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31
31화
이제 모든 건 끝났다. 그동안의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것만 남았다.
용하는 세 종류의 신물(新物)을 제작했다.
첫째, 원본을 개량한 행글라이더.
둘째, 스마트폰 자료를 토대로 새롭게 고안해 낸 윙슈트.
셋째, 이 둘을 결합한 작고 가벼운 비행체.
하지만 세 번째 신물은 비밀리에 감춰 두고, 첫 번째와 두 번째 신물만 발표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소희 낭자! 우리가 새로 만든 신물 가운데 세 번째 것은 나중에 주요 인물만 따로 초대해 발표할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좋은 생각이십니다. 저도 그것을 제안하려 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발표하는 두 종류의 신물은 레저용품으로 소개했으면 합니다.”
“저도 그게 좋을 것 같습니다.”
“좋아요. 그럼 레저라는 생소한 말 말고, 이곳 무림이나 개방에서 통용될 만한 말이 뭐가 있겠습니까?”
“아마도 상용화된다면 부의 상징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그에 걸맞은 이름으로 붙여줘야 하지 않을까요?”
“부의 상징! 좀 특별한 이름을 붙여도 이상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발표회가 시작되면, 그 말을 제일 먼저 해 주십시오. 그래야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신물을 고운 눈으로 바라볼 것입니다.”
지금 소희는 이번 피칭의 컨셉트를 [부를 상징하는 서역의 신물]로 잡으라고 슬쩍 귀띔을 하는 중이었다. 괜찮은 생각이다. 아니, 훌륭하다. 아마도 소희가 21세기에 태어났다면 훌륭한 마케터가 되지 않았을까.
“고맙습니다. 반드시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거 어때요? 바람을 이용한 이동 수단이니, [바람보르기니]!”
“저는 좋은데 사람들은 싫어할 것 같습니다. 여기 사람들 이름 긴 거, 질색이거든요.”
“그럼 이건 어때요? 짧게 그냥 [바람찬]!”
“좋아요! 발음하기도 좋고, 무엇보다도 힘찬 기운이 느껴져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일단 [바람찬]으로 하고, 나중에 더 좋은 이름이 생각나면, 그때 바꾸기로 하는 건 어떻습니까?”
“여지를 둔다는 건 좋은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죠. 그리고 원장님, 우리 둘만 있을 땐 그냥 예전처럼 대해 주시면 안 될까요? 어린아이 소희…….”
“외람되지만 그건 안 됩니다. 자칫 그러다 버릇되면 곤란해지는 사람은 저니까요. 그리고 이미 대인께서 그리하라고 명하신 일이니, 잠자코 따르는 게 도리일 것입니다.”
“이번 일은 아버지가 잘못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그리 생각하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십니까?”
“사실 아버지는 원장님과 제가 가까이 지내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려면 원장님도 알다시피 서로 대화에 부담이 없어야 하고, 농담도 간혹 나누기도 하고, 그래야 친해지는 거 아니겠습니까?”
잠시 어리둥절했다. 용하는 건성으로 고개만 끄덕이고 생각했다.
‘이 아이는 우리가 가까워지기를 용두방주가 바란다는 걸 어찌 알고 있는 것인가?’
궁금했지만 굳이 속내를 드러내지는 않았다.
* * *
창의부흥원의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김 원장, 내일이 발표일인데 준비는 잘돼 가는 것이오?”
얼핏 염려하는 듯했지만, 용두방주의 말에는 불쾌한 감정도 뒤섞여 있었다. 그의 감정이 교차하는 이유를 용하가 모를 리 없었다. 최근 방주의 감정을 좌지우지하는 건 소희였다.
“소희 낭자와 함께 나름 심혈을 기울여 준비했으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소희와 함께라는 말에 방주는 금세 표정이 달라졌다.
“우리 소희가 일을 잘하던가요?”
지금 방주가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그 속내를 용하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소희 낭자가 없었다면 이번 연구를 성공리에 마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용하는 방주가 가장 좋아할 만한 말을 잘 선별해서 대답했다. 역시 예상은 적중했다. 방주는 크게 껄껄거리며 줄곧 얼굴에 드리웠던 불쾌한 감정을 순식간에 지워 버렸다.
“오, 소희가 도움이 되던가요?”
감정을 억누르느라 용두방주의 말끝이 얼핏 떨렸다. 본인도 그걸 느꼈는지 두어 차례 헛기침을 하며 딴청을 피웠다. 용하는 모른 척하며 방주의 물음에 대답했다.
“도움이 아니고 주도적이었습니다. 오히려 제가 소희 낭자의 연구에 조력자였습니다.”
용하는 이렇게 말하는 자기 자신에게 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운동하느라 사회생활은 젬병일 줄 알았는데, 세상 살아가는 방법을 은연중에 다 알고 있었다.
‘내가 이런 걸 다 어디서 배웠냐고? 운동하고, 먹고, 텔레비전 보고, 자고, 이게 일상이었는데 말이야.’
그리고 곧 스스로 답했다.
‘아, 그거였구나! 텔레비전. 텔레비전 보고 배운 거야.’
그제야 생생하게 떠올랐다. 어느 드라마에서 처세술에 능한 고등학생 어른들과 경쟁해서 당당히 이겨 냈던 광경이. 그런데 그때는 시큰둥하게 또 다소 부정적으로.
‘뭘, 저렇게까지?’
했었는데, 흠!
용두방주는 흡족해서 말했다.
“이번 발표회를 성공적으로 마친다면, 내가 김 원장에게 큰 상을 내릴 것이오.”
솔깃했다. 방주가 내리는 상, 과연 무엇일까? 궁금증 또한 폭발적으로 증폭했다. 하지만 속내를 감추고 엉뚱한 질문을 했다.
“성공하면 상을 내리실 것이고, 실패하면 벌을 내리실 겁니까?”
용하의 질문에 얼핏 가시가 있었지만, 다행히도 방주는 재치로 받아들였다.
“김 원장도 참, 농담도 아주 재미있게 하는구려. 절대 실패할 일 없으니, 아무 염려 말라, 뭐, 그런 뜻이란 거 잘 알고 있소. 그 자신감! 마음에 드는구려.”
21세기에선 뭐 하나 제대로 된 적 없는 용하의 후기 인생. 이제 무림에서 꽃을 피우려는지, 하는 일마다 방주의 눈에 좋은 기억으로 담긴다.
* * *
드디어 신물(新物)발표회 당일이 되었다.
용두방주의 궁(宮)에 [新物, ‘바람찬’ 발표회]라는 글자가 박힌 커다란 천이 펄럭거렸다. 가든파티를 연상시키는 중앙 정원으로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그들 대다수가 부급(富级)에 속하는 사람들이었다. 방주는 발표회장 여기저기를 거닐며 신물발표회에 참석한 사람들과 인사치레를 하거나 담소를 나누었다.
발표회장 한편에는 인공과 장설이 기록장을 들고 사람들을 유심히 살폈다. 그리고 이제 막 모습을 나타낸 용하와 소희. 그 뒤로 두 종류의 신물을 든 하인들이 따라 걸었다.
그 광경을 본 사람들이 열화와 같은 환호를 질렀다. 이윽고 단상에 선 용하와 소희. 환호성이 좀처럼 멈출 줄을 모르자 용두방주가 타구봉을 높이 들어 올렸다. 그 순간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행사장은 조용해졌다. 아니, 정적이 감돌았다.
용두방주가 중앙 정원을 크게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일전에 서역으로 배움의 길을 떠났던 우리 소희가 진귀한 물건을 하나 가지고 왔소이다.”
중앙 정원에 또다시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잠시 지켜보던 용두방주가 이번에도 타구봉을 높이 들어 올렸다. 거의 동시에 중앙 정원에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그 진귀한 물건을 우리 창의부흥원의 김용하 원장이 심혈을 기울여 개량해, 오늘 여러분께 선보이려고 하는 것이오. 그리고 한 가지 더 얘기하자면, 우리 소희의 도움이 없었다면 오늘의 쾌거는 있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우리 김용하 원장이 직접 감사의 뜻을 비쳤다오.”
이번에도 변함없이 사람들의 환호성이 중앙 정원을 가득 채웠다.
소희는 부끄러워 어쩔 줄을 몰라 했고, 용하는 담담하게 소희에게 박수를 보냈다.
중앙 정원이 한동안 술렁였다. 이대로 가다가는 더는 진행할 수 없을 것으로 판단한 방주가 타구봉을 높이 들어 올렸다.
“곧 발표회가 시작될 것이니 모두 예를 갖추도록 하라!”
발표회장은 순식간에 정리가 되었고, 단상으로 향하는 용하의 표정이 왠지 그늘져 보였다. 아마도 중압감 때문일 것이다. 이윽고 단상에 서는 용하는 소희가 당부한 대로 첫마디를 뗐다.
“오늘 여러분에게 발표하는 서역의 신물은 향후 부의 상징이 될 것입니다.”
발표회를 여는 이 한마디에 사람들의 자세가 조금 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그들의 이글거리는 눈빛은 일제히 단상으로 향했고, 그 시선을 한 몸에 받아내야 하는 용하는 현기증을 느꼈다. 그때였다. 이상한 낌새를 차린 소희가 황급히 단상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말했다.
“이번에 창의부흥원에서 발표하는 미래지향적인 신물은 우리 인간의 이동 수단은 물론, 여가활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삶의 질을 한층 높여줄 것입니다.”
소희의 말에 제일 먼저 환호성을 지른 사람은 다름 아닌 용두방주였다. 중앙 정원은 다시 한번 술렁였는데, 조금 전과는 눈에 띄게 달랐다. 그리고 방주가 타구봉을 높이 치켜들었을 땐, 어김없이 숙연해졌다.
비로소 제정신이 돌아온 용하가 소희의 말을 이었다.
“오늘 여러분에게 선보일 신물은, 이름하여 [바람찬]입니다.”
용하의 말이 끝났을 때였다. 중앙 정원에 “바람찬!”이라는 구호가 수차례나 울려 퍼졌는데, 그 소리가 하늘까지 닿을 듯했다. 그리고 용두방주가 얼핏 두 눈을 치켜떴을 때였다. 단상에 있던 소희가 보이지 않았다.
“소희야!”
방주의 얼굴은 근심으로 얼룩졌다. 그의 눈길이 행사장 여기저기 종횡무진했지만, 어디에도 소희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용하의 표정은 방주와는 달리 들떠 보였다.
“자, 그럼 지금부터 우리 창의부흥원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바람찬]을 소개하겠습니다. 모두 하늘을 보십시오.”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 대부분이 의아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용두방주 또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사람들 대다수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아직 아무것도 못 보셨나요?”
바로 그때였다. 행글라이더에 몸을 실은 소희가 하늘을 회전하며 날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본 사람들은 경악하거나 혹은 환호성을 질렀다. 용두방주는 하얗게 치켜뜬 눈으로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저, 저분은 소희 낭자가 아니오.”
“사람이 하늘을 날고 있지 않소.”
“서역에 하늘을 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소이다. 그런데…….”
행사장 여기저기서 탄성처럼 새 나온 말이었다.
* * *
“금일 부로 창의부흥원을 폐지하겠다!”
조금 전 행사를 마치고 궁으로 들어가며 용두방주가 한 말이었다. 이제 막 상담실로 들어온 방주는 하인들에게 명했다.
“창의부흥원 김용하 원장과 소희를 들라 하라!”
용두방주의 명이 있고 한 식경 남짓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용하가 허겁지겁 달려와 방주 앞에 무릎을 조아렸다.
“소희는 왜 안 오는 것이냐?”
방주의 말투가 바뀌었다. 뭔가 심경의 변화가 생긴 게 분명하다. 용하는 더욱 자세를 낮춰 대답했다.
“네, 용두방주님. 지금 [바람찬]을 계약하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이어, 그 업무를 보느라 함께 못 왔습니다.”
용하의 말에 노기에 찼던 방주가 솔깃한 기색으로 물었다.
“대체 예약이 얼마나 되기에, 거기 발이 묶여 못 온다는 것이냐?”
“오늘 발표회에 참석한 내빈들께서는 한 분도 빠짐없이 예약하셨습니다. 그래서 지금 소희 낭자께서 그 계약서를 친필로 작성하느라 여념이 없으십니다.”
“그 많은 인원이 하나도 빠짐없이?”
“네, 그렇습니다.”
“그럼 예서 이럴 것이 아닌 것 같소. 어서 사람들을 시켜 소희를 돕도록 하시오!”
방주의 말투가 다시 바뀌었다. 그뿐 아니라, 비록 큰 소리로 목청을 높였지만, 그 속에는 얼핏 환희 또는 만족감도 배어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신물 발표회는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김용하 원장! 금일 부로 창의부흥원을 폐지할까 했었는데, 이렇게 모두 즐거워하니, 내 다시 생각해 보겠소.”
“망극합니다. 대인!”
용하 또한 말투를 다시 바꾸고는 눈치를 살폈다.
“더욱 분발하시오.”
별 탈 없이 무사히 넘어갔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왔다는 뜻이다. 용하는 내심 안도하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때였다.
“단!”
용하는 상기된 얼굴로 방주를 바라보았다. 심장박동이 별안간 불규칙해졌다. 바로 그 순간.
“창의부흥원에 한가지 임무를 더 명하겠소.”
한가지 임무를 더 명한다는 건! 불규칙하던 심장박동이 서서히 누그러졌다. 그렇다고 해서 불안감이 완전히 해소된 건 아니었다.
“말씀하십시오. 대인의 분부라면 무엇이든 못하겠습니까.”
“오해는 말고 들으시오. 창의부흥원은 설립 때부터 내 직속 기관이었잖소?”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우리 소희가 아직 철이 없어 세상 무서운 게 없는 아이라오. 그런 소희의 경호업무를 맡아 주시오. 김 원장이 검술의 고수라 들었소.”
달리 비껴갈 방법이 없었다. 소희 낭자 한 사람 경호하자고, 직속 기관을 또 두자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래, 순순히 받아들이자. 이것도 처세술이다. 용하는 일부러 해맑게 미소를 지어 보이는 것으로 방주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날 이후 용하, 인공, 장설은 소희를 호위하는 임무를 수행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