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170
170화
“어젯밤 어디에 있었는가?”
서슬이 느껴질 만큼 차가운 목소리였다.
“방주 대인께서 어찌하여 그것을 묻는지는 모르겠으나, 저는 어젯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창의진흥원 제 연구실에 있었습니다.”
비록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고 있었지만, 심장이 떨려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방주가 뭔가 눈치를 챈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 분위기는 낌새 정도가 아니고 확신인데.’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용하의 머릿속은 온통 어떻게든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방주는 생각할 겨를도 주지 않고 숨통을 조였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숨기고 싶은 비밀이 있다.”
“물론입니다, 대인.”
“그런데 만약 그 비밀을 누군가에게 들킨다거나 혹은 여러 사람에게 알려지게 된다면 어떤 기분일지 생각해 본 적 있는가?”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기 전에 비밀을 아는 자들을 처단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답이다. 그리 해야 마음이 놓일 것이다.”
용하는 다시 한번 조아리며 눈을 들어 베일 속 실루엣을 유심히 살폈다.
‘다른 건 모르겠으나, 어깨 폭! 어깨 폭은 딱 저만했다.’
그때였다.
“지금 무엇을 보는 것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느냐?”
쐐기를 박는 듯했다. 심장이 떨려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잠시라도 지체했다간 무슨 의심을 받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안간힘으로 입을 뗐다.
“베일에 가려진 방주 대인을 보고 있었습니다. 대인을 보며 어젯밤 대인의 안전을 위협하는 무슨 일인가 생긴 게 아닐까, 하는 우려를 했습니다.”
적당히 잘 둘러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방주는 목청을 긁는 탁한 소리도 물었다.
“오늘 그대와의 대화에서 내가 안전에 위협을 받았다고 말한 적이 있었던가?”
찔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대화를 이어가다가는 모든 게 탄로 나고 말 것만 같았다. 이를 어쩐다.
“네, 있었습니다.”
“있었다?”
방주의 목소리가 적잖이 격앙돼 있었다.
“나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는데 어찌하여 들었다고 하는 것이냐?”
“네, 소인이 그리 생각하는 건, 누구나 지키고 싶은 비밀이 있다고 하신 말씀과 평소 안 하시던 말씀을 하시기에 무슨 일인가 있었구나, 라고 추측하게 되었습니다.”
“평소 안 하던 말이라, 그것이 무엇이었느냐?”
“평소 소인은 방주 대인과 대화를 나눌 때 베일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당연한 것을 오늘은 따져 물으시니 이상히 여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 무슨 일인가 있었구나.”
아직 용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방주는 이번에도 여지없이 조급함을 드러냈다.
“음, 추측으로 한 말이라는 것이냐?”
비록 조급함이 엿보이기는 했으나, 눈에 띄게 누그러진 말투였다.
“네, 그렇습니다.”
용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그러자 방주는 생각했다.
‘선뜻 대답하는 걸 보니, 내가 너무 예민했나 보군.’
“나가보거라! 하지만 그대가 한 대답 가운데 한 가지는 간과하지 말라.”
“외람되지만 그 한 가지가 무엇입니까?”
“비밀이 알려지기 전에 처단해야 한다고 한 말 말일세.”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듯했다.
‘신중하게 한 말이었는데, 독이 될 줄이야.’
나름 철저하게 계산해서 한 말인데, 무덤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주 궁을 나온 용하는 창의진흥원으로 가는 동안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나를 콕 짚어 불렀다는 건, 그럼 혹시 어젯밤 그 여인이 방주?”
너무 놀란 나머지 용하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렇다면 방주가 여인이었고, 장애인이었단 말인가? 그래서 베일로 가리고.”
바로 그 순간 어젯밤 달빛을 받아 얼핏 보였던 흉측한 얼굴이 전광석화처럼 떠올랐다.
하지만 곧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목이 빠지라 고개를 흔들어댔다.
“아냐! 아냐! 절대 그럴 리 없어.”
강한 부정이었다 대체 무슨 생각이 떠올라서 그토록 몸서리를 친 걸까. 퍼즐 조각이 하나둘 맞춰질 때마다 등골이 오싹했다. 생각하는 것조차 두려웠다.
한편 저잣거리를 서성거리는 인공은 길을 막으며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혹시 강아지를 구할 수 없소?”
게 중에는 유월을 내려다보며 혀를 끌끌 차는 사람도 있었다.
“같은 품종을 찾는 게요?”
“뭐, 이왕이면.”
인공은 힐긋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저리 귀한 품종은 예서 구하기는 힘들게요.”
“귀한 품종이라고요?”
“저런 품종은 서천서역국에나 가야 구할 수 있을 것이오.”
“저기요! 그래도 게 중 뭘 좀 아는 것 같으니, 부탁 좀 하겠소.”
“무엇을 말이오?”
유월이 품종을 알아본 사내는 조금은 능청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인공은 조금은 애원하는 말투로 부탁했다.
“같은 품종으로 한 마리만 구해 주시오.”
인공의 말에 돌아섰던 사내는 고개를 돌려 흘깃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는 곧.
“행색이 남루한 게 가진 것도 없어 보이는데, 뭘 믿고 그리 큰소리를 치는 것이오.”
“아니 이 사람이, 보자 보자 하니까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지껄이네.”
잠자코 듣고만 있던 장설은 사내를 적대시하는 건 그리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어허, 인공 자네야말로 뚫린 입이라고 함부로 지껄이는 것이 아닌가 싶구나.”
인공이 무슨 말인가 하려고 입을 벌렸지만.
“슷!”
장설은 매서운 눈매가 인공의 입을 순식간에 막아버렸다.
그러자 사내는 장설의 눈치를 힐끔 살피고는 인공은 본 체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좀 걸려도 구할 수는 있소이다. 하나, 비용이 만만치 않소.”
“그건 염려하지 마시오. 아쉬운 사람은 나잖소. 그만한 대가를 치를 생각이오.”
“음, 대답하는 걸 들어보니 시원시원한 게 수작질이나 할 사람은 아닌 것 같소.”
“고맙소.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람을 그리 생각해 주니 말이오.”
“참 그건 그렇고. …암캐가 좋겠소, 수캐가 좋겠소?”
개를 구하는 데만 급급해 미처 생각지도 못했는데.
장설은 짧은 시간에 많은 생각을 했다.
‘유월이 암놈이니까 아무래도 수놈이 낫겠지? 그래야 혹시 번식이라도 한번 기대해 볼 게 아닌가. 구하기도 힘든 개라는데.’
그리고 곧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흠, 수캐가 좋겠소.”
“아, 그렇소. 그나마 다행이구려.”
“다행이라니, 그건 또 무슨 소리요?”
“어떤 짐승이든 암놈보다는 수놈이 구하기 쉬운 건 인지상정이잖소.”
“아, 그렇소. 그렇다면 나 역시 다행이라 생각되는구려.”
두 사람이 죽이 척척 맞자, 옆에서 지켜보던 인공은 입만 삐죽거렸다.
“그럼 이제 어찌하면 좋겠소?”
“기거하는 곳에 가서 기다리면 개가 구해지는 대로 찾아가도록 하겠소.”
“그렇게 해준다면야 우리는 그저 고마울 따름이오.”
“기거하는 곳이 어디요?”
“아, 개를 구해올 때까지 번루에 머무를 것이니, 거기로 오시오.”
그 말에 웬일인지 인공의 입이 헤벌쭉 벌어졌다.
‘몇만 며칠이 걸릴지 모르는데 그때까지 번루에 머물겠다고?’
“알겠소. 최대한 빨리 구해서 번루로 가겠소.”
“그나저나 비용은 미리 치러야 하지 않겠소? 한두 푼 드는 것도 아닐 텐데.”
“그럴 거 없소이다. 나도 장사를 해보겠다고 이러는 것인데, 뭔가 남겨 먹으려면 그 정도 밑천은 들여야 하지 않겠소?”
“이문을 남기는 건 당연한 거잖소. 뭐랄까, 상거래의 기본이라고나 할까? 인정하리다.”
“인정한다니 내 마음도 편해졌소. 그럼 시간이 없어서 나 먼저 가보겠소.”
“그럼 수고 좀 해주시오.”
개를 구해다 주겠다는 사내를 떠나보낸 두 사람은 번루 쪽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유독 발걸음이 가벼운 인공을 쳐다보며 장설은 흐뭇한 미소로 물었다.
“그리 좋으냐?”
“그럼요. 일이 이렇게 술술 풀릴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래서 사람을 대할 땐 항상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 사내가 우리에게 귀인이 돼 줄 줄 누가 알았겠느냐?”
“맞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전 항상 제가 행운아라고 생각합니다. 형님 같은 분을 의형제로 둬서 말입니다.”
모처럼 유쾌했다.
그로부터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개방의 창의진흥원의 시계는 저잣거리의 시계보다 느리게 돌아갔다.
뭐랄까, 피를 말리는 듯한 긴장의 연속이라고나 할까.
한편 번루에서 신설 놀음으로 세월을 낚는 인공과 장설에게 하루는 눈을 떴다 감았다 하는 것만큼이나 빠르게 흘렀다.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밖에서 점소이가 고하는 소리가 들렸다.
“형님! 혹시 그자가 아닐까요?”
“개를 구하러 간 그자 말이냐?”
“네.”
“보자 그자와 헤어진 게 언제였느냐?”
“일주일 전입니다.”
“음, 그자일 수도 있겠구나. 우리가 운이 좋다면 말이다.”
“들이게!”
점소이가 물러가는 기척이 들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방문이 열렸다.
예상했던 대로 개를 구하러 간 사내였다. 사내를 본 인공과 장설은 입이 헤벌쭉해졌다.
사내도 반가웠지만, 그보다는 사실 그의 손에 들려 있는 강아지 때문이었다. 크기는 훨씬 작지만 유월이와 똑 닮은 강아지였다. 유월이 사내의 손에 들린 강아지를 올려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멍멍!
깨갱!
“어서 들어오시게.”
장설은 사내를 반가이 맞이하며 점소이에게 말했다.
“가서 주안상을 봐오시오. 술 따를 참한 아가씨들도 말이오.”
점소이는 신이 나서 대답했다.
“분부대로 거행하겠나이다.”
점소이가 나가자 장설이 말했다.
“술 마시기 전에 셈부터 하는 게 옳지 않을까 싶은데 어찌 생각하시오.”
“역시 상도덕을 아시는 분이라 뭐가 달라도 다르시구려.”
“난 말이오. 잔돈 몇 푼 가지고 옥신각신 흥정하고 싶지는 않소.”
“저라고 뭐 잔돈푼 때문에 따지고 싶겠습니까.”
“통 크게 쏠 터이니 부족하면 얘기하시오.”
장설은 두말하지 않고 은자 두 냥을 선뜻 내놓았다. 사내는 자기 앞에 놓인 은자 두 냥을 보고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많은 돈을 개값으로 치르시겠다는 것이오?”
“부족하면 얘기하시오. 얼마든지 더 쳐줄 용의가 있소.”
“아닙니다. 과분합니다.”
사내는 순식간에 태도를 바꿔 예를 갖췄다.
“그럼 어디 우리 유월이 친구 좀 봐도 되겠소?”
“아, 여부가 있겠습니까?”
사내는 애지중지 강아지를 장설에게 건넸다. 강아지를 건네받은 장설은 암수부터 살폈다.
“아이고, 녀석이 아주 실하구먼. 이 품종이 원래 이렇게 뼈가 굵직굵직한 것이오?”
장설의 물음에 사내는 유월을 흘깃 보고는 대답했다.
“저 녀석도 아직 크려면 멀었습니다. 지금보다 몇 배는 더 클 것입니다. 요 녀석도 태어난 지 열흘밖에 안 됐는데 이렇게 크지 않습니까?”
장설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열흘밖에 안 된 강아지가 이리 크단 말이오?”
옆에서 잠자코 있던 인공이 거들었다.
“유월이도 덩치만 컸지, 태어난 지 몇 달 안 된 강아지입니다. 형님.”
“오호라, 머리도 좋고 혈통도 좋다니 금상첨화입니다. 좋은 개를 구해 준 보답으로 우리가 술을 살 터이니 마음껏 드시오.”
“감사합니다. 개값도 후하게 쳐주시고, 술까지 사주신다니, 저는 그저 황송할 따름입니다.”
“아니요. 마음껏 마시고 즐기시오. 여기 아가씨도 참하고 예의가 바르더이다.”
사내의 입이 순식간에 헤벌쭉 벌어졌다.
세 사람은 서로 주거니 받거니 담소까지 나눠가며 유흥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제각각 여기저기 처박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 날 아침.
“형님! 형님! 그만 주무시고 일어나 보십시오.”
인공의 격앙된 목소리가 번루를 뒤흔들었다.
“아침부터 왜 이리 소란스러운 것이냐?”
“형님, 유월이가 안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