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3
3화
“스님, 저잣거리입니다!”
세상 모든 걸 다 얻은 것 같은 목소리였다.
“어수선한 걸 보니 장이 서는 모양이구나.”
“장이 서다니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뭐, 먼 과거로 차원 이동이라도 했다는 겁니까?”
“차원 이동이 아니고, 환생!”
“환생은 죽은 사람이 하는 거고, 우리는 지금 이렇게 멀쩡히 살아 있잖아요. 그러니까, 차원 이동이죠.”
“그걸 어찌 장담하느냐? 죽음을 경험하지 못한 자의 말치고는 자기주장이 강한 편이구나.”
“전혀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죽음이란 차갑고 먼 길을 홀로 타박거려야 하는 기나긴 여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와 스님은 적어도 그런 경험을 한 적은 없잖아요? 그러니 환생이 아니고 차원 이동이라는 겁니다.”
“그래, 알았다 인석아! 네 녀석 말대로 차원 이동이라고 치자. 그럼 지금이 어느 시대일 거라고 생각하느냐? 조선 시대? 아님, 고려 시대?”
“아뇨. 사패산에서 내려왔으니까 양주 아님, 의정부겠죠.”
“누가 지명 물어봤어? 그렇게 따지면 은평구나 도봉구 또는 노원구일 수도 있지 않느냐.”
“서울이 아닌 건 분명합니다. 보세요! 촌스럽잖아요. 게다가 스님 말씀대로 장이 서질 않나. 모르긴 해도 저렇게 추레하게 장이 서는 서울은 없거든요.”
두 사람은 지금, 누구 하나 자기 처지를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차원 이동이든 환생이든, 그게 다 무슨 상관이겠느냐. 지금 우리에겐 다른 것보다 이 옷차림! 이것부터 좀 어떻게 해결하고 봐야겠구나.”
“왜요? 옷차림이 어때서요? 그거라면 우리가 문제가 아니라, 저기 보이는 사람들이 더 문제 아닌가요?”
“잘 파악하고 있구나. 저 사람들 옷차림이 문제여서 죄 없는 우리가, 우리의 정체를 당분간 숨겨야 할 것 같다는 말이다.”
“그래서요, 어떡하실 생각인데요?”
인공은 잠시 말을 아낀 채 고민하는 기색이더니, 곧.
“따라오거라.”
몇 번을 다시 봐도 저잣거리를 오가는 사람들 옷차림이 분명 어딘가 어색했다.
“스님, 사람들 옷차림이 다들 왜 저 모양이죠?”
“분명 한복은 아니지?”
“글쎄요, 사극에서 보던 것과는 완전 다른데요.”
“내 생각엔 말이다. 저 사람들 옷차림으로 보아, 여긴 중국이 아닌가 싶다.”
용하는 두 눈을 치켜뜨며 물었다.
“중국이요?”
“인석아! 놀라더라도 거, 티 좀 내지 말고 놀라거라.”
인공의 말을 찰떡같이 알아들은 용하는 얼른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러고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중국이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저 사람들 옷차림을 좀 보거라. 다들 무슨 동네 짜장면집 주방장 같지 않느냐.”
인공은 이곳이 중국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무엇인가 큰 발견이라도 한 듯 우쭐거리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제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대충 윤곽이 잡히는구나.”
“그런 정보는 혼자 독차지하지 말고 공유하시죠.”
“그러니까 그게, 우리가 지금 21세기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죽었고, 운 좋게 바로 중국에서 환생한 거야. 어때?”
인공이 지금 교통사고라고 단정 짓는 이유는, 그 책임을 용하에게 물으려는 꼼수였다. 절대 말려들지 말자. 어떻게든 빠져나가야만 한다. 능구렁이 인공의 수에 말린다는 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러려면 일단 사고가 아니라는 방증(傍證)을 보여야만 했다.
“아니죠! 교통사고가 난 게 아니고, 교통사고가 날 뻔했는데, 바로 그 순간 우리에게 어떤 기적이 일어난 거죠. 차원 이동!”
어떻게든 사고가 아니었다고 우겨야 했지만, 그래도 일말의 양심은 있어,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러니까 네 녀석 말은, 곧 죽어도 사고는 아니었다!”
“그렇죠! 제가 두 눈 똑바로 뜨고 봤거든요. 사패산터널 속에서 갑자기 정체 모를 광채(光彩)가 시야를 가려, 앞을 볼 수 없는 상태에서 광채 속으로 한없이 빨려 들어갔고, 제정신이 돌아왔을 땐, 스님 말대로 우리가 중국에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환생이 아니고 차원 이동이죠. 확실합니다.”
“환생이든 차원 이동이든, 지금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이야. 일단 정체부터 숨기고 사람들 속으로 파고들어 돌아갈 방법부터 찾아야지.”
* * *
“저놈 잡아라! 저놈들 잡아라!”
숨이 턱까지 차오른 사내의 목소리가 저잣거리를 쩌렁쩌렁 울렸다.
“스님! 이깟 도포 두 벌이 뭐라고 우리가 이렇게 도망을 쳐야 합니까?”
인공은 용하의 말은 뒷전이고 도망치기 바빴다.
“왜 대답을 못 하세요? 우리가 왜 이렇게 도망을 쳐야 하는 겁니까?”
여전히 대답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입 조심 하느라 그러는 겁니까? 그렇게 매사에 신중한 사람이 왜 그러셨어요? 입 조심이 중요한 건 알면서, 손 조심 해야 한다는 건 몰랐나 보죠?”
“그건 나중에 얘기하기로 하고, 일단 여기서 빠져나가는 게 급선무야.”
인공은 숨을 헐떡거리며 겨우 한마디 내뱉고는 쏜살같이 앞질러 달아났다.
“지금 도망치는 게 능사가 아니고, 이것부터 해결해야죠. 이건 엄연히 범죄입니다.”
두 사람이 도망자 신세가 된 건, 지금 그들의 몸에 두르고 있는 두 벌의 도포 때문이었다.
“나이 먹을 만큼 먹은 양반이 정말 이렇게 살 겁니까? 차라리 입을 함부로 놀리는 게 낫지, 도적질이 뭡니까, 도적질이? 쪽팔리게.”
이쯤 했으면 무슨 반응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인공은 조금 전과 달라진 게 없었다.
“아, 스님! 능청 적당히 떨고 대답 좀 해 보십시오. 이깟 도포 두 벌 가지고 언제까지 도망만 치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 아닙니까.”
“어헛, 이깟 도포 두 벌이라니, 말이 좀 심하구나!”
“곧 죽어도 큰소리는.”
이제 막 두 사람이 휭! 지나간 자리에, 한 줄기 바람과 함께 작은 흙먼지가 날렸다.
“저놈 잡아라, 저놈들 잡아라!”
추적자의 목소리가 빠르게 가까워지더니 급기야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아무리 악을 써도 아무도 도우려 들지 않았다. 이유는 인상이 너무 험상궂어 선량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으득! 어디 두고 보자. 사람들 반응에 추적자는 이를 갈며 각오를 다졌다.
“저놈들 잡아라! 누가 저놈들 좀 잡아 주시오. 저자들은 무전취식은 물론, 도적질까지 하고 달아나는 자들이오.”
어느덧 저잣거리 한복판에 도착한 인공과 용하는 눈에 띄게 움직임이 줄어들었다. 뭐야, 왜 갑자기 이래. 벌써 지친 거야? 용하는 목을 쭉 빼고 인공 앞으로 펼쳐진 광경을 바라보았다. 설상가상, 그의 시선이 닿은 곳에 상설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길을 사이에 두고 양옆으로 매대가 즐비했다.
“스님,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줄행랑만 치고 있을 겁니까?”
길게 늘어선 매대에 각양각색의 진귀한 물건들이 진열돼 있었다. 모두 선남선녀의 호기심을 자극해 정신을 쏙 빼놓기에 충분했다. 그 틈을 타 사람들 주머니를 제 주머니 드나들듯 하는 손이 있었다. 인공은 소매치기가 빼낸 엽전 꾸러미를 원래 주인의 주머니 속으로 되돌려 넣기 바빴다.
인공의 움직임이 어찌나 빨랐던지, 소매치기를 한 사람도 소매치기를 당한 사람도,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동체시력이 뛰어난 용하조차도 눈이 뒤엉켜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스님,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그렇게 한가하세요? 주제 파악을 하셔야죠.”
“뭣이라, 주제 파악!”
“그새 잊었어요?”
“잊다니, 뭘?”
“우린 지금 쫓기는 몸이라고요. 제 코가 석 자면서 이 무슨 오지랖입니까?”
“그러니까 네 녀석 말은, 쫓기는 몸은 불의를 보고도 못 본 체하라는 것이냐?”
“그런 뜻이 아니잖아요. 제 말은, 우리가 지금 남들까지 챙길 여력이 있느냐는 거죠.”
“그만하거라! 어쩔 수 없이 시간을 지체했다만, 대세에 지장을 초래하진 않을 것이니, 너무 애태우지 말거라.”
바로 그 순간 난데없이 인공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그 입 다물고 내가 뛰어! 하면 젖 먹던 힘을 다해 무조건 앞만 보고 달리거라.”
적잖이 긴장된 말투였다. 인공의 목소리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알리는 듯했다. 사람들 틈을 비집으며 겨우 몇 걸음을 내디뎠을 때였다. 이번에는 우마차의 행렬이 발목을 잡았다. 사람들은 사람들대로, 우마차는 우마차대로, 서로 뒤엉켜 옴짝달싹 못 했다.
* * *
북적거리는 인파를 피해 저잣거리에서 멀어진 두 사람은 광활한 대지를 걷고 있었다.
추적자의 목소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더 이상 도망칠 필요도 없어졌다. 잠시 평화가 찾아오자 인공은 저잣거리에서 나눴던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아까 하던 얘기나 마무리 짓자꾸나.”
“아까 하던 얘기! 뭐, 도포 훔친 거요?”
“그 얘기도 물론 마무리를 지어야지. 그런데 그 전에.”
“그 전에, 뭐요?”
“그게 말이다. 내 마지막 기억은 일산에서 술을 마신 후 대리운전을 불러 집으로 가던 중이었거든. 물론 수도권 제1외곽순환도로에 올라간 후에는 잠에 빠져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고.”
“그래서요?”
“그리고 깨어나 보니 이곳이다. 어찌 생각하느냐?”
“제 잘못입니다.”
날을 세울 것만 같았던 용하는 의외로 쉽게 자기 잘못임을 인정했다.
“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리냐?”
“제가 밤낮없이 일에 쫓기다 보니 잠을 못 자서 그만.”
인공은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갸웃했다.
“화내지 말고 차분하게 들으세요. 저 말입니다. 한 푼이라도 더 벌겠다고 손수 수련생 모집 전단지 돌리고, 인건비 아끼려고 사범도 두지 않고 예비 수련생 상담에, 수련 지도까지. 잠을 줄여 가며 혼자 다 했습니다.”
“그리고 밤에는 대리운전까지 한 게야?”
그 물음에는 차마 대답할 수가 없어 고개를 떨구었다.
“졸음운전을 했겠구먼.”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차마 대답할 수가 없었다.
“어차피 일이 이 지경이 된 거, 책임을 묻지는 않을 것이다. 단지 우리에게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곳에 있게 된 건지, 그게 궁금하구나.”
“사패산터널 안에서 커다란 광채에 휘감겼습니다.”
“커다란 광채라.”
인공의 표정은 무엇인가 알고 있는 듯했다.
“그럼 우리가 죽은 것이냐, 살아 있는 것이냐?”
“그게 다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가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 있는데.”
달리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었지만, 인공의 말을 듣고 보니 갑자기 궁금증이 생겼다.
“스님, 죽음이란 차갑고 외로운 길을 홀로 타박거려야 하는 거 아닙니까?”
“자네가 알고 있는 죽음. 음, 죽음의 고통 가운데 극히 일부이기는 하나,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길을 걸었던 기억이 없습니다. 한동안 짙은 어둠에 갇히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짙은 어둠이라, 우리가 짙은 어둠에 갇혀 있었느냐?”
“기억 안 나십니까? 우리가 다시 만났을 때.”
무엇 하나 분명한 게 없었다. 지금의 모습이 환생인지, 회귀인지, 차원 이동인지.
“조금 전 저잣거리에서 본 것들은 무엇이라 생각하느냐?”
“저는 드라마 세트장인 줄 알았습니다. 오늘 운 좋게 드라마 촬영을 직접 보는구나 뭐, 그런 생각!”
“그럴듯하구나. 다시 묻겠다. 그럼 이곳은 어디일 것이라 생각하느냐?”
“사패산터널에서 사고가 났으니, 양주 아님, 의정부? 풍광으로 보아 서울은 분명 아닌 것 같고.”
“그래. 분명 서울은 아닌 듯하구나. 도로도 없고 빌딩이며 아파트도 없고, 보이는 거라고는 뭐 산과 들판뿐이니.”
인공은 말을 아끼고 꽤 지루한 시간 고민에 빠졌다. 그의 고민은 해 질 무렵까지 이어졌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오랜 침묵을 깨며 입을 열었다.
“몇 번을 다시 생각해도 광채밖에 없어. 광채에 무슨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게 분명해. 넌, 어찌 생각하느냐?”
“광채에 비밀이 숨겨져 있다고요?”
“왜, 아니라고 생각하느냐? 광채 말고 또 무엇이 있겠느냐? 우리가 사고를 당하고도 이렇게 멀쩡한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광채 말고 다른 건 없지 않느냐? 그러니 이 모든 결과에 원인을 제공한 것이 광채가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광채가 무슨 완충작용이라도 했다는 건가요?”
“그런 단순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부터 하는 말을 엉뚱한 발상이라고 비웃어도 좋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우리는 분명 광채를 통해 차원 이동을 한 것이다.”
뭐, 차원 이동? 풋,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아무리 엉뚱해도 그렇지, 어떻게 그런 상상을. 하지만 그의 얼굴 색이나 말투는 그 어느 때보다 단호했다.
얼핏 그 말이 그 말 같아 보이는 두 사람의 대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들의 대화를 추적해 가다 보면,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결론에 도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