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153
153화
“형님! 마음의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예전에 훈육관 교관에게 죽기 직전까지 흠씬 두들겨 맞은 기억 때문이었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지 않느냐? 그런데 어찌하여 그리 단언하는 것이냐?”
“이거 보나 마나 야외 교육입니다. 밖에서 하는 교육은 대체로 독종들이 도맡아 한다는 거 형님도 잘 아시잖습니까?”
듣고 보니 틀린 말도 아니었다.
“그러게! 그런데 왜 밖에서 하는 교육은 독종들 차지인 것이냐?”
“아무래도 한정된 공간보다는 여러 가지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니, 그만큼 질서 유지에 신경 쓰다 보니 그런 거 아닐까요?”
장설이 수긍이 간다는 듯 고개를 수차례나 끄덕이며 슬쩍 떠보듯 물었다.
“용하야, 너는 어찌 생각하느냐?”
분명 들었으면서도 용하는 못 들은 척 먼 곳에 시선을 둔 채였다.
웬일인지 장설은 안도하는 기색이었다.
‘음, 단단하군. 그 마음이 변해선 안 될 것이다.’
이번에는 인공을 바라보았다. 하루가 다르게 철이 거꾸로 들어가는 인공이 딱하기만 했다.
“인석아! 지레 겁먹고 촐싹대지 좀 말아라.”
“형님도 참, 세월 좋은 소리 하고 계시네! 일전에 그렇게 치도곤을 당하고도 모르겠어요? 보세요! 이거 딱 그림이 그때 그거잖아요.”
그때였다. 무사 하나가 큰소리로 외쳤다.
“여기서 정신 무장을 하고 안으로 들어가도록 하겠다.”
무사의 말에 인공이 장설에게 쑥덕거렸다.
“거, 보십시오. 정신 무장이라고 하잖습니까? 이거 무조건 몽둥이찜질이라니까요.”
“조용히 하라! 괜히 그러다 너 혼자만 몽둥이찜질 당하면 억울하지 않겠느냐?”
“형님도 참, 척 보면 척 아닙니까? 저것들 걸음걸이 보세요. 곧 태도가 확 돌변할 겁니다.”
“자꾸 매를 벌지 말고, 너도 생각 좀 해보고 입을 열거라. 그때 야외에서 교육할 때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우리가 몽둥이찜질 당한 건 늦잠 자다 걸려서 얻어맞은 거 아니냐?”
“음, …그건 그렇지만.”
돌이켜 보니 장설의 말이 옳았다. 인공은 민망했던지 입맛만 쩝쩝 다셨다.
“그건 그렇고, 형님! 이상한 게 한둘이 아닙니다.”
“정신 사납게 자꾸 떠들지 말고, 그 입 좀 제발 다물어.”
“아, 형님도 참! 사람 민망하게.”
이번에도 못마땅한 기색으로 입맛만 쩝쩝 다셨다.
“전 말입니다. 솔직히 용하 녀석이 그 얘기 했을 땐 그저 그러려니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자꾸 이상해서 하는 소리입니다.”
“시간이 가는데 왜? 뭐, 뭐가 그렇게 이상해서?”
웬일인지 장설은 자꾸 인공을 몰아세웠다.
“형님! 진짜 저한테 이러시는 이유가 대체 뭡니까?”
“지금 대드는 것이냐?”
“아니, 대드는 게 아니라, 억울해서 그럽니다.”
정말 억울했던지 인공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 같았다.
“억울하긴 뭐가 억울해. 입이 있으면 말해봐, 인마!”
“무슨 수렴청정도 아니고 왜 발을 치고 사람을 대하는 겁니까?”
“…….”
“거, 보세요. 형님도 이상하죠?”
“이상하긴 뭐가 이상해. 넘겨짚지 마, 인석아.”
“넘겨짚긴 제가 뭘 넘겨짚어요? 아무 말도 안 하는 거 보니까 맞는구먼.”
“아무 말도 안 하긴, 내가 언제 인석아.”
“아까 방주가 발을 치고 사람 대하는 게 이상하지 않으냐고 제가 물었을 때, 분명 함구하지 않았습니까?”
“그건 인석아. 잠시 생각 좀 하느라 그런 거지. 네 녀석 말에 동의해서 그랬던 게 아니야.”
“정말 대단하시네요. 대단한 재주를 가지셨어. 어떻게 그렇게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구라를 치세요? 부럽네요, 부러워. 어디 학원 다녔어요?”
참다못한 장설이 한 대 쥐어박을 기세로 손을 둘러매려고 할 때였다.
“방주의 궁에서 방주 대인께서 내려다보고 계시니 허튼짓하지 말아라.”
무사 중 하나가 강하게 경고했다.
장설은 찔끔해서 들었던 손을 내리고 방주의 궁을 살폈다.
‘헉! 농담이 아니었네. 오른쪽 맨 끝에 있는 창문에 사람 맞지?’
장설은 나직하게 인공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주의를 주었다.
“이보게, 인공!”
인공이 들릴 듯 말 듯 나직한 소리로 부르자, 인공은 더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왜요, 형님.”
“오른쪽 맨 끝 창문에 얼핏 보이는 게 사람 맞지?”
인공의 눈동자가 조심스럽게 오른쪽으로 움직였다.
딸꾹!
“헉! 형님. 저거 사람 맞아요. 방주일까요?”
“아무래도 그런 것 같으니, 조심하자꾸나.”
“네, 알겠습니다. 형님. 고맙습니다.”
뒤끝 없이 착한 인공. 그는 금세 화가 풀려 살갑게 대답했다.
“일단 방주에게 잘 보여서 나쁠 건 없으니, 정신 바짝 차리고 제대로 한번 보여주자.”
“네, 형님!”
인공은 벌써 각을 잡았다.
두 사람이 죽이 척척 맞는 사이, 용하는 두 사람에게서 점점 더 멀어졌다.
“형님! 저 녀석 저대로 둬도 괜찮겠어요?”
인공은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 장설에게 물었다.
“내버려 둬. 뭐든 혼자 할 수 있어야지. 저 녀석 우리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해.”
“형님! 그건 좀 위험한 발상인데요. 저는 그동안 저 녀석이 독불장군이 되면 어쩌나 노심초사하면서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며 가르쳤는데.”
“네 녀석이 그렇게 가르쳐서 저 녀석이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거야.”
얼핏 짜증을 냈다.
“알았어요. 뭐만 잘못되면 다 내 잘못이래.”
인공이 삐져서 투덜거려도 밉지 않았다.
“그런데 형님!”
“왜, 또?”
“사람이 좀 그렇지 않아요?”
“밑도 끝도 없이 그렇긴 뭐가 그렇다는 거야?”
“개방을 열광해서 전 재산을 버리고 백의개가 되겠노라 여기까지 온 사람들을 지척에 두고 어떻게 한번 나와보지도 않을 수 있을까요?”
“뭐, 자격지심이겠지. 아직 매듭 하나도 제대로 못 맨 우리 같은 백의개 후보들을 매듭이 아홉 개나 되는 방주(九結)가 거들떠나 보겠느냐?”
“하긴, 그래요. 밥 얻으러 온 거지를 맞이하는 건 늘 그 집 하인이니까.”
“다들 중앙 정원으로 이동하시오.”
어느 무사의 외침이 들렸을 때 용하는 짐짓 놀랐다.
‘중앙 정원!’
별말도 아닌데 놀란 이유는 중앙 정원은 용두방주의 궁에 있었기 때문이다.
‘용두방주의 궁이 사라진 지금, 대체 어디를 두고 중앙 정원 정원이라고 하는 것인가?’
몇몇 무사들이 오와 열을 맞춰 이동하기 시작했다. 용하 일행은 그 뒤를 따라갔다. 목을 쭉 빼고 정면을 주시하는 용하의 얼굴에 알 수 없는 기대감이 역력했다.
‘이 방향으로 가면 호위무사들의 업무 공간인 호위무사관으로 가는 길이 아닌가?’
호위무사관은 창의부흥원과 소희 낭자의 별채 사이에, 당시 용하와 소희를 호위하던 장설과 인공이 머물 수 있도록 지어졌다. 호위무사관이 이곳에 자리 잡게 된 이유는, 용하 입장에선 호위무사관을 창의부흥원 가까이 두고 싶었을 테고, 용두방주 입장에서는 소희 낭자의 별채 가까이 두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이런 두 가지 목적을 두루 충족할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지금 용하 일행이 가고 있는 중앙 정원이라는 곳이었다.
‘아니, 이럴 수가!’
드넓게 펼쳐진 중앙 정원이라는 곳에 호위무사관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뿐 아니었다. 소희 낭자의 별채 또한 사라지고 그 자리에 잔디와 수목이 어우러진 정원으로 꾸며져 있었다.
‘그렇다면…….’
용하는 좁아진 미간으로 용두방주의 궁이 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용두방주의 궁이 궁금해져서였다. 정확히 말해 용두 방주의 궁 앞에 그의 염원을 담아 만들어진 중앙 정원이 있던 자리는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해졌다.
그뿐 아니었다. 그곳에 있던 중앙 정원이 어쩌다가 호위무사의 관청이 있던 자리로 옮기게 되었는지도 궁금했다.
용하는 잠시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풀어야 할 과제가 하나 더 생긴 것인가?’
저도 모르게 어금니가 깨물어졌다.
‘우선 운신의 폭이 넓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시라도 빨리 방주와 담판을 지어야 한다. 누군가의 간섭을 받고 뭐 하나 하는 것도 눈치를 봐야 하는 지금, 무엇을 제대로 할 수 있단 말인가.’
고질병이 도졌다. 갑자기 꿈틀거리는 조바심이 정신을 흐려놓았다. 용하의 심리변화를 제일 먼저 감지한 사람은 다름 아닌 장설이었다.
‘대체 무엇이 저 녀석을 자극했단 말인가?’
장설은 눈동자를 크게 움직여 주위를 살폈다. 최대한 작은 움직임으로 용하를 흔들어 놓은 원인을 찾기 위해서였다. 장설의 눈을 사로잡는 건 두 가지였다.
‘그냥 지나치려 했는데, 그럴 수가 없게 되었군.’
예전에 한때 몸담았던 호위무사관이 있던 자리. 그리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호위했던 소희 낭자가 머물던 별채. 이 두 곳은 온데간데없고 그곳에 커다란 정원이 펼쳐져 있었다.
‘이곳이 중앙 정원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장설 또한 용하와 마찬가지로 미간이 좁아진 눈을 들어, 예전에 용두방주의 궁이 있던 쪽을 바라보았다.
일부러 무관심한 체했지만, 용하의 예리한 눈이 장설의 움직임을 놓칠 리 없었다.
‘저 표정! 저거 뭐지? 그럼 장설조차도 개방에서 일어난 일들을 모르고 있었단 말인가.’
용하는 형형해진 눈으로 장설을 바라보았다.
‘내 판단에 또 문제가 생겼단 말인가.’
용하는 막간을 이용해, 어젯밤부터 지금까지, 장설이 보인 태도를 되짚어 보았다.
몇 가지 달라진 점이 발견됐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두드러지게 달라진 점은 자기를 대하는 게 이상하다는 점이었다. 눈빛도, 말투도, 표정도 모두 달라졌다.
‘왜일까?’
장설이 달라진 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용하에게 중요한 건 왜 달라졌느냐였다.
다행히도 장설이 달라진 게 악의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장설이 호의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단서는 중요한 순간 그가 자신도 모르게 용하 쪽으로 눈길을 보낸다는 것이다.
‘혹시 인공 형님은 알고 계실까?’
용하는 조심스럽게 눈동자를 굴려 인공을 바라보았다.
인공은 무사들 앞으로 드넓게 펼쳐지는 중앙 정원에만 온통 눈이 팔려있었다.
‘어린아이만큼 맑고 순수한 감성을 지닌 인공 형님…….’
그럴 리 없었다. 저렇게 순순한 사람이 무엇을 숨기고 있을 리 없다는 생각이 용하의 눈을 가려버렸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장설 형님은 나를 멀리하려고 한다.’
용하는 최대한 작은 걸음을 옮겨 인공에게 다가갔다. 인공의 팔에 용하의 팔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 갔지만, 인공은 중앙 정원에만 정신이 팔려 용하는 안중에도 없었다.
“형님!”
거의 바람 빠지는 듯한 목소리로 인공은 불렀다. 중앙 정원에 정신이 팔린 인공의 시선은 좀처럼 돌아올 줄 몰랐다. 용하는 무사들의 눈치를 살피며 인공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아얏!
인공은 눈치 없이 비명을 질렀다.
쉿!
다행히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무사들 누구 하나 눈치채지는 못했다.
인공은 입 모양으로 물었다.
“왜?”
용하 역시 입 모양으로 대답했다.
“장설 형님 무슨 일 있었어요?”
인공은 흘깃 장설을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또 입 모양으로 물었다.
“왜?”
이번에는 용하가 고개를 내젓고는 슬금슬금 떨어져 나갔다.
‘왠지 나를 고립시키려는 의도가 엿보이는데, 이유가 대체 뭘까?’
용하는 혹여 자기가 뭘 잘못한 건 없는지 되짚어 보았다.
‘혹시 내가 뭘 잘못해서 왕따 당하는 건가?’
하다 하다 별 쓸데없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윽고 중앙 정원에 도착했을 때였다.
용하, 인공, 장설은 의아하다는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열 명 남짓한 건장한 무사들이 커다란 나무 기둥 하나를 낑낑거리며 들고 오는 게 보였다.
“어이구, 어디서 저렇게 큰 나무를 베어왔대.”
인공의 입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이윽고 나무 기둥이 중앙 정원 한가운데 놓였을 때였다.
“정신 무장에 이만한 게 없다.”
무사 하나가 용하 일행을 향해 목청껏 소리쳤다.
“저게 다 무슨 소리래!”
인공이 어리바리 중얼거렸다.
“용하야! 쟤네 정말 웃긴다. 나무 기둥하고 정신 무장이 무슨 상관있다고”
“형님! 지금 웃을 때가 아닌 것 같은데요.”
“웃을 때가 아닌 것 같다니, 그게 다 무슨 소리냐?”
“저 나무 기둥이요.”
“그러니까 나무 기둥이 왜? 뭐, 어쨌다고?”
“저기 건장한 무사들도 겨우 들고 왔잖아요.”
“그랬지. 병신들, 열 명도 넘는 놈들이 나무 기둥 하나를 못 들어서 쩔쩔매고 말이야.”
“형님! 지금 남 얘기하듯 그럴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용하의 말에 인공은 장설을 휙! 돌아보았다.
장설은 이미 모든 걸 내려놓은 사람처럼 처연하게 나무 기둥을 바라보고 있었다.
잔뜩 겁에 질린 인공의 눈길이 장설의 시선을 따라 이동했다.
이제 막 인공의 시선이 닿은 곳에 어김없이 나무 기둥이 놓여 있었다.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