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30
30화
방주의 욕심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김용하, 창의부흥원 원장 김용하! 그자만 개방에 눌러앉힐 수 있다면…….’
방주의 눈빛이 그리 곱지만은 않았다. 그의 눈빛에 사특한 기운이 엄습해 살인귀를 연상시켰다.
‘김 원장을 개방에 눌러 앉힐 수만 있다면, 무림을 내 손아귀에 넣고 주무를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김 원장이 내 사람이 된다면, 인공과 장설 또한 내 사람이 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며, 아울러 소희에게 방주의 자리를 대물림할 수 있는 명분도 생기지 않는가.’
하지만 방주의 생각은 무엇 하나 뜻대로 되는 게 없었다.
‘소희! 나이와는 상관없이 혼인만 하면 어른 대접을 받을 수 있다. 그러면 개방의 법도대로 소희가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내 후계자가 될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소희가 혼인을 못 한다면 성인이 될 때까지, 10년이라는 세월을 기다려야 하는데, 내 나이 아흔! 과연 그때까지 살 수 있을 것인가.’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자 참담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동안 개방을 이끄느라 미처 생각지 못했던 본인의 나이가 불현듯 떠올라서였다. 방주는 더는 후계 관련해서 어떤 생각도 할 수 없었던지 두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 * *
개방의 중앙 정원에는 중원에서 제일 크다는 은행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그 크기를 말로 표현하자면, 딱 한 마디! 끝이 보이지 않는다. 바로 그거였다.
용하가 무엇인가에 골몰해 중앙 정원을 걷고 있을 때였다.
“원장님! 김용하 원장님!”
어디에선가 소희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들렸다.
용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중앙 정원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사주경계 하듯 겹겹이 살펴보았지만, 어디에도 소희는 보이지 않았다. 그때였다.
“원장님! 어딜 보세요? 저 여기 있어요.”
용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다시 한번 말해 보거라!”
용하가 애원하듯 했지만, 말소리는커녕 킥킥대는 소리만 얼핏 들렸다.
“무엇이 그리 재미있느냐? 그러지 말고 한 번만 다시 말을 해 보거라.”
그제야 겨우 소희가 입을 열었는데, 깨알처럼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저기요… 여기 나무 위를 보세요…….”
실랑이가 길어지자 용하는 속이 타들어 가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마침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그러지 말고 속 시원히 말을 좀 해 보거라.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이냐?”
얼핏 호통치는 듯했지만 실은 애원이었다. 그러자 소희는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바로 목청껏 대답했다.
“여기요! 여기… 중앙 정원에서 가장 큰 은행나무 말이에요. 그 위를 좀 보세요!”
용하는 놀란 눈으로 은행나무를 올려다보았다. 까마득히 높은 곳에 윙슈트를 입은 소희가 얼핏 보였다.
“거기서 대체 무엇을 하려고 그러는 것이냐?”
“서역의 신물을 입으면 얼마나 높이 그리고 멀리 날 수 있나 실험하려고 그러죠.”
맹랑한 대답이었다.
“소희야, 그러지 말고 내려오거라. 서역의 신물은 아직 미완성이라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어.”
“미완성? 에이, 거짓말 마세요. 저 내려오게 하려고 거짓말하는 거죠?”
“아니다. 절대 거짓이 아니야. 지금까지 했던 실험은 그 높이가 너처럼 무공을 연마한 사람이면 충분히 경공술로 땅에 닿을 수 있었지만, 지금 그 정도 높이면 자칫, 몸을 상하고도 남을 것이니, 고집 그만 부리고 어서 내려오거라.”
용하가 애원하듯 말했지만, 소희는 귓등으로 듣는 듯했다. 결국 용하는 직접 나무 위로 올라가 소희를 데리고 내려올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앞섰다.
“소희야! 무엇을 하든, 네 마음대로 하거라. 그런데 대체 거기는 어떻게 올라간 것이냐?”
“화살을 딛고 올라왔죠.”
“화살이라니, 그게 다 무슨 소리인 게냐?”
어리둥절한 용하가 은행나무 밑둥치부터 찬찬히 살피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말 소희의 말대로 은행나무에 한 자 남짓한 간격으로 화살이 꽂혀있었는데, 시계방향으로 회전하며 정확히 나무 꼭대기를 향하고 있었다.
“참으로 신통한 일이 아닐 수 없군. 어떻게 저 어린 것이 이런 생각을 해냈을까? 이 모양을 위에서 수직으로 내려다보면 나선형의 계단일 것이다.”
그랬다. 지금 용하의 눈앞에 보이는 광경을 다시 한번 살펴보자면, 은행나무 표면에 규칙적으로 박힌 화살은 미리 설계라도 한 것처럼 정확한 계산으로 나선형 계단을 만들어 놓은 게 분명했다.
그냥 넘길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용하는 잠시 이런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때였다.
“원장님!”
소희는 짓궂은 목소리로 용하를 불렀다.
“소희야! 너는 무엇이 그리도 즐거운 것이냐? 나는 지금 머리가 복잡해 견딜 수가 없구나.”
“왜요? 왜 머리가 복잡하신 겁니까?”
“이 화살 계단을 직접 만들었다는 것이냐?”
“그럼요!”
“그 높은 곳까지 일일이 망치로 박아서 꽂은 것이냐?”
“네? 망치로 박아요?”
용하의 물음에 소희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피식 웃었다.
“원장님, 그걸 지금 말씀이라고 하세요? 망치로 박다니, 원장님은 시간이 남아도나 봅니다? 왜 그런 데다 귀중한 시간과 체력을 낭비합니까?”
“시간 낭비? 체력 낭비라니! 그렇다면 일꾼이라도 부렸다는 말이냐?”
이번에도 소희의 반응은 조금 전과 다를 바 없었다.
“네? 일꾼들을요? 원장님! 원장님은 별것도 아닌 일에, 아무렇게나 남의 손을 빌리는 그런 사람이었습니까? 자신의 일은 자신이 하자! 모르세요?”
아이, 대체 뭐야? 점점 미궁으로 빠져드는 궁금증에 용하는 조바심이 다 생길 지경이었다.
“소희야! 나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 그냥 좀 알려 줄 수는 없겠느냐?”
“진작 그럴 것이지, 왜 고생을 사서 하셨대. 처음부터 그렇게 말씀하셨으면 제가 바로 대답했을 텐데, 왜 그리도 멀리 돌아, 돌아 힘들게 오시는 것입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그게 훨씬 쉽다는 걸 알면서도, 내가 워낙 주변머리가 없다 보니.”
용하가 말꼬리를 흐리자, 소희는 단숨에 용하의 궁금증을 풀어 주었다.
“활을 쏘아 만들었습니다.”
“무어라! 활을 쏘아 만들었다고?”
용하는 소스라쳐서 다시 물었다.
“왜 그리 놀라십니까?”
“너 같으면 안 놀라겠느냐?”
“절대 안 놀라죠. 이곳 무림에서는 누구나 이렇게 하는걸요.”
아직도 놀람은 가시지 않았다. 용하는 최대한 침착하려 애썼다.
“오, 그래? 겸손하긴. 그런데 소희야! 여기 아래 몇 개는 어렵지 않게 화살을 쏘아 박을 수 있다 쳐도, 저 위는 어떻게 한 것이냐?”
“아, 거긴… 그게 말입니다. 일단 나무 아래서 하나, 뒤로 좀 물러나서 또 하나, 그런 식으로 거리를 계산했습니다.”
소희의 대답을 들은 용하의 머릿속에 실낱같았던 희망이 현실로 돼 돌아왔다.
천문학과 수리에 밝은 소희. 만약 저 아이라면 21세기로 가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용하의 생각은 그렇게 굳어졌다.
“소희야! 오늘은 일단 내려오거라. 내가 아직 만들고 있는 게 있어서 그러니, 그게 다 만들어지거든, 그때 실험을 재개하기로 하자꾸나.”
“만들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건 아직 말할 수가…….”
“그럼 이대로 뛰어내리겠습니다.”
“아, 아니다. 같은 배를 탄 동지에게 말 못 할 것이 무엇이겠느냐. 말하겠다.”
“어서 말씀해 보십시오.”
“낙하산이다. 땅에 닿을 때 충격을 흡수하는…….”
“낙하산? 제가 지금 내려가면 좀 보여 주실 수 있으십니까?”
“어차피 다 알게 될 것을 가지고 뭘 그리 까탈스럽게 구는 것이냐? 더는 애꿎은 사람 속 끓이지 말고 어서 내려오거라!”
너무 차가워서였을까, 아니면 단호함에 주눅이 들어서였을까. 소희는 더는 토 다는 일 없이 바로 수긍하겠다는 뜻이 남긴 대답을 했다.
“네, 알겠습니다. 바로 내려가겠습니다.”
그런데 소희는, 웬일인지 뛰어내릴 자세를 취했다.
“아니, 그거 말고! 그렇게 내려오면 낙하산에 대한 정보는 공유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 어찌합니까? 낙하산인가 뭔가 하는 물건을 빨리 보고 싶은데.”
“그 마음을 어찌 모르겠느냐? 허나! 그럴수록 침착해야지. 그러다가 무슨 사고라도 당하는 날엔, 낙하산은커녕 저세상으로 가신 조상님들 먼저 알현하게 될 것이다.”
“알겠습니다. 하라는 대로 하겠습니다.”
소희는 화살 계단을 미끄러지듯 내디디며 내려왔다. 뒷짐을 진 채 무게 중심 하나 흩뜨리지 않고 내려오는 모습이 마치 어느 서커스단의 곡예사 같았다.
“소희야, 너는 못 하는 게 없는 것 같구나.”
“다 아버지 덕분입니다. 아버지는 늦둥이인 제가, 세상에 홀로 남겨졌을 때를 늘 걱정하셨습니다. 그래서 걸음마 뗄 무렵부터 무공을 가르치셨어요. 그 밖에도…….”
“알았다. 그 심정을 내 어찌 모르겠느냐. 그런데 소희야!”
소희는 말끔한 눈으로 용하를 바라보았다. 웬일인지 용하는 그 눈에 짓눌려 더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마른침을 삼켰을 뿐.
“말씀하십시오. 무슨 연유로 저를 부르셨습니까?”
“혹 천문학을 공부하였느냐?”
“그렇습니다. 서역국에서 하늘의 이치를 배웠습니다.”
“그래? 오, 장하구나! 누가 감히 너를 개방의 우두머리의 딸이라 생각하겠느냐?”
“거지들의 집단이라 얕잡아 보지 마십시오. 지금까지 보고 듣고 경험했듯이 개방이 거지들의 집단이란 건 옛말입니다.”
“알았다. 내가 또 실수를 저질렀구나.”
“아니, 됐어요. 이번 한 번은 못 들은 거로 할게요. 대신 낙하산이라는 신물에 대해선 반드시 저와 공유해야 합니다.”
“알았다. 지금 바로 창의부흥원으로 가자꾸나.”
* * *
낙하산을 본 소희의 반응은 실로 놀라웠다.
“뭘 그리 놀라는 것이냐. 이것이 그리도 신기하더란 말이냐?”
“어디 신기하다 뿐이겠습니까? 제 생각엔 말입니다. 저 낙하산만 있으면 굳이 윙슈트를 입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신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열 살 남짓한 여자아이가 낙하산을 보는 순간 그런 발상을 해내다니. 용하는 웬일인지 소희의 재능에 욕심이 생겼다.
“그런데 소희야! 그건 별로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구나. 만약 신물을 병기로 세상에 내놓는다면, 신속함은 물론 적의 눈에 띄지 않고 상대의 진영에 침투해야 하지 않겠니? 그런데 이 낙하산이란 물건은 속도도 느릴 뿐 아니라, 크기가 워낙 커서 적의 눈에 쉬이 감지되고 말 것이야.”
소희는 놀랍도록 용하의 말을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그건 그렇고, 일식과 월식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느냐?”
“서역에서 하늘의 이치를 배울 때, 가장 중점적으로 가르치는 게 일식과 월식을 계산하는 것입니다.”
“오, 그래?”
날아갈 듯 기뻤다. 소희의 천문학과 수리에 대한 지식과 스마트폰에 저장된 21세기 현대문명이 조우한다면, 분명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렇게 한창 두 사람의 대화가 무르익을 때였다.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발걸음 소리만으로 소희는 인기척을 내는 사람이 용두방주임을 알아차렸다.
“쉿! 아버지예요.”
소희의 말에 창의부흥원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그리고 곧 용두방주의 존재를 알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창의부흥원 원장님. 용두방주님 납시셨습니다.”
용하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안으로 모시거라.”
이윽고 문이 스르르 열렸다. 문밖에 얼핏 노기에 찬 듯한 방주가 서 있었다. 소희를 본 방주는 눈동자가 쏟아져 내릴 듯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소희 네가 여긴 무슨 일로 왔느냐?”
“신물에 관한 연구가 어디까지 진척됐는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여쭙는 중입니다.”
“음, 그런데 밖에서 잠시 듣자 하니, 김 원장이 우리 소희를 대하는 게 마음에 걸려, 내가 한마디 짚고 넘어가도록 하겠소.”
“네. 말씀하십시오, 대인!”
“이곳 개방의 우두머리는 변함없이 용두방주인 나란 말이오. 그리고 이인자는 나를 이을 예비후계자 우리 소희. 그다음이 우리 개방을 부흥시킬 창의부흥원의 장인 김용하 원장이란 말이오. 그런데 어찌하여 이인자인 소희를 동네 어린아이 대하듯 하는 것이오?”
노도와 같은 방주의 훈계에 용하는 납작 엎드렸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대인!”
“내게 무슨 서운한 점이라도 있는 것이오?”
“아닙니다, 대인! 그럴 리가요.”
“그렇다면 지난 일들은 불문에 부칠 것이니, 앞으로는 우리 소희를 대할 때, 나를 대한다 생각하고 깍듯이 예의를 갖추시오. 알겠소?”
“네, 대인! 그리하겠습니다.”
그때까지도 용하는 창의부흥원 바닥에 얼굴을 바짝 붙인 채 흐뭇한 마음으로 생각했다.
‘전혀 예상치도 못했는데, 내가 개방의 넘버3가 되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