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17
17화
뭐랄까, 예비면접이라고 해야 할까?
남채화 마음에 든다는 건 1차 면접에 합격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장설은 잔뜩 기대에 찬 눈으로 남채화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남채화는 끝내 입을 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는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지금 장설은 어떤 판단도 섣불리 할 수 없었다.
장설이 이 정도면 인공과 용하는… 과연 두 사람은 지금 이 상황을 어떤 각도에서 보고 있을까.
“용하야, 너는 개방에 가면 제일 먼저 무엇부터 할 것이냐?”
“글쎄요, 저는 아직 거기까지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요.”
“나는 말이다. 개방에 가면 우선 배부터 든든히 채울 것이다.”
잔뜩 들떠 있었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자신의 운명 앞에서 말이다.
“인공 어른께선 그렇게 드시고도 또 먹는 타령입니까?”
“그러게나, 말이다. 나는 잠시라도 공복을 느끼면 불안해서 못 견디는 사람이야. 하늘이 무너져도 먹어야 산다. 이게 내 작은 철학이자 신조거든.”
“개방에 가면 우리가 어떤 대접을 받을 것 같습니까?”
“어떤 대접이라니, 갑자기 그런 걸 묻는 이유가 무엇이냐?”
“인공 어른의 말씀을 들어 보면, 개방에서 우리를 극진하게 대접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계시는 것 같아서요.”
“왜? 아닐 것 같으냐? 거기, 그 개방이라는 데가, 그 뭣이냐, 음, 거지들의 집단이라며? 그런 곳에 우리 같은 지성인들이 가는데, 그들이 대접을 안 할 리 없잖아?”
이유를 들어 보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게다가 평생 작대기밖에 모르고 산 용하에게 지성인은 무슨. 게다가 하나는 땡추에, 다른 하나는 언제 죽을지 모를 폐인이나 다름없는데. 이런저런 생각에 용하는 씁쓸한 미소만 지었다.
“어, 이 녀석 좀 보게.”
말투로 보아 시비를 거는 게 분명하다고 판단했던지, 용하는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김용하! 너 그런 표정으로 실실 쪼개는 이유가 대체 뭐야? 그 비웃는 듯한 미소가 무슨 의미냐고?”
인공이 악을 썼지만, 용하의 태도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자 인공은 용하의 길을 막고 더욱 독살스럽게 몰아세웠다.
“왜, 장설 형님이 나를 무시하니까, 너까지도 날 개무시하는 것이냐? 내가 네 녀석 눈에도 아무렇게나 대해도 되는 그런 노인네로 보이는 게야? 나는 말이다. 세상 사람들 모두가 나를 땡추라 손가락질해도 너만은 그러지 않을 것이라 믿었는데. 그런데 네 녀석이 어떻게 나를…….”
인공은 울분이 차올라 더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인공 어른!”
웬일인지 용하의 목소리에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 인공은 용하를 향해 흘깃 곁눈질했고, 바로 그 순간 잠시 멈췄던 용하의 차가운 목소리가 이어졌다.
“저는 말입니다, 이 김용하는 누굴 섣불리 무시하거나 폄하하지 않습니다. 특히 이곳 무림에 버려졌을 때, 사고무친한 우리가 서로를 의지하며 동고동락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런 인공 어른을 제가 감히…….”
용하 또한 복받쳐 올라 더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용하의 눈빛이 두어 차례 변했다. 그리고 눈을 들어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왜 인공 어른 말씀을 귀담아듣지 않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그거 말씀해 드리려고 합니다.”
“그만두거라. 네 녀석 표정을 보아하니, 썩 듣기 좋은 소리를 할 것 같지 않구나.”
“아뇨, 듣기 싫어도, 기분 나쁘셔도, 들으세요. 상대가 하는 말을 귀담아듣는 게 대화의 기본입니다.”
“거, 무슨 선전포고 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왜 그렇게 분위기가 살벌해?”
“안 들으실 거예요? 싫으면 말고요.”
“아니다. 내가 언제 싫다고 했느냐. 어디 말해 보거라.”
“그게 말입니다. 지금 어른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어 보면, 우리가 개방에 가면 그 사람들이 우리를 무슨 국빈 대접이라도 하는 줄 착각하고 계신 것 같아서요.”
“알았다. 네 녀석이 무슨 말을 하려고 그러는지 충분히 알겠는데, 넌 꼭 그렇게 사람의 뼈를 때려야 속이 후련한 것이냐?”
“저라고 뭐 사람 아픈 데 건드리고 싶겠어요? 이렇게 모질게 해야지만 알아듣는 걸 저더러 어떡하라고요.”
두 사람이 입씨름을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자, 결국 장설이 중재에 나섰다.
“나잇살이나 먹고서 창피한 줄을 알아야지. 딱하다, 딱해. 어린 사람한테 꾸지람이나 듣고 쯧쯧…….”
장설이 혀를 끌끌거리자 인공은 입을 다문 채 주억거렸다.
* * *
한편 객잔에서는 일전을 치를 만반의 준비를 끝낸 7인의 협객이 모여 있었다.
“짐작건대 놈들은 개방으로 숨어들 것이다. 그들이 개방에 닿기 전에 잡아야 한다.”
객주로 위장했던 협객이 분을 참아 가며 한 말이다. 다섯 명의 협객이 명을 받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꺾었다. 하지만 한 명의 협객만 고개를 들어 결연히 말했다.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협객의 말에 객주로 위장했던 즉, 호위무사의 지휘자 격인 협객이 차갑게 나무랐다.
“그걸 누가 몰라서 그러느냐! 여의치 않으면 사살해도 좋다.”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끝까지 따라가 생포하는 걸 원칙으로 하되, 거세게 저항하면 어찌할 수 없는 일 아니냐. 목이라도 가져다 바치는 수밖에.”
지휘자 격인 협객의 말이 끝났을 때였다. 여섯 명의 협객이 일제히 이합집산했을 땐, 그들 손에 표창 같은 투척용 병기가 들려 있었다. 특히 그들 가운데 하나의 손에 유독 시선을 끄는 물건이 들려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원거리 저격용 병기인 석궁이었다.
석궁을 예사롭지 않게 바라보는 지휘자 격인 협객이 물었다.
“이 물건이 서역에서 들여왔다는 그것이냐?”
조금 전 반기를 들었던 협객이 무릎을 꿇어 예를 갖추며 석궁을 두 손에 받쳐 들고 건넸다.
“네, 원거리 살상 병기입니다.”
지휘자 격인 협객이 석궁을 받아 들며 물었다.
“저격용이란 말이냐?”
“네.”
지휘자 격인 협객이 석궁을 들어 벽 쪽을 향해 정조준했다. 그녀의 아미와 석궁 끝과 표적이 정확히 일치되었을 때였다. 웬일인지 그녀는 치를 떨어 대며 어금니를 으득! 깨물었다.
“요망한 것들! 마음 같으면 발견 즉시 사살해도 시원치가 않을 것이야.”
* * *
개방으로 향하는 길은 멀고도 험난했다.
남채화를 앞세운 세 사람은 음습한 길을 걷고 또 걸었다.
“이보시오! 제대로 가고 있는 거 맞소?”
인공이 빈정거리는 말투로 물었다.
“질문의 의도가 무엇이오?”
남채화 또한 쀼루퉁한 목소리로 알량하게 되물었다.
“거, 날 세우지 말고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하시오.”
“먼저 대답하시오. 질문의 의도가 무엇인지…….”
“혹시 우리 엿 먹이려고 일부러 더 험한 길로 가는 거 아닌가 해서 묻는 것이오.”
“내, 분명히 말하는데 개방으로 가는 길은 오직 하나뿐이오. 더군다나 남채화들이 다니는 길은…….”
“쳇, 그 말을 믿을까 봐. 더군다나 남채화가 하는 말을…….”
인공이 여전히 빈정거리며 중얼거렸을 때였다.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걸음을 옮기던 남채화의 걸음이 멈췄다. 왠지 심상찮은 분위기였다. 싸늘하다. 비수가 날아와 꽂히는 듯하다. 인공은 옅은 비명과 함께 입을 틀어막으며 한발 물러섰지만, 이미 때는 늦은 듯했다.
남채화는 차가운 눈으로 인공을 직시하며 옥죄듯 거리를 좁혔다.
―헉! 헉! 크억!
인공은 진짜 목이라도 잡힌 듯 숨을 몰아쉬었다. 그 광경을 목도하는 장설은 생각했다.
‘저 술법은 악귀들이 주로 사용하는…….’
경악한 장설이 생각을 멈추고 두 눈이 휘둥그레져서 소리쳤다.
“정신 차려, 인공! 정신 차리고 고개를 돌려. 절대 악귀와 눈을 마주쳐서는 안 되니, 어서!”
장설의 절규에 인공은 한 손을 어깨까지 척! 들어 올리며 득의양양한 자세를 보였다. 오잉, 저건 또 무슨 짓! 장설이 잠시 어리둥절했을 때였다. 인공 앞에 선 남채화가 비릿한 미소로 입을 뗐다.
“야! 너 그 말, 목에 칼이 들어와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은 있는 것이냐?”
정말 악귀가 들었다면, 놀라 달아날 만큼 차갑고 무례한 목소리였다. 그런 남채화를 대하는 인공 또한 만만찮았다.
“당연하지. 왜, 분위기 좀 맞춰 줬더니, 내가 만만해 보여?”
인공의 말에 장설은 안도하는 기색이었다.
“뭐야, 장난친 거야?”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멱살을 발뒤꿈치가 다 들릴 만큼 거세게, 옭아 쥐었다. 아직 시작도 안 한 싸움이 박빙을 예고했다.
그 광경을 서너 걸음 뒤에서 지켜보는 장설은 생각했다.
‘어허, 참으로 기이한 일이로다. 저것들 하는 짓을 보면, 마치 연모하는 자들이 자기들 마음을 숨기려고 괜히 싫어하는 척하는 것으로 보이니, 원…….’
장설은 혀를 끌끌거리며 돌아섰다.
“그만들 하게!”
섬찟할 만큼 단호했다. 장설의 말에 인공과 남채화는 서로 죽일 듯 쏘아보며 움켜쥐고 있던 멱살을 확! 뿌리쳤다.
“인공, 이리 좀 오거라!”
그 목소리가 너무도 근엄해 인공은 찍소리 못하고 슬금슬금 장설에게로 다가갔다.
“너 혹시, 저 할망구를 마음에 두고 있는 것이냐?”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였다. 아니, 은밀하다고 해야 지금 이 분위기에 맞을 것이다.
진지한 장설과는 달리 인공은 펄쩍 뛰며 진저리를 쳤다.
“아니, 형님! 지금 저를 뭘로 보고 이러시는 겁니까? 제가 인공사 주지라는 사실을 잊으신 겁니까?”
“너는 다른 주지들과는 다르지 않으냐.”
“다르긴 뭐가 다르다고 그러십니까? 저도 똑같이 부처님 모시고 수양하는 불제자입니다.”
“불제자라… 물론 글자는 같으나 그 뜻은 엄연히 다르다네. 자네는 술 처마셔, 고기 처먹어, 노래방에서 듣기 남사스러운 가사가 담긴 대중가요 불러, 그런 녀석이 여자는 마다하겠느냐?”
아니라고, 항변해야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인공도 자기가 왜 땡추 소리 들으며 손가락질당하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주위를 한 번 쓱 둘러보는 인공은 공손한 자세로 장설의 귀 가까이에 대고 말했다.
“형님, 저 지금 반성하고 있고요. 앞으로는 절대 그런 일 없을 겁니다. 그러니 제발, 제발 부탁드릴게요. 저런 쭈글쭈글한 할망구와 말도 안 되는 상상일랑 제발, 네?”
장설은 좀 더 가까이 인공의 귀에 대고 더 은밀하게 속삭였다.
“네 녀석도 만만찮게 쭈글쭈글해. 게다가 너는 나잇살까지 붙어 몸매가 장난 아니잖아. 저 할망구는 너에게 비하면 몸이 날렵하잖아.”
장설의 말에 인공은 희번덕이는 눈으로, 저만치 서 있는 남채화와 제 몸을 번갈아 보았다. 몇 번을 바라보며 생각했지만, 달리 항변할 만한 말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형님은 뭐. 저 할망구와 내가 짝짜꿍이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까?”
반가워서 하는 소리는 분명 아니었다. 적잖이 심각한 표정이었다.
“일단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이니 친해 둬서 손해 볼 건 없지 않겠느냐?”
“형님!”
기정사실로 돼 가는 현실에 억울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인공은 눈물이라도 왈칵 쏟아낼 듯 징징거렸다.
“아무리 작전상 필요하다 해도 그렇지, 어떻게 저런 할망구와 저를…….”
“알았다. 그만하자꾸나. 당사자가 들으면 얼마나 상심이 크겠느냐?”
“형님, 그건 또 무슨 말씀입니까? 왠지 뼈를 얻어맞은 느낌인데요.”
“흠, 켕기는 게 있는 모양이구나.”
“맞네요… 뼈를 때린 게…….”
“쓸데없는 소리 그만 집어치워. 기운 빠져.”
“기운이 빠지든지 말든지, 그건 제 문제고요. 제발 그 생사람 잡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은 이제 좀 그만두세요. 형님도 참 그게…….”
인공이 눈치없이 계속 무슨 말인가 하려고 들자, 장설이 그의 입을 막았다.
“얼마나 더 걸어야 할지 기약할 수 없는 여정이다. 체력을 아껴야 할 것이야.”
더 이상의 실랑이는 없었다.
장설은 묵묵히 걸음을 내디뎠다.
네 사람이 다시 개방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을 때였다.
7인의 협객은 골짜기 하나를 사이에 두고 용하 일행을 향해 빠르게 거리를 좁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