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163
163화
“방주 대인을 뵙고자 합니다.”
천지를 진동하는 우렁찬 목소리는 다름 아닌 용하였다.
그는 이른 아침부터 방주 궁 앞에 무릎을 조아렸다.
얼핏 석고대죄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기를 한 시진 남짓 마침내 방주 궁 안에서 기별이 왔다.
“방주께서 들라 하십니다.”
시녀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고운 목소리였다.
“아, 정말요!”
용하는 시녀를 따라 방주 궁 안으로 들어갔다.
“아침부터 웬 소란인 게냐?”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입니다.”
“이른 새벽부터 방주 궁 앞에서 이리 해야 할 만큼 중요한 것이더냐?”
“네, 그렇사옵니다.”
최대한 예를 갖췄다. 그래야만 단 몇 마디라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좋다. 일단 들어보겠다. 하나, 만약 듣고 나서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지 않을 시엔 너를 둘러싼 무사들의 칼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알겠느냐?”
용하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한 사람의 주관적인 판단으로 목이 달아난다고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어차피 한번은 던지려 했던 목숨, 두려울 게 무엇이냐.’
사실 용하는 개방의 일원을 파악해 자기 뜻을 받아들일 만한 사람들을 규합해서 쿠데타를 일으킬 계획이었다. 하지만 학자와의 대화에서 우연히 알게 된 방법으로 담판을 지을 수만 있다면 일이 훨씬 수월해진다.
“그 전에 제가 방주 대인께 올린 선물을 시전할 기회를 주십시오.”
그 순간 방주를 비롯해 방주 궁의 사람들은 귀가 솔깃했다. 특히 머리칼이 쭈뼛해진 사람은 학자들이었다. 용하에게 선물로 받은 신물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궁금하여 여러 방면으로 만지작거려 보았으나 아직 아무것도 알아낸 게 없었다.
“당치않은 소리!”
웬일인지 방주는 목청을 긁어내 소리쳤다.
뜻밖의 상황에 학자들은 그저 의아할 따름이었다.
‘왜, 당치않다고 하는 거람. 그동안 그렇게 사용법을 알고 싶어서 안달했으면서.’
“시전을 허락하지 않으신다면 제가 올린 선물은 무용지물이 되고 말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사실을 방주가 모를 리 없었다.
‘왜 갑자기 마음이 달라졌는지, 아직 설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용하가 생각하듯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방주가 아니었다.
“묻겠다. 거짓 없이 대답하여라. 어찌하여 갑자기 시전하겠다 덤비는 것이냐?”
“방주께서 믿으시든 안 믿으시든, 물으시니 답하겠습니다. 처음 선물로 드릴 땐 제 입장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대 입장만 생각했다?”
“저는 그 물건을 다루는 데 있어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저처럼 쉽게 다룰 수 있을 거로만 여겼습니다.”
“개방의 유능한 학자들이 많은 시간을 들여 사용법을 찾았지만 끝내 알아내지 못했다. 그런 물건을 다루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불현듯 카랑한 목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용하는 대답 대신 고개를 숙였다.
“좋다! 일단 그대의 시전부터 보고 다시 거론하도록 하겠다.”
이번에도 용하는 고개를 깊이 숙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준비하라!”
용하는 우선 이동식 소형 그늘막을 펼쳐 방주가 그 속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그 양옆에 시녀 하나씩을 세웠다. 시녀들은 어정쩡하게 서서 어리둥절 용하를 바라보았다.
“앞에 보이는 손잡이를 잡으시오.”
이번에도 시녀들은 의아한 표정으로 어정쩡하게 손잡이를 잡았다.
“자, 그럼 힘주지 말고 그냥 든다는 생각으로 살짝 올려 보시오.”
시녀들은 별 기대감 없이 그늘막 속 방주의 눈치를 살피며 용하의 말을 따랐다.
그때였다.
와!
그 광경을 지켜보던 대다수 사람이 옅은 환호성을 질렀다.
방주는 나직하게 시녀들에게 물었다.
“어떠하냐?”
두 명의 시녀 또한 들릴 듯 말 듯 나직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놀랍도록 가볍습니다.”
“밖으로 나가자꾸나.”
내심 기대감으로 조금은 들떴지만, 방주는 속내를 감춘 채 야멸차게 명했다.
시녀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였다. 방주는 그늘막 안을 요리조리 둘러보며 얼핏 입가에 미소를 떠올렸다.
‘왠지 안락하고 포근한 느낌이군.’
무사들은 전동킥보드를 신줏단지 모시듯 들고 그 뒤를 따라 걸었다.
“시전해 보일 장소를 선택하거라.”
용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중앙 정원이 좋을 것 같습니다.”
“중앙 정원으로 가자!”
방주를 앞세운 행렬은 일제히 중앙 정원으로 향했다.
정원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드넓었다.
중앙 정원이 시작되는 곳에 도착했을 때였다.
“자, 어서 시전하거라.”
조바심을 내는 방주의 속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시전하기 전에 청이 하나 있습니다.”
“또 무엇이냐?”
왠지 노처녀의 히스테리 같았다.
“말을 한 필 내주십시오.”
용하가 굳이 말을 선택한 이유는 여러 가지 확인해 볼 게 있어서였다.
‘과연!’
용하는 방주의 반응을 예의주시했다.
“말은 무엇에 쓰려고 그러느냐?”
냉담했다. 목소리에 적지 않은 분노 또한 스며있었다.
“그래야만 시전의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입니다.”
“시전의 의미? 오, 그렇지. 시전에는 의미가 있어야지. 여봐라, 말을 한 필 내 오거라.”
방주의 명이 떨어진 지 얼마 안 돼 무사 하나가 명민해 보이는 말 한 필을 타고 나왔다.
“자, 더는 군소리 말고 시전하도록 하라.”
“네, 방주 대인.”
용하는 중앙 정원이 시작되는 곳에 서서 드넓게 펼쳐진 광야를 바라보았다.
‘직선으로 달리면 끝까지 달린다 해도 10km밖에 안 될 것 같은데.’
이번에는 드넓게 펼쳐진 광야를 크게 둘러보았다.
‘동그라미를 그리며 한 바퀴 돈다 해도 30여 킬로미터 남짓.’
난감했다.
‘30여 킬로미터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을까?’
조금은 의문이 남았다. 하지만 땅을 늘릴 수도 없는 노릇. 달리 방법이 없었다.
“여기서 정원 끝까지 거리가 25리쯤 돼 보입니다. 그리고 정원을 한 바퀴 크게 돈다면 7, 80여 리. 말과 제가 정원을 크게 한 바퀴 도는 경주를 할 것입니다.”
용하의 말에 방주 궁의 사람들 절반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고, 절반은 의심의 눈을 떴다.
“그것이 네 놈이 득의양양하게 말한 시전이더냐?”
방주는 같잖다는 듯 물었다.
“네, 그렇습니다.”
“저것이 대체 무엇이기에 말과 경주를 하겠다는 것이냐? 게다가 그것이 시전이라니,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용하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리고 마른침을 꿀떡 삼키고는 입을 뗐다.
“만약 제가 말과의 경주에서 이기면 방주 대인께서는 제 소원을 들어주시고, 제가 진다면 어떠한 처분도 달게 받겠습니다. 대신 저는 방주 대인께 드렸던 선물을 이용해 경주에 임할 것입니다.”
“그거 아주 흥미로운 제안이구나. 그리하도록 하라.”
중앙 정원에 모인 방주 궁의 사람들은 흥미로운 구경거리라도 보는 듯 술렁거렸다. 용하는 말과 나란히 출발선 앞에 섰다.
‘괜히 말과 경주를 하겠다고 해서 일만 만든 건 아닌지. 전동킥보드가 아스팔트에서는 잘 달리는데, 울퉁불퉁한 데선 뒤뚱거리면서 잘 달리지 못하고 자꾸 넘어지던데.’
용하는 마른침을 삼켰다. 예상치 못한 복병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용하가 믿을 건 한가지였다. 둘 다 최고 속도 시속 60km. 그렇다면 거리로 승부 거는 수밖에.
‘말이 최고 속도를 낼 수 있는 거리는 얼마 안 된다. 하지만 전동킥보드는 배터리만 있다면 얼마든지 달릴 수 있다.’
무사 하나가 우렁찬 목소리로 출발을 알렸다.
따각따각따각!
쉐애애애앵~
이제 막 전동킥보드와 말이 나란히 출발했다.
예상대로 전동킥보드의 출발이 불안정했다.
‘이렇게 간다면 절대 이길 수 없는 게임이다.’
용하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곧 전열을 가다듬었다.
‘죽기 살기로 해야 한다. 지면 모든 게 끝장이잖아.’
용하는 무릎을 굽혀 자세를 낮췄다. 무게 중심을 낮추자 뒤뚱거림이 사라졌다.
“이제 슬슬 속도를 올려 볼까?”
오른쪽 손잡이를 안쪽으로 서서히 돌렸다. 그러자 전동킥보드는 가느다란 바람 소리를 내며 쾌속으로 질주해 나갔다. 그렇게 속도를 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저만치 앞서 달려가던 말이 어느새 손을 뻗으면 닿을 만한 거리에 있었다.
“아직 놀라기엔 이른 것 같은데!”
이제 막 전동킥보드가 말 옆으로 빠르게 지났다.
―이럇!
무사가 고삐를 움켜쥐고 독려했지만, 어느새 혀를 길게 내민 말은 호흡이 거칠어졌다.
그 광경을 멀리서 지켜보는 그늘막 속 방주의 눈에 웬일인지 울음이 차올랐다. 지금 방주의 눈에 차오르는 울음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어리석은 사람.”
들릴 듯 말 듯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는 방주의 시선이 닿은 곳은 또 어디란 말인가.
한편 인공과 장설은 승복을 휘날리며 개방의 사람을 만나고 있었다.
“거, 혹시 말이오. 우리 개방에 검술을 가르치는 곳이 생긴다면 어찌하겠소?”
장설의 말에 인공의 두 눈이 번뜩였다. 그리고 곧 들릴 듯 말 듯 박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형님, 그걸 말씀하시면 어떡합니까?”
“말 좀 하면 어때서?”
“아니, 그건 아직 극비 사항 아닙니까? 아, 형님이 용하 녀석에게 입버릇처럼 얘기했잖아요. 검도관이란 소리를 무림의 사람이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겠느냐고요.”
“그래서 넌지시 꺼내 본 것이다. 저 작자를 한번 봐.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제대로 판단할 수 있겠느냐?”
“하긴 나사가 좀 풀린 것 같긴 합니다.”
“나사는 또 무엇이냐?”
“참으로 예리하십니다. 대충 알아들었으면 그냥 넘어가는 맛도 좀 있어야지 말이야.”
“내가 대충 알아들었다고 누가 그러더냐?”
“못 알아들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내 말투에서 ‘아, 좀 모자란 자인 것 같습니다’ 이런 말이 안 들렸습니까?”
“내가 무슨 초능력을 가진 줄 아는 것이냐? 하지도 않을 말을 어찌 듣는단 말이냐? 그리고 저 작자는 모자란 것이 아니라 간교함이 없는 것이다.”
“간교함이 없다니, 그건 또 무슨 말씀입니까?”
“인공 너처럼 뒤 흉한 짓은 안 한다는 말이다. 이런 자들을 상대로 슬슬 설문조사를 하는 것도 괜찮을 듯싶구나.”
“좋아요, 좋아! 다 좋은데 형님은 잘 나가다가 꼭 나를 걸고넘어지시더라.”
“내가 널 걸고넘어지는 게 아니고, 네 녀석이 걸려 넘어질 짓을 하는 거야.”
“이봐, 이봐! 또 내 잘못이지.”
인공과 장설, 두 사람이 옥신각신하는 사이.
방주 궁의 중앙 정원에서 펼쳐진 시전은 잘 마무리가 되었다.
출발선에서부터 도착 지점까지 일정한 속도로 달린 전동킥보드의 승리였다.
말과의 경주에서 이긴 전동킥보드를 바라보는 방주는 매우 흡족했다.
“이것의 이름이 무엇이냐?”
늘 칼칼했던 방주의 목소리가 조금은 청량하게 변해 있었다.
왠지 경쾌한 게, 전동킥보드에 매료됐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을 만큼 말이다.
“네, 이것은 ‘바람씽’이라고 하는 이동 수단입니다.”
“무어라, 바람씽! 거, 말만 들어도 시원하구나.”
방주의 양 볼에 웬일인지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그 순간 방주의 뇌리를 빠르게 스치는 게 있었다. 저도 모르게 방주는 예전에 용하와 함께 연구했던 을 떠올렸다.
‘무심한 사람 같으니.’
하지만 곧 양 볼을 타고 흐르던 눈물은 온데간데없고, 이번에는 웬일인지 어금니를 으득! 깨물었다.
그날 이후 뿔뿔이 흩어졌던 퍼즐 조각들이 하나하나 제자리를 찾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