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20
20화
7인의 협객. 그들 시선이 닿은 곳에 풍채가 남다른 한 사내가 서 있었다.
위풍당당한 사내를 본 협객들은 검의 방향을 돌려 그를 공격하겠다는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곧 사내 곁으로 접근하는 데 걸린 시간은 찰나에 불과했다. 순식간에 사내를 향해 거리를 좁혀 온 7인의 협객은, 사내의 인후를 향해 검을 뻗었다. 바로 그때였다. 그들 앞에,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우후죽순 모여들었는데, 그들의 손에 제각각 타구봉이 들려 있었다.
그 광경을 본 지휘자 격인 협객이 격앙된 목소리로 외쳤다.
“멈춰랏!”
단말마와도 같은 카랑한 목소리에, 나머지 협객들이 일제히 검을 회수했다.
“당장 무장을 해제하고 예를 갖추도록 하라! 이분은 개방의 부급 용두방주님이시다.”
7인의 협객은 일제히, 조금 전 용두방주라 소개받은 자에게, 예를 갖추었다.
“저희는 아미파의 호위무사들입니다.”
“아미파의 호위무사들이 개방엔 무슨 일로 온 것이냐?”
“저희가 추적하던 자들이 개방으로 은신하려 들기에, 미리 와서 잠복해 있다가 생포하려는 순간이었습니다.”
협객의 말에 방주의 시선이 남채화의 주검 쪽으로 흘렀다.
“저 여인을 해친 이유가 무엇이냐?”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를 보였습니다. 그리하여 무슨 일을 저지를지 예측할 수 없어 미리 손을 쓴다는 게 그만.”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라?”
“비굴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말입니다.”
“흠, 남채화가 비굴한 태도를 보였다! 좋다. 그럼 저 여인이 개방의 식구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느냐?”
“그것을 알고서야 어찌 감히. 거기까지는 미처 몰랐습니다. 믿어 주십시오.”
거짓말이었다. 협객이 그런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용두방주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모른 척 눈감아 주었다.
“너희들은 내 영역 안에서 내 식구를 살해했다. 그것에 대한 책임은 어떻게 질 것이냐?”
협객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사실 다른 계파의 영역에서 그 영역 사람을 해하고도 이렇게 살아 있다는 게 있을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이었다.
대충 사태 파악을 한 용두방주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렇게 한동안 정적이 흐르고 마침내 무겁게 닫혔던 용두방주의 입이 열렸다.
“남채화에게 잘못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으니, 그 일은 없었던 것으로 하겠다. 그리고 내 영역에서 내 식구를 해한 것에 대한 책임도 더는 묻지 않겠다.”
그 광경을 목도하는 용하는 혀를 내둘렀다. 역시 보통 인물이 아니었어. 어떻게 저 상황에서 저런 결단을 할 수가 있을까. 용하가 방주의 처신에 감동하고 있을 때였다.
“그리고 당신들은 개방에 들어올 수 없소.”
용두방주의 말에 용하와 인공 그리고 장설, 세 사람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용하는 휘둥그레진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격앙된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 왜요?”
“개방은 남채화의 안내를 받아야만 들어올 수 있는 곳이오.”
“그것을 알기에 저희 세 사람은 남채화의 안내를 받아 이곳까지 온 것입니다.”
“그것을 알았다?”
“네, 그렇습니다.”
“아니, 당신들은 모르고 있소.”
“모르다니, 뭘 말입니까?”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명심해서 들으시오. 남채화의 안내를 받는다는 건, 그 남채화가 당신들을 추천한다는 의미가 내포된 것이외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당신들을 추천해야 할 남채화가 비명횡사하고 말았잖소.”
용하의 눈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견딜 수 없어서였다. 불이라도 쏟아낼 듯한 눈으로 남채화를 살해한 협객을 노려보았다. 모든 게 원점으로 돌아갔단 말인가. 용하는 어금니를 으득! 깨물었다.
용두방주가 말했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것이냐?”
그의 말에 7인의 협객은 일제히 예를 갖추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용하의 살기 어린 시선이 용두방주를 향했다. 분위기 심상치 않자 인공이 용하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이보게, 용하! 어서 눈 내리깔게.”
그 말이 용하의 어떤 면을 자극했는지, 그의 눈빛은 더욱 표독해졌다. 자칫 울분을 견디지 못하고 돌이킬 수 없는, 무슨 일이라도 저지르고야 말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용케도 이성을 잃지 않은 채 냉담하게 말했다.
“무엇 하나 확실한 게 없습니다.”
“그게 다 무슨 소리냐?”
“저 사내가 용두방주라는 사실이 아직 입증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입증이라니.”
“커다란 조직의 수장이 내리는 판단이, 저는 왠지 석연찮습니다.”
“석연찮다니, 뭐가? 어떻게?”
“자기 식구가 이유 없이 다른 계파의 협객에게 살해당했습니다. 어떻게 자기 식구를 살해한 자들을 저리도 쉽게 용서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런 그릇은 절대 이렇게 큰 조직의 수장일 수 없습니다.”
그때였다. 이번에는 장설이 용하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그런데 용하야! 잘 들어 봐. 네 녀석이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저 사람은 용두방주일 수밖에 없어.”
장설의 말에 용하는 두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
“아니, 왜요?”
“개방의 부급이라는 자 주변으로 몰려든 거지들을 좀 보거라. 저 숫자가 몇 명이나 될 것 같으냐? 게다가 저들 손에 타구봉이 들려 있지 않느냐. 이게 무엇을 뜻하는 것 같으냐?”
용하는 시원스러운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네 녀석이 아무리 아니라고 우겨도, 셀 수 없을 만큼 모여든 저 거지들이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저 사내가 개방의 부급 용두방주라고…….”
그제야 용하는 고개를 숙였다.
* * *
용하 일행은 고즈넉한 숲길을 걷고 있었다.
…[당신들을 추천할 남채화가 변을 당해 사라졌으니, 나와 면담을 할 생각이 있다면, 다른 남채화를 찾아 그의 안내를 받아 다시 찾아오거라. 그때 면담을 해 주겠다.]…
자꾸 떠오르는 용두방주의 말에 용하는 수차례나 고개를 내둘렀다. 그 뒤를 따르는 인공은 의기소침해서 기운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아마도 남채화 없이 가는 길이어서 줄곧 시무룩한 것으로 짐작되었다.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용하가 착잡한 목소리로 장설에게 한 말이었다.
“달리 방법이 있겠느냐. 용두방주가 알려 준 대로 다른 남채화를 찾아보는 수밖에…….”
“지난번에도 남채화를 만난다는 게 하늘의 별 따기였는데, 그리 쉽게 말씀하신다는 건…….”
“내 생각은 다르다. 어차피 남채화도 우리처럼 개방으로 가려는 사람들을 찾아 매일 저잣거리를 헤매고 다닌 게 아니겠느냐.”
듣고 보니 역시 장설다운 발상이었다.
“그러니까 장설 어른의 말씀은 힘들게 남채화를 찾아 여기저기 돌아다닐 게 아니라, 저잣거리 초입에 진을 치고 남채화가 오기를 기다리자는 말씀인 거죠?”
“흠, 말귀 알아듣는 걸 보니 제법 영특한 녀석이구나.”
“네, 제가 좀 그런 소릴 듣는 편입니다. 장설 어른 말씀에 한 말씀 보태자면, 저잣거리 초입에서 개방으로 가려는 자들이 기다린다고 소문을 내는 건 어떨까요? 그것도 셋씩이나 말입니다.”
21세기의 마케팅 전략이었다. 예비 구매자가 구미를 당겨 할 만한 미끼를 입소문 내는 것.
“오호라, 역시 영특하구나. 내가 사람 보는 눈은 여전한 것 같아 그 또한 기쁘구나.”
“과찬이십니다. 저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운동만 할 줄 알았지, 머리 쓰는 일은 젬병이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영특하다니요.”
그 순간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용하의 눈이 촉촉해졌다. 예리한 장설이 그것을 놓칠 리 없었다. 하지만 못 본 체하는가 싶더니, 끝내 입을 뗐다.
“너처럼 여린 녀석이 한 운동이라는 게 대체 무엇이냐?”
“지금 여린 녀석이라 했습니까? 그런 말 마십시오. 저 이래 봬도 제법 강단 있는 놈입니다.”
25년 검을 연마한 용하다. 그런 용하에게 여린 녀석이라니, 적잖이 자존심이 상했다. 그 속내는 목소리에 여실히 드러났다.
장설은 지그시 뜬 눈으로 용하를 바라보며 처연하게 타일렀다.
“강단? 무림에서 살아남으려면 피도 눈물도 없어야 하거늘. 입에 담고 싶지 않지만, 비굴하다던 남채화의 마지막 모습을 기억하느냐?”
“네.”
아무 생각 없이 대답했다. 하지만 곧 용하는 소스라쳤다. 그런 용하를 본 장설이 처연하게 말을 이어 갔다.
“이제 알겠느냐? 그것이 무림인 게야.”
―훌쩍!
장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누군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인공이었다.
인공은 안 듣는 척하면서도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사내답지 못한 인공의 꼴이 보기 싫었던지, 장설이 나무라듯 한마디 했다.
“왜, 남채화 얘기가 나오니까, 마음이 불편하기라도 한 것이냐?”
“아닙니다, 형님.”
“자! 지난 일들일랑 모두 잊고, 지금부터 다시 시작이다. 알겠느냐? 아우들아!”
“네, 알겠습니다.”
용하와 인공은 입을 모아 대답했다.
* * *
“결국 원점이네요.”
용하가 맥이 풀려 한 소리였다.
“원점으로 돌아온 것만도 어디냐.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람도 있지 않느냐?”
인공의 말은 용하와 자기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하는 것처럼 들렸다. 더 깊은 나락. 21세기에 비하면 무림은 분명 더 깊은 나락이었다.
“김용하!”
용하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예리한 눈으로 흘기듯 인공을 바라보았다.
“우린 언제 원점으로 돌아가냐?”
하소연하듯 말하는 인공이 눈에 거슬렸다. 그러니 당연히 대답할 이유도 없었다.
묵묵히 듣고만 있던 장설이 의아해서 물었다.
“그게 다 무슨 말이냐? 지금 원점으로 돌아오지 않았느냐?”
“형님도 참, 그런 게 있습니다. 왜 그렇게 사사건건 나서실까? 거, 가끔은 알면서도 모른 척도 좀 하시고 그러십시오.”
“아는데 어찌 모른 척을 한다는 말이냐?”
“그게 다 미덕이고 자비입니다. 우리같이 나이 든 사람들은. 그나저나 어디 자리 좀 잡고 앉죠. 언제 올지도 모를 남채화 기다리려면, 적당한 데 자리를 잡아야 하지 않겠어요?”
“네 녀석이, 제발 나 좀 죽여 주시오, 떼를 쓰는구나.”
“죽여 달라고 떼를 쓰다니 그게 다 무슨 말씀입니까?”
“저잣거리에서는 한곳에 오래 머무르면 안 된다는 사실을 모르느냐?”
“그걸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
“만약 한곳에 오래 머문다면, 강호의 무사들이 우리를 수상히 여겨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그게 다 무슨 말씀입니까? 그럼, 저기 좌판 깔고 물건 파는 사람들은요?”
“저들과 우리가 같아 보이느냐?”
“다를 것도 없지 않습니까? 제 눈에는 별 차이 없어 보이는데요.”
“저잣거리 장사치들의 자릿세를 관리하는 자들이 있다. 그런데 자릿세도 내지 않은 자들이 한곳에 오래 머무르면, 저잣거리의 규칙을 어기는 것이니, 그것을 바로 잡기 위해서라도 그래야 마땅하지 않겠느냐?”
그때였다. 저만치 자리 잡은 방자유기집 앞으로 일단의 무사들이 몰려가는 게 보였다.
“형님, 저들 말입니까?”
인공이 은밀하게 한 말이었다.
“어디 보자… 행색으로 보아 자릿세를 관리하는 자들이 맞는 것 같구나. 그런데 저들은 어느 정파를 위해 일하는 자들인지 알 수가 없구나.”
“어느 정파를 위해 일하는 자들인지 알 수가 없다니요?”
“저잣거리의 자릿세를 관리하는 자들은, 대개 의복이나 갓으로 자기들이 어느 정파에 소속돼 있는지 알리는데, 저들에게는 그런 표식이 없어서 하는 말이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하실 겁니까?”
“되도록 빨리 남채화를 만나야지.”
“남채화가 제때 나타나 줄까요?”
“그럼 좋겠지만, 그게 어디 우리 마음대로 된다더냐?”
“어떻게든 해 봐야죠.”
“방법은 한 가지다. 저잣거리 초입부터 저기 끝나는 데까지, 최대한 천천히 걸으면서 시간을 끄는 거.”
“시간을 끌어요?”
“…….”
“언제까지요?”
“남채화가 나타날 때까지.”
“그냥 막연히 기다리자고요?”
용하가 꼬장꼬장 따지고 들자 인공이 나섰다.
“이보게, 용하! 형님 말씀은 남채화가 반드시 나타난다는 뜻이야. 사람이 왜 그렇게 말귀를 못 알아듣고.”
“아니, 정확히 말해 반드시! 라는 말은 없다.”
“형님!”
“달리 방법이 없지 않느냐? 해 저물기 전에 남채화가 나타나 주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
장설의 말이 끝났을 때였다. 세 사람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거의 동시에 뒷짐을 지었다. 그리고 발뒤꿈치부터 사뿐히 지르밟듯 걷기 시작했다.
그들의 걸음걸이는 누가 보아도 한량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