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33
33화
創意復興院
소희의 별채 가까이 새로 지어진 건물에 창의부흥원을 알리는 현판이 걸렸다.
새로 생긴 관청은 분명 아니었다. 단지 청사가 새로 지어졌을 뿐이다.
하지만 용두방주의 궁에서 독립돼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 비록 아직 방주의 직속 기관이기는 하지만.
“형님들, 어떠십니까? 감회가 새롭지 않습니까?”
용하의 물음에 한 걸음 뒤로 물러서 있던 장설이 앞으로 나서며 대답했다.
“앞으로 부딪쳐야 할 책임을 생각하니, 난 벌써부터 숨이 막히는구나.”
현판을 올려다보던 용하가 시선을 장설에게로 옮겼다.
“장설 형님, 그런 말씀 마십시오. 혼자라면 힘들었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 삼 형제가 힘을 모으면 못 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용두방주의 궁에서 분리된 것만으로도 살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방주의 눈치 볼 일 없이 무엇이든 도모할 수 있지 않습니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더니, 어른이 다 되었구먼.”
“별말씀을요. 두 분 형님들에 비하면 맨발로 뛰어도 어림없는 일이 아닙니까.”
“허허, 겸손하기까지……. 내 눈에는 자네가 개방의 이인자가 된 게 아닌가 생각되는데, 자네 생각은 어떠한가?”
“아직은 아닙니다. 이인자는 소희 낭자죠. 저는 뭐…….”
“소희 낭자는 혈육이니 두말할 나위도 없는 일이고, 방주 다음에 김 원장 자네 아닌가. 건물만 봐도 알 수 있는데, 왜 자네만 모르는지 알 수가 없구나. 혹 알면서도 모르는 체하는 것인가? 용두방주의 궁이 개방에서 제일 크고, 그다음이 창의부흥원이 아닌가. 소희 낭자의 별채는 그다음이라는 사실을 삼척동자도 아는 것이거늘, 어찌하여 자네만 그것을 모르는 것인가.”
예상은 적중했다. 이번에도 전략에서 이겼다는 말이다. 외부에서 바라본 창의부흥원은 지금 장설이 말한 것처럼 생각할 것이다.
개방은 물론이고 무림의 아홉 개 정파에서 바라보는 창의부흥원. 그곳은 용하의 계획 가운데 가장 중심에 있는 그런 곳이었다.
세 사람이 감회에 젖어 부푼 가슴을 진정하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먼발치에서 새로 지어진 창의부흥원 청사 주위를 기웃거리는 의문의 사내가 보였다.
“이보게, 인공!”
“네, 형님.”
“혹시 자네도 보았는가?”
“보았느냐니, 무엇을 말입니까?”
“저기 보이는 사내 말이다.”
“사내? 어디, 어디 말입니까?”
“저기 말이다. 저기 눈사람처럼 생긴 자 말이다. 그자가 누구인지 알겠는가?”
“음, 눈사람처럼 생긴 자라면… 음… 아! 저놈 말입니까? 저기 저… 뚱뚱한 놈!”
인공의 눈길이 닿은 곳에 장설이 말한 눈사람처럼 생긴 자가 보였는데 그의 몰골을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산만 한 덩치에 비해 다리는 비교적 짧았으며 배가 불룩 튀어나와 숨쉬기조차 힘들어 보였다. 게다가 얼굴은 보통 사람보다 두 배는 커 보이는 게 누가 보아도 영락없는 눈사람을 연상시켰다.
“형님! 관찰력 하나는 끝내줍니다. 사물을 바라보는 형님의 통찰력은 가히 기네스 감입니다. 제가 가서 얼른 잡아다 대령하겠습니다.”
인공은 두어 걸음 앞으로 나서더니 호기 가득한 목소리로 의문의 사내를 불렀다.
“어이, 눈사람!”
의문의 사내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인공에게 날아들 뿐이었다.
“어이! 어이, 어이! 거기 눈사람!”
조금 전보다 훨씬 큰 목소리로 불러 보았지만, 사내는 여전히 못 들은 체하며 딴청만 피웠다.
그리고 조금 전과 마찬가지로 의문의 사내 주위를 오가는 다른 사람들 눈길만 인공에게 빗발쳤는데, 그들의 얼굴에 ‘여기 눈사람이라고는 자기밖에 없는 것 같은데?!’ 뭐 그런 표정들이었다.
“저게 귀를 처먹었나. 아님, 내가 누군지 모르는 건가? 아니지, 난 누가 봐도 호위무사처럼 보일 텐데.”
그때였다.
“이보게, 인공. 배를 좀 집어넣고 부르게. 그렇게 막 부르면, 자네나 저 눈사람이나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러니 사람들이 자네를 보는 거 아닌가.”
“뭡니까, 그 말은? 저도 눈사람 같다는 겁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설마 제가 저 정도일까요?”
인공은 구시렁거리며 사내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사내의 덜미를 덥석 움켜쥐었다.
“야, 눈사람!”
의문의 사내는 새파랗게 질려 부들부들 떨었다.
“어, 인마! 사람이 부르는데, 왜 대답을 안 해?”
“저, 저를 부, 부르셨습니까?”
“그럼 인마! 아까부터 몇 번이나 불렀는데.”
“저, 저는 말입니다. 눈사람이라고 하는 소리밖에 못, 못 들었습니다.”
“그럼 들은 거 아니냐. 그런데 왜 대답을 안 한 것이냐?”
“네?”
의문의 사내는 어이없다는 눈으로 인공을 바라보았다.
“너, 인마! 누가 봐도 딱 눈사람이잖아. 다리 짧지, 배 튀어나왔지, 대가리 크지. 딱 눈사람인데 왜 시치미를 떼고 지랄이야.”
“아이고, 억울합니다. 저한테 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제, 제가 무, 무슨 잘못이라도…….”
“잘못이 없는데, 왜 사람이 부르는데, 대답을 안 했냐고?”
“진짜 몰랐다니까요.”
의문의 사내는 무엇이 그리 억울한지 온갖 인상을 다 써 가며 목소리를 쥐어짰다.
“좋다! 어차피 지나간 일 불문으로 하겠다. 단, 지금부터 너는 눈사람이다. 알겠느냐?”
“네, 알겠습니다.”
“야, 눈사람! 따라와!”
인공은 조금 전 있던 자리로 부지런히 걸었고, 의문의 사내는 그 뒤를 군소리 없이 따랐다. 이윽고 장설의 앞에 섰을 때였다. 의문의 사내는 장설 앞에 무릎을 조아리며 애원했다.
“아이고, 형님! 부디 저를 어여삐 여기셔서 거두어 주십시오.”
사내의 갑작스러운 태도에 인공은 물론, 장설까지도 어리둥절했다.
“인공! 쟤 지금 뭐라고 지껄이는 거냐?”
“글쎄요. 쟤 왜 저러는 거죠? 혹시 좀 모자라는 거 아닙니까?”
“아무래도 내가 잘못 건드린 것 같구나. 원래 있던 대로 돌려놓을 순 없겠느냐?”
“그, 그건 이미 늦은 것 같습니다.”
그때였다.
“너는 혹시!”
용하가 의문의 사내를 알아보고 입을 뗐다. 용하의 반응에 인공이 두 눈이 휘둥그레져서 물었다.
“두 사람이 일면식이라도 있었던 것이오?”
용하는 인공의 말은 들은 체도 않고 의문의 사내에게 물었다.
“일전에 삼거리 객잔에서 보았던 문지기가 아니냐?”
“네, 맞습니다.”
의문의 사내는 무릎을 조아리며 대답했다.
* * *
잠시 후 네 사람은 다과상을 앞에 두고 한자리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대체 어찌 된 일이냐?”
장설의 물음에 의문의 사내는 눈물로 대답했다.
“그때 그 객잔은 가짜였습니다. 아미파를 탈출한 자들을 생포하기 위해 가짜로 만들어진 걸 모르고, 사람을 구한다기에 객잔에 취직했습니다.”
“무어라, 취직!”
“네.”
“좋다. 그럼 그전에는 무엇을 했었느냐?”
“워낙 없는 살림이다 보니 밑천이 없어 보란 듯 장사도 못 하고, 계곡에서 물을 길어다 마을 사람들에게 팔았습니다. 밑천 없이 할 수 있는 장사가 물 아니면 장작밖에 더 있습니까.”
“물을 길어다 팔았다? 딱 덩치다운 일을 했군. 그건 그렇고 저잣거리로 가면 얼마든지 먹고살 수 있지 않으냐. 그런데 어찌하여 개방으로 온 것이냐?”
“가짜 객잔이란 사실을 세상에 폭로하겠다고 하니, 몹시 분노해 저를 죽이려 들었습니다. 그래서 비록 천한 목숨이지만 그것이나마 보존하고자 이곳으로 숨어들었습니다.”
“좋다. 네 딱한 사정을 헤아려 이곳에 머물 수 있도록 손을 써 보겠다. 그리고 너의 가장 큰 장점인 그 덩치. 일단 그 덩치가 쓸 만해 보여 선처하는 것이니, 거두어 주면 무엇이든 시키는 대로 하겠느냐?”
“아이고, 두말하면 입 아픕니다. 뭐든 시켜만 주십시오. 죽는 거 빼고는 뭐든 다 잘합니다.”
“알았다.”
장설은 인공을 향해 단호히 말했다.
“이보게, 인공! 이자에게 기거할 곳을 마련해 주고 백의개로 등재시키게.”
“네, 형님.”
인공이 사내를 데리고 저만치 멀어졌을 때였다.
“형님, 잘하셨습니다. 쓸데가 많은 자인 것 같습니다. 그러잖아도 신물 [바람찬]을 테스트할 때, 저렇게 덩치가 크고 무게가 좀 나가는 사람이 필요했는데, 여러모로 아주 잘된 것 같습니다.”
“어찌하겠느냐. 저자도 우리와 비슷한 처지로 이곳까지 온 것을.”
장설은 흐뭇한 표정으로 용하를 바라보았다.
* * *
1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새로 지어진 창의부흥원에 입주한 지도 어느새 1년이 되었단 말이다.
인공 형님은 흔히, 고등학교 윤리 시간에 들어 본 성취동기니, 호연지기니, 하는 것이 충만해져 모든 일에 자신감을 갖고 업무에 임했고, 장설 형님은 세상을 바라보는 통찰력이 더욱 깊어져 신의 경지가 이른 게 아닌가 싶었다. 아마도.
용두방주는 서역의 신물 [바람찬]의 인기가 급물살을 타면서, 개방에 통용되는 은좌란 은좌는 죄다 쓸어 담다 더 큰 부자가 되었다. 그리고…….
“원장님! 원장님!”
복도를 달리는 요란한 발소리와 수차례나 불러대는 소희의 목소리가 나의 목가적 휴식을 깨뜨린다.
―덜컹!
요란하게 문이 열리며 들이닥치는 소희. 헐떠거리는 숨소리가 아직 어린아이다.
“원장님, 찾았습니다.”
대체 무슨 일로 이러는 것인지, 소희의 목소리는 적잖이 격앙돼 있었다.
“찾다니, 무엇을 말입니까?”
“올해 개기일식이 있는 날 말입니다. 제가 그날을 계산해 냈습니다.”
소희 말에 불현듯 심장이 콩닥거렸다.
“정말입니까?”
용하의 목소리는 조금 전 오두방정을 떨던 소희는 저리가라였다.
“소희 낭자! 고생 많으셨습니다.”
어떻게든 속내를 감춰 보려 했지만, 가슴이 떨려 끝내 목소리가 흔들리고 말았다.
‘아니, 이런 낭패가.’
이번에는 아예 부끄러운 줄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눈물을 글썽이기는 소희도 마찬가지였다.
용하와 소희. 두 사람의 뇌리에 지난 1년 동안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그동안 용두방주 모르게 진행해 온 일들을 되짚어 보았다. 용하는 사패산터널 속에서 보았던 광채(光彩)와 같은 조건의 특별한 광채를 만들려면 태양을 이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매일 보는 태양은 의미가 없었다. 그건 세상 사람들 누구나 볼 수 있는 흔한 거니까.
‘어떤 고생이 따르더라도 해내고야 말 것이다.’
힘들 때마다, 좌절감을 느낄 때마다, 했던 생각이다.
소희는 용두방주의 눈을 피해 개기일식을 계산했고, 용하는 차원 이동 직전, 사패산터널 속에서 광채를 향해 달리던 자동차의 속도를 낼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고민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이 현재로서는 [바람찬] 발표회 때 제작했던 세 번째 아이템! 행글라이더와 윙슈트의 장점만을 접목해 만든 슈트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아직 세상에는 알려지지 않은 베일에 가려진 비행체.
“소희 낭자.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저를 도와주셔야 합니다.”
“네, 그리할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모든 게 완벽해 보였다. 하지만 한 가지 풀지 못한 숙제가 있었다. 태양 속으로 아니, 광채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최대한 높은 곳에서 몸을 바람에 실어야 하는데, 그런 곳을 아직 찾아내지 못했다.
서고동저(西高東低).
중국의 지형을 한마디로 말하면 서고동저다. 다시 말해 개방이 있는 동쪽은 낮은 지역이란 뜻이다. 21세기로 돌아가려면 서쪽으로 가야만 한다. 개기일식이 있는 날에 정확히 맞추어, 중국의 서쪽 국경과 접한 히말라야산맥으로. 그곳에 가면 세상에서 가장 높다는 에베레스트가 있다. 해발고도 8,848m.
이 모든 자료는 스마트폰이 방전되기 전, 파일을 글로 옮겨 서책으로 만들어 놓은 자료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방대한 자료들은 창의부흥원 서고에 봉인되었다.
“개기일식이 있는 날을 알았습니다. 이제 어찌하시겠습니까?”
“원래 계획대로 할 것입니다.”
“원래 계획? 그 계획이란 게 대체 무엇입니까?”
“계획이란 게 뭐라니, 제가 아직 말씀을 안 드렸습니까?”
“네. 거기까지는 아직 저에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아, 그게 말입니다. 개기일식이 일어나면 세상엔 일시적으로 짙은 어둠이 내릴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태양이 세상에 나올 때 엄청난 광채를 띌 것입니다. 그때 저는 그 속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시속 180km의 속도로.”
전율이 느껴졌다. 과연 인간이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계획이 맞는지 의구심이 앞섰기 때문이다. 어금니 부딪치는 소리가 여리게 들렸다.
“왜 그러십니까? 소희 낭자. 어디 편찮은 데라도.”
“아닙니다, 원장님.”
“그런데 왜?”
“가슴이 벅차서입니다. 감동이 차올라 가슴이 떨려서…….”
그 순간 소희의 눈빛은 누군가 자기 자신을 포근하게 감싸 안아 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