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162
162화
“형님들! 이 목록을 토대로 설문을 좀 해주십시오.”
용하 앞에 선 두 사람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입을 모아 물었다.
“설문?”
“아니, 정확히 말해 탐문이라고 해야 옳겠네요.”
이번엔 두 눈이 휘둥그레져서 물었다.
“탐문?”
“네, 여기 목록에 있는 자들 가운데 예전 창의부흥원을 호의적으로 바라보던 사람이 분명 있을 겁니다. 그들을 찾아내서 한 사람도 빠짐없이 물어보세요.”
“그러니까 뭘?”
“지금 방주에 대해서요.”
“방주에 대해서?”
“네, 정확히 말하자면 인공 형님과 제가 무림을 떠난 후 용두방주는 어찌 되었으며 지금의 방주가 그 자리에 오르게 된 연유 같은 거 말입니다.”
잠시 고심하던 인공이 미심쩍게 물었다.
“그걸 아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여기 개방의 사람들은 정보력에 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고 있는데. 그리고 설령 안다고 해도 순순히 입을 열까?”
“생각처럼 쉽지 않을 것 같구나. 적개심부터 갖겠지?”
“적개심이 문제면 그것부터 부숴버려야죠.”
“어떻게 부숴버리겠다는 것이냐?”
“흔들어야죠. 정신 못 차리게 말입니다.”
“그다음은?”
“적개심이라는 선입관을 부숴버려야죠.”
“아, 선입관!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떨까? 일단 명단에 있는 사람들과 부딪치면서 우리가 하는 일에 부정적이지는 않지만, 적개심을 가진 사람을 분류해서 따로 관리하는 건.”
“네, 좋아요. 그렇게 해주세요. 그들의 적개심을 부숴버릴 만한 건 제가 찾아볼게요.”
“그런데 왜 이런 짓을 하는 것이냐?”
“방주의 정체를 알고 싶어서입니다. 상대를 알아야 싸우든 말든 할 거 아닙니까?”
“오호라, 그러니까 지금 지피지기하는 걸 도와달라는 것이냐?”
“네, 이를테면요.”
“음, 일단 그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었는지 아는 게 급선무겠구나.”
“그렇죠! 역시 형님들은 똑똑해요.”
“똑똑한 게 다 무슨 소용이야? 몰골이 이래 가지고서냐 원. 예전처럼 멋진 도포라도 걸치고 나가면 모양새도 나고 좋으련만.”
“오늘만 그냥 나가세요. 도포는 제가 곧 준비하겠습니다.”
“알았어, 다녀올게. 형님, 가시죠.”
인공과 장설. 두 사람의 뒷모습에서 예전의 호위무사다운 면모는 찾아볼 수 없었다. 용하의 눈에는 그냥 시주 나가는 스님 두 명이 보였을 뿐이었다.
‘형님들,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제가 곧 예전의 모습을 찾아드리겠습니다.’
용하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의 턱선 위 구레나룻이 각을 세웠다.
그날도 어김없이 방주 궁에서 사람이 왔다.
‘쳇, 오늘도 다른 사람이군.’
방주는 용하와 자기가 보내는 사람들 사이에 혹 친분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걸 염두에 두고 있었는지 매일 다른 사람을 보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열흘에 한 번은 같은 사람을 볼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쳇, 방주 궁에 학자라고는 고작 열 명이 다인 게로군.’
얼핏 비웃었지만, 곧 마음가짐을 바로 했다. 이곳은 14세기 무림이 아닌가. 그나마 학문을 연구하고 신문물을 받아들일 마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칭찬받을 만했다. 사실 아홉 정파에도 없는 신문물 학자를 두었다는 건 방주의 안목이 보통은 넘는다는 얘기다.
‘괜히 더 궁금해지는데!’
한편 방주의 궁에서는 여러 명의 학자가 방주 전에 조아리고 앉아 그가 묻는 말에 대답하고 있었다.
“저 물건들이 어디서 들어온 것 같은가?”
학자가 대답했다.
“서천서역국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아니, 서천서역국에 저런 물건은 존재치 않아.”
날 선 목소리였다.
“송구하옵니다. 아직 거기까지는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조금 전 대답했던 학자가 납작 조아렸다.
“어이하여 알아내지 못한 것이냐?”
“너무 직설적인 질문은 되도록 피했습니다.”
“직설적인 질문을 피했다! 음, 그건 잘한 일이다. 그럼 언제쯤 물어볼 생각인가?”
“정확히 사흘 뒤 기습적으로 물어볼 계획입니다.”
“사흘 뒤? 사흘 뒤라면 누가 사가에 나가는 날인가?”
학자 하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네, 제가 나갈 예정입니다.”
왠지 어리바리해 보였다. 그래서인지 방주는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음, 그동안 고생들 많았다. 그런데 순서를 한번 바꿔보는 건 어떻겠느냐?”
“분부만 내려주십시오. 말씀대로 거행하겠나이다.”
“너!”
방주가 지목한 학자는 맨 처음 용하에게 보내졌던 가장 선량하고 영특해 보이는 자였다.
“알겠나이다. 그럼 제가 사흘 뒤 분타주를 찾아가 그가 선물로 준 물건에 대해 소상히 알아내겠습니다.”
“너라면 신경 쓰이지 않게 알아서 잘 처리할 것이라 믿는다. 하나,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적잖이 신경이 쓰이는구나.”
“너무 심려하지 마십시오. 머리가 썩 좋아 보이진 않았습니다. 음, 그래서인지 간교함 또한 없었습니다.”
‘…머리가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 …간교함이 없다! 학자들 가운데 제일 영특하다는 녀석이 사람 보는 눈이 고작 이것밖에 안 된다니.’
방주는 보이지 않게 혀를 끌끌 찼다.
“어쨌든 더는 내가 실망하는 일 없도록 하라!”
“네, 방주 대인!”
학자들이 줄줄이 물러가고 방주가 혼자 남자 근심이 짙게 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당최 마음이 놓이지를 않아. 그자는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잔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방주 궁의 학자들은 그자의 농간에 눈이 멀어 있으니 말이다.”
베일 속 방주는 지그시 뜬 눈으로 방주 전 한쪽에 놓인 이동식 소형 그늘막과 전동킥보드를 바라보았는데, 그 눈빛에 적잖이 탐욕이 묻어있었다.
“저 물건들을 취하려면 그가 내놓는 조건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는 얘긴데.”
더는 입을 못 떼고 난색을 지었다.
방주의 안색이 조금은 지루해 보였지만,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그로부터 사흘째 되는 날, 용하의 집에 은밀하게 모인 인공과 장설.
“형님들, 그들의 적개심은 우리를 믿을 수 없어서 생긴 겁니다.”
여느 때와 조금은 다른 목소리였다. 용하의 말속에 확신이 가득 엿보였다. 그리고 용하의 말을 들은 인공도 찰떡같이 알아듣고 반응을 보였다.
“그 말은, 그들의 적개심을 부숴버리려면 믿음을 심어줘야 한다!”
“네, 맞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형님들의 장점을 최대한 살릴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멋진 도포를 준비하랬더니 승복을 준비한 것이냐?”
인공의 말투에서 절대 가볍지 않은 빈정거림이 엿보였다. 하지만 용하는 일말의 망설임도 주저함도 없었다.
“빙고!”
조금 전 또 하나의 퍼즐 조각이 제자리를 찾아갔다.
그때였다.
“방주 전에서 학자가 도착하였습니다.”
용하는 두 눈이 휘둥그레져서 중얼거렸다.
“학자가 이른 시각에 어쩐 일일까? 형님들 일단 돌아가십시오.”
“알았다. 중요한 얘기를 나눌 때는 아닌 것 같구나.”
인공과 장설이 밖으로 나갔을 때 잠시 학자와 마주쳤다. 그 순간 학자의 눈빛이 예리하게 빛났다. 반면 용하를 비롯한 두 사람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학자라는 자의 표정이 어찌하여 저리도 비장하단 말인가.’
‘마치 담판이라도 지으려고 온 사람 같군!’
인공과 장설이 돌아가고 학자와 마주 앉은 용하는 얼핏 처연해 보였다.
‘저자의 눈빛으로 보아, 왠지 오늘이 D―day가 될 모양이군.’
그동안 지금 같은 눈빛이나 표정을 보인 적 없었기에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저희 같은 학자들에게 운동은 대체로 걷는 겁니다. 검을 연마하는 분타주께선 어떤 운동을 주로 하시는지요?”
‘검을 연마한다는 것을 앞세워 내가 신물을 연구해 왔다는 걸 저는 모르는 것처럼 위장하려 드는군.’
“조금 전 말한 대로 검을 연마하는 사람에게는 그 자체가 운동이 아니겠소.”
“아, 따로 운동하시는 건 없으시고요?”
“굳이 묻는다면 누구나 하는 숨쉬기운동이 있습니다만.”
숨쉬기운동이라니, 대답하기 귀찮다는 뜻이다.
일단 학자의 첫 번째 수작은 실패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음, 아무래도 분타주께선 무예를 하는 분이니 한 가지만 여쭙겠습니다.”
‘쳇, 언제 나한테 양해 구하고 물었다고.’
“말해 보시오.”
“저처럼 운동량이 부족한 사람들에게는 어떤 운동이 효과적이겠습니까?”
“움직임이 적은 사람들은 주로 스트레칭이 효과적일 거요.”
“스트레칭?”
학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스트레칭이란 말을 알 리가 없겠구려. 그건 우리 무술 고수들끼리나 통하는 말이니. 혹 체조라고는 들어보았소?”
“체조라면 무술을 경지를 뛰어넘은 고수들이 펼치는 기예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뿔싸!’
“그건 체조라 하지 않고 기연이라고 하오. 내가 조금 전 말했던 체조라는 것은 준비운동을 말하는 것이오. 운동을 하기 전 근육이 경직되는 것을 막기 위해 유연성을 주는 것 말이오.”
“아, 준비운동? 혹시 기지개 같은 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오, 기지개! 그거 아주 적절한 비유요. 기지개보다 좀 더 체계적으로 온몸을 쭉쭉 늘린다면 운동 효과가 있을 것이오.”
“몸을 쭉쭉 늘린다! 아, 그게 스트레칭이라는 경지인가 봅니다.”
“오, 역시 학자라 말귀를 빨리 알아듣는구려. 온몸을 쭉쭉 늘리면서 호흡까지 체계적으로 해준다면 이보다 더 좋은 운동이 없을 것이오.”
시간은 자꾸 흐르는데, 아직 학자는 도입부에서 맴돌고 있었다.
‘걷기운동이라는 말을 끌어내려고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군.’
마음 같으면야, ‘매일 걷는 건 어떻겠습니까?’라고 묻고 싶었지만, 그건 삼척동자가 들어도 단도직입적이었다.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쉬운 문제로 이만큼 고민했던 적이 있었던가.’
“분타주께선 먼 길을 갈 때 주로 어떻게 이동하십니까?”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가는 말처럼 툭 던졌다.
“멀든 가깝든 주로 걸어 다닙니다.”
앗싸! 일단 코는 걸린 듯했다.
“아, 걸어 다니신다! 가까운 거리는 몰라도 먼 거리는 힘들지 않겠습니까?”
“뭐, 운동하는 사람이라 운동 삼아 걷는 것이오.”
“아, 그럼 제가 매일 방주 궁의 후원을 걷는다면 운동 효과가 있겠습니까?”
“무엇이든 규칙적으로 한다면 운동 효과가 있을 것이오.”
비록 학자와의 대화에 응하고는 있으나 용하의 의심은 점점 커져만 갔다.
‘이 작자가 오늘의 담소를 운동으로 시작해서 운동으로 끝내려 드는군.’
용하는 저도 모르게 곱지 않은 눈으로 학자를 흘깃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나눈 얘기 속에 이 작자의 목적이 숨겨져 있다는 얘긴데.’
그동안 나눈 이야기를 빠르게 되짚었다. 스트레칭이란 말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그다음이 기지개.
‘스트레칭이 기지개가 되고, 기지개는 걷기운동이 되었다. 걷기운동!’
용하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걷기운동이 답이라는 확신이 들어서였다.
‘그럼 확인해 볼까?’
“방주 궁의 학자께서 느끼는 거리와 내가 느끼는 거리가 다를 것이오.”
“저 또한 그럴 것으로 생각합니다.”
“방주 궁에서 여기까지 오는 길이 먼 거리입니까, 짧은 거리입니까?”
“외람되지만 제게는 먼 거리입니다.”
“먼 거리라 생각한다면 이동 수단을 모색해 보지는 않았소.”
“모색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어차피 개방에는 걷는 거 말고는 달리 수단이 없으니 말이오.”
“말을 타고 오면 되지 않소.”
“지금의 방주 대인께서 개방의 지휘자가 된 후로 말 타는 것을 금지하셨습니다.”
“말 타는 것을 금지하였다! 그 말이 사실이오?”
조금은 놀란 기색이었다.
“그것이 그리도 놀랄 일입니까? 그동안 개방에서 말 타는 사람을 보신 적 있으십니까?”
다시 한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흔한 걸 놓쳤다고 생각하니, 스스로 어리석다는 생각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는 기대감도 없지 않았다.
“한 가지만 묻겠소.”
“얼마든지요.”
“개방에서 흔히 높은 사람이라고 하면 누구를 말하는 것이오?”
“그야 당연히 개방의 주인이신 방주 대인이시죠.”
“다시 묻겠소. 개방의 어른이라고 하면 어떤 사람을 꼽을 수 있겠소?”
쉽게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너무 어려운 질문을 한 것이오?”
“아닙니다. 단지, 평소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서.”
“됐소. 내가 괜한 질문을 한 것 같소.”
“개방에서는 법개까지는 자기 노력으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상은 이론적으론 가능하나 현실적으론 불가능한 일입니다.”
“법개! 법개면 매듭이 몇 개인 게요?”
“육결(六結)입니다.”
“그럼 칠결(七結)부터가 높은 사람인 것이오?”
“칠결 이상은 열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으니 귀한 자리라 할 수 있습니다.”
용하의 뇌리에 전광석화처럼 무엇인가 스쳤다.
‘열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