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172
172화
“지금 장난하는 것이오?”
목청을 긁어내듯 탁한 목소리로 불쾌함을 드러냈다.
소림파 장문인과의 담판이 시작되었다.
“대인. 지금은 언성을 높일 때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목소리는 온화했지만, 소림파의 장문인을 대하는 표정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정색이었다.
“내가 왜 언성을 높이는지 모르고 하는 소리요?”
소림파 장문인은 더 탁한 목소리로 언성을 높였다.
“무림에 그만한 돈을 마련할 수 있는 문파가 있을 것 같소. 모르긴 해도 단 한 군데도 없을 것이오.”
소림파 장문인의 말에 용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하여 제가 오늘 장문인을 뵙고자 한 것입니다.”
“다른 장문인들은 안 부르고 나만 부른 것이오?”
조금은 은밀한 말투였다.
“일단 소림파가 가장 가까이 있어 대인의 의중을 먼저 들어보고자 합니다.”
“이미 밝혔듯이 우리 소림파는 그만한 돈을 마련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우리가 할 수 없다면 다른 정파도 마찬가지일 것이오.”
“정파의 재정 능력은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걸 제안하려고 합니다.”
용하의 말에 소림파 장문인의 귀가 쫑긋했다. 하지만 곧 자기의 감정을 숨기려 들었다.
“음, 그것이 무엇인지 일단 들어나 보겠소.”
“아직 입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될 이야기지만, 소림파 장문인께는 특별히 말씀드리겠습니다. 혹 이의를 제기하시겠다면 기탄없이 말씀해 주십시오.”
“음, 그리하겠소”
“머지않아 개방에 검도관이 건립됩니다.”
용하의 짧은 한마디에 소림파 장문인의 눈이 조금은 커졌다. 속내를 감춰야 했지만, 전부 감추기엔 너무나 놀랄만한 소식이었다.
“검도관!”
“소림사에 무도관이 있지 않습니까?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아직 놀람이 가시기도 전이었다. 하지만 소림파 장문인은 아무렇지 않은 척 말을 돌렸다.
“그 말은 후진을 양성하겠다는 뜻이오? 그렇다면 듣던 중 반가운 소리가 아닐 수 없구려.”
“대충 알아들은 것 같으니 더는 말 돌리지 않겠습니다. 검도관이 개관되면 수련생을 몇이나 보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수련생?”
“네, 아직 무림에는 검도관이 없습니다. 비록 개방에 세워지는 검도관이지만 저는 이것을 무림을 위해 세워지는 검도관이라 생각하고 무림을 위해 운영할 것입니다.”
“무림을 위한 검도관이라.”
펄쩍 뛸 줄 알았던 소림파 장문인은 의외로 용하의 말에 호응하는 기색이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저는 제가 원하는 만큼의 수련생을 보내주신다면, ‘바람씽’은 그에 보답하는 뜻에서 선물로 드리려고 합니다.”
“오호라, 이를테면 지금은 대금 지급 능력이 안 되니 조금씩 푼돈으로 나눠 갚아라!”
“그렇게 들으셨다면 그 말씀도 맞을 것 같습니다. 어차피 수련생을 무상으로 가르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입니다.”
소림파 장문인의 입가에 얼핏 미소가 피었다.
“당연합니다. 남의 가문에서 전해 내려오는 비급을 배우는데, 공짜로 배우려 들어서야 원.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하였소?”
“세상에는 할 수 없는 것도 있지만,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것도 있습니다.”
소림파 장문인을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깊이 호응했다.
“제가 계획한 검도관 건립은 누구나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누구 하나 그것을 실행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기득권 때문이었겠죠.”
그 순간 용하를 바라보던 소림파 장문인의 눈빛이 경외하는 기색으로 바뀌었다.
“제가 만약 바람씽 대금을 현물로 받고자 했다면 기득권을 누리고자 하는 횡포였을 겁니다. 다시 말해 할 수 있는 걸 안 한 셈이 되는 거죠.”
“그냥 속세의 한 인간으로만 봤는데, 그게 아닌 것 같소.”
“속세의 한 인간 맞습니다. 단지 조금 더 생각하게 된 건, 할 수 있으면서 하지 않는다면 그 찜찜함을 어찌 감당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오호라, 그러니까 창의진흥원 원장께선 무림의 잘못된 관행을 더는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다고 생각하신 게로군요.”
“오해는 없으셨으면 합니다.”
“오해라니요, 그럴 리가 있겠소.”
“그럼 한 가지만 더 부탁해도 되겠습니까?”
“일단 들어보고 결정하겠소.”
“소림파는 개방과 가장 가까이 있었습니다. 아울러 다른 문파에 비해 적대감도 그리 심하지 않았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우리 개방의 동맹이 돼 주십시오.”
소림파 장문인의 눈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동맹이라는 말에 무림맹이 떠올라서였다.
“그것은 아니 될 말이오. 무림에는 오직 정파만 존재해야 하지 않겠소. 중원에 사파(邪派)가 자리 잡게 해서는 아니 될 것이오.”
“대인! 어찌하여 제가 드리는 말씀을 사파라 단정 짓는 것입니까?”
“당장은 아니어도 시간이 지나면 원래 목적은 퇴색되고 무림을 해하는 흑도(黑道)가 판을 칠게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요.”
소림파 장문인의 피 끓는 듯한 목소리에 용하는 얼핏 고개를 숙였다.
“그동안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셨나 봅니다.”
“어디 우여곡절뿐이었겠소.”
“결코 제 생각만 고집하지 않겠습니다.”
“서둘러서 될 일은 아닌 것 같소.”
“물론입니다.”
“순리대로 처리하는 게 좋을 것 같소.”
그날 두 사람의 대화는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소림파를 필두로 나머지 정파들도 무림검도관 건립에 협조 의사를 밝혔다. 더는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용하는 망설이지 않고 방주 궁 쪽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방주 대인! 창의진흥원 원장께서 뵙고자 합니다.”
“어서 들이거라.”
여느 대와 다를 바 없이 문이 스르르 열렸다.
변함없이 베일이 펼쳐져 있었고, 그 안에 빛을 머금은 방주의 모습이 얼핏 보였다.
“용건을 말해 보시오?”
“무림검도관 건립을 서둘러야겠습니다.”
“그 문제는 이미 창의진흥원에 일임하지 않았소.”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장소 선정은 대인께서 하셔야 할 것 같아서.”
용하가 채 말을 끝내기도 전이었다.
“개방의 가장 중심에 무림검도관을 건립하는 건 어떻겠소?”
“그 말씀은?”
더는 말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그 순간 용하의 뇌리를 빠르게 스치는 생각 때문이었다.
‘무림검도관을 개방의 랜드마크로 삼겠다는 것인가.’
그때였다.
“여기 무림에서는 검도관을 따라올 건물이 없을 만큼 웅장하게 지었으면 좋겠소.”
의견을 제시하는 게 아니었다. 굳은 결심을 표하고 있었다.
개방의 랜드마크, 무림검도관!
“알겠습니다. 분부대로 거행하겠습니다.”
용하는 예를 갖추고 돌아갔다.
그날 밤.
용하는 방주와 나란히 정원을 거닐었다. 방주 궁이 있는 중앙 정원이 아닌, 예전 용두방주 궁이 있던 정원의 신당 앞이었다.
“무림검도관 건립을 잘 되고 있으신지요?”
방주의 목소리는 낮에 들었던 것과는 달리 다소곳했다.
“낮에 보고했던 그대로요.”
반면 용하의 목소리는 기개만 남아 있었다.
“저는 무림검도관이 개방을 상징하는 이정표가 되었으면 합니다.”
“소희 낭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있소. 그러니 염려하지 마시오.”
“소녀는 용하 공(公)만 믿을 것입니다.”
“고맙소. 나를 믿고 따라주어서.”
그 순간 용하의 머릿속에 용두방주를 향한 그리움이 몽글거렸다.
‘나를 가장 신뢰해 준 사람.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그런 사람을 배신했으니, 이를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용두방주를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렸다.
“소희 낭자. 아버지의 가시는 길은 편안하였소?”
“그땐 저 또한 사경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아, 그랬구려.”
괜한 얘기를 꺼냈나 싶어 입이 쑥 들어갔다.
“후에 들은 얘기입니다만 아버지는 아픈 딸을 남겨두고 떠나는 아비의 무능을 스스로 원망하였다 들었습니다.”
“그분의 성품이라면 그러고도 남았을 것이오.”
참담함을 감출 수 없었다. 동병상련인 두 사람은 어스름한 달빛 아래를 나란히 걷는 것으로 허기진 그리움을 달랬다.
다음 날.
하루를 시작하는 개방의 아침은 어김없이 활기찼다.
“호위무사를 불러주시오!”
잠시 후 인공과 장설이 용하의 연구실 문을 열었다.
“부르셨습니까, 원장님.”
“학자들을 붙여줄 것이오. 그들과 함께 개방의 정중앙이 어디인지 측량해주시오.”
“이 넓은 개방의 정중앙을 말입니까?”
인공이 소스라쳐서 물었다.
“그리 놀랄 것 없소. 방법은 학자들이 알고 있을 것이오. 두 분 호위무사는 학자들을 밀착 경호하시오.”
“아, 학자들의 안전을 지켜라. 알겠습니다. 그리하겠습니다.”
인공이 떨떠름하게 대답하자, 장설이 꾸짖었다.
“지금 대인 앞에서 뭐 하는 짓이냐? 정중하게 다시 대답하거라.”
“네, 형님. 대인 분부대로 거행하겠습니다.”
“소인들은 이만 물러가도록 하겠습니다.”
“학자들과 함께 가시오.”
“지금 말씀입니까?”
“바로 시작해 주시오. 시간이 많지 않소.”
“알겠습니다.”
그날 이후 인공과 장설은 학자들과 함께 땅을 측량했다.
“이 넓은 땅을 어찌 재겠다는 것이오?”
인공이 고개를 몇 번이나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의 질문에 학자가 대답했다.
“이 드넓은 광야를 어찌 인간의 힘으로 잴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럼 어찌할 작정이시오?”
“우리는 별을 이용해 땅을 측량합니다.”
“별을 이용해서요?”
이게 다 무슨 소리람. 땅을 측량하는 데 별을 이용하다니.
‘손도 닿지 않는 별을 어떻게 이용한다는 거람?’
“네, 그러니까 밤에는 측량하고 낮에는 확인하고.”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방법이 있다니 천만다행이구려.”
인공과 장설은 감동의 도가니였다.
“게다가 선조들이 이미 개방의 중심을 잡아 놓으셨으니, 우리는 그 안에서 정중앙만 찾아내 원장님께 알려드리면 되는 것이니 이보다 쉬운 일이 어디 있습니까?”
인공과 장설의 얼굴에서 근심이 걷혔다.
“아, 정말 다행이오. 나는 남은 삶을 땅에 금긋다 죽는 줄로만 알았소.”
“그럴 순 없는 노릇이죠. 저희라고 평생 땅에 금긋다가 인생 종 치고 싶겠습니까?”
“하긴, 우리보다 살날이 훨씬 더 많이 남은 젊은이들이 그래서는 안 되지.”
잠깐이었지만, 머리 쓰는 자들과 몸 쓰는 자들이 공감대를 이루었다.
“호위무사 어르신들. 저희가 두 분의 호위를 받는 건 저희가 그냥 젊어서가 아니고, 우수한 두뇌여서입니다. 무림에서는 보기 드문 수재들로 서천서역국의 신학문을 공부한.”
“그렇게 잘난 사람들이 제 목숨 하나도 건사하지 못해서 우리 같은 늙은이에게 신세를 지는 것이오?”
“아, 저희가 머리 쓰는 일은 잘하는데, 몸 쓰는 일은 영 젬병이어서. 하다못해 어떤 친구는 숨쉬기운동조차 서툴러 매번 헉헉거리고는 합니다.”
“하이고, 무림검도관 개관하면 우리 창의진흥원 학자들부터 가르쳐야겠구먼.”
잠자코 있던 장설이 혀를 끌끌 찼다. 기회를 놓친 인공은 입만 쩝쩝거렸다.
“저희 같은 약골들도 검술을 연마할 수 있겠습니까?”
“원래 수련이란 게 약골이 강골 되기 위해 하는 것이오.”
“그 말씀은 저희 같은 약골도 검술을 연마하면 스스로 목숨을 지킬 수 있다는 겁니까?”
“머리 좋다는 사람들이 왜 한 번에 딱딱 못 알아듣고 사람 입 아프게 하는 것이오.”
“아, 죄송합니다. 본의 아니게 그만 결례를 저질렀습니다.”
“무림검도관 개관하면 제일 먼저 등록하시오. 특강이니까 수련비는 두 배요.”
“아, 네. 어차피 수련비는 창의진흥원에서 부담할 텐데요, 뭐.”
역시 머리 쓰는 놈답게 간교함을 드러냈다.
“그건 명분이 있을 때 얘기고, 여러분은 검술을 배울 명분이 없지 않소?”
“그 말씀은 업무적으로 굳이 검을 연마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인 거죠?”
“죄다 검객이면 우리 같은 호위무사들은 뭐 먹고 살라고.”
인공이 주억거리자 잠자코 있던 장설이 입을 열었다.
“인석아, 무림검도관이 개관하면 우리 직업도 달라져. 호위무사가 아니고 사범.”
무림검도관을 건립할 땅이 정해지면 다음 순서는 착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