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159
159화
“어디로 가는 겁니까?”
무사의 뒤를 따라 걷던 인공이 용기 내 물었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세 사람에게 천운이 따르는 것 같소.”
그동안 권위적이고 위협적이었던 무사의 목소리가 조금은 온화했다.
용하는 모른 척 물었다.
“천운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요?”
“방주 대인의 명이 있으셨소.”
“명이라니, 무슨 명 말이오?”
“오늘부터 세 사람에게 분타주의 권한을 누릴 수 있게 하라는 명이었소.”
“오호라, 이렇게 고마울 데가.”
세 사람은 여전히 모른 체하며 능청을 떨었다.
“그럼 우리에게 동네를 하나씩 주는 것이오?”
다소 들떠 보이는 인공의 물음에 본 체도 하지 않고 용하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아직 세 사람이 개방의 물정을 모르니, 지휘는 다른 분타주에게 맡기고, 세 사람은 혜택만 누리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아이고, 이렇게 고마울 데가. 이 은혜를 어찌 보답해야 한단 말이오.”
도를 넘는 세 사람의 능청에 무사는 괜히 우쭐했다.
“그뿐 아닙니다. 세 사람을 떨어뜨려 놓으면 외로울 테니, 가까운 동네로 배정해 왕래하기 편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아이고 이렇게 고마울 데가.”
세 사람이 할 말이라고는 그저 고맙다는 말뿐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무사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인공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무사를 빼꼼히 쳐다보더니.
“이게 다예요?”
조금은 경망스럽게 물었다. 인공의 태도가 거슬렸는지, 무사는 무뚝뚝하게 되물었다.
“이게 다냐니, 그럼 무엇을 또 바라는 것이요?”
“아니, 뭘 바란다기보다도 분타주 대접을 받는다면서 이게 다냐는 거죠, 제 말은?”
“각자 자기 동네에 집 한 채씩을 내줄 것이오. 아마도 동네에서 가장 큰 집일 거요.”
무사의 말에 인공은 입이 함지박만 해졌다.
“아니, 집 한 채씩을요!?”
용하도 장설도 적잖이 놀란 기색이었다.
“개방에서 생활하는 데 어려움은 없을 것이오. 분타주 대우를 받게 되었으니, 이제 자루도 모을 수 있게 되었소.”
“자루를 모을 수 있게 되었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리요?”
“사유 재산을 어느 정도 인정한다는 것이오.”
“개방에서 사유 재산을?!”
사유 재산이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 여기서 말하는 재산이라는 건 저잣거리에서 통용되는 화폐가 아니고, 우리 개방에서만 통용되는 것으로 구리동전을 말하는 것이오. 구리동전은 자루에 넣어 누구나 볼 수 있는 곳에 쌓아두어야 한다는 걸 명심하시오.”
무사의 말이 끝났을 때 용하는 시선이 가옥이 있는 쪽으로 빠르게 흘렀다. 집집이 담장을 따라 길게 쌓아놓은 자루가 보였다.
‘아, 저렇게 해놓으라는 뜻이군. 그런데 저게 무슨 사유 재산의 의미가 있단 말인가.’
용하는 적잖이 의아했다. 대화가 자유로워져서일까, 갑자기 궁금증이 쌓였다.
“저 자루에 든 구리동전은 어떤 방법으로 모을 수 있는 거요?”
“방법이야 다양하지 않겠소? 각자 자기 능력과 실력에 맞게 모으는 것이오.”
“그렇게 해서 저 자루를 모으면요?”
“분타주까지는 10년이 걸리지만, 그다음부터는 누가 자루를 많이 모았느냐에 따라 지위의 높고 낮음이 달라진다오.”
그 말에 용하의 귀가 번쩍 열렸다.
“그러면 백의개로 시작해서 개방의 방주도 될 수 있다는 말이오.”
“일단 규칙은 구결이 되면 누구나 용두방주가 될 수 있다고 돼 있소. 하지만 구결은 아무나 되는 것은 아닌 줄 아오.”
“백의개로 시작해서 구결이 된 사람을 본 적이 없다는 말이오?”
“조금 전에 말씀드렸듯이 삼 결 이상부터는 구리동전이 담긴 자루를 얼마나 갖느냐에 빨리 매듭을 묶을 수 있으니, 아무래도 돈이 관건이 아니겠소?”
“그 말은 방주라는 자리가 세습은 아니란 뜻이구려.”
“하지만 사실상 세습이라고 봐야 옳을 것이오. 언제나 그랬듯 방주보다 자루를 많이 가진 사람은 본 적이 없었소. 방주가 죽기 전에 자기가 원하는 사람에게 구리동전이 든 자루들을 증여하는 의식을 갖는데, 그때 이미 다음 방주가 결정되는 것이나 다름없소이다.”
무사의 말에 앞으로 해야 할 일의 순서가 재정립되었다.
‘일단 방주가 호의적이니까 잘 협상해보고 그게 아니다 싶으면 아홉 개 정파 가운데 나와 음양오행이 잘 맞는 어느 하나를 선택하거나 전체를 상대로 돈을 벌 것이다.’
바로 그 순간 궁금증 하나가 용하의 뇌리를 빠르게 스쳤다.
“저기 말이오. 아까 삼 결인 분타주부터 자기 재산을 가질 수 있다고 하지 않았소?”
“그렇소만.”
“혹시 지위가 강등될 수도 있는 것이오?”
“비록 개방이 거지들로 구성돼 있다고는 하지만, 철저한 규칙으로 만들어진 정파요. 다시 말해 각 결의 품위를 떨어뜨리거나 규칙을 어긴다면, 자기 지위에서 대접받기가 어려워지지 않겠소? 그러면 당연히 강등되는 수밖에요.”
“결마다 어떤 품위를 지켜야 하는지, 지켜야 할 규칙이 무엇인지, 일목요연하게 알 방법은 없는 것이오?”
“음, 야심이 대단하구려. 너무 쉽게 분타주의 자격을 얻었으니 이참에 방주까지 가보겠다? 나는 말이오. 되든 안 되든 사내라면 한 번쯤 가져볼 만한 야심이라고 생각한다오.”
“고맙소. 그냥 피 끓는 젊은 사내의 도전정신이라 생각해 주시오.”
“그렇지 않아도 그리 생각하고 있소.”
“그럼 말해 주겠소?”
“그게 말이오. 산 넘어 산인 것 같소.”
웬일인지 무사는 난색을 지어가며 겨우 입을 뗐다.
“지금 얘기한 것들을 가장 일목요연하게 알고 계신 분은 장로라오. 장로께서는 개방 전체를 지휘하는 원로이니 개방에 관해선 방주보다 더 잘 알고 있어야 하는 건 당연한 일 아니겠소? 그런데 문제는 그런 높은 자리에 계신 분을 한낱 분타주가 어찌 만날 수 있느냐는 것이오.”
용하는 미간을 심하게 좁혔다. 무사의 말에 격하게 공감했기 때문이다.
‘정파의 장문인을 만나거나, 개방의 장로를 만나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이라면, 차라리 지금의 방주와 담판을 짓는 게 현명한 방법이다.’
입을 굳게 다문 용하는 다시 한번 결의를 다지는 의미로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음, 그리 나쁘지 않아.’
예전의 창의부흥원 원장 김용하는 분타주라는 신분으로 다시 출발했다.
“후― 집도 이 정도면 나 혼자 살기에 안성맞춤이고.”
용하는 시선을 멀리 둔 채 주위를 크게 둘러보았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무엇이든 풍부한 여기! 어디 한군데 막힘이 없는 광활한 대지, 호연지기로 채워진 간교함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용맹한 인적자원.”
한 호흡의 공기조차 함부로 들이쉬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하는 한 호흡의 공기를 네 번에 나눠 들이쉬었다. 그리고 천천히 내쉬었다.
‘몸이 기억하는구나.’
자연의 에너지가 세포 속으로 깊숙이 스며들었다.
그때였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의(衣)와 주(住)는 해결됐는데, 식은 어찌해야 할까.
용하는 주저하지 않고 물었다.
“끼니는 어찌 되오? 우리가 직접 해 먹는 것이오?”
“각 집에 백의개 둘이 배정될 것이오.”
“백의개 둘이라면?”
“각 집에 두 명씩 배정되는 것이니, 살림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오.”
“아, 이렇게 고마울 데가.”
“그리고 세 사람 대신 동네의 일을 보는 사람들이 와서 매일 저녁 그날의 업무를 보고할 것이니 최대한 빨리 일을 배워서 온전한 분타주로서 맡은 바 임무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시오.”
“고맙소. 두 분 형님은 물론, 저 또한 방주께서 베푸신 은혜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오.”
첫 번째 집 앞에서 무사는 걸음을 멈췄다.
“김용하 분타주는 이곳의 주인이오.”
“형님들은요?”
“멀지 않은 곳에 나머지 분타주의 집이 있소.”
“아, 그렇군요. 형님들! 길 잃지 않게 잘 기억해 두세요. 저녁 식사 후에 뵙겠습니다.”
“그렇게 하자꾸나. 저녁 맛있게 먹거라.”
“네, 형님들도요.”
그날 저녁 어김없이 인공과 장설이 찾아왔다. 마치 마실 오듯 말이다.
“형님들, 저는 이런 느낌이 너무 좋아요.”
“싫어할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
장설의 말에 용하의 귀가 솔깃했다.
“형님도 이런 분위기를 좋아하시는군요. 뜻밖입니다.”
“왠지 시비 거는 것 같구나. 평화를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아이참, 형님도. 제가 바보입니까? 이 좋은 분위기를 깨고 시비를 걸게. 누려야죠. 원 없이 이런 분위기는 누려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말투로 보아 시비를 거는 건 분명 아니렷다?”
“그럼요. 기분이 너무 좋아서 한 말입니다. 장설 형님처럼 여간해서는 흔들리지 않는 분이 뜻밖의 반응을 보이니 말입니다.”
장설이 지그시 눈을 감고 말했다.
“나는 말이다. 개방에서 백의개로 살다가 죽는 줄 알았다.”
조금은 한탄하는 듯했다. 사실상 백의개는 노예와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무슨 말씀인지 압니다. 분타주가 되는 데 걸리는 기간이 10년이라니, 그런 염려를 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백의개 기초교육 받은 지 불과 며칠 만에 분타주가 되다니, 난 귀신에 홀린 것만 같았다.”
그때였다. 인공의 용하를 대신해 장설을 설득했다.
“형님! 저는 말입니다. 다른 데서는 몰라도 무림에서만큼은 용하 녀석을 믿습니다. 녀석이 이상하게 무림에만 오면 천운이 따른단 말입니다. 참 이상하죠?”
“무림에만 오면, 이라니! 그건 또 무슨 소리냐?”
인공은 괜히 찔끔하는 기색이었다. 장설이 이미 짐작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 말이다.
“지금의 이 느낌, 이 평화를 언제까지 누를 수 있을까요?”
인공이 먼저 대답했다.
“나는 말이다, 용하야. 탁배기 한 잔만 있으면 영원히 누릴 수 있을 것 같구나.”
“탁배기 말씀이십니까? 제집에 마실 오신 형님들께 그깟 탁배기 한잔 못 올리겠습니까? 곧 준비해서 올리겠습니다.”
“여보시오!”
용하는 밖을 향해 소리쳤다.
누군가 밖에서 종종걸음치는 게 느껴졌다. 분타주 수발을 드는 백의개였다.
“네, 뭐 필요하신 거라도 있습니까요?”
“탁배기를 구할 수 있겠소?”
“아, 그게.”
백의개는 웬일인지 난처한 얼굴로 안절부절못하는 기색이었다.
“왜 그러시오? 구할 수 없어서 그러는 것이오?”
“아니, 구할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약간의 돈이 필요해서.”
“아, 돈 때문이오? 그런 거라면 걱정하지 마시오. 얼마나 필요한 것이오?”
“구리동전 몇 문이면 됩니다. 분타주 어른.”
용하는 작은 주머니 하나를 백의개에게 건넸다.
“얼마나 필요할지 모르니 그걸 가지고 가시오.”
“알겠습니다. 금방 준비해서 올리겠습니다.”
백의개가 나가고 한 식경 남짓 됐을 때였다. 방문이 다시 열리더니 백의개가 들어왔는데, 커다란 항아리 하나를 힘겹게 방에 들여놓았다. 그런데 그 크기가 된장이나 고추장 담글 때 쓰는 항아리였다.
“이것이 무엇이오? 항아리를 둘 곳이 없어 방으로 들이는 것이오?”
“아닙니다. 원래 막걸리는 따듯한 곳에 보관하는 게 그 맛을 살리기 좋기 때문입니다.”
입꼬리가 귀에 가서 걸린 인공의 항아리에서 눈을 뗄 줄 몰랐다.
“막걸리? 그럼 이것이 탁배기란 말이오? 이 항아리에 든 게 전부?!”
“아까 분타주 어른께서 주신 돈만큼 받아왔습니다.”
“아, 알겠소. 고맙소이다.”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금방 안주 대령하겠습니다.”
“안주? 안주는 무엇으로 대령할 것이오?”
약간의 기대감으로 물었다.
“고기전을 좀 부칠 생각입니다만 필요한 게 있으면 말씀하십시오. 식자재가 있으면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하, 아니요. 고기전이면 충분하다오. 고기전을 부위별로 구워주시고 간장을 좀 곁들인다면 금상첨화일 듯싶소이다.”
“그리하겠습니다.”
백의개가 나갔다. 그러자 인공은 용하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대체 얼마나 준 것이냐?”
“주머니 하나에 스무 문씩 넣었습니다.”
“오호라, 스무 문으로 저만큼을 샀단 말이지. 저 정도면 한 달은 족히 먹을 수 있을 양이 아니더냐?”
귀에 가서 걸린 인공의 입은 쉽게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