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155
155화
세 사람은 숨죽인 채 밖에서 들려오는 인기척에 귀를 기울였다.
“곧 문이 열릴 것이다. 아직 아군인지 적군인지 모르니,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될 것이다.”
“알겠습니다, 형님.”
장설의 말에 용하와 인공은 입을 모아 대답했다.
바로 그때였다. 살금살금 다가오던 인기척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뭐야?”
인공은 어리둥절한 눈으로 용하를 바라보았다.
용하는 잠시 방문을 직시하더니 곧 벌컥 열어젖혔다.
방문 앞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분명 무슨 소리 들렸죠?”
용하는 토끼 눈을 뜨고 물었다.
갑작스러운 일로 어찌나 놀랐는지, 인공과 장설은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조금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만 연신 끄덕이는 두 사람에게 용하는 위로의 말을 건넸다.
“뜻하지 않은 봉체조로 다들 긴장했었나 봅니다. 헛소리가 다 들리는 걸 보니.”
용하는 일부러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형님들, 오늘 저녁은 세상이 유난히도 아름답지 않습니까? 맛있는 것도 먹고 배도 부르고, 모처럼 막내가 담소를 청하고자 하는데 받아주시겠습니까?”
“낮에 봉체조를 해서 피곤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막내가 청하는 것이니 받아줍시다.”
“인공, 자네만 괜찮다면, 나야 뭐.”
그리웠다. 늘 식사 후에 말동무가 돼 주던 인공과 장설의 입담이.
같은 시각.
새하얀 베일을 사이에 두고 한 무사가 조아리고 있었다. 베일 너머의 방주는 곱씹는 듯한 목소리로 무사에게 은밀하게 지시하고 있었다. 방주 전(殿)의 분위기가 사뭇 진지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늦은 시간까지 담소를 나누느라 잠이 부족해 피곤해야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조금 전 아침상을 물린 후 만반의 준비를 하고 무사들을 기다렸다.
무사들은 어김없이 정해진 시간에 방문 앞에 도착했다.
“오늘은 기초교육 제2일 차요.”
아직 고할 게 남아 있었지만, 용하 일행은 무사의 말을 찰떡같이 알아듣고 주섬주섬 방을 나섰다.
“…곧 교육장으로 이동할 것이오.”
뒤늦게 나머지 말이 들렸지만, 상관없었다.
“오늘도 봉체조요?”
용하는 무사를 지나치며 은근슬쩍 물었다. 별 기대감 없이 툭 던진 말에 무사는 대답했다.
“방주 대인의 명이 있으셨소.”
“방주 대인의 명! 무슨 명?”
궁금해하는 용하를 뒤로 한 체 무사는 저만치 걸음을 내디뎠다.
“아니, 저게 사람이 말을 하는데. 그나저나 무슨 명이 있었다는 거야?”
용하는 무사 뒤로 종종걸음치며 구시렁거렸다.
방주의 전 그러니까, 예전의 창의부흥원까지 가는 길은 익숙했다. 없었던 중앙 정원이 생겨나고 있었던 호위무사관과 소희 낭자의 별채가 사라졌다는 것 말고는. 용하는 생각했다.
‘차라리 잘된 일이다. 만약 소희 낭자의 별채가 그대로 있었다면, 이곳을 지날 때마다 나도 모르게 눈길이 그쪽으로 흘렀을 텐데.’
바로 그 순간 용하의 뇌리에 빠르게 떠오르는 게 있었다. 다름 아닌 소희 낭자의 별채였다. 대체 무슨 이유로 소희 낭자의 별채가 갑자기 사라진 걸까. 그 궁금증을 풀 수 있는 단서가 될 만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용두방주의 궁도!’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던 궁금증이 한꺼번에 풀리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중앙 정원도…….’
용하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그의 커진 두 눈은 방주의 궁, 다시 말해 예전의 창의부흥원 쪽으로 빠르게 흘렀다. 갑자기 평소 빠른 걸음을 내딛던 무사들의 발걸음이 더디 느껴졌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자.’
하지만 곧 생각이 달라졌다.
‘눈앞에서 치워버려야 했을 만큼 기억하기 싫은 과거였던 거야. 그걸 괜히 상기시켜서 화를 돋울 필요는 없지. 나 혼자 뒷감당한다는 것도 그렇고.’
그렇게 도착한 방주 궁.
무사들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그 앞에 멈췄다.
사뭇 기대감과 긴장감이 교차했다.
조금 전 방주의 궁으로 들어갔던 무사가 나왔다.
무사를 바라보는 용하 일행의 눈빛이 예의 초롱초롱했다.
“오늘은 등산이 예정돼 있다. 그리 알고 준비하라!”
“등산!”
용하, 인공, 장설. 세 사람의 입에서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새 나온 말이었다.
“갑자기 무슨 등산?”
의아했지만 따르지 않으면 안 될 처지였다.
무사들 가운데 어제 방주 앞에서 은밀하게 지령을 받던 무사가 용하를 곁눈질했다. 그리고 곧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눈빛 또한 사악하게 달라졌다.
장설은 용하와 인공을 향해 강한 어조로 말했다.
“한산할 때까지 잡담하지 말고, 한눈팔지 말고, 오직 산행에만 집중하도록 하라. 지금처럼 많은 사람이 등산할 때는 실족사가 많으니 특히 주의하도록 하고!”
“네, 형님. 형님도 조심하십시오. 우리 모두 안전하게 이곳에서 다시 만납시다.”
인공이 울먹이며 말했다.
“어허, 긴장하라고 한 말에 나약한 모습을 보이다니.”
인공은 얼굴을 돌리고 눈물을 꾹꾹 찍었다.
무사들이 인솔하는 길을 용하 일행은 반나절을 걸었다.
“형님, 대체 산은 언제쯤 오르는 겁니까?”
뙤약볕 아래를 얼마나 걸었던지, 지칠 대로 지친 인공이 투덜거렸다.
“그것을 누가 알겠느냐? 무사들이 오르고자 하는 산에 도착하면 산을 오르겠지.”
개방을 주변에 산은 많았다. 그런데 반나절을 걸은 이유는 험준한 산을 찾기 위해서였다.
저만치 앞서 걷던 무사들이 걸음을 멈췄다.
용하 일행은 간절한 눈으로 무사들을 바라보았다.
특히 인공은 기도하는 마음이었다.
“지금부터 저 앞에 보이는 크고 높은 산을 오를 것이다. 무엇보다도 안전이 우선이니, 질서 유지에 온 힘을 기울일 수 있도록!”
무사 중의 하나가 악을 쓰며 외쳤다. 반면 용하 일행은 지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았어요. 알았으니까, 빨리 그늘로 들어갑시다.”
다들 같은 마음이었던지, 빠르게 산으로 오르는 진입로를 향해 달려갔다.
진입로로 들어서자마자 고색창연한 오솔길이 펼쳐졌다.
울창한 숲이 그늘막이 돼 주어서인지, 아늑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이 정도 산을 오르면 숨이 찰 만도 한데 그렇지 않았다. 뙤약볕 내리쪼이는 척박한 평야보다는 차라리 숲이 우거진 가파른 산이 더 나았다.
‘어젯밤 주안상도 그렇고, 방주가 우리를 배려하는 걸 보면…….’
가능성이 엿보였다. 지금으로선 조금은 막연했지만, 왠지 가능할 것 같았다. 예전에 방주의 환심을 한 몸에 받았을 때를 떠올려 보았다.
‘용두방주는 대체 무엇에 호감을 느껴 그토록 나를 전폭적으로 지지했던 걸까?’
용하의 머릿속에는 오직 한가지 생각뿐이었다. 그때 용두방주의 호감을 샀던 그만한 카드를 제시할 수만 있다면 지금의 방주와도 얼마든지 담판을 지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용하는 가진 카드를 찬찬히 떠올려 보았다.
그때였다.
“잡념 갖지 말라고 하였거늘!”
바로 뒤에서 장설이 노기에 찬 목소리로 꾸짖었다.
“형님! 아닙니다. 잡념이 아닙니다.”
“잡념이 아니면 무엇이냐?”
“어떻게 하면 방주와 담판을 지을 수 있을까, 그것을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 말을 몰래 엿들은 무사의 눈빛이 예리하게 빛났다. 그는 다름 아닌, 방주의 특별 지시를 받은 무사였다. 그의 머릿속에 방주가 한 말이 곱씹듯 떠올랐다.
‘가장 높은 곳에 갔을 때 쥐도 새도 모르게 그자를 밀어버리거라.’
그때였다. 무사의 두 눈이 예리하게 빛났다. 가장 험준한 벼랑 끝에 서 있는 용하를 보았기 때문이다. 방주의 지시대로 임무를 수행할 절호의 기회였다. 무사는 몸을 아끼지 않고 용하를 힘껏 밀었다.
그것을 본 장설이 피를 토할 듯 소리쳤다.
“용하야!”
장설의 고함에 놀란 용하는 본능적으로 장설의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빠른 시선을 돌렸다. 그 순간 용하의 눈에 자기를 향해 돌진하는 무사가 보였다. 무사를 본 용하의 놀란 몸은 반사적으로 그를 피해 안전한 곳으로 몸을 날렸다. 그러는 통에 무사가 카랑한 비명과 함께 끝이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 광경을 지켜본 인공이 황급히 무사들 앞에 서며 외쳤다.
“저자가 왜 저런 짓을 한 것이오?”
인공의 물음에 무사들조차 영문을 모른다는 표정이었다.
“지금부터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니, 그리들 아시오.”
인공의 외침은 전쟁을 선포한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분위기가 경직되자 장설이 중재에 나섰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지금이라도 분위기를 쇄신하여 오늘의 교육을 잘 마무리 지어야 할 것이오. 그래야 방주의 노여움을 조금이라도 잠재울 수 있을 것 아니오?”
장설의 말에 공감한 무사들은 조금 전 전투태세를 풀며 몇 걸음 물러섰다.
우여곡절 끝에 사흘간의 기초교육은 무사히 마무리되었다.
무사 하나가 낭떠러지로 떨어져 희생되는 일이 있었지만, 3일간의 기초교육을 무사히 마친 용하 일행이 거처로 돌아왔을 때였다.
방문 앞에 용하의 친구인 개방의 무사가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 유월이 용하 일행을 반겨주었다.
개방의 무사는 용하 일행에게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사흘 동안의 기초교육을 무사히 마쳤으므로 앞으로 자네 일행을 감시하는 눈은 더는 없을 것이니 그리 알고,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나하나 진행하도록 하게.”
그 어떤 것보다 반가웠다.
“유월!”
멍멍!
유월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용하에게 다가왔다.
“형님! 지금부터 저는 유월이와 함께 담판을 지을 카드를 찾으러 갈 것입니다. 그리 아시고 이곳에서 기다리십시오.”
장설은 우려의 목소리로 물었다.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는데 혼자 가도 괜찮겠느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몰라 저 혼자 가려는 것이니 헤아려주십시오.”
“알았다. 너의 넓은 아량이 갸륵하구나. 부디 무사히 다녀오거라.”
“네, 형님. 저만 믿고 기다려주십시오. 제가 돌아오는 날 예전의 부귀영화를 되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만만했다. 용하는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유월과 함께 길을 나섰다.
“유월아, 찾아갈 수 있겠지?”
멍멍!
유월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가자, 유월아.”
용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유월은 용하에게 등을 내주었다. 그 광경을 본 인공과 장설은 가슴 한구석이 찡했다.
“괜찮아, 유월아. 혹여 내가 지치면 그때 좀 도와다오.”
멍멍!
“다녀오겠습니다. 다시 보는 그날까지 부디 만수무강 하십시오.”
“내일 날이 밝으면 가는 게 어떻겠느냐?”
“지체할 시간이 없습니다.”
용하와 유월은 담대하게 길을 나섰다. 흙먼지 날리는 드넓은 광야를 밤새 달렸다. 어스름한 달빛이 길을 밝혀주었다.
칠흑 같은 어둠을 얼마나 걸었을까. 어느새 동이 트는지 동녘 하늘이 코발트 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유월아, 벌써 동이 트려는 모양이구나.”
멍멍!
“시공간 이동체의 변신 트럭이 숨겨져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알겠느냐?”
멍멍!
“그럼 이렇게 막연하게 걸을 게 아니라, 그곳으로 날 안내하거라.”
멍멍!
유월은 용하에게 등을 내주었다.
“너도 힘들 텐데, 굳이 그럴 필요 없을 것 같구나. 그냥 앞장서서 달려가거라. 그럼 내가 그 뒤를 따라갈 것이다.”
멍멍!
유월은 힘차게 앞으로 달려 나갔다. 용하는 유월을 놓칠세라 있는 힘껏 유월의 뒤를 따라 달렸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숨이 턱까지 차올랐을 때였다.
멍멍! 멍멍!
유월이 요란하게 짖어대며 저만치 보이는 숲을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왠지 낯설지 않은 숲이었다.
“유월이 녀석이 시공간 이동체의 변신 트럭을 정확히 찾은 게로군.”
용하의 뇌리에 방주와 담판을 지을 몇 가지 아이템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