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157
157화
만반의 준비를 하고 방주 앞에 섰다.
방주를 가린 하얀색 베일은 여전히 눈에 거슬리고 부담스러웠다.
“방주 대인! 말씀드리기 외람되지만, 지금 그 베일을 대하는 대인의 반대쪽에 있는 사람의 심정을 헤아려보셨습니까?”
“당돌해졌구나!”
중성적 이미지를 떠올리는 목소리였다.
“당돌해졌다고 하셨습니까?”
용하의 야무진 목소리는 방주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지금 개방의 주인을 상대로 따지는 것이냐?”
이번 목소리는 목청을 긁어내는 탁한 목소리였다.
“아닙니다. 그럴 리가요. 저는 단지 당돌해졌다고 하여 이전에 우리가 만나 적이 있나 해서 여쭌 것뿐이었습니다.”
―찔끔!
용하의 말에 웬일인지 방주는 짐짓 놀라는 기색이었다.
“그럴 리 없다. 이제 겨우 백의개 심사를 통과한 자와 방주가 어찌 일면식이 있었겠느냐?”
웬일인지 방주의 말투는 권위적이라기보다는 발뺌하기 바쁜 사람 같았다.
“그런데 왜 당돌하구나! 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당돌해졌구나! 라고 말씀하신 걸까요? 마치 조금 전 하신 말씀 앞에, 예전엔 그렇지 않았는데, 라는 말이 생략된 것처럼 말입니다.”
‘집요해졌군! 아니, 원래 좀 집요한 편이었지.’
“여러 소리 집어치우고 나를 보자고 청한 이유나 말해보아라.”
“제가 방주 대인 뵙기를 청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고 이것 때문입니다.”
용하는 옆에 놓인 이동식 소형 그늘막을 펼쳤다.
예상대로 방주는 솔깃해진 눈으로 그늘막을 바라보았다.
“그것이 무엇이냐?”
“대인께서 움직이실 때 하인들이 베일을 설치한 장치를 들고 이동하는 걸 보았습니다.”
“그것을 본 것과 저것이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이 그늘막은 크기도 작고 매우 가벼우며 이동하기 편합니다. 햇볕을 가린다거나 남의 눈을 가리는 효과 또한 지금 사용하시는 것보다 탁월할 것입니다.”
“하여, 그것을 내게 보여주는 이유가 무엇인가?”
“선물로 드리고자 합니다.”
“무어라, 선물로?”
“네, 대인.”
“그새 잊은 것이냐? 백의개가 되기 위해 자신이 가진 전 재산을 버려야 하거늘.”
“아닙니다. 그런 중요한 덕목을 잊을 리 있겠습니까. 무릇 재산이란 땅이나 집 그리고 돈과 우마차 같은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있습니다. 만약 제가 이 물건을 누군가에게 팔아 돈으로 바꾼다면 그 순간부터 재산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돈으로 바꾸지 않아 그저 물건일 뿐입니다. 저는 이 물건을 대인께 선물하려고 합니다.”
“무어라, 내게 선물로 주겠다고?”
“네, 대인.”
용하는 지금까지보다 더 확실히 조아렸다. 그야말로 강한 어필이었다.
“그 진귀한 것을 내게 선물하려는 의도가 무엇이냐?”
조금은 예리한 목소리였다.
“어떤 의도가 있어서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드리는 선물을 받으실 건지 말 것인지는, 오롯이 방주 대인의 몫입니다.”
“건방지구나. 이 개방에서 배려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 방주뿐이라는 사실을 기초교육 시간에 듣지 않았더냐?”
“배려하려고 드린 말씀이 아니라, 제가 일방적으로 선물을 드리는 건 옳지 않다는 생각에서 드린 말씀입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여전히 사려가 깊은 자로군.’
그때였다.
“제가 드리는 선물을 받을 의향이 있으시다면, 이것도 드리고 싶습니다.”
용하는 히든카드나 마찬가지인 전동킥보드를 내놓았다.
“그 해괴하게 생긴 것은 또 무엇이냐?”
방주는 형형한 눈으로 전동킥보드를 내려다보며 이맛살을 찌푸렸다.
“이것은 서천서역국에서나 볼 수 있다는 스스로 움직이는 물건입니다.”
그 순간 베일 뒤의 방주의 눈가에 자글자글 주름이 잡혔다.
‘서천서역국에서나 볼 수 있는 물건이라고?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게 분명하군.’
“좋다! 선택할 것인지 말 것인지, 그 결과는 내일 통보하겠다. 가져온 물건들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하인들에게 일러주고 물러가 있거라.”
“네, 대인.”
용하는 서둘러 거처로 돌아왔다.
“어찌 되었느냐?”
목이 빠지게 기다리던 인공이 다급히 물었다.
“일단 대화는 되는 것 같습니다.”
용하의 말에 장설이 놀란 눈으로 물었다.
“대화가 되는 것 같았다고 했느냐?”
“네, 형님. 일단 제 생각에는 말입니다.”
“자네와 대화가 되는 것 같았다!”
장설은 의미심장하게 말꼬리를 흐렸다.
“형님! 뭡니까? 뭔가 알고 계시면 속 시원히 말씀해 주십시오.”
“아니다. 아직은 그저 짐작일 뿐, 무엇 하나 확실한 게 없으니, 대답은 다음으로 미루는 게 좋을 듯싶구나.”
장설의 말에 용하도, 인공도 더는 보챈다거나 하지 않았다. 하지만 장설은 자신의 짐작이 현실에 한걸음 가까워졌음을 예감했다.
오래전 기억이 되살아났다. 어려서부터 서천서역국을 드나들었던 용두방주의 외동딸 소희.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견문을 넓힌 덕에 누구와 대화해도 막힘이 없었던 어린 소녀.
‘만약 예상대로면 그의 눈에 비친 우리는 어떤 사람들일까?’
장설은 지금 그들이 처한 현실을 소희라는 사람의 눈으로 냉정하게 바라보았다. 하지만 곧 고개를 내저었다.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었다. 우선 자기를 버리고 떠난 연정의 사내를 용서할 수 없을 테고, 평생을 두고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간 게 그랬다.
“제아무리 속에 부처가 들어앉았어도 원수라고 생각할 테지.”
깊은 한숨과 함께 새 나온 말이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깊은 시름에 잠긴 장설이 곧 눈을 크게 떴다.
“그렇지. 누구나 같은 상황과 맞닥뜨린다면 원수라고 생각하는 게 옳을 것이다.”
장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수차례나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데 어찌하여.”
무슨 말인가 하려다가 그대로 입을 다물어 버렸다.
궁금했다. 장설이 하려던 말이 무엇인지. 하지만 더는 집요하게 묻지 않았다.
‘혹시 장설 형님 짐작이라는 게, 혹 내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것일까?’
아니기를 바랐다. 그래서였을까, 용하는 저도 고개를 내저었다. 그것을 본 장설의 눈이 얼핏 경직되었다.
“그래서, 어찌하기로 하였느냐?”
“일단 시간을 좀 달라는 듯하였습니다. 딱히 그렇게 말한 건 아니지만 말입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고 치자, 대체 무슨 생각을 하겠다는 것으로 짐작되느냐?”
“혹, 이런 거 아닐까요? 모름지기 대인은 남의 물건을 거저 취하려 해서는 안 된다. 그러니 이걸 받으면 무엇을 내주어야 할지를 고민하는 건 아닐까요?”
“참, 너답다 너다워. 어쩌면 그렇게 말도 많고, 생각도 많은 건지.”
“형님! 옛말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생각은 많이, 행동은 과감하게. 저는 선조들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뿐입니다.”
“오, 선조들의 가르침이라. 혹 그 말이 어떤 부메랑으로 되돌아올지는 생각해 보았느냐?”
“부메랑이라뇨? 제가 선조들의 가르침을 따르는 게 왜 부메랑입니까?”
“아, 선조들의 가르침을 따르겠다는데 누가 뭐라 하겠느냐? 내 말은 생각은 많이, 행동은 과감하게, 라고 하는 네 생각을 말하는 것이다.”
조곤조곤한 장설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용하의 표정에는 아직도 궁금증이 남아 있었다.
“어른이 말하는데 자꾸 말꼬리 잡으려 들지 말고, 잘하거라. 그러면 되느니.”
“잘하기는 하겠지만.”
용하는 말꼬리를 흐리며 떨떠름한 기색이었다.
다음날이 되었다.
“방주 대인께서 찾으시니, 어서 방주의 궁으로 갈 채비를 차리시오.”
아직 세 사람이 잠에서 깨기도 전이었다.
방주가 찾는다는 말에 용하는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방주 대인이?”
용하는 지금 시간이 얼마나 됐는지 궁금했다. 태양을 보고 정확히 시간을 맞출 사람은 장설밖에 없었다.
“형님! 장설 형님!”
평소 같으면 작은 소리에도 움직임을 보였을 장설이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날따라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용하는 미간을 좁히며 저도 모르게 가슴 쪽으로 시선이 갔다. 숨을 쉬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는데, 다행히도 가슴이 크게 부풀었다 꺼지기를 규칙적으로 반복했다.
“형님! 잠깐만 일어나 보십시오.”
용하의 간절한 말에도 당장은 작은 움직임조차 보이지 않았다.
“형님, 지금 시간이 궁금합니다. 제 생각에는 아직 이른 시각인 것 같은데, 방주가 보자는 기별이 왔습니다.”
“나도 들었다.”
장설은 여전히 눈을 감은 채 말했다.
“그리고 지금 시간은 아직 태양이 뜨겁지 않을 걸로 보아 묘시(卯時)가 아닐까 싶구나.”
“식전부터 무슨 일일까요?”
“마음이 조급하지 않았나 싶구나.”
“방주가 조급할 일이 있을까요? 제 선물을 받을 것인지 말 것인지는 오롯이 방주 자신만의 몫인데 말입니다.”
“그건 네 녀석 마음대로 예단해서는 안 될 일. 상대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통찰해 본 적이 있느냐?”
용하는 입이 쑥 들어갔다.
“어서 가보거라. 방주는 아마도 자네를 단독으로 보고 싶어 할 것이다.”
“형님! 하지만 무사는 특별히 누구라고 지칭하지 않았습니다. 그 말은 우리 셋을 다 같이 보자는 뜻 아닐는지요.”
“그건 아마도 방주가 누군가를 지칭하기에 부담감을 느껴서였을 것이니, 괘념치 말고 어서 가보도록 하라.”
장설의 말에 반신반의했지만, 용하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럼 일단 다녀오겠습니다. 형님.”
용하는 크게 숨이 들이쉬고 다시 내뱉기를 두어 차례 한 후 방문을 열었다.
방문 앞에 조금 전 방주의 명을 전한 무사와 네 명의 무사가 더 있었다.
용하는 밖으로 발을 내디디려다가 다시 들어왔다.
“아니, 왜 그러시오?”
“저자들은 누구입니까?”
“아, 그것 때문에 놀랐나 보구려. 이자들은 방주 대인에게 전달될 선물을 옮길 장성들이오.”
그 순간 하마터면 용하는 환호성을 지를 뻔했다. 가슴이 벅차도록 기쁜 마음에서였다.
장하다, 김용하!
용하는 내심 자기 자신에게 응원을 보냈다. 이제 첫걸음을 내디뎠을 뿐이다. 그런데 왠지 기분은 절반쯤 달려온 것이나 되는 것처럼 스스로 대견하게 생각되었다.
‘사람까지 보내서 선물을 가지고 오라고 했다는 건 기대 이상의 결과다. 누가 뭐래도 이건 선물에 반했다는 걸 방증하는 거니까.’
생각했던 것보다 용하의 행보가 빨라질 것으로 짐작되었다.
‘만약 방주가 무림검도관 건립을 수락한다면 아홉 정파를 상대로 나 스스로 장사도 할 수 있는 길이 열릴 텐데.’
물론 욕심이었다. 정파를 상대로 그들이 필요로 하는 물건을 공급하는 상단을 꾸린다는 게. 더군다나 다른 곳도 아니고 검이 곧 법인 무림에서 말이다.
그러는 사이 어느덧 방주의 궁에 도착했다.
“궁금한 것이 있어 그대를 보자고 하였다.”
“무엇이 그리 궁금하신지 말씀하십시오. 제가 할 수 있는 한 궁금증을 모두 풀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저 물건들의 출처가 궁금하다. 선물이라고는 하나, 그것이 어디서 왔으며 합당하게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인지……. 그리고 내가 사용해도 되는 건지 등. 아는 것이 있다면 소상히 고하라.”
출처라는 말에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던 용하의 입은 좀처럼 열릴 줄을 몰랐다.
“왜, 대답을 안 하는 것이냐? 혹 도적질로 습득한 물건이 아니더냐?”
조금은 황당했다. 어떻게든 방주의 오해를 풀어야만 했다. 만약 그러지 못한다면 도적질한 물건을 방주에게 선물해 그를 장물아비로 만들어 방주라는 자리에서 몰아내려는 계략이라는 누명을 뒤집어쓸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건 차차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할 것입니다. 지금은 오로지 선물을 받을 것인지 거절할 것인지 그것만 결정하시면 되는 일이고, 그 선택권 또한 오롯이 방주 대인의 몫입니다.”
“그 말은 이 물건이 앞으로 어떤 사악한 결과를 가져와도 책임지겠다는 것이냐?”
“네, 모든 건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그 순간 용하의 뇌리에 어제 나눈 대화가 빠르게 스쳤다.
생각은 많이, 행동은 과감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