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168
168화
“음, 역시 창의진흥원의 수장답군.”
들릴 듯 말 듯 한 작은 소리였지만, 용하의 신경이 어찌나 곤두서 있었던지, 그의 귀에는 들렸다. 하지만 용하는 못 들은 체하며 처분을 기다렸다.
“그리하도록 하시오!”
방주는 우렁찬 목소리로 명했다.
“망극하옵니다. 대인!”
용하 또한 우렁차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
“단, 내 눈에 띄어서는 안 된다.”
방주의 마지막 말은 유독 단호했다.
“명심하겠습니다.”
용하는 간결히 예를 갖추고 방주 전을 빠져나왔다.
이제 막 방주 궁에서 나온 용하는 들뜬 가슴을 겨우 진정시키며 창의진흥원으로 향했다.
“왜 이리 발걸음이 안 떨어지는 것이냐. 얼른 불을 지펴 이 사실을 알려야 하는데 말이다.”
나름 침착하려고 애써 봤지만, 적잖이 허둥대고 있다는 게 여실히 보였다.
한편 무사는 용하가 돌아간 이후, 줄곧 방주 궁 쪽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때였다.
마침내 방주 궁 쪽 하늘에 보일 듯 말 듯 한 연기가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됐다!”
무사의 반응을 기가 막히게 알아차린 유월이 펄쩍펄쩍 뛰며 꼬리를 힘차게 흔들었다.
멍멍! 멍멍! 멍멍멍멍멍~
같은 시각.
창의진흥원 후원에서는 용하가 다른 학자들 몰래 지폈던 불을 끄고 있었다.
“후원에서 불을 지핀 걸 보면 보나, 마나 누군가에게 신호를 보낸 거로 의심하겠지.”
작은 흔적도 남기지 않으려고 불을 지폈던 주변 땅을 전부 갈아엎었다.
그러는 사이 무사가 도착했다.
무사를 본 인공은 그를 반겼고, 인공을 본 유월은 꼬리를 흔들었다.
멍멍! 멍멍!
“원장님! 원장님!”
인공의 목소리가 여러 차례 들리자, 용하는 서둘러 하던 일을 마무리했다.
“어허, 대체 무슨 일이길래 숨넘어갈 듯 사람을 불러대는 것이오.”
용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뒷짐을 진 채 후원 쪽에서 유유자적 걸어 나왔다.
“아니, 원장님! 후원엔 언제 가셨습니까?”
“왜요? 나는 후원에 가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던가요?”
“아니, 뭘 또 그렇게까지.”
“요즘 들어 동물에 관심이 커져서요.”
“동물에 관심이 커졌다고요?”
“토끼 한 마리가 후원 쪽으로 달아나길래 잡으러 갔으나 녀석이 어찌나 잽싸게 달아나던지 그만 놓치고 말았소.”
“아, 그러셨군요. 제가 시간 나면 달아난 토끼는 반드시 잡아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용하는 인공의 말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유월을 향해 소리쳤다.
“유월! 뭐 하고 있어? 오빠를 봤으면 어서 달려와서 반가워하지 않고.”
멍멍!
그제야 유월은 마치 양해라도 구하듯, 무사를 한차례 흘깃 보고는 용하에게로 달려가 펄쩍펄쩍 뛰며 반가움을 표했다.
모든 게 완벽해 보였다. ‘단, 내 눈에 띄어서는 안 된다.’라고 한 방주의 말 빼고는.
“창의진흥원 학자들에게 고하겠소. 연구 목적상 유월인 창의진흥원 실내에서 키울 것이오. 단, 산책할 때만 빼고 말이오.”
그때였다. 학자들 가운데 하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왜 그러시오?”
“궁금한 점이 있어서요.”
“얘기해 보시오.”
“무엇을 연구하시려는지 아직 구체적으로 언급이 안 된 것 같아서요.”
“음, 간략하게 얘기하자면 개의 지능에 관해 연구하는 게 목적입니다.”
“지능이라면.”
웬일이지 학자는 눈치를 살피며 질문하기를 망설이는 기색이었다. 하지만 용하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학습 능력 말이오. 자세한 건 문서로 알릴 것이니, 그것을 숙지하도록 하시오.”
“네, 알겠습니다.”
학자들은 간결하게 예를 갖추고 각자 자기 위치로 돌아갔다.
마지막으로 움직인 학자는 유월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아무리 연구가 목적이어도 그렇지. 어떻게 개하고 한 공간에서 함께 지내라는 거야?’
그는 다름 아닌, 조금 전 용하에게 연구 목적을 캐물은 바로 그 학자였다.
멍멍!
유월이 또한 그 학자를 곱지 않게 바라보는 듯했다.
그들의 미묘한 움직임을 간파한 사람은 단 한 사람, 장설뿐이었다.
“집중 호위 대상에 유월도 포함해야 할 것 같구나.”
장설이 은밀하게 한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유심히 지켜보고 있습니다.”
인공의 대답은 예상외로 긍정적이었다. 평소 같으면 단 한마디라도 토를 달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인공이었는데 말이다.
“음,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는 않는구나. 역시 장설의 아우답구나.”
“쳇, 뭐든 잘되면 다 자기 탓이래.”
들릴 듯 말 듯 한 작은 소리였지만, 불행히도 장설의 귀에는 들리고 말았다.
“어허, 호위무사라고 다 같은 호위무사가 아니거늘!”
“아네, 죄송합니다. 귀도 밝으셔.”
* * *
뒤늦은 깨달음이었다.
“유월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을지 몰라.”
어느 때보다도 소중하게 여겨졌다. 만약 유월이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이대론 안 되겠어. 무슨 수를 쓰든지 해야지.”
그런데 막상 방법을 생각해 보니 달리 대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중요한 파일이나 데이터는 암호설정을 한다거나 USB(유에스비)에 보관이라도 할 텐데, 유월이 기억을 따로 보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유월이 기억을 따로 저장할 방법이 없을까?”
꽤 괜찮은 의문이었다. 만약 용하가 21세기의 과학자라면 말이다.
“개의 평균 수명이 15년 내외라고 했지.”
하지만 그것도 21세기 얘기다. 예방접종하고 관리 잘 받았을 때 말이다.
용하는 몇 날 며칠을 고민 끝에 유월이에게 친구를 만들어주기로 마음먹었다. 유월이 못지않은 영리한 강아지로 말이다.
용하는 빠른 걸음을 내디뎌 방주 궁으로 갔다.
“창의진흥원 김용하 원장께서 방주 대인을 뵙고자 합니다.”
“들이거라.”
스르르!
문이 열렸다. 눈 앞에 펼쳐진 베일 안에 앉은 방주의 실루엣이 보였다.
용하는 안으로 들어가 무릎을 조아렸다.
“무슨 일이시오?”
“방주 대인께 청이 있어 이렇게 염치 불고하고 알현합니다.”
“말해 보시오.”
“개의 학습 능력을 연구하다 보니 한 마리로는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이오?”
“무릇 연구라 하면 비교 대상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어서입니다.”
“아, 비교 대상! 이를테면 이 개가 다른 개보다 학습 능력이 좋다 혹은 나쁘다, 그걸 말하는 것이오?”
“네, 그렇습니다.”
“그래, 몇 마리나 더 필요할 것 같소?”
“당장은 한 마리만 더 있으면 될 것 같습니다. 하나 앞으로 연구가 깊어진다면 몇 마리가 더 필요할지 예측할 수 없습니다.”
방주 전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이윽고 베일 뒤에서 옅은 한숨이 새 나왔다.
“이렇게 하는 건 어떻겠소? 그 문제는 전적으로 창의진흥원에 일임할까 하는데.”
쿵!
용하는 너무 기쁜 나머지,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망극하옵니다.”
“이것으로 문제는 해결된 것 같으니, 그만 물러가시오.”
기다렸다는 듯 용하는 방주 전을 빠져나갔다.
창의진흥원으로 돌아온 용하는 인공과 장설을 불렀다.
“형님들, 유월이 만큼 영리하고 힘이 좋은 개를 사려고 합니다.”
“그만한 개는 세상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 그리 말씀하실 때가 아닙니다. 어떻게든 구해야 합니다.”
“유월이 같은 개가 갑자기 왜 필요한 겁니까?”
“문득 그런 생각을 들더군요. 유월이 없으면 유월이가 하던 일을 누가 대신할 수 있을까? 그런데 어떤 것도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는 게 없더군요.”
용하의 말에 장설은 왜 자다가 봉창 두드리느냐는 눈빛이었지만, 인공은 그 말을 찰떡같이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자네는 알아들은 것인가?”
“그럼요. 다른 데도 아니고 창의진흥원 호위무사가 이 정도를 못 알아들어서야 어찌 자격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기고만장하구나. 그래, 정말 알아들었는지 한번 보자꾸나. 말해보아라.”
“형님도 참, 문파에서 비급을 문서로 남기는 이유가 뭔 줄 아세요?”
“그야 사람에게 비급을 전한다 한들 그자가 죽어버리면 비급은 사라지기 때문이지.”
“흠, 그렇게 바보는 아니네그려.”
들릴 듯 말 듯 한 인공의 소리에 장설은 두 눈을 치켜떴다.
“뭐라 지껄였느냐?”
목소리가 냉혈한 같았다.
“옥신각신하지 마십시오. 이곳은 공적인 업무를 보는 장소입니다.”
중재해야겠다는 생각에 용하는 조금 언성을 높였다.
“송구합니다.”
인공과 장설은 입을 모아 사죄하며 움찔 수그러졌다.
“유월이 못지않은 개를 구해오십시오. 이건 형님들에게 상의를 드리는 게 아니고 지시하는 겁니다. 최대한 서둘러 구해오십시오.”
용하의 말에 인공은 장설을 힐끔 바라보았다.
“왜, 그런 눈으로 나를 보는 것이냐?”
“아무래도 형님이 여기 물정은 잘 알지 않을까 해서요.”
“아니, 내 생각엔 저잣거리 물정은 자네가 더 잘 알 것 같은데.”
“그런 얘기는 돌아가서 두 분이 나누세요.”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구해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인공이 넙죽 대답하고는 장설을 부추겨 빠져나왔다.
창의진흥원 복도를 지나 툇마루로 온 장설이 인공에게 물었다.
“유월이 어디서 구한 것이냐?”
“저잣거리에서 구했습니다.”
“그럼 두말할 것도 없이 저잣거리로 가보자꾸나.”
“형님, 거기보다 기록을 위해 개방을 둘러볼 때 몇몇 집에서 개를 키우는 걸 봤습니다.”
“나라고 그것을 못 보았겠느냐? 하나 개방에서 본 개들을 유월이와 다른 것들이다.”
“다른 것들이라면.”
인공이 자신감을 잃고 말꼬리를 흐리자, 장설이 힘을 주어 말했다.
“유월이 보통 개가 아니라는 걸 모르는 것이냐?”
“개가 다 거기서 거기지, 뭐 특별한 개가 따로 있습니까?”
“유월인 중원에서도 내로라하는 혈통 있는 개라는 걸 모르고 있었나 보군.”
“혈통 있는 개라고요?”
인공의 머릿속에 21세기에서 흔히 보던 진돗개나 풍산개 뭐, 삽살개 이런 것들이 스쳤다.
“그럼 꽤 비싸겠네요?”
“가격이 문제가 아니고 구할 수 있을지가 문제로구나.”
장설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인공은 장설을 힐끔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흠, 그때 개장수에게 사기당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네!’
인공은 저도 모르게 미소를 머금었다.
다음날.
“수일 내로 돌아오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용하의 연구실에서 새 나오는 인공의 목소리였다.
“며칠이 걸려도 좋으니, 유월이 같은 개를 구해오시오.”
“알겠습니다.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유월이를 좀 데리고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인공의 말에 용하의 목소리가 조금은 격앙됐다.
“유월이는 왜요?”
반면 인공의 목소리는 평소와는 달리 차분했다.
“저잣거리를 오가다 길을 잃을 수도 있어서입니다.”
연구실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곧.
“그리하십시오. 괜히 길이라도 잃는 날엔 더 낭패를 보게 될 것이니 말이오.”
“헤아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공과 장설, 두 사람은 서둘러 창의진흥원을 나섰다.
이윽고 개방을 벗어나 유월을 앞세운 채 척박한 광야를 걷기 시작한 두 사람의 행색은 영락없는 거지꼴이었다.
“형님! 이 정도면 누가 봐도 개방에서 나온 줄 알겠죠?”
두 사람의 거지꼴을 한 이유는 다름 아닌 개방의 힘 때문이었다. 적어도 당대 중원은 10대 문파인 9파1방을 중심으로 움직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10대 문파, 즉 9파1방의 1방이 바로 개방이 아닌가.
“적어도 우리가 개방에서 왔다는 걸 알면 아무도 우릴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
왠지 거지꼴을 하고도 발걸음에 자신감이 넘쳤다.
“가자, 유월!”
멍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