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169
169화
“형님! 여기가 제가 알고 있는 그 저잣거리가 맞습니까?”
용하가 이리 수선을 피우는 이유는 저잣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가까이 있어서였다.
“형님! 저잣거리가 이리도 가까이 있었습니까? 저는 며칠은 걸어야지 저잣거리에 당도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하고 각오를 단단히 했는데 말입니다.”
알고 하는 것과 모르고 하는 것의 차이가 이렇게 크더란 말인가. 생각했던 것보다 지나치다 싶을 만큼 가까운 곳에 저잣거리가 있었다.
“우리가 멀게 느꼈던 건 아마도 길을 헤매고 다녔기 때문이 아닐까 싶구나.”
“역시 알면 쉬운데 모르니까 어려운 거였군요. 형님! 우리 시간도 벌었고 노잣돈도 많은데, 오랜만에 번루 구경 한번 안 하시렵니까?”
“예전에 너희 둘이 여자를 앞세워 나한테 수작 걸던 그 술집 말이냐?”
“형님도 참, 수작이라뇨. 영광으로 생각하셔야지.”
“영광! 무슨 영광?”
“창의진흥원 원장님과 그의 오른팔인 제가 형님을 모시려고 얼마나 애를 쓴 줄 아십니까?”
“무어라, 자네가 오른팔! 그럼 나는 무엇이냐?”
“형님도 오른팔, 저도 오른팔!”
“오른팔에 오른팔이라, 왠지 정상은 아닌 것 같구나.”
“정상은 아닌 것 같다니, 그게 대체 무슨 말씀입니까?”
“조금 부족하더라도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게 보기 좋다는 소리야.”
“제 말은 왼팔이 있어야 할 자리에 오른팔이 있다는 게 아니고, 옳은 일만 하는 오른팔이 두 개 있으면 더 좋지 않겠느냐는 말입니다.”
“아, 그런 소리였어? 거, 듣던 중 제법 찰진 소리로구나. 앞으로도 옳은 일만 해야 하느니.”
“물론입니다, 형님. 무엇을 탐하지 않고 착하게 사니까 호위무사 자리에 이렇게 호강하는 날이 있는 거 아닙니까?”
“술도 좀 작작 마셨으면 좋겠는데, 아무래도 그건 좀 어렵겠지?”
“다 아시면서.”
“일단 번루로 가서 여장을 풀자꾸나.”
“아, 정말요?”
좋아하는 꼴이 고깃덩어리를 본 유월이 같았다.
“우리 갈 곳은 딱 정해져 있지 않으냐? 수소문하기 좋은 번루, 주막, 국밥집.”
“아, 그러네요. 다 일 때문에 주점으로 가자고 하신 거였군요?”
“임도 보고 뽕도 따고, 가재 잡고 도랑도 치고.”
“존경합니다, 형님.”
두 노인의 주접이 하늘을 찌를 기세였다.
한편 창의진흥원 연구실의 용하는 일이 손에 안 잡히던지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때 학자 하나가 힐끔힐끔 눈치를 살피며 다가와 물었다.
“왜 이리 불안해하십니까?”
“늘 곁에 있던 유월이 멀리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만은 않구려.”
“아, 유월이를 걱정하고 계셨던 거로군요. 저는 연세 많으신 두 분 호위무사 걱정을 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호위무사야 유월이가 곁에 있는데 무슨 걱정이 되겠소.”
“아, 유월이가 있으니까.”
입엣말로 중얼거리는 학자의 표정이 왠지 씁쓸했다.
그날 밤.
용하는 잠을 이룰 수 없었던지, 이리저리 뒤척이다 중앙 정원으로 나갔다.
“밤이 왜 이리도 긴 것이냐.”
유월이 없이 홀로 지새우는 밤이 너무나 길고 답답하게 여겨져서였다.
“이렇게 걷다 보면 동이 트겠지? 동이 트면 곧 태양이 얼굴을 내밀 테고.”
이리저리 거닐며 상념에 사로잡혀 있을 때였다. 저 멀리 방주 궁 쪽에서 어른거리는 그림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아니 저건! 움직이는 걸 보면 생명체라는 건데. 게다가 직립보행을 하는 걸 보면.”
사람이라는 생각에 일단 몸을 낮췄다. 그렇게 숨죽인 채 한동안 의문의 그림자가 움직이는 것을 지켜보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렴풋하게 보이던 게 점점 또렷해졌다.
“역시 사람이었군!”
그런데 자세히 보니 목발을 짚고 한쪽 다리를 절룩거렸다. 바로 그 순간.
“혹시!”
용하는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일전에도 바로 여기였잖아. 중앙 정원을 거닐고 있을 때 보행이 부자연스럽다고 추측되는 어떤 자와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라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이것이 과연 우연이란 말인가.”
그날 있었던 일과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들이 석연찮게 생각되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게 또 하나 감지되었다. 다름 아닌 체격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눈앞에 보이는 의문의 그림자가 아담한 체격의 여인이라는 점이었다.
“그럼 이쯤에서 대충 퍼즐 조각들을 한번 맞춰볼까?”
용하가 지금까지 관찰한 것들을 토대로 이리저리 조합해 만들어낸 한마디는 딱 이거였다.
너무 매끄럽게 한 문장으로 딱 떨어졌다. 이제 남은 건 의문을 푸는 것뿐.
또 고질병이 돋았다. 궁금하면 못 참는 그 지랄 같은 성격.
용하는 낮은 포복으로 거리를 좁혀갔다. 엄폐할 만한 것이 있는 곳을 지날 때는 전술 보행도 서슴지 않았다. 쥐도 새도 모르게 접근하는 용하를 알아차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쯤에서 지켜보자.”
용하는 숨을 죽인 채 여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했다. 그때였다. 이제 막 구름을 벗어난 달빛이 그녀의 얼굴을 정확히 비추었다.
“악!”
순간 용하는 전광석화처럼 제 입을 틀어막아 다행히 소리가 밖으로 새 나오지는 않았지만, 하마터면 의문의 여인에게 자신을 노출할 뻔했다.
“내가 지금 본 것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웬일인지 용하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창백해진 얼굴로 입술을 부들부들 떨었다. 대체 무엇을 보았기에 얼굴이 저 지경이 되었단 말인가.
“얼굴이 반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조금 전 용하의 눈에 보였던 여인의 얼굴은 광대뼈 부분이 심하게 함몰돼 있었다. 게다가 목발을 짚은 쪽은 골반 아래로 아예 다리가 없었다.
“이곳은 14세기가 아닌가. 저렇게 심하게 다치고 어찌 살았단 말인가.”
갑자기 소름이 오소소 뿌려졌다.
“저 정도 부상이면 21세기 의학으로도 일상으로 돌려놓기 어려웠을 텐데 말이다.”
다음 날 용하는 개방에서 친구 사이가 된 무사를 넌지시 불러들였다.
“바쁠 텐데, 미안하네.”
“아닐세. 그나저나 무슨 일로 나를 부른 게야?”
“혹시 말일세.”
웬일인지 용하는 난색을 지으며 망설이는 기색이었다.
“무엇을 망설이는가. 어서 말해 보게.”
“친구에게 이런 말을 하게 돼 미안하네. 하지만 이것부터 다짐해 주어야 할 것 같네.”
“무엇인가? 주저하지 말고 말하게.”
“자네를 못 믿어서가 아니고,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이 절대 새 나가서는 안 되니, 비밀은 반드시 지키겠다고 약속해주게.”
“약속하겠네.”
무사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용하의 연구실에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마침내.
“방주 궁에 아픈 사람이 있는가?”
무사의 표정이 짐짓 놀라는 기색이었다.
“자네 얼굴을 보니 무엇인가 있긴 있는 게로군. 세상에 알려지면 안 되는.”
무사의 대답을 유도해 보았지만 더는 입을 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런 무사가 자리를 떠나며 남긴 마지막 한마디는.
“일전에도 말했지만, 깊이 알려고 들지 말게! 자네만 다친다네.”
적잖이 침통한 목소리였다.
무사가 창의진흥원을 나간 후 용하의 궁금증은 더욱 깊어만 갔다.
“그 여인은 대체 누구란 말인가?”
지금까지 무사가 보여준 반응으로 한가지는 분명해졌다. 적어도 어젯밤 보았던 의문의 여인이 헛것이 아니었다는 사실 말이다.
* * *
한편 저잣거리 인근의 번루에서는.
“유월아! 유월아!”
애간장을 녹이는 인공의 목소리가 번루 전체에 울려 퍼졌다.
그때였다. 때마침 인공과 마주친 장설에게 물었다.
“형님, 유월이는요?”
“유월이를 왜 나한테서 찾는 것이냐?”
“못 봤다는 말씀인 거죠?”
“당연하지. 나는 해우소에 다녀오는 길인데.”
“그럼 우리 유월이는 어떻게 된 겁니까?”
인공은 타들어 가는 목소리로 장설에게 물었다.
“어디 산책하러 나갔겠지. 우리보다 길눈이 더 밝은데 뭘 걱정이야.”
장설의 말에 인공은 ‘어, 듣고 보니 그러네!’ 하는 표정이었다.
“제가 괜한 걱정을 한 건가요?”
“우리보다 더 똑똑해.”
“그건 알겠는데 끼니는 제대로 먹었는지 걱정입니다.”
“그것도 우리보다 더 똑똑해. 하는 짓이 예뻐서 어디 가서 굶지는 않을 거야.”
듣고 보니 그것도 그랬다.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는 유월이었다.
“그런데 형님! 유월인 자기가 알아서 한다 치고, 유월이 없으면 우리는 어떡합니까?”
“그것도 괜한 걱정이야. 유월이가 좀 똑똑해? 우리 걱정 안 하게, 때 되면 알아서 돌아올 테니까 제발 수선 좀 피우지 마.”
그날 오후, 눈이 빠지게 기다려도 유월은 돌아오지 않았다.
“형님, 이제 어쩌죠?”
여차하면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았다.
“입 다물라! 끝내 안 오면 우리끼리 예전처럼 물어물어 찾아가면 그만이지. 뭐 그만 일로 사내자식이 눈물을 보이려 드는 것이냐?”
“형님, 그게 아닙니다.”
사실 인공이 걱정하는 건 따로 있었다. 만약 유월이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는 날엔 시공간 이동체가 숨겨진 장소를 찾을 수 없을 테고,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촘촘하게 세워둔 계획들은 물거품이 되고 말 것을 염려하는 것이었다.
‘이를 어쩐다.’
인공은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 갔다.
“아, 얼굴 좀 펴! 사내자식이 그깟 개 한 마리 갖고 징징거리고 그래?”
“아, 글쎄 형님, 그게 아니라는 데도요.”
“아니긴 뭐가 아냐, 인석아. 하루 사이에 우리가 저잣거리에 왜 왔는지 잊은 것이냐?”
“제가 그걸 잊을 리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뭘 제 발로 나간 개 한 마리를 두고 그렇게 근심 걱정을 하는 것이냐. 그깟 개야, 사는 김에 한 마리 더 사면 그만인 것을!”
장설이 너무 쉽게 술술 내뱉는 말들은 인공의 타들어 가는 가슴에 기름을 붓는 듯했다.
‘휴대전화라도 있으면 이 사실을 용하에게 알려 대책이라도 마련하라고 할 텐데.’
백방으로 머리를 짜냈지만,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인공의 뇌리에 불현듯 떠오르는 게 있었다.
“형님! 저 잠깐 어디 좀 다녀올 테니, 저 올 때까지 여기 꼼짝 말고 계십시오.”
인공의 목소리는 깊은 여운을 남기며 조금씩 멀어져갔다.
번루에서 나와 눈썹을 휘날리며 달려간 곳은 다름 아닌 저잣거리 국밥집이었다.
멍멍!
예상했던 대로 유월이 멍멍 짖으며 인공을 반겼다. 유월을 보는 순간 인공은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아, 인석아.”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결코 반가워서 떨릴 리 없었다. 온 힘을 다해 달려와 다리가 풀려버린 탓에 목소리에 힘이 없었던 것뿐이다.
인공은 이리저리 펄쩍거리며 꼬리를 흔들어대는 유월을 끌어안고 거칠게 입맞춤했다. 이것 역시 반가워서는 결코 아니었다. 단지 하나, 잃어버린 줄 알았는데 찾았다는 생각에 스스로 기뻐서였다.
그 광경을 본 주모는 혀를 끌끌 차며 인공을 맹비난했다.
“저 노인네가 망령이 나도 단단히 났지. 더럽게 어디 개하고 뽀뽀를.”
개하고 입맞춤이라니, 14세기 무림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주모! 너무 뭐라 하지 마시오. 내게도 그럴 만한 사정이 있어서 그러니. 그나저나 여기까지 왔으니 국밥 한 그릇 먹고 가야겠소.”
“일없소! 개하고 뽀뽀하는 지저분한 인간에게는 내 국밥을 줄 수가 없소.”
“어허, 주모! 오늘 참 말 많소. 객이 달라면 주는 거지, 장사치가 왜 그리 말이 많은 게요?”
“팔고 안 팔고는 내 마음이오. 내가 돈 안 벌겠다는데 누가 뭐라 그런단 말이오.”
“됐소! 옛정을 생각해서 한 그릇 팔아주려고 했더니.”
“옛정은 무슨 얼어 죽을 옛정?”
주모는 독사 같은 눈으로 인공을 노려보았다.
“알았소, 됐소! 내 이제 이놈에 추레한 국밥집 다시는 오나 봐라. 앞으로 이쪽으로 오줌도 안 쌀 것이오.”
인공이 슬금슬금 물러가며 쏟아놓은 독설이었다.
“그건 그렇고, 우리 유월이 같은 강아지는 어디 가야 살 수 있는 게요?”
주모는 인공을 향해 소금을 한 바가지 뿌리며 쏘아붙였다.
“저게 길바닥에서 뒈지고 싶나. 끝까지 개를 가지고 장난을 치네그려.”
멍멍! 멍멍!
“가자, 유월아!”
* * *
어느새 사흘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인공과 장설을 기다리는 용하는 피가 마르는 듯했다. 아니, 정확히 말해 유월을 기다리는 용하는 애간장이 타들어 가는 듯했다. 그사이 유월이 걱정이 입버릇이 되었다.
“갔던 일은 잘되고 있는 걸까? 유월이 함께 갔으니 별일은 없겠지.”
혼자 있으면 유월이 걱정이 더욱 심해져 생과부 넋두리하듯 중얼거리고는 했다.
“형님들도 형님들이지만, 유월이에게 아무 일 없어야 할 텐데. 세상이 워낙 험하니 유월이 아무리 똑똑해도.”
그때 밖에서 무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방주 대인께서 찾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