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29
29화
“연회를 준비하라.”
용두방주가 호령하듯 내린 명이었다.
그의 말에 하녀들은 중대한 비상이라도 걸린 듯 일사불란하고 빠르게 움직였다.
그 광경이 일상에 비하면 화면을 두 배로 빠르게 돌려놓은 것 같았다.
“많은 사람이 올 것이니 풍악과 함께 성대하게!”
재촉이라도 하듯 또 한 번의 호령이 들렸을 때였다. 방주의 지나친 행태가 소희의 눈에도 민망해 보였던지, 그녀가 방주의 손을 꼭 잡으며 해맑은 눈으로 용하를 바라보았다.
소희의 표정은 흔히 쑥스럽거나 미안하거나 혹은 어색할 때 보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곧 소희 시선이 방주에게 흘렀다. 소희와 잠시 시선이 부딪친 방주는 부러 못 본 체하며 용하에게 청했다.
“이보시게, 김 원장! 예서 꾸물거리고 있을 게 아니라, 말 나온 김에 연회장으로 갑시다.”
용하의 표정에 난처한 기색이 흘렀지만, 그는 살짝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대답하고 방주의 뒤를 따라 걸었다.
방주와 소희 그리고 용하. 세 사람은 연회장 쪽으로 길게 이어진 복도를 걷고 있었다.
방주와 소희의 뒤를 따라 걷는 용하는 웬일인지 두 사람이 역겹게 느껴졌다.
그런 용하의 심경을 방주와 소희는 아는지.
‘이런 게 바로 가진 것들의 돈지랄이다. 상위 1%를 제외한 대다수 사람이 몇 날 며칠을 고민해야 하는 걸 가진 것들은 즉흥적으로 실행에 옮기지 않는가.’
용하와 방주의 치열한 신경전은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두 사람이 서로에게서 느끼는 기 싸움은 피를 말리는 듯했다.
연회장에 도착해서도 두 사람의 속셈은 평행선을 달렸다.
용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지긋지긋한 무림을 탈출해, 21세기로 돌아가고야 말겠다고.
방주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용하의 발목을 잡아 소희와의 정략결혼을 반드시 성사시키겠노라고.
무엇으로도 좁혀질 수 없는 두 사람의 길고 긴 평행선.
언제든지 성대한 향연을 열어도 부족함이 없는 연회장을 보니, 불현듯 며칠 전 비명에 죽음을 맞이한 하녀가 떠올랐다.
잠깐의 인연이었지만 여느 여인과는 달리 인상적이었던 연회장 하녀. 그래서인지 괜히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울음이 차올랐다.
그날의 참담함이 갑자기 물 밀듯 다가와 눈시울을 뜨겁게 달구었다. 그때였다.
“용하. 아니, 김용하 원장!”
“네, 방주 대인.”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는 것이오?”
“별일 아닙니다. 갑자기 서역에서 들여온 신물(新物)이 떠올라 그것에 잠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신물? 그것에 관한 연구는 이미 끝났다고 하지 않았소?”
“물론 그리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신물이란 것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으니 어쩔 수 없이…….”
“신물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 말씀은 지금보다 더 쓸모 있는 대단한 무엇인가 기대해도 된다는 말이오?”
“네, 어쩌면요!”
“오호라! 그렇다면 오늘 연회는 더욱 성대하게 치러야 하겠구려.”
“대인, 아직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니…….”
“이보시게, 김 원장! 내게만 살짝 귀띔이라도 해 줄 수 있겠소?”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말씀드리죠. 서역의 신물을 비밀병기로 은밀하게 세상에 내놓을 것인지. 아니면 인간에게 유익한 레저용품으로 세상에 선보일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레저용품?! 방금 레저용품이라고 하셨소?”
“네, 그리 대답했습니다.”
“레저! 음, 레저라……. 저 혹시 말이오. 그 레저라는 요상한 말은 대체 무슨 뜻이며 어디에서 온 말이오?”
“아, 레저란 말은 여가를 즐긴다는 뜻이며 서역에서 온 말입니다.”
“서역의 말을 김 원장이 어찌 아는 것이오?”
뜻밖의 질문 공세에 용하는 아찔했다. 용주방주의 의심이 극에 달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점차 증폭되는 방주의 의문. 그에 따른 질문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그의 집요한 질문 공세에 용하는 옥죄듯 궁지에 몰렸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소희가 이번에도 어김없이 용하의 방패막이가 돼 주었다.
“아버지, 제가 이번에 신물을 가져오며 서역의 사람에게서 들은 것을 창의부흥원 원장님께 말씀드렸었습니다.”
“오호라, 그래? 음, 그랬었구나!”
용두방주는 소희가 한 일이라면 작은 것에도 크게 감격하는 사람이었다.
“역시 우리 소희는 해박하고 영특하다니까. 보이시오, 김 원장? 우리 소희가 얼마나 영특한 여인인지.”
‘여인인지?’
방주가 소희를 여인이라 칭한 건, 이제 소희가 아이가 아닌, 성인임을 강조하려는 의도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소희는 방주의 칭찬에 그저 해맑은 표정이었다. 반면 용하는 방주의 속내를 단번에 눈치챘다.
그때였다. 웬일인지 방주는 상체를 용하에게 바짝 붙이고는 은밀하게 말했다.
“우리 소희를 어떻게 생각하시오?”
가진 자의 횡포인가. 방주는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속내를 드러냈다. 용하는 별로 놀라지도 않았다.
며칠 전 방주가 하녀를 가차 없이 베어 버렸을 때 이미 예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글쎄요, 무슨 뜻으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용하는 일부러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것을 드러내기라도 하듯 능청을 떨었다.
“정말 몰라서 하는 말이오?”
“그 말씀은 뭔가 있다는 말씀입니까?”
용하는 당황하지 않고 방주가 던지는 콤비블로우를 온몸으로 막아내며 차분하게 카운터펀치를 날렸다.
‘오호라, 녀석이 나와 한번 해보자는 것이구나.’
방주도 만만치 않았다. 백전노장 방주가 애송이 용하의 카운터펀치를 어이구, 고맙소! 하고 맞아 줄 리 없었다. 방주는 의미심장한 눈으로 용하를 흘깃 훔쳐보았다.
‘아님, 우리 소희가 마음에 차지 않는 건가?’
하지만 곧 무슨 심술이 났는지, 용하를 곱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럴 리 없지. 무림 천하에 우리 소희 만한 미인이 어디 있다고. 어디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건방진 놈!’
그 순간 두 사람은 잠시 눈이 마주쳤다. 방주와 눈이 마주친 용하는 해맑은 미소로 자신의 감정을 위장했다. 방주의 속내를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라도 해야 방주의 음모를 피해 갈 수 있을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넋 놓고 있다가는 저 노인의 계략에 말려들고 말 것이다.’
용하는 각오를 새롭게 다졌다. 방주의 시선이 소희에게로 흘렀다. 그의 얼굴에 조금 전 굳었던 표정은 온데간데없고 흐뭇한 미소가 만연했다. 저 미소! 용두방주의 얼굴에서 생겨나는 미소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해맑았다.
그 표정 그대로 방주는, 평정심을 잃지 않은 채 생각했다.
‘하긴, 아비인 내 눈에만 곱고 어여쁘게 보일 수도……. 소희는 누가 뭐래도 내 여식이니까…….’
그 순간 웬일인지 방주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졌고, 그것을 본 용하는 안쓰러울 따름이었다.
연회에 참석하기 위해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그들 속에 인공과 장설도 눈에 띄었다.
인공과 장설을 본 용하는 옅은 미소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것을 본 인공과 장설은 얼핏 고개를 숙여 화답했다.
찰나에 불과한 순간 은밀하게 이루어진 세 사람의 눈인사조차 방주는 놓치지 않았다.
그 광경을 본 용두방주, 이번에는 다른 생각에 빠져들었다.
‘무림에서는 보기 드물게 신망이 두터운 세 사람…….’
용하… 인공… 장설! 방주의 시선이 세 사람에게 일순 머물렀다.
‘저자들이 오직 나에게만 충성을 맹세해 준다면… 소림, 무당, 화산, 곤륜 등 아홉 개 정파가 한꺼번에 덤벼 온다 해도 두렵지 않을 텐데.’
용두방주는 소희와의 정략결혼으로 용하의 발을 묶어 놓으려는 계략이 여의치 않자, 이번에는 용하 일행을 탐내고 있었다. 그리고 더불어 생각했다.
‘김용하! 우리 소희가 어디가 어때서 그리 정을 못 주는 것이냐? 소희가 여인으로서 눈에 차지 않는다면, 소희가 가진 능력은 어찌 생각하는가? 여인으로서 안 된다면 소희의 능력으로 놈을 매료시키는 수밖에.’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용두방주는 일부러 들으라는 듯 큰소리로 외쳤다.
“소희야! 서역으로 배움의 길을 떠났던 네가 무사히 돌아온 것을 축하하느라, 수많은 사람이 연회장에 몰려오는구나. 혹시 오늘 날씨가 갑자기 흐려지는 일은 없을지 염려되는구나.”
“아버지, 제가 오늘 날씨를 알아보겠습니다.”
소희의 말에 용하의 두 눈이 번쩍했다.
‘날씨를 알아본다고? 일기예보? 그렇다면 소희가 천문학을 공부했다는 말인가.’
실낱같은 희망이 보였다. 사실 광채에 대한 여러 가지 추론 가운데, 일식과 월식이 차원 이동에 무슨 작용한 건 아닌지, 그것에 무게가 실렸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추론이기는 하지만.
‘정말 천문학을 공부했다면 우주에 대한 개념을 가졌을 것이고, 그렇다면 차원 이동에 대해 조금만 설명해 주면, 소희 저 아이가 천문학적인 지식으로 그 해법을 찾아낼지도 모른다.’
그때였다. 방주가 용하의 귀에 은밀하게 속삭였다.
“이보시게, 김 원장. 오늘 신물을 공개할 것이오?”
용하는 바로 대답을 못 하고 머뭇거렸다.
“왜 망설이는 것이오.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게요?”
웬일인지 난처한 표정을 짓는 용하, 그는 미간을 좁히며 대답했다.
“기로에 섰습니다.”
한참을 고심 끝에 한 대답이었다. 그 말에 방주는 두 눈을 치켜뜨며 다시 물었다.
“무어라! 기로?”
“네, 대인.”
용하의 대답에는 조금도 굽힘이 없었다.
“어떤 기로에 선 것인지 내게 말해 줄 수 있겠소?”
“네. 대인께 못 드릴 말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허나, 지금은 좀 곤란합니다.”
“지금은 곤란하다! 이유가 무엇이오?”
“말씀드리자면 깁니다. 더군다나 연회장은 사람이 너무 많아 보안에도 취약한 공간입니다.”
용두방주는 시선을 먼 곳에 둔 채 잠시 고심하는 기색이었다. 그리고 곧 답을 주었다.
“알겠소. 그 문제는 나중에 다시 거론하기로 하겠소.”
* * *
소희의 환영 연회가 있은 지도 며칠이 흘렀다.
서둘러 조반을 마친 용두방주는 웬일인지 몹시 격분해 소희를 찾아 나섰다.
‘대체 정신을 어디에다 두고 있길래, 나 혼자 조반을 들게 하는 것인가.’
방주는 지금, 오늘 조반을 혼자 먹은 것을 두고 몹시 화가 나 있었다.
“모름지기 사람 사는 데 필요한 건 딱 사람 사는 데 필요한 만큼만 있어야지, 그게 지나치면 시간 낭비에, 자원 낭비에, 체력 낭비에, 경제적 손실까지. 그게 다가 아니지, 본의 아니게 다른 사람에게 민폐까지 끼치고 말이야.”
혼자 중얼거리며 소희를 찾아 동분서주하고 있을 때였다.
“무얼 그리 중얼거리며 바삐 다니세요?”
소희의 목소리였다. 방주는 반가움을 금치 못하며 소리가 들린 쪽을 올려다보았다.
잘 자라기로 유명한 은행나무 40여 미터 위에 윙슈트를 입은 소희가 당장에라도 뛰어내릴 듯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그것을 본 방주는 소스라쳤다.
“아니, 소희야! 너 지금 거기서 뭐 하고 있는 것이냐?”
“서역의 신물을 실험하고 있습니다.”
방주의 걱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해맑게 대답하는 소희. 그리고 실험에 참여한 용하가 방주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통계를 내고 있었습니다.”
“무어라! 통계?”
“연회 때 잠시 거론했던 것 말입니다. 서역의 신물을 어찌하면 가장 유효적절하게 사용할 것인지 기로에 섰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것에 대한 통계 말입니다.”
그러잖아도 궁금하던 차였는데, 용하가 그날 궁금하게 했던 문제를 거론하니 더는 할 말이 없었다.
“이제 40m와 70m 두 개만 남겨 두고 있습니다.”
“40m와 70m라니! 그게 다 무슨 소리요?”
“아, 그러니까 말입니다. 열 세자 남짓한 높이와 스물 세자 남짓한 높이. 그렇게 두 개가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아니, 지금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요? 정녕 저 높은 곳에서 우리 소희가 뛰어내리도록 할 것이란 말이오?”
“네, 그리할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서역의 신물을 아는 사람 중에 가장 몸무게가 가벼운 소희 낭자가 실험에 가장 적합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때였다. 어느새 몸을 날린 소희가 하늘을 비행하고 있었다. 그것을 본 용두방주는 경악해서 비명을 질렀다. 반면 용하는 그 경이로운 광경을 올려다보며 감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