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154
154화
“아닐 거야.”
애써 부정하고 싶었다.
“얘, 용하야…….”
“…….”
“설마, 아니겠지?”
이미 두려움이 온몸을 장악해 입이 제대로 떨어지지 않았다.
용하는 떨어지지 않는 입으로 망연자실 말했다.
“설마가 사람 잡습니다.”
그때였다.
“가운데 하나 받치고, 양쪽 끝 하나씩 잡으시오.”
“용하야! 쟤 지금 뭐라 그러는 거냐?”
“제가 보기엔 봉체조 같습니다.”
목소리로 보아 용하는 자포자기 상태였다.
“어쩌겠습니까, 체격이 가장 좋은 인공 형님이 가운데 서셔야죠.”
용하가 흘깃 인공을 보았을 때, 그는 이미 실신한 채였다.
보다 못한 장설이 분연히 나섰다.
“이보시오! 지금 장난하는 것이오?”
작달막한 장설이 배를 쑥 내밀고 큰소리를 치자, 무사 가운데 하나가 같잖다는 듯 장설을 밀쳐내려 했다.
“물러서시오. 늙은이 혼자 무엇을 하겠다는 것이오?”
역시 멸시하는 듯한 목소리로 비아냥거리던 무사의 목소리가 조금씩 기어들어 갔다.
옆에 있던 또 다른 무사가 나서며 장설을 밀쳐냈지만, 장설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무사 둘은 서로를 흘깃거리며 쑤군거렸다.
“이 노인네 뭐야?”
“약자라고 너무 살살 다룬 거 아냐?”
“다시 한번 해볼까?”
“다시 한번 해봐. 아랫배에 힘 꽉 주고.”
무사 하나가 슬금슬금 장설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크게 숨을 들이쉬더니 장설을 툭 밀쳐내며 말했다.
“물러서시오.”
영 자신감도 없고 기력도 없어 보였다. 무사보다 오히려 장설에게서 기백이 더 엿보였다.
무사 둘은 도저히 안 되겠던지, 저만치 무사들의 무리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생각해 보니까, 이건 좀 무리인 것 같소.”
“왜 그러시오?”
“저들이 죄인도 아닌데, 굳이 인간으로서 극복할 수 없는 극한의 교육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소.”
잠시 웅성거리는 기색이더니, 무사 하나가 결단을 내렸다.
“가서 도끼 가져오시오.”
장설이 분연히 나선 결과, 나무 기둥의 크기는 반으로 줄어들었다.
“자, 정신 차리고 가장 체격이 좋은 사람이 가운데 서시오.”
인공은 무릎을 구부렸다.
“거기, 무릎 구부린 사람! 앞으로 나오시오.”
그제야 인공은 울상을 지으며 앞으로 나섰다.
“나무 기둥 두 개가 똑같은 크기이니, 아무 쪽에나 서시오.”
인공은 빠르게 눈동자를 움직였다. 그래도 혹시 모를 일, 조금이라도 더 작은 나무 기둥이 있나 살피기 위해서였다.
“뭘 꾸물거리시오. 어서 나무 기둥 가운데로 가서 서시오.”
인공은 여전히 눈동자를 빠르게 굴리며 슬금슬금 나무 기둥 쪽으로 움직였다. 무사가 말한 대로 아무리 보아도 두 개의 나무 기둥은 똑같았다. 바로 그때였다.
‘찾았다!’
인공의 눈에 끝이 점점 가늘어지는 나무 기둥이 보였다. 아무리 큰 나무 기둥이라고 해도 시작과 끝이 다 똑같을 수는 없었다. 인공이 그렇게 눈동자를 굴려 가며 찾았던 게 바로 그것이었다.
자기가 선택한 나무 기둥 한가운데로 가서 서는 인공은 화사한 얼굴로 장설을 바라보았다. 인공을 바라보는 장설은 대견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용하도 보일 듯 말 듯 엄지를 들어 보였다.
“자, 시간이 없소. 어서 나머지 두 사람도 나무 기둥 양쪽 끝으로 가서 서시오.”
그렇게 시작된 기초교육 첫날은 봉체조로 시작해 봉체조로 끝을 맺었다.
거처로 돌아온 인공은 잠시도 입을 가만두지 못했다.
“형님, 이게 말이 됩니까? 이건 인권유린입니다. 인권유린.”
“뭔 유린?”
“인권유린이요.”
“그게 대체 무엇이냐? 난 처음 듣는 소리라.”
“사람은 누구나 사람답게 살 권리가 있다는 말입니다.”
“사람답다……. 그렇다면 사람다운 건 또 무엇이냐?”
별 어려운 질문도 아니었다. 그런데 인공은 딱히 무어라 대답하지 못했다.
“음, 그러니까 그게 말입니다. 음…….”
“왜? 너도 모르는 것이냐?”
“아뇨! 알긴 아는데……. 음, 그게…….”
인공이 할 대답에 잠시 관심을 가졌던 장설은 팩 돌아섰다.
“모르는구먼! 모르면서 아는 척은.”
그때였다.
“사람답다는 건 그리 어려운 게 아닙니다. 개돼지와 다름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사람다운 겁니다.”
용하가 자신만만하게 인공을 대신해 답했다.
“인권유린이 그것이라면 나도 인정하마. 솔직히 오늘 좀 심했어.”
그제야 장설은 눈곱만큼도 토 다는 일 없이 수긍했다.
“형님! 제가 말입니다. 도움받으려는 게 아니고. 정말 순수하게 의견을 듣고 싶어서 여쭙는 겁니다.”
하고 싶은 말은 절대 입에 담아두지 못하는 게 용하였다. 그런 용하가 지금 본론을 말하기 전에 이렇게 서설을 한다는 건 장설의 의중을 알아차렸다는 뜻이다. 그 사실을 이제야 장설도 눈치챘다.
‘기특한 녀석! 오늘 하루 그렇게 쀼루퉁했던 게 각성의 시간을 갖느라 그랬던 거였어.’
“말해 보아라. 들어나 보자꾸나.”
“개방에 입문하는 게 죄입니까?”
짧고 간결한 질문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용하의 질문이 장설에게는 단호하게 들렸다.
“그것을 왜 묻는 것이냐?”
“오늘 우리가 뭐 했습니까? 봉체조입니다. 봉체조가 교육입니까? 그런 교육은 교도소에서나 하는 겁니다. 아니, 요즘 교도소는 인권유린 때문에 그런 거 아예 하지도 않습니다.”
용하는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솔직히 나도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교육이라 하여 개방에서 지켜야 할 규칙 같은 거 가르칠 줄 알았는데.”
장설조차 이렇게 말하니 용하의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다.
“인공 형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는 뭐, 오랜만에 땀을 좀 빼서 그런가, 개운하고 좋은데.”
맥이 쭉 빠졌다.
“그럼 형님은 내일도 모레도 봉체조나 하세요. 제가 무사들한테 잘 말해 둘게요.”
“얘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하니? 아무리 맛있는 반찬도 두 번 세 번 밥상에 올라오면 질리기 마련이야. 하물며 봉체조도 마찬가지 아니겠니?”
“뭐예요, 말투가 왜 그래요? 지금 저한테 아부하는 거예요?”
“아부랄게 뭐 있니? 모처럼 우리 아우한테 살갑게 좀 대하고 싶어서 그러지.”
“둘이서 그동안의 소회를 나누도록 하라. 나 먼저 좀 누울 테니.”
“형님, 저녁 식사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누우시게요? 어디 불편한 데라도…….”
“이 나이에 그렇게 구르고도 아무렇지 않다면, 그게 더 이상한 거 아니겠느냐?”
“그럼 일단 좀 쉬십시오. 밥상 들어오면 깨워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해주면 고맙고.”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장설은 곤히 잠들었다.
“용하야. 특별히 하는 일 없으면 장설 형님 곁에 좀 있거라.”
“왜요?”
“장설 형님 안색이 조금이라도 달라지면 내게 말해 주도록 하라. 혹 숨소리가 달라질 수도 있으니 그것도 염두에 두고.”
그제야 용하는 심상찮음을 깨닫고 더는 토를 단다거나 하지 않았다.
“형님! 만에 하나 장설 형님께 무슨 일이 생기면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가만있지 않으면?”
“박살 내 버릴 겁니다.”
“박살 내? 뭐를?”
“개방을요.”
용하는 어금니를 부드득 갈았다.
인공은 놀란 눈을 어디에 둘 줄 몰랐다.
그때였다.
“주안상 들어가니 문을 여시오.”
“주안상이라니?”
“그러게, 말이다. 우리가 뭘 잘못 들은 거겠지?”
“그런 거겠죠? 주점에 가본 게 언제입니까? 하도 그리우니까 헛소리가 다 들리네요.”
영문을 알 수 없는 용하와 인공은 그저 멀뚱멀뚱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
하지만 꿈은 현실이 되었다. 방문이 열리고 방 절반만 한 크기의 주안상이 네 명의 무사의 손에 들려 방 안에 들어왔다. 용하와 인공은 휘둥그레진 두 눈을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형님! 헛소리가 아닌데요. 진짜 주안상입니다. 그것도 여느 주점에서는 구경도 못 할 성대한 주안상 말입니다.”
“그러게, 말이다. 이게 정녕 꿈은 아니렷다.”
주안상을 내려놓은 무사들이 방을 나가려고 했다. 용하는 서둘러 물었다.
“이 주안상을 우리에게 주는 것이오?”
“그렇소.”
“괜히 이거 먹고 봉변당하는 건 아니오?”
“그런 걱정일랑 말고 맛있게 드시오. 방주 대인께서 그대들이 오늘 교육하는 걸 지켜보시고 고생했다고 내려주신 것이니.”
“방주 대인이?!”
용하와 인공은 입을 모아 고마움을 아니, 놀람을 표했다.
무사들이 나가자, 용하와 인공은 서둘러 장설을 깨웠다.
“형님! 형님! 좀 일어나보십시오.”
“왠 호들갑이냐?”
장설은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이것 좀 보십시오. 방주 대인이 내려주신 주안상입니다.”
“방주 대인이 주안상을 내렸다?”
방주라는 말에 적잖이 의아해하는 기색이었다.
“이보게, 인공! …자네가 먼저 음식을 종류별로 한점씩 맛을 보게.”
“아, 그럴까요? 이거 뜻밖의 영광인데요. 이렇게 귀한 음식을 제가 먼저 맛보게 된다니.”
인공은 헤벌어진 입을 다물 줄 몰랐다. 그러고는 젓가락을 들어 입맛을 다셔가며 무엇부터 맛볼까를 고민했다.
“아…, 음…, 어떤 음식부터 맛을 봐야 제대로 맛봤다고 소문이 날까?”
그런데 웬일인지 옆자리의 용하는 비릿한 미소로 인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엄밀하게 말해 비웃는 눈으로 말이다.
얼핏 20여 가지도 더 돼 보이는 음식을 하나하나 맛본 인공은 벌써 배가 불렀던지 트림을 끅! 하고는 보고하듯 말했다.
“무엇 하나 흠잡을 곳 없는 음식들입니다. 형님도 드시지요. 용하 너도.”
하지만 웬일인지 두 사람은 수저를 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수저는커녕 말똥말똥 뜬 눈으로 인공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용하야, 이제 먹자꾸나.”
“에이, 뭐예요? 부처님 섬기는 분이 기도한 것도 아니고.”
“인공 자네도 좀 들게.”
“어휴, 저는 맛만 봤는데도 벌써 배가 부르네요.”
“저 술은 다 어쩌냐? 게다가 이 고기는.”
술이라는 말에 인공은 군침을 꿀꺽 삼키고는 말했다.
“그럼 술은 제가 마시도록 하겠습니다. 형님은 고기를 좀 드십시오.”
“고기도 자네가 먹게. 나는 부처님을 섬기는 불자 아니냐. 고기라니 당치않다.”
“그렇게 따지면 저는요?”
“자네는 이미 땡추라고 정평이 났다고 하지 않았느냐?”
“아, 그건 21세기에서…….”
얼떨결에 21세기를 운운하려던 인공은 갑자기 제 입을 틀어막았다.
“왜 또 말을 하려다 마는 것이냐?”
“제, 제가요?”
어설픈 능청을 떨었다.
“자네가 아니면, 어디! …용하 너냐?”
용하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그만하십시오. 아까 기미 상궁 역할 하시느라 고생하셨는데.”
능청을 떠느라 주억거리던 인공의 표정이 갑자기 달라졌다.
“기미 상궁?”
인공의 뇌리에, 조금 전 음식을 종류별로 집어 먹던 광경이 전광석화처럼 스쳤다.
“아니, 그럼!”
인공은 두 눈을 허옇게 치켜떴다.
“미안하네. 아직 방주를 믿을 순 없지 않은가. 그러니 누군가…….”
“형님!”
자신을 총알받이로 내세운 장설을 향해 인공은 소리를 빽 질렀다.
옆자리 용하는 그저 키득거리고만 있었다.
“아니, 그럼 용하 네 녀석도 속이 시커먼 장설 형님 속내를 알고 있었던 것이냐?”
“죄송합니다. 형님. 하지만 우리 셋 중에 누군가는 해야 할 일 아니었습니까?”
“그래서 그걸 내가 했으니 잘된 일이라, 그 말이 하고 싶은 것이냐?”
울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오른 인공은 술을 부어 벌컥벌컥 들이켰다.
“형님, 천천히 드십시오. 누가 안 뺏어 먹습니다.”
“속에 천불이 나서 그런다. 이 술을 부어서라도 불은 꺼야 하지 않겠느냐?”
그때였다.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는데, 평범한 소리는 아니었다.
누군가 살금살금 거리를 좁혀왔는데, 왠지 걸음걸이가 불편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