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167
167화
“자네가 예상하는 그대로였어.”
무엇인가 회상하는 듯했다. 마치 자기의 경험담을 얘기하듯.
“세상을 장악하고 나니 군림하고 싶어졌겠죠?”
“내가 지금 그 얘기를 하려는 걸세. 자네가 반드시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말이야.”
“제가 반드시 알아야 한다니,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 건가요?”
“사람은 누구나 똑같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와 인공처럼 부처님은 섬기는 자들은 욕심을 버리고 심성을 정갈하게 하려고 부단히 노력하지.”
“형님은 모르겠는데 인공 형님은 그렇지 않던데요. 그 형님은 욕심이 보기 민망할 정도로 많아요. 국밥도 한꺼번에 두 그릇씩 먹잖아요.”
“그것은 욕심 때문이 아니라 배가 고파서 먹는 것이다. 사람마다 먹는 양이 다르니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내가 말하는 욕심은 식욕이라는 본능을 말하는 게 아니라 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 뭐, 그런 걸 말하는 것이다.”
“아, 이를테면 집 없을 땐 집 하나 갖는 게 소원인데, 작은 집이 하나 생기면 평수 큰 집을 탐하게 되고, 평수 큰 집을 갖게 되면 건물주가 되고 싶은 뭐, 그런 거 말씀이죠?”
“그것이 더 적절하겠구나. 백의개로 개방에 입문했을 때를 생각해 보거라.”
“그런데 형님. 저는 저 좋자고 무림검도관을 만들고자 하는 게 아닙니다.”
“내가 그걸 모를 리가 있겠느냐. 하지만 자네를 추앙하는 사람이 하나둘 생기면서 생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 달라진다는 겁니까?”
“사람은 누구나 그리 생각하게 되는 걸 어찌하여 내게 묻는단 말이냐? 다 자기가 잘나서 세상이 잘난 것처럼 공치사하지 않느냐? 그것이 곧 사파로 가는 출발선이 될 것이야.”
장설이 한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아니, 정확히 말해 무림검도관이 건립되었을 그때를 가정해 보았다.
‘음, 그런 상황에 부닥친다면 사람 마음이 충분히 달라질 수 있겠군.’
“알겠습니다, 형님. 무슨 말씀인지 알았으니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충분히 생각하고 결정하거라. 창의진흥원 자리도 괜찮은 자리 아니더냐.”
“알겠습니다.”
비록 대답은 이렇게 했으나 내심 서운했다.
‘나를 위한 검도관 건립이 아니거늘.’
연구실로 돌아온 용하는 서책을 펼쳤다.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그것조차 여의치 않았다. 서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였다.
“왜 이리 조급해하는 것인가.”
자신이 조바심을 낸다는 걸 스스로 알고 있었다.
잠시 쉬어가자는 생각에, 21세기에서의 기억을 더듬었다.
시간 여행을 계획하고 물품을 구매하러 다닐 때를 떠올렸다.
“자가발전기를 좀 사려고 합니다.”
서울에 있는 공구상가를 샅샅이 뒤지며 수천, 수백만 번도 더 했던 말이다.
“무엇에 쓰려고 그러십니까?”
“전기를 구할 수 없는 야외에서 쓰려고요.”
“아, 캠핑 가려나 보다. 자, 여기 캠핑용입니다.”
발전기 가게 주인이 권해주는 자가발전기는 크기나 쓰임새로 보아, 용하가 찾고 있는 것과 딱 맞는 게 안성맞춤이었다.
“이런 건 얼마나 합니까?”
“캠핑용이라 저렴한 편입니다.”
“그래서 얼마예요?”
“싸게 드리겠습니다. …20만 원!”
“그리 비싸지도 않고 마음에 드네요. 그런데 자가발전기의 원리가 뭐죠?”
용하가 원리를 묻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자가발전기는 운동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바꾸는 거죠.”
“운동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바꾼다고요? 그럼 그 운동에너지는 어떻게 얻습니까?”
“아, 그건 자동차에서 얻는 겁니다. 자동차 시동을 걸면 제네레이터가 돌아가지 않습니까? 거기서 만들어진 전기를 자가발전기가 축전해서 그걸 전기가 없는 곳에서 사용하는 겁니다.”
발전기 가게 주인의 설명을 듣고 있자니 숨이 막힐 만큼 흥분되었다.
“그런데 만약 차가 없으면요?”
“차가 없으면 무용지물이죠. 뭐, 캠핑용으로 저렴하게 만들어진 거라.”
“다른 건 없습니까? 차 없이도 야외에서 사용할 수 있는.”
“원리로는 다양한 제품을 만들 수 있는데, 실제로 제품으로 생산된 건 이게 전부입니다.”
“운동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바꾸는 원리를 이용한 제품이 또 뭐가 있습니까?”
“일일이 말로 하기엔 너무 많죠. 예전엔 자전거 조명을 켜기 위해 앞바퀴에 주먹만 한 작은 발전기를 달아 자전거가 움직일 때 그 운동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바꿔 빛을 만들었습니다.”
그 순간 용하의 뇌리에 불현듯 스치는 게 있었다.
“사장님, 혹시 주문 제작도 하세요? 돈은 얼마든지 드리겠습니다.”
용하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다름 아닌 자전거와 유사한 장치를 만들어 발전기를 돌려 운동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바꾼다는 것이었다.
용하의 입가에 저도 모르게 잔잔한 미소가 피어났다.
“만약 무림의 사람들 개개인에게 전동킥보드 한 대씩을 팔 수만 있다면, 시공간 이동체를 움직이는 데 필요한 운영비는 충분히 빠지고도 남겠지?”
용하는 자가발전기를 팔겠다는 계획은 보류했다. 당연히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것이다. 여기는 무림이다. 필요하다면 칼을 들이대서라도 취할 테니까.
“흠, 아무리 어리석어도 황금알을 낳는 거위들을 팔아치울 정도로 바보는 아니잖아.”
한동안 잊고 지냈던 시공간 이동체의 변신 트럭이 불현듯 떠올랐다.
“아차, 우리 유월이!”
창의진흥원으로 들어올 때, 앞으로 입지가 어떻게 될지 몰라, 유월일 무사에게 맡겨놓았다. 그런데 어제오늘을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일이 바쁘다 보니 깜박 잊고 지냈다.
“이렇게 무심할 데가. 필요하니까 생각이 나다니.”
유월이 없으면 시공간 이동체의 변신 트럭을 숨겨둔 곳을 찾을 수 없으니 말이다.
갑자기 마음이 조급해졌다. 밤이 길게만 여겨졌다. 어둠 따위가 용하의 발목을 잡을 수는 없었다. 당장에라도 달려가고 싶었지만, 문제는 한창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무사였다.
“내 욕심 채우자고 무사의 단잠을 방해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용하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왜 이리 시간이 더디 가는 건지, 원래 밤이 이리도 길었단 말인가?”
동이 트기만을 기다리는 시간이 마치, 그동안 살아온 나날만큼이나 길게 느껴졌다.
“이제 형편이 좀 나아졌으니 유월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자.”
가장 먼저 떠오른 게, 21세기에서 늘 보았던 반려견을 위한 펫이었다.
“그런데 무림의 사람들이 짐승을 방에서 키우는 걸 이해할 수 있을까? 여기 사람들 눈에 개는 그냥 짐승일 뿐이잖아.”
용하는 어떻게 하면 유월을 창의진흥원 안에서 키울 수 있을까 골몰했다. 그리고 동이 틀 무렵이 됐을 때 비로소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그래! 그렇게 하면 되는 걸 가지고 괜히 고민했네.”
용하는 창의진흥원을 나섰다. 좀 이른 시각이긴 해도 운동 삼아 천천히 걷다 보면 하루의 태양이 얼굴을 내밀 테고, 그러면 무사의 집을 방문한다는 게 일상적으로 보이지 않겠는가.
어느새 무사의 집 앞에 서 있었다.
무사. 개방에 들어와서 제일 먼저 친구가 된 자다. 하지만 늘 서먹서먹한 관계가 유지되다 최근 용하가 창의진흥원 원장으로 가면서 급격히 가까워졌다.
“간교해서 그런 게 아님을 잘 알고 있네. 원래 사회생활 잘하는 사람은 다들 그렇게 사는 거니까.”
유월이 용하를 보자 처음엔 잘못 봤나 싶었던지, 고개를 갸웃하고는 같은 자리를 맴돌았다.
“유월!”
최대한 나직한 목소리로 유월을 불렀다. 그러자 유월은 고개를 갸웃하고는 힐끔 쳐다봤다. 용하는 때를 놓칠세라, 얼른 손짓했다. 그제야 유월은 용하를 제대로 알아보고 꼬리를 흔들며 제자리를 맴도는가 하면 최대한 작은 소리로 짖었다.
“유월, 쉿!”
용하는 살금살금 거리를 좁혀갔다. 그때였다. 방문이 열리며 무사가 얼굴을 내밀었다.
“오, 자네 왔는가?”
“미안하네. 깨우지 않으려고 했는데, 본의 아니게 깨우고 말았네그려.”
“아닐세. 그렇지 않아도 일어나려던 참이었어. 그나저나 이렇게 이른 시각에 누추한 곳까지 웬일이신가? ”
“아, 미리 얘기를 해야 했는데. 실은 우리 유월을 창의진흥원으로 데려가려고 왔네.”
“창의진흥원으로? 방주 대인의 재가는 받았는가?”
“아직 거기까지는.”
뭔가 자신감이 없어서였을까, 용하는 말꼬리를 흐렸다.
“그렇다면 그것부터 하는 게 순서가 아닐까 싶은데, 자네는 어찌 생각하는가?”
“물론 그렇게 해야 옳았겠지. 그러나 선조치 후보고라는 것도 있지 않은가?”
“선조치 후보고! 그건 일이 시급할 때 임시로 취하는 조치가 아닌가?”
“시급했네.”
침통한 대답이었다.
“시급했다! 그사이 방주 궁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아니, 내 심장에 일이 좀 생겼어. 여기 말일세.”
용하는 무사의 손을 잡아당겨 제 가슴에 얹어놓았다.
쿵쿵! 쿵쿵!
“자네, 심장이 왜 이렇게 뛰는 것인가? 혹, 건강에 이상이 생긴 건 아닌가?”
“음, 그게 말일세. 누군가를 너무 그리워하면 이런 증상이 생긴다고 하더군.”
“누군가를 그리워하면?! 자네가 누굴 그렇게 그리워했는데?”
“우리 유월이 말일세. 오늘 문득 몹시도 보고 싶어 잠을 설치다가 이렇게 일찍 온 걸세.”
“하긴 유월이 귀여움받게 행동하긴 하더구먼. 녀석 키우는 게 아주 깨알 재미가 있더라고.”
“아, 자네도 그 맛을 아는구먼. 우리 유월이 그런 강아지라고.”
얼핏 우쭐대는 기색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순서대로 일 처리하게. 그래봤자 하루 차이 아니, 반나절 차인데 말이야.”
“알았네, 자네의 고견 기꺼이 받아들임세.”
“아, 정말인가. 정말 그리하겠는가?”
용하는 대답 대신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는 유월이 목덜미를 거칠게 쓰다듬었다.
“돌아가서 오전 중에 방주 대인의 의견을 타진해 보게. 만약 방주 대인이 허락하면 그 즉시 창의진흥원 뒷마당에 불을 지피게. 그럼 내가 유월이 데리고 들어가도록 하겠네.”
“알겠네. 그렇게 해주게. 여러모로 고마워. 자네 아니었으면 또 실수할 뻔했네! 그려.”
“이 친구, 못 하는 소리가 없구먼. 우리 사이에 뭐 그런 걸 가지고.”
그날 용하는 유월일 본 것으로 만족하고 서둘러 창의진흥원으로 돌아왔다.
“언제가 좋을까?”
어차피 일이 이렇게 된 거, 음양오행을 무시할 수도 없었다.
“그래, 하루 중 기운이 가장 좋다는 지금 이 시각이 좋겠지?”
썩 침착하다고는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마음을 정한 용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방주 궁으로 향했다.
“담판을 지어서라도 데려올 것이다.”
용하의 걸음이 눈에 띄게 빨라졌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마침내 방주 궁 앞에 섰다.
“방주 대인을 뵙고자 한다.”
조금은 떨리는 음색이었지만 나름의 각오를 단단히 한듯했다.
방주 궁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리고 잠깐의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들라 하십니다.”
“앗싸!”
용하는 들릴 듯 말 듯 한 나직한 소리로 쾌재를 질렀다.
이윽고 방주 앞에 무릎을 조아린 용하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무슨 용무가 그리 급했는지 어디 들어나 보겠소.”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방주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창의진흥원에 개를 한 마리 키울까 합니다.”
“무어라, 개를?”
남들에게는 그저 개였지만, 사실 용하에게는 내비게이션이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이냐?”
선뜻 허락할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막상 캐묻듯 하는 방주의 태도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반드시 관철하고 말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용하는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마침내 비장하게 입을 뗐다.
“개의 학습 능력을 연구하려고 합니다. 물론 전력투구하려는 건 아닙니다. 창의진흥원에서 해야 할 연구를 중점적으로 하되, 틈나는 대로 해볼 생각입니다. 이를테면 취미생활이라고나 할까요.”
이제 막 용하의 말이 끝났을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