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26
26화
―부엉~ 부엉~ 부우엉~
부엉새 우는 소리가 구슬프게 들리는 밤.
어둠에 휩싸인 용두방주의 궁은 업무가 한창인 낮과는 달리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일과를 마친 비교적 한가한 시간, 사부작사부작 복도를 걷는 발걸음이 있었다.
여느 사람과는 달리 무게감이 느껴지는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창의부흥원 쪽이었다.
한편 불을 환하게 밝힌 창의부흥원에는 용하가 홀로 있었는데, 그는 아직 정리 안 된 일과를 끌어안은 채 무엇엔가 골몰하고 있었다.
스마트폰 속 자료를 수차례나 훑어보는 용하. 의문의 발걸음이 어느새 창의부흥원 문턱을 넘어가고 있었지만, 용하는 아무런 인기척도 감지하지 못한 채 스마트폰에서 눈을 뗄 줄 몰랐다.
그러는 사이 의문의 발걸음은 창의부흥원 복도를 지나 용하의 집무실 그러니까 연구소 앞에서 멈췄다.
그제야 인기척을 감지한 용하는 서둘러 스마트폰을 숨겼다. 밖에서 들리는 숨소리는 점점 거세졌다. 아니, 용하의 귀에 그렇게 들렸을 뿐이다.
문 앞에서 잠시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는 의문의 발걸음은 숨 쉬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용하가 문 쪽을 바라보며 시큰둥하게 중얼거렸다.
“이 시간에 누굴까?”
잠시 멈췄던 발소리가 다시 들렸다. 창의부흥원이 생긴 이래 오늘처럼 이렇게 늦은 시각에 인기척이 있었던 적은 없었다. 그제야 이상하게 여긴 용하는 밖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사부작, 사부작!
‘좀 어설프긴 하지만 이 보법은, 누가 뭐래도 야간 보행술이 분명하다.’
무림에서 야간 보행술을 쓰는 자들은 극히 드물다. 아니, 쓸 이유가 없다.
무림. 워낙 광대무변해서 야간 보행술이나 닌자술을 쓴다는 게 별 의미가 없는 곳이다.
그런데 지금 창의부흥원 복도를 서성거리는 자는 분명 야간 보행술을 쓰고 있다.
‘이곳은 개방이다. 무림의 중심! 게다가 용두방주의 궁이 아닌가.’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밖에서 들리는 인기척에 더욱 의심이 들었다.
‘더군다나 이곳 창의부흥원은 보안이 철저하다. 특히 내가 주로 머무는 이곳 연구실은. 그런 곳에 감히 야간 보행술로 접근을 해 오다니.’
용두방주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용하를 칠 사람은 몇 안 되었다. 아니, 아예 없다고 해야 옳았다. 만에 하나 있다면, 그자는 개방의 부흥을 원하지 않는 자일 것이다.
‘나를 노리는 자가 있다면 그건 분명 개방의 창의적인 부흥을 방해하기 위함일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긴장감이 한층 더했다. 용하는 거리를 좁혀 오는 인기척이 완전히 정체를 드러낼 때까지 모른 척하고 기다렸다. 그뿐 아니라 정체 모를 인기척을 대적할 만반의 준비를 했다.
‘이토록 조심스러운 야간 보행술로 나를 찾아온 자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마른침을 삼키는 용하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아까부터 숨을 죽이고 있어서인지 숨소리가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침착하려 애써도 밖에서 옥죄듯 거리를 좁히는 인기척이 가슴을 짓눌러 두려움은 극으로 치달았다. 검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며 땀이 찼다.
‘나를 아는 자일까? 저자는 과연 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찾아온 것일까?’
그 순간 인기척이 또 한 번 문 앞에서 멈췄다. 용하는 급기야 칼을 뽑아 중단자세를 취했다.
‘달리 방법이 없다. 죽음을 각오하고 대적하는 길밖에.’
용하는 어금니를 질끈 깨물며 전의를 다짐했다. 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문이 열리는 순간 인정사정 볼 것 없이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칼을 뻗을 것이다.
팽팽한 긴장감은 용하에게 용기를 주었고 집중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때였다.
“잠시 이야기 좀 나눌 수 있겠느냐?”
문밖에서 나직하게 들려오는 목소리는 다름 아닌 인공이었다. 지금 인공이 용하를 아래로 대하는 건, 21세기와 관련된 일로 은밀하게 이곳까지 찾아왔다는 뜻이다. 대체 무슨 일일까, 용하는 칼을 접으며 말했다.
“들어오십시오.”
“아니다. 후원에서 기다릴 것이니, 준비하고 나오거라.”
“준비하고 나오라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네 녀석은 잘 때 옷도 안 벗고 자느냐?”
“아뇨,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러니 옷가지라도 좀 걸치고 나오라는 뜻이다.”
“네, 알겠습니다. 인공 어른.”
인공이 후원을 향해 걸음을 내디디고 있을 때였다. 용하는 궁금증이 가득 찬 눈으로 인공을 직시하며 따라 걸었다.
‘대체 무슨 용건이 있어서, 이 늦은 시각에 찾아온 걸까?’
그때였다. 걸음을 멈춘 인공이 마침내 입을 뗐다.
“늦은 시각에 미안하구나.”
“별말씀을요. 그런데 이 늦은 시각에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오신 겁니까?”
“좀 걸으면서 담소라도 나눴으면 하는데, 괜찮겠느냐?”
“그럼요. 그러잖아도 잠도 안 오고 답답하던 참이었는데, 잘됐습니다.”
두 사람은 후원을 벗어나 용두방주의 궁에서 가장 큰 중앙 정원을 걷기 시작했다.
“21세기로 돌아갈 생각은 있는 것이냐?”
“그럼요. 그날을 위해 이 모든 것들을 감수하는 건데요.”
“감수? 믿기지 않는군.”
“네?”
순간 용하는 자기도 모르게 격앙된 목소리를 내고 말았다.
“왜, 내 말이 틀렸단 뜻이냐?”
“아니,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내 눈에는 자네가 이곳 생활에 만족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잘못 본 것이냐?”
“당연히 잘못 보셨죠.”
“그런 사람이 왜 자꾸 일을 벌이고 다니는 걸까?”
“네? 제가 일을 벌이고 다녀요? 그 무슨…….”
“최근 자네의 행보를 보면, 이곳에 정착하려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이야.”
“당치도 않습니다. 저는 말이죠, 21세기에서 지워지기 전에 돌아가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 말이 진심이라면 내 말 새겨들어.”
“네, 인공 어른.”
“방금 자네가 말했듯이 21세기 사람들 기억에서 지워지기 전에 돌아가야 하듯이, 반대로 자네가 이곳 무림을 떠난 뒤에 자네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되네.”
인공의 말에 용하는 일순 현기증을 느꼈다. 미처 생각도 못 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인공의 말을 바로 알아들은 용하는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용하가 순순히 인정하고 제 뜻을 따라 주어서인지, 지금까지 줄곧 심각한 분위기를 유지했던 인공이 화사하게 달라졌다.
“내가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우리가 21세기로 가는 방법만 찾는다면 이깟 개방? 이거 손에 넣는 건 일도 아니야.”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쿠데타라도 일으키자는 겁니까? 그런 말도 안 되는 발상으로 접근하니까 방법이 안 보이는 겁니다. 아시겠어요?”
“아니, 그게 아니고! 21세기로 가는 방법만 알면 그곳으로 돌아가서, 그곳에선 쉽게 구할 수 있는 현대 문물을 가져와서 개방의 갑부인 용두방주에게 파는 거지. 돈이 안 되겠어?”
“너무 야무진 꿈 아닙니까? 우리가 이곳으로 차원 이동한 것도 기적 같은 일이었는데, 마치 제집 드나들 듯 들락거릴 수 있다는 듯 말씀하시네요?”
“여기서 가는 방법만 알면, 제집 드나들 듯 들락거릴 수 있다니까.”
“어떻게요?”
“우리가 광채에 휘감긴 날, 기억할 거 아냐?”
“물론 기억하죠.”
“그날 사패산터널 어디쯤에서 몇 시에 시속 얼마로 달렸는지도 다 기억할 거 아냐?”
용하는 얼핏 기억을 되짚는 듯했다. 그리고 곧 대답했다.
“네, 기억합니다.”
“아직도 내 말을 못 알아듣는 것이냐?”
용하는 미간을 좁히며 생각했다. 정말 인공의 말대로 그렇게만 된다면, 이생망 김 관장에게 팔자 고칠 절호의 찬스가 온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참을 골몰하던 용하가 마침내 입을 뗐다.
“그런데 말이죠. 모든 자동차가 광채를 통과할 수 있을까요?”
“그건 모르는 일이지. 그러니까 내 차로 해야지.”
용하는 충분히 실현 가능한 일이라 생각되었다. 무림으로 차원 이동할 당시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무림에서 21세기로 가는 방법이 있다면, 두 곳을 오가며 상거래를 한다는 게, 아예 불가능하다고 단정 지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인공 어른, 정말 대단하시네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죠? 비근한 예로 총 하나만 가져올 수 있어도 무림에서 짱 먹는 거잖아요.”
“그런 것보다 킥보드나 전동휠 같은 거 가져다 보여 주면 방주가 뻑이 가지 않겠느냐?”
“그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전기를 필요로 하는 건 아무리 좋아도 그림의 떡입니다. 이미 아시겠지만, 여기선 죽었다 깨나도 전기 못 구합니다.”
용하의 말에 인공은 목을 쥐어짜며 강조했다.
“그러니까 돈이 된다는 거지. 한 번 충전해다 주는데 얼마! 딱 매기면 되잖아.”
얘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금방 부자가 된 듯했다.
“아무튼 더는 엮이지 않도록 자중해!”
용하는 깊은 눈으로 인공을 바라보았다. 다짐의 의미였다. 인공은 용하가 전하는 메시지를 찰떡같이 알아차렸다.
* * *
그날 아침.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용하는 창의부흥원을 서성거렸다. 아직도 인공이 했던 말들이 뇌리를 떠나지 않아서였다. 21세기로 가는 방법만 찾을 수 있다면. 용하는 자신도 모르게 구레나룻에 힘이 들어갔다.
“원장님, 용두방주님 전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무슨 용무로 온 것이냐고 물어보시오.”
용하의 물음에 전갈 온 용두방주전 사람이 대답했다.
“회의 들어가기 전 용두방주님 전용실에서 잠시 뵙자고 하십니다.”
“그리 하겠다고 전하시오.”
용두방주전의 사람이 물러가자, 용하는 창의부흥원 문을 열었다.
문지기들이 용하를 에워싸며 안내할 태세를 갖추었다. 그 순간 용하는 그들의 행동이 적잖이 기분이 언짢았다.
“그대들은 나를 호위하는 것이오, 감시하는 것이오?”
용하의 이 말은 도발이나 마찬가지였다. 엄연히 문지기들도 용두방주의 사람이거늘. 용하의 얼굴에 얼핏 후회의 기운이 감돌았다.
“저희는 원장님을 호위하는 사람들입니다”
차가웠지만 듣기는 좋은 말이었다.
“미안하오. 밤새 잠을 설쳤더니 괜한 짜증이 나서…….”
용하는 문지기들의 안내를 받아 용두방주의 밀실로 향했다.
이윽고 용두방주의 밀실 앞에 도착했을 때였다.
“용두방주님, 김 원장 드셨습니다.”
용두방주의 밀실 문지기의 보고에 그는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용하를 맞이했다.
“어서 들이도록 하거라!”
이윽고 문이 열리고 용하가 용두방주의 일실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항상 앉던 바로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평소 그러지 않던 방주가 서둘러 단상에서 내려오며 상전 대하듯 말했다.
“편히 앉으시오. 밤사이 창의부흥전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게요? 안색이 영 편치 않아 보이시오.”
방주의 뜬금없는 반응에 용하는 어리둥절했다.
“안 되겠소. 오늘 일은 다음 날로 미루고 연회를 합시다.”
지금 용하가 느끼기에 용두방주의 태도는 무엇인가 얼렁뚱땅 넘기려는 수작이 분명했다.
한편 연회라는 말에 용하의 머리에 [힐링, healing]이란 낱말이 불현듯 스쳤다.
용두방주는 문을 열어 문지기들에게 고했다.
“당장 연회를 준비하라. 음식은 보양식으로 준비하도록 하고, 연회를 즐길 사람은 창의부흥원의 김용하 원장과 나, 단둘뿐이니 음식을 가져다줄 하인들 이외에는 아무도 들이지 말라. 그리고 풍악도 필요 없으니, 유유자적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유지하라!”
그리고 용하에게 말했다.
“연회장으로 갑시다. 그곳에서 업무에 지친 심신을 달래면 좀 나아질 것이오.”
특별히 항변할 말도 없었고, 기회도 없었고, 이유도 없었다.
문지기들을 따라 걷고 있는 용두방주의 뒤를 따라 걷는 용하는 인공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최근 자네의 행보를 보면, 이곳에 정착하려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이야…
…방금 자네가 말했듯이 21세기 사람들 기억에서 지워지기 전에 돌아가야 하듯이…
…반대로 자네가 이곳 무림을 떠난 뒤에 자네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되네…
인공의 한마디 충고는 메아리가 되어 용하의 귓전을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