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171
171화
“유월이가 안 보인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
조금은 놀란 듯했다. 아직 숙취에서 헤어나지 못한 장설이 겨우 상체를 일으켜 게슴츠레한 눈으로 방안을 두리번거렸다.
“새로 산 강아지도 없어진 것이냐?”
“네, 형님.”
인공은 당장에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은 얼굴이었다.
“어제 함께 술 마신 그, 강아지를 사 온 자는 어디 있느냐?”
“그자도 보이지 않습니다.”
“인사불성이 되도록 술을 마셨는데 이른 아침부터 대체 어딜 간 것이냐?”
“아무리 둘러봐도 번루 안에는 없습니다”
“해우소도 확인해 봤느냐?”
“당연히 제일 먼저 확인했죠. 그자를 사람 취급하는 게 아니었는데, 그게 가장 큰 실수였던 것 같습니다.”
“그자를 지나치게 인간 대접했다고 나를 책망하는 것이냐?”
장설은 무엇이 못마땅했는지 혀를 쯧쯧 찼다.
그때였다.
멍멍!
왈왈!
밖에서 유월이와 어제 사 온 강아지 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곧 약속이라도 한 듯 문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 순간 방 안의 시계는 멈춰버린 듯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인공은 후다닥 다가가 방문을 열어젖혔다.
멍멍!
번루 1층 중앙홀에서 유월이 인공을 올려다보며 꼬리를 흔들었다.
“유월아!”
인공의 목소리는 절규에 가까웠다. 그 반가움을 굳이 말로 하라면 딱! 이산가족 상봉.
그게 다가 아니었다. 유월이 옆에는 강아지를 구해온 사내가 아무렇지 않게 서 있었다.
“아니, 대체 어찌 된 것이오?”
책망하는 말투였다.
“어찌 되다니요, 강아지들 데리고 산책하러 나갔었죠.”
영문을 알 수 없는 사내는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요? 이 새벽에 산책이라니.”
“원래 이 품종은 아침에 한번, 저녁에 한번, 매일 두 차례씩 산책을 시켜줘야 성격도 좋고 잘 큰다고 하여.”
아직 사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아침에 한번, 저녁에 한번! 하루 두 번씩 매일 말이오?”
인공이 격앙된 목소리로 언성을 높이자, 장설이 바로 중재에 나섰다. 저대로 뒀다간 따지기 좋아하는 인공의 고질병이 고개를 들 게 불을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그만하라!”
“형님, 이건 저자가 잘못한 거라고요. 산책도 좋고 다 좋은데, 말은 하고 갔어야죠.”
“그 입 다물라! 이번 일은 우리가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 일이 아닌가.”
“아니, 왜요? 왜 우리가 고마워해야 합니까?”
“아니구나. 고마운 게 다가 아니구나. 미안해해야 하는구나.”
“미안해하다니, 그건 또 왜요?”
“잘 듣게, 인공! 일단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해 주었으니 고맙다고 인사부터 하게.”
“큰소리 내서 미안하오. 그리고 우리 개들 산책시켜 줘서 고맙소.”
인공의 순순히 말을 듣자, 장설도 사내에게 용서를 구했다.
“미안하게 됐소. 우리가 무고한 사람을 개 도둑이라고 의심부터 했으니, 어찌하면 용서해 주시겠소?”
“아닙니다. 미처 거기까지 생각지 못한 제 잘못이 큽니다. 곤히 주무시길래 그냥 나갔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서찰이라도 몇 자 남겼어야 했습니다.”
“너그럽게 생각해 줘서 고맙소. 어서 올라오시오. 해장은 해야 하지 않겠소?”
해장이라는 말에 인공의 입이 헤벌쭉해졌다.
“그리고 앞으로 유월이 산책은 인공 자네가 책임지고 시키도록 하게.”
“그리하겠습니다.”
그날 오후 개방의 방주 궁 앞에서는 위령제가 거행되고 있었다.
예전 용두방주의 궁 앞에 펼쳐져 있던 중앙공원 한쪽에 자리 잡은 신당에서 말이다.
“여기는 은행나무가 있던 자리가 아니오.”
“네, 맞습니다.”
용하의 말에 어찌 된 영문인지 방주는 정중히 대답했다.
“아버지 유언대로 용두방주 궁은 허물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빨리 잊어야 새 삶을 살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이룬 업적은 기려야 하겠기에 신당을 짓고 아버지 봉안묘를 만들었습니다.”
“그날 이후 용두방주께서는 어떤 삶을 사셨소?”
“아버지는 죽은 몸이나 다름없는 저를 살리고자 여생을 전부 바치셨습니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으나 어느 한 곳 성한 데가 없는 저를 위해 안 해본 게 없으셨으니 말입니다.”
“그 일을 앞으로는 내가 하겠소.”
“아닙니다. 더는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힘든 삶을 사는 거 두고 볼 수만은 없습니다.”
“그런 염려는 하지 말고 두고 보시오. 힘겨운 삶을 살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소. 이 김용하가 용두방주를 대신해 지금의 방주를 예전의 소희 낭자로 되돌려 놓겠소.”
“말씀은 고맙습니다. 하지만 현재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의술이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다고 하였습니다.”
“서양의 문물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니 말하리다.”
방주의 눈이 조금은 커졌다.
“먼 미래로 갈 것이오. 그곳에서 첨단 의술로 방주를 치료할 것이니 그리 알고 희망을 잃지 마시오.”
방주는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용하를 바라보았다. 아니 어쩌면 위안이나 얻으라고 던지는 가벼운 말쯤으로 여기는 눈치였다.
“그 전에 한 가지만 허락해 주시오.”
“허락! 제 허락이 필요한 일이라도 있다는 말씀인가요?”
“그렇소. 반드시 방주의 허락이 필요한 것이오.”
“말씀해 보십시오. 제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용하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일전에도 말씀드렸듯이 개방에 무림검도관을 건립할 계획이오.”
“또 그 얘기입니까?”
“천지가 개벽한다 해도 내 생각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오. 여기 무림에서 가장 크고 웅장한 검도관을 건립할 것이오.”
“그 건립을 허락해 달라는 것입니까?”
“그렇소.”
“거기서 무엇을 할 생각이십니까?”
“일전에도 말씀드렸듯이 가르칠 겁니다.”
“무엇을 말입니까?”
“검술을 말이오. 아니 검도를.”
“무림에서 검(劍)은 곧 법(法)입니다.”
“귀가 따갑게 듣던 말이오.”
“그러셨을 겁니다. 무림에서 검을 가르친다는 건, 여러 가지 복잡한 의미를 담고 있을 테니 말입니다.”
“누굴 살해하라고 가르치는 일은 없을 것이오. 자비를 모르는 검으로부터 스스로 보호할 수 있는 검을 가르칠 생각이오.”
“이론에 불과해 보입니다.”
“아니, 그래서 무림검술관이 아닌, 무림검도관을 건립하겠다는 것이오.”
“다시 묻겠습니다. 그 둘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는 것입니까?”
“기교를 가르치기 전에 예를 먼저 가르칠 것이오. 도리(道理) 말이오.”
강직했다.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게다가 그릇됨이 없었다.
“그렇다면 허락하겠습니다. 부디 많은 사람을 위해 힘써 주십시오.”
“고맙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소희 낭자는 내 마음을 헤아려 줄 것이라 믿었소.”
얼마 전 처음 무림검도관 얘기를 꺼냈을 때만 해도 방주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았다.
그랬던 방주가 마침내 무림검도관 건립을 허락한 것이다.
“다음 계획은 무엇입니까?”
“아홉 개 정파와 거래를 할 것입니다.”
“거래라면?”
“그들이 원하는 것 말이오. 그것을 내주고 대가를 치르라고 할 것이오.”
“어떤 대가를 치르게 할 것입니까?”
“상상도 못 할 거액을 요구할 것이오.”
“상대가 거래를 포기하면요?”
“그런 일은 없을 것이오. 아마 흥정하려 들 것이오.”
“흥정! 그렇겠네요. 역시 처음 만났을 때와 다를 바 없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
얼핏 기억을 더듬는 기색이었다.
“처음 저잣거리에서 말입니다.”
“아, 설산으로 가는 정보를 얻고자 저잣거리를 배회했을 때 말이구려. 정보팔이 소녀 소희.”
“그때가 그립습니다. 세상 물정 모르고 해맑았던 그때가 말입니다.”
“그때로 돌아가게 해주겠소.”
용하를 바라보는 방주의 눈에 울음이 차올랐다.
* * *
인공과 장설이 자리를 비운 사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알 길이 없는 두 사람은 유월을 앞세운 채 개방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멍멍!
깽깽!
어느새 친해진 유월과 강아지.
유월의 얼굴보다도 작은 강아지는 유월의 다리 사이를 오가며 계속해서 장난을 쳤다.
“이보게, 인공. 저 녀석 좀 어떻게 해보게.”
“왜요? 둘이 친하게 잘 지내는데.”
“저 녀석이 유월이 가는 길을 방해하고 있지 않은가.”
“아, 그래요? 그래서 유월이 걸음걸이가 저렇게 늦는 거였군요.”
인공은 강아지를 덥석 들어 올렸다. 그리고 품에 안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지만 강아지는 유월이에게만 관심을 보였을 뿐, 인공의 행동에는 좀처럼 호응하지 않았다.
“이 녀석이 벌써 유월이가 마음에 드나 봅니다.”
“잘된 일 아니더냐. 두 녀석이 연을 맺어 강아지를 낳는다면, 유월이 못지않은 천재견들이 나오지 않겠느냐.”
“생각만 해도 설레는데요. 아무래도 용하 녀석이 행운을 부르는 재주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녀석만 만나면 제 인생에 꿀이 뚝뚝 떨어지니 말입니다.”
“그걸 아는 녀석이 용하 일이라면 그렇게 딴지를 거는 것이냐?”
“제가요? 그럴 리가요. 그건 용하에게 제가 가장 든든한 후원자라는 걸 모르고 하시는 말씀이죠.”
“뭘 후원했는데?”
“아, 그거요? 제가 21세기에서.”
인공은 무슨 말인가 하려다 말고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아니! 그게 말이죠. 제가 그 녀석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아낌없이 후원했습니다.”
“뭐, 그랬다면 그런 거겠지.”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표정은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 쓸데없는 소리가 오가고 있을 때였다.
저 멀리 보이는 유월이 멍멍 짖으며 같은 자리를 맴돌았다.
“인공! 저 녀석이 왜 저러는 것이냐?”
“왜요, 무슨 일 있습니까?”
인공은 염려가 그득한 눈으로 유월이 쪽을 바라보았다.
“형님! 저기 뭔가 있는 거 아닙니까?”
“가서 확인해 봐.”
인공은 육중한 몸을 뒤뚱거리며 유월이를 향해 달려갔다.
그를 본 유월은 더 크게 짖었다.
멍멍! 멍멍!
마음이 조급해진 인공은 강아지를 내려놓고 더 빨리 달렸다. 강아지도 깽깽거리며 인공을 따라 힘차게 달렸다. 이윽고 유월이 앞에 선 인공은 다급하게 물었다.
“왜 그러는 것이냐? 대체 무슨 일이 있어서.”
그 순간 유월이 짖어대는 쪽으로 시선을 던졌을 때였다. 뜻밖에도 그곳에 개방임을 알리는 경계석이 보였다. 아직 거리가 멀어서 작은 비석처럼 보였지만, 경계석이라는 건 확실했다.
“형님! 어서 오십시오. 저기 개방이 보입니다.”
“오, 그래! 벌써 개방에 도착했단 말이냐?”
인공과 장설이 창의진흥원을 향해 빠르게 걸음을 내디뎠다. 그 뒤로 유월이 따라 걸었고, 새로 산 강아지도 유월을 따라 아장아장 걸었다.
먼발치서 그 광경을 본 용하가 한달음에 달려왔다. 유월이 이리저리 펄쩍펄쩍 뛰며 반가워했지만 용하에게 유월은 뒷전이었다.
“형님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아니, 여장도 풀지 않은 사람들을 붙잡고 하실 말씀이란 게 대체 무엇입니까?”
“형님들. 방주 말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방주 말이에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었다고요.”
방주가 그동안 자기 자신을 철저하게 감췄던 건 신비주의도 자격지심도 아니었다. 한순간에 산산이 무너져버린 자기 자신을 내보이고 싶지 않아서였다.
용하는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당분간 저는 무림검도관 건립과 정파와의 교류로 바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당분간 두 분께 유월이를 좀 맡겨야 할 것 같습니다.”
그때였다. 방주 궁 쪽에서 이동식 소형 그늘막이 서서히 다가왔다.
“갔던 일은 잘되었는가?”
방주가 소희 낭자임을 알게 되었지만 두 사람은 모른 체했다.
“네, 무사히 다녀왔습니다. 대인.”
그때였다.
멍멍! 멍멍!
유월이 방주를 향해 꼬리를 흔들며 갖은 애교를 떨었다.
하지만 방주의 반응은 냉담할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