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152
152화
‘장설의 눈을 속일 수 없다면.’
가늘게 뜬 용하의 두 눈이 예리하게 빛났다.
‘결코 방주를 뛰어넘을 수 없다!’
어떤 말로든 둘러대야 했다. 그래서 장설의 궁금증을 풀어야만 했다.
“어! 어떻게 아셨습니까? 어젯밤 꿈속에 제가 날개 달고 먼 미래를 다녀왔는데.”
급한 마음에 둘러댄 게 다행히 맞아떨어졌다.
“어허, 재미난 꿈을 꾸었구나. 듣기만 해도 달콤해지는구나.”
“어디, 달콤하기만 했겠어요?”
“그래, 먼 미래에는 무엇이 있더냐?”
“꿈이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그래서인지 다 기억할 수는 없습니다. 한가지 잊을 수 없는 건 검도 체육관입니다. 너무나도 강렬했으니까요.”
“검술 고수라고 꿈도 검에 관한 걸 꾸는구나.”
“그러게요. 꿈속에서도 징글징글하게 칼싸움만 하네요.”
“이해한다. 그 속을 누가 모르겠느냐? 그것이 바로 무사의 운명인 것을.”
몇 가지 둘러댈 거리를 준비했는데, 첫 번째 덫에 걸려들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말이다.
‘후― 이게 웬 떡이냐. 만약 장설의 심리에 걸려들었다면, 다 들통나고 말았을 텐데.’
장설이 누구보다도 심리전에 강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길게 대화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얻을 게 없는 대화는 피하면서 말이다.
“형님! 방주를 다시 만나는 날이 언제쯤일까요?”
“그건 왜?”
“제 짐작대로라면요, 방주를 만날 때마다 우리 삶의 질이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아서요.”
“삶이 질이 나아지다니, 그게 다 무슨 소리냐?”
“형님! 우리 곡식 창고에 갇혀 있었을 때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곡식 창고에 갇혀 있을 때?”
장설은 잠시 회상하는 기색이더니.
“음, 거기까지는 알아듣겠구나. 그래서?”
“그런데 보세요! 지난번 만남에서 여기, 이 거처를 얻었잖아요. 곡식 창고에 갇혀 있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놀랍게 삶의 질이 향상되지 않았나요?”
“음, 일리가 있는 말이구나. 다음 만남을 기대하게 만들기에 충분해.”
용하는 우쭐한 기색이었다.
“다음엔 무엇을 얻을 것 같으냐?”
“기대야 늘 크죠. 마음 같아선 창의부흥원을 얻고 싶은데 아니, 되찾아야 하는데.”
“예끼! 인석아. 당치 않은 소리 집어치우거라. 혹여 누가 들으면 목 달아난다. 이것아!”
장설의 말 때문일까, 갑자기 턱밑이 서늘했다.
“형, 형님도 참. 별, 별소리를 다 하십니다. 워, 원래 주인이 자, 자기 집 찾는다는데, 누가 뭐라 그러겠습니까?”
“뚫린 입이라고 말은 청산유수구나. 원래 주인이 자기 집 찾는데, 사시나무 떨듯 벌벌 떠는 이유는 무엇이냐?”
“아, 그야 형님이 생사람 잡으니까 그렇죠.”
“생사람을 잡아? 누가?”
“방금 그랬잖아요. 목 달아난다고.”
“목이 달아나든 허리가 끊어지든, 떳떳하면 그만이지. 왜 그렇게 벌벌 떤 것이냐?”
“아, 그건 제가 수전증이 있어서요. 뭐, 자주 있는 건 아니고, 십 년에 한 번 정도!”
“손도 떨었느냐? 난 그냥 목소리가 좀 떨리는 것 같아서 했던 소리인데.”
찔끔! 목소리 떨리는 걸 감지했다니, 왠지 뒤통수를 세게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장설, 남 뒤통수치는 데 특화된 사람…….’
“너, 지금 내가 알면서도 얘기 안 해준다고 생각하지?”
“네?”
또 속내를 들키고는 두 눈이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또 한 번 놀랐다.
“그런데 장설 형님. 왜 갑자기 인공 형님처럼 말하세요?”
“인석아! 내가 인공처럼 말하는 게 아니고, 네 녀석이 인공이 그렇게 말하게 만든 거야.”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다 큰 어른 말투를 제가 그렇게 만들다니.”
“너하고 있으면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돼.”
“장설 형님. 지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나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너하고 한방 쓰면서 온종일 같이 있어 보니까, 인공이란 녀석이 왜 저렇게 됐는지 알 것 같아.”
“제 탓이란 말입니까?”
“그럼 아니란 얘기야? 사람을 좀, 약을 올려야지.”
마침내 장설이 악에 받쳐 소리를 빽 질렀다.
“형님도 참……. 알았어요, 제가 잘못 했으니까 그만 노여움 푸세요.”
“말이 났으니 이참에 모든 오해는 풀고 넘어가자꾸나. 나는 말이다. 뭘 알면서 너를 애먹인 것도 없고, 네 녀석이 생각하는 것처럼 세상을 달관하지도 못했고, 또…….”
“그만 하세요. 그런 말도 안 되는 말씀 하시려거든.”
“말도 안 되긴 뭐가 말이 안 돼! 나는 그냥 넘겨짚은 것뿐이야. 대충 짐작으로 넘겨짚고서 얘기하면 네 녀석이 알아서 술술 털어놓더구먼.”
현기증이 다 날 지경이었다.
“형님! 장설 형님! 말씀 다 하셨어요? 정말 그게 다라고요?”
정신없이 다그쳤다. 그동안 믿어왔던 장설에 대한 환상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세상에, 내가 저런 사람을 두고 해탈을 했네, 신의 경지네, 초월적 존재네, 하면서 그동안 우러르고 있었다니 원.”
방바닥을 내리치며 화풀이하는 용하를 실눈으로 훔쳐보는 장설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흠, 이쯤 되면 더는 방주나 방주 궁에 관해 얘기해 달라고 성가시게 구는 일은 없겠지?’
장설을 믿을 수 없게 된 용하는 갑자기 벼랑 끝에 선 기분이었다. 별 도움 안 되는 인공과 무림에 쓸쓸히 혼자 남겨졌다는 생각에 가슴 한구석이 허전했다. 그래서인지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던 유월이 생각이 밀려왔다.
“유월아…….”
그뿐 아니었다. 소희 낭자에 대한 그리움 또한 거세게 밀려왔다.
“소희 낭자…….”
못 들은 체했지만, 장설은 모두 듣고 있었다.
‘녀석이 무림에서 살아남으려면 누군가에게 의지하려는 습관부터 버려야 한다. 얼마나 더 살지 모를 나를 의지하게 해서는 더욱 안 될 일이다.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이 세상을 떠나면 녀석은 자기 앞에 펼쳐진 운명을 결코 스스로 감당하지 못할 것이야.’
장설은 저도 모르게 혀를 끌끌 찼다.
‘시간이 별로 없다. 살아있는 동안 용하 녀석이 스스로 살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바로 그 순간, 장설에게 목표가 하나 생겼다.
다음 날 아침.
이제 막 잠에서 깨려는데 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오늘부터 백의개로 살아가기 위한 교육이 있을 예정이니 그리 알라!”
그때였다. 미적거리던 용하가 후다닥 몸을 일으키더니 밖으로 뛰어나갔다.
“여보시오! 오늘부터 교육이라니, 그게 다 무슨 소리요?”
“개방의 법도이니 군소리 말고 따르시오.”
개방의 법도. 더는 할 말이 없었다.
“그럼 언제까지 하는지 일정이라도 말해 주시오.”
“이번 교육은 그리 길지 않을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그러니까 언제까지 하는지 말해 주시오.”
“사흘이오.”
대답은 간결했다. 사흘이라는 말에 용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 석 달도 기다렸는데 그깟 사흘쯤이야.’
다시 방으로 들어온 용하는 아직 잠들어 있는 인공과 장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정확히 사흘 뒤 무슨 일이 있어도 유월과 함께 시공간 이동체의 변신 트럭이 있는 곳으로 갈 것이다.”
용하는 조바심을 내며 바깥 동정에 귀를 기울였다. 친구가 된 개방의 무사에게 정확히 사흘 뒤 유월을 데려다 달라는 당부를 하기 위해 꼭 만나야 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오늘부터 사흘 동안 백의개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초교육이 있을 예정이니 그리 알게.”
“이보게, 친구! 잠깐만 기다리게.”
“…….”
용하는 황급히 밖으로 나갔다. 개방의 무사가 마치 보초라도 서듯 방문 앞에 서 있었다.
“용건이 무엇인가? 간결하게 얘기하게.”
“정확히 사흘 뒤, 교육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유월을 데려다주게.”
“알겠네. 녀석도 주인을 만날 때가 되었음을 아는지, 최근 들어 많이 보채더구먼.”
“아, 그랬었구먼.”
그 순간 갑자기 유월이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려 용하는 저도 모르게 울먹였다.
“자네, 이렇게 나약한 사내였는가?”
무사의 물음에 용하는 괜한 자존심이 발동했다.
“나약한 사내! 자네 눈에는 내가 그리 보였는가?”
“여기 무림의 다른 곳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개방의 사내는 절대 눈물 따위 보이지 않는다네.”
“나약해서가 아니고 감동되어 그런 것이니, 이번만 이해해 주게.”
“그 심정을 누가 모르겠나. 하지만 지켜야 할 건 혀를 깨물고라도 지켜야 하네.”
“알겠네. 그럼 사흘 뒤 유월이 좀 부탁하네.”
개방의 무사는 입을 굳게 다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고 총총히 멀어져갔다.
방으로 돌아온 용하는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조식을 기다렸다.
뒤늦게 눈을 뜬 인공이 아직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 있어? 왜 아침부터 분주해?”
“오늘부터 사흘간 기초교육 있답니다.”
“기초교육! 그 얘기는 언제 들었어? 그런 얘기 없었잖아.”
“조금 전에 무사들이 알리던데, 못 들었나 봐요?”
“그럼 우리를 깨웠어야지, 혼자 이렇게 준비하면 어떡하자는 거야?”
“다 큰 어른들이 알아서 해야지, 언제까지 막내인 제가 챙겨야 합니까?”
왠지 찬 바람이 불었다.
“알았다. 나이 먹고 내가 주책을 떤 것 같구나. 그건 그렇고, 장설 형님 깨워드려.”
“제가 무슨 잠꾸러기 깨워주는 사람입니까?”
이번에도 용하는 차가운 반응이었다.
인공은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심상찮음을 느낀 인공은 더는 용하를 건드리지 않았다.
“형님! 장설 형님! 그만 주무시고 일어나십시오. 무슨 교육이 있답니다.”
아까부터 자는 척하고 있던 장설은 겨우 잠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인상을 있는 대로 찌푸린 채 몸을 일으켰다.
“교육은 무슨 교육! 다 큰 어른에게 뭘 가르치겠다고.”
목소리에 불만이 잔뜩 엿보였다.
“불만 품지 마십시오. 잘못된 어른 바로 잡는 교육인가 보죠.”
장설은 못 들은 체했고, 인공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용하를 바라보았다.
“너 방금 뭐라 그랬냐?”
“왜요? 연식이 오래돼서 귀도 잘 안 들리시나 보죠?”
좀처럼 뉘우치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이윽고 개방의 무사들이 찾아와 용하 일행을 교육장으로 안내했다.
무사들은 용하 일행에게 예전처럼 포박한다거나 두건을 씌우지는 않았다.
방주에게로 가는 길은 예상했던 대로 창의부흥원으로 이어졌다.
그제야 창의부흥원을 알아본 인공이 용하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뜻밖에도 용하는 시큰둥했다. 아니, 정확히 말해 본 체도 하지 않았다.
‘이 녀석이 밤새 무슨 일이 있었나?’
장설을 흘깃 보았다. 장설 또한 왠지 석연찮은 얼굴이었다.
‘다들 좀 이상하네! 왜들 저런데. 나만 멀쩡한 건가? 그러게, 반주로 탁배기 한 잔씩 해야 정신건강에 이롭다니까.’
인공은 스스로 만족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입에 헤벌어졌다.
옆에서 용하 일행을 인솔하던 무사가 나직하게 경고했다.
“그 입 다무시오!”
비록 작은 소리였지만, 서슬이 느껴졌다.
이윽고 창의부흥원 앞에 멈췄다.
평소 같으면 이곳에서 정렬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용하 일생을 그냥 세워두었다. 그 순간 세 사람의 뇌리에 예전에 정신 교육을 받았던 기억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설마!”
용하 일행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미간을 좁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