴 하나, 이곳은 형장이오. 감옥이란 말이오.”
그 순간 용하의 얼굴에 드리워졌던 화색은 온데간데없었다.
“미안하오.”
용하를 대신해 장설이 사과했다.
“오늘은 어차피 이리된 터, 말씀해 보시오.”
개방의 무사, 그 나름의 처세술이었다.
‘역시 우정을 저버리지 않는군.’
조금 전 절망감을 안겨줬던 서운함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제야 상기됐던 장설의 얼굴에도 화색이 돌았다. 무사에게서 다소 온화함이 보이자 장설은 그의 귀에 대고 무어라 속삭였다. 그런데 듣고 있는 무사의 안색이 서서히 굳어 갔다.
‘대체 무슨 말을 하기에 무사의 표정이 저리 순식간에 달라진단 말인가.’
적잖이 궁금했다. 하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어차피 때가 되면 다 알게 될 이이었기에 굳이 알려고 들 필요가 없었다.
장설의 눈길이 전광석화처럼 용하를 스치고 돌아갔다.
‘놀랍도록 처연해졌어. 지금쯤 궁금해서 미쳐 날뛰어야 하는데 말이야.’
흐뭇한 표정이었다.
개방의 무사가 돌아가고 곡식 창고에 잠깐의 평화가 찾아왔다. 늘 이 시간과 저녁 시간은 용하 일행에게 힐링을 가져다주었다. 용하는 장설을 흘깃 쳐다보았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장설도 티는 안 냈지만, 벌써 여러 차례 용하를 훔쳐보았다.
‘이상하네. 저 녀석이 입을 열 때가 됐는데, 조용하네.’
그때였다.
“왜들 이렇게 조용합니까? 둘이 싸웠어요?”
뜻밖에도 인공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러자 장설이 쌍심지를 켜고 인공을 나무랐다.
“넌, 조용히 있어. 한마디라도 하면 주정으로 간주하고 내일부터 막걸리 끊는다.”
막걸리를 끊는다고? 매일 아침 배달되는 우유 받아먹듯 말했다.
“알겠습니다. 입 다물고 있을게요.”
막걸리 끊는다는 말이 그리도 무서웠을까, 인공은 금세 수그러들었다.
“지금부터 용하와 담소를 나눌 것이니, 어떤 일이 있어도 끼어드는 일이 없도록 하라.”
“뭐, 끼어들지 말라면 그래야죠.”
다소 못마땅한 기색으로 대답했다. 인공의 시원치 않은 대답에 장설은 매서운 눈으로 다시 말했다.
“자네를 따돌리려고 그런 게 아니니, 서운해하는 일 없도록 하라.”
“서운해하다니,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저 그런 거 없습니다.”
조금 전보다 더 불만스러운 대답이었다. 곡식 창고 안에 잠깐의 냉기가 돌았다. 그리고.
“방주는 반드시 심사를 통과시킬 것이다.”
선언과도 같은 장설의 말에 용하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물었다.
“아니, 형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어찌 그리 확신하는 것입니까?”
“생각해 보아라. 우리를 백의개로 받아줄 마음이 없다면, 여기 이대로 가둬뒀겠느냐?”
“가둬두지 않으면요?”
“진작에 개방에서 내쫓았을 것이다.”
그 순간 용하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무슨 말인가 하려는 게 분명했다. 하지만 장설은 작은 틈조차 용하에게 허락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의 방주는 외부 사람을 철저하게 배척해왔다. 그런 그가 이렇게 내버려 뒀다는 건.”
그러고는 곧 입을 다물어버렸다. 비록 짧게 입을 닫아버렸지만, 장설의 추론은 누가 들어도 정확했다. 외부인을 철저히 배척한다는 방주가 석 달 넘게 용하 일행을 자기 땅에 두었을 리 없다.
“그 말씀은, 조만간 방주와 만날 기회가 온다는 뜻이죠?”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니, 만반의 준비로 반드시 뜻을 이루도록 하라.”
용하는 입을 굳게 다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곡식 창고에 결연함이 감돌았을 뿐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날 이후.
지루했던 시간은 믿기지 않을 만큼 빠르게 흘렀다.
철컥!
끼익!
곡식 창고의 문이 열렸다.
용하는 급기야 올 것이 왔다는 걸 직감했다.
“잠시 후 방주 대인을 알현할 것이다. 다들 밖으로 나와 준비하도록 하라.”
용하는 저도 모르게 어금니를 깨물었다. 마지막 기회라는 부담감 때문이었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결박당하고 두건이 씌워졌다.
‘젠장, 대체 언제까지 죄인 취급 받아야 하는 거람.’
방주의 궁으로 가는 길에는 어김없이 같은 향기의 바람이 불었다. 어느새 익숙해진 바람은 용하의 몸에 알알이 밴 긴장감을 온데간데없이 날려버렸다. 잠시나마 홀가분했다.
“전체 제자리!”
누군가의 구령에 일제히 걸음을 멈췄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용하는 귀를 기울였다.
‘무엇이든 상관없다. 작은 소리라도 들을 수 있다면…….’
무사들이 발소리가 들렸다. 웬일인지 그들은 서성거리고 있었다.
‘뭐가 잘못된 건가?’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다름 아니라, 무사들의 서성거림이 왠지 긴장감에서 비롯됐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제발…, 제발…….’
용하는 내심 간절히 기도했다. 오늘 기회를 놓친다면 언제 또 기회가 찾아올지 기약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간절하기는 용하뿐 아니었다.
‘그깟 탁배기가 다 무슨 소용이람. 제발 햇빛 좀 보고 살았으면…….’
최근 들어 개방의 무사에게서 막걸리를 받아먹는 인공도, 늘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장설도 간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윽고 두건이 벗겨졌다. 용하 일행은 그제야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조아리거라!”
무사의 간결한 명령에 용하 일행은 일사불란하게 무릎을 꿇었다.
눈앞에 새하얀 베일이 처져 있었다. 그 안에 사람의 형체가 얼핏 보였다. 방주였다.
두근두근! 콩닥콩닥!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방주를 코앞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후~우! 후~우!
숨소리도 거칠어졌다. 어떻게든 눌러야 했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이러면 안 되는데. 제발, 제발 좀……’
그때였다.
“좀 더 가까이 오거라!”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중성적인 목소리가 들렸다. 다름 아닌 방주였다.
‘우~욱, 느끼해.’
개방의 무사들은 곧 방주의 명을 따랐다. 방주에게 충성을 보이려고 했던 걸까. 무사들은 조금은 거칠게 용하 일행을 다뤘다.
조금 전 개방의 무사가 거칠게 용하의 팔을 움켜줬을 때였다. 용하는 고통을 견디지 못해 얼굴을 찌푸렸고 바로 그 순간 베일 속 그림자가 보일 듯 말 듯 꿈틀했다.
왠지 얼굴이 간질거렸다.
‘뭐지? 이 기분은! 이건 누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을 때 느끼는…….’
용하는 본능적으로 베일 안의 그림자를 흘깃 쳐다보았다. 바로 그 순간 베일 속 그림자가 다시 한번 꿈틀했는데, 마치 무언가를 보고 놀란 사람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백의개가 되겠노라, 자처한 자들에게 묻겠다.”
조금 전 목소리보다 남성에 가까운 중성이었다. 느끼함은 좀 덜 했지만 듣기 좋은 목소리는 아니었다. 용하 일생은 허리를 깊이 숙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백의개가 되려면 가지고 있는 전 재산을 처분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느냐?”
그 순간 인공과 장설은 다시 한번 납작 조아리는 것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용하는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베일 속 그림자를 직시했다. 예상치 못한 갑작스러운 상황에 인공과 장설은 오금이 다 저렸다.
‘아뿔싸!’
곧 방주의 질타가 시작됐다.
“그 태도는 무엇이냐? 내게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 것이냐?”
이번에는 다소 여성에 가까운 카랑한 목소리로 물었다.
용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제게 전부 처분하기엔 좀 아까운 물건들이 있습니다.”
“아까운 물건이라, 그게 무엇이냐?”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단, 보여드릴 순 있습니다.”
“이 무슨 궤변이냐? 말할 수 없으나 보여줄 수는 있다!”
인공과 장설은 부들부들 떨었다. 반면 용하는 조금 전보다 더 당당했다.
“그대는 내가 두렵지도 않은 것이냐?”
“지금은 좀 두렵습니다. 하지만 제가 가진 걸 보신다면, 그 이후로는 두려움이 사라질 것 같습니다.”
“대체 무엇을 가졌길래 그리도 당당한 것이냐?”
방주의 물음에 대답은 하지 않고, 용하는 뜻밖에도 장설을 바라보았다.
“무엄하구나! 지금 내 질문에 대답은 하지 않고 딴짓을 하고 있단 말인가?”
방주가 격노해 크게 소리쳤지만, 용하는 조금도 굴하지 않았다.
“형님! …이쯤에서 담판 짓겠습니다.”
지나친 자신감을 보이는 용하의 태도에 장설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한편 불안에 떨어야 할 인공은 뜻밖에도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무어라! 지금 나와 담판을 짓겠다고 했느냐?”
서슬이 시퍼런 방주의 목소리가 용하의 폐부를 관통하는 듯했다.
‘침착하자. 여기서 약한 모습을 보인다는 건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용하는 마른침을 삼켰다.
“네, 그리 대답했습니다.”
“담판이라, 담판을 지으려면 네 놈이 나보다 더 센 걸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래도 한번 해보겠느냐?”
“방주 대인뿐 아니라, 무림의 어떤 걸 가져온다 해도 절대 꿀리지 않을 물건들입니다.”
“물건! 그대가 가졌다는 전 재산이란 게 돈도 땅도 아닌, 물건이란 말인가?”
“네, 시간을 주신다면 바로 움직여서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용하는 그날 방주와의 담판에서 궁금증을 유발하는 것으로 첫 승을 거두었다.
그날 이후, 조금은 남루하지만 작은 거처가 하나 생겼다.
“용하야, 진정 시공간 이동체의 변신 트럭을 방주에게 공개할 생각인 게냐?”
인공의 물음에 용하는 다소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무슨 말씀이세요?”
“담판을 지을 물건을 보여주겠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건 그런데 왜, 시공간 이동체의 변신 트럭 얘기가 나오는 겁니까?”
인공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어정쩡하게 되물었다.
“그거…, 아니었어?”
“형님도 아직 잘 모르시는 것 같네요.”
“모르긴 뭘 몰라, 이놈아!”
“제가 21세기에서 가져온 물건 가운데 굳이 변신 트럭이 아니어도 여기 무림 아니, 방주를 놀라게 해줄 건 차고 넘칩니다.”
“차고 넘쳐? 그래서 뭐 가지고 방주와 담판을 지을 건데?”
바로 그때 밖에서 인기척이 들리며 장설이 들어왔다.
“형님! 벌써 볼 일 다 보신 거요? 우리 형님, 참 짧게 끊으셨네.”
못내 아쉬웠다. 조금만 늦게 왔어도 들을 수 있었는데.
“왜, 무슨 밀담이라도 나누고 있었느냐?”
“형님도 참, 밀담이라뇨.”
“에이, 표정들이 딱 그건데. 밀담하다 걸린 거.”
“왜 그렇게 사람 말을 안 믿어요. 아니라잖아요.”
“어디, 먼 미래로 가서 귀한 물건이라도 가져온 것이냐?”
다소 빈정거리는 장설의 말에, 인공과 용하는 머리칼이 다 쭈뼛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