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35
35화
다음 날 아침.
용하는 식전부터 소희가 있는 별채로 향했다.
이른 아침에 후원을 걷는 사람의 걸음치고는 퍽이나 바빠 보였다.
부지런히 걸음을 내디뎌 후원에 도착한 용하는 작은 돌멩이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손에 들린 새총 그러니까, Y자 모양의 나뭇가지에, 어제 소희에게 보여 줬던 고무줄을 하나씩 나눠 맨 새총으로, 조금 전 집어 들었던 돌멩이를 튕겨 하늘로 솟아오르게 했다.
하늘을 향해 수도 없이 새총을 쏘고 있는 용하. 그는 내심 소희가 나와 주기를 기다리며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그때였다.
마침내 인기척이 들리더니 소희가 모습을 나타냈다.
“원장님, 이른 아침부터 후원에서 대체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소희는 의심이 가득한 눈으로 물었다. 그 눈길이 하도 매서워 용하는 어떻게든 멀리 달아나야만 했다. 그래서 한 말이 고작.
“때를 놓쳐서 그런지 잠도 오지 않고 하여, 식사 전까지 운동 삼아 이렇게 혼자 심심하게 놀고 있었습니다.”
“운동 삼아 놀고 계셨다고요?”
소희의 의심은 조금 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커졌다. 검도 고수가 운동 삼아 새총을 쏘며 놀고 있었다니.
앞뒤가 안 맞는 용하의 변명 아닌 변명에, 소희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소희의 반응에 용하는 보란 듯 돌멩이 하나를 하늘로 있는 힘껏 쏘아 올렸다. 그것을 본 소희는 적잖이 놀란 눈으로 돌멩이가 사라질 때까지 올려다보았다.
그러고는 돌멩이가 완전히 사라졌을 때, 비로소 용하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원장님, 그 물건은 무엇입니까?”
“아, 이거? 별거 아닙니다. 그런데 왜요? 혹, 놀라신 것입니까?”
“한 손아귀에 쏙 들어가는 게 쓸 만할 것 같습니다. 잘 다듬어서 상품화하면 닌자술을 쓰는 자들에게 고가로 팔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소희 낭자! 돈이라니요, 갑자기 왜 이러십니까?”
용하의 태도는 오금이 다 저릴 만큼 단호했다.
“낭자께서는 돈밖에 모르는 아버지를 저주하셨던 분이 아니십니까? 그런데! 그런 낭자께서 어찌하여!”
“죄송합니다, 원장님. 너무나도 신박하여 제가 그만 무례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나무라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단지, 이 물건을 돈으로 볼 것이 아니라, 창작품으로 보시고 가치 있게 생각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알겠습니다, 원장님. 그리하겠습니다.”
소희는 진지하게 새총을 살펴보았다. 그러고는 말했다.
“이 물건의 핵심은 어제 보여 주셨던 고무밴드라는 물건인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잘 보셨습니다. 이 고무밴드보다 수백, 수천 배 더 큰 고무밴드가 필요합니다. 아님, 이와 유사한 것도 상관없습니다.”
“그건 죽었다 깨나도 못 구합니다. 서역에서도 본 적 없는 걸, 무슨 수로 구하겠습니까?”
“서역에도 없는 물건입니까?”
용하는 의구심으로 물었다. 그러고는 곧 생각했다.
‘하긴, 앞으로 펼쳐질 미래가 고무밴드를 세상에 내놓은 지가 얼마나 됐다고.’
그때였다.
“그건 그렇고, 그것을 무엇에 쓰려고 그리 애타게 구하시는 겁니까? 뭐, 대단한 무기라도 만들어서 무림을 평정이라도 하시려는 겁니까?”
“그것도 괜찮은 생각이지만, 그보다는, 잘 보십시오.”
용하는 돌멩이 하나를 집어 들더니 새총에 야무지게 끼웠다.
“이 돌멩이가 보이십니까?”
“네. 그런데 그게 어떻다는 건가요?”
“그렇게 날만 세우지 말고 이 돌멩이를 좀 자세히 보십시오.”
“왜 자꾸 돌멩이를 보라고 그러는 것이오?”
“잠깐 진정하시고 제 얘기를 좀 들어 보세요. 이 돌멩이를 저라고 생각하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제 말을 들어 보십시오.”
짧고 간결한 용하의 말에 소희는 잠깐 무엇인가 상상하는 기색이었다.
그러고는 곧 경악을 금치 못하며 두 눈을 치켜떴다.
대체 소희의 머릿속에 무엇이 그려졌던 것일까.
바로 그 순간 용하는 돌멩이를 하늘로 쏘아 올리는 것으로 남은 대답을 대신했다.
이윽고 두 사람은 후원을 지나 중앙 정원을 걸었다.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는 데 중앙 정원처럼 보안에 무방비 상태인 곳을 선택한 이유는, 사실 은밀한 이야기는 은밀한 장소에서 해야 어울렸지만, 한편으로는 중앙 정원처럼 넓고 확 트인 곳이 오히려 보안에 유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원장님!”
“말씀하십시오.”
“만약에 말입니다. 커다란 활을 만들고, 그 활의 크기에 맞는 화살을 만들어 쏘아 올리는 건 어떻습니까?”
무심코 던진 소희의 말에, 용하는 날아오는 중장거리용 병기를 피하기라도 하듯 고개를 휙! 돌려 소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그만한 크기의 활을 제작하는 건 가능한 것이오?”
“그럼요! 우리 개방이 사람 동원하는 데는 최고입니다. 각 분야 장인들을 불러 모아, 지척에 깔린 나무 중에 가장 큰 걸로 활을 만들도록 하면 됩니다. 화살도 마찬가지고요.”
“그게 가능하다니, 정말이지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소희 낭자! 개기일식 전까지 만들 수 있겠습니까?”
“서두르면 가능할 것입니다.”
“그럼 개기일식 전까지 만들어 주십시오. 부탁입니다.”
“그나저나 활을 만들고 화살을 만들었다 치고, 그다음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화살에 몸을 묶어 하늘로 날아오를 것입니다. 그리고 화살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 묶었던 끈을 풀고 떨어져 나와, 시속 180km의 곡풍에 몸을 실어 태양 아니, 광채 속으로 날아들어 갈 것입니다.”
“해야 할 일도 많고, 신의 가호도 필요하고, 산 넘어 산입니다.”
“그렇습니다. 개기일식에 곡풍까지 불어 줘야 하니 쉬운 일은 아닙니다. 게다가 소희 낭자가 무림의 동력이라고 했던 말도 필요합니다.”
“말은 어디에 쓰시려고요?”
“활시위를 당겨야 합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어려울 것 같아 생각해 본 건데, 말을 이용하면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 좋은 생각이십니다. 말은 여러모로 유용합니다. 히말라야까지 가는 동안 이동 수단이 돼 줄 것입니다.”
“참, 이유는 묻지 마시고 화살은 두 개를 만들어 주십시오.”
“왜요? 혹시 실패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입니까?”
소희의 돌발적인 질문에 용하는 어정쩡하게 대답했다.
“아! 네. 그, 그게 그렇죠. 음, 아마도 그럴 겁니다. 그게…….”
* * *
창의부흥원, 샘플 제작실.
소희와 최종계획을 공유한 용하는 창의부흥원 이외의 공간에 두문불출했다. 특히 하루 중 대부분 시간을 샘플 제작실에서 보냈다. 개방에서 유일하게 무엇 하나 부족함 없이 공급받을 수 있는 곳. 단, 현존하는 것이라면. 그리고 소희의 지식 속에 있는 것이라면.
“창의부흥원 원장님께 아룁니다. 용두방주의 궁에서 전갈이 왔습니다.”
“말씀하시오.”
“내일 오전, 용두방주님께서 창의부흥원에 납실 계획이시라 하십니다.”
“알겠다고 전하시오.”
그리 곱지 않은 대답이었다. 자기가 해 달라는 대로 한 사람한테 곱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이런 반응이 나온 이유는, 용두방주에게 할애해야 하는 만큼의 시간을 낭비해야 하고, 그의 궁금증을 풀어 주느라 하기 싫은 거짓말도 해야 하니까.
용하는 윙슈트를 만들며 내일 용두방주와 나눌 대화에 대한 얼개를 대충 만들어 보았다.
질문 1. 하는 일은 잘돼 가시오?
대답 1. 네, 대인.
질문 2. 일하는 데 불편하다거나 필요한 것은 없소?
대답 2. 덕분에 어려움 없이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일상적으로 던지는 안부에 해당하니, 그리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두 번째 질문에 대답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린다. 왠지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파는 것 같다.
[덕분에 어려움 없이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라는 대답은 방주가 치고 들어올 빌미를 주게 될 것이고, 이 대답에 방주는 기다렸다는 듯 질문3을 던질 것이다.질문 3. 잘 진행되고 있다니 다행이오. 그럼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 좀 보여 줄 수 있겠소? 궁금해 미치겠구려.
질문3을 피해 갈 수는 없다.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거짓말뿐. 어쩔 수 없이 용하는 가슴을 짓누르며 거짓말을 만들어 내야 한다.
그래서 질문2의 대답을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대답 2. 염려해 주신 덕분에 큰 차질은 없습니다만, 비밀리에 하는 일이다 보니, 진행이 더뎌 아직은 보여드릴 만한 게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바꾼다면, 용두방주가 앞으로 할 질문에 대한 대답을 미리 해두는 셈이다.
용두방주의 예상 질문과 그에 따른 질문을 머릿속에 그리며 얼개를 짜는 데만도 반나절이나 걸렸다. 그나마 예상 질문에 제대로 맞아떨어진다면 다행인데, 그것도 아니라면 자칫 곤경에 처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괜히 긴장되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다음 날이 되었다. 한창 바쁘게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용두방주님 납시셨습니다.”
제작실에서 듣는 하인의 목소리는 아련했다. 용하는 서둘러 제작실을 나와 접견실 쪽으로 빠르게 이동하며 대답했다.
“안으로 모시도록 하시오!”
그리고 빠르게 이동해 이제 막 접견실에 도착했을 때였다. 문이 스르르 열리며 용두방주가 들어왔다. 용하는 태연하게 방주를 맞이했다.
“오셨습니까? 대인. 그러잖아도 어제 납신다는 전갈을 받고 미리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오, 그러시오? 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요. 나는, 혹시나 연구에 방해되지는 않을까, 몹시 조심스러웠다오.”
방주의 말에 용하는 고개를 숙였다. 아무 말 없는 용하를 보며 방주는 생각했다.
‘뭐야, 저 반응은? 이건 뭐, 조심조심해줘서 고맙다는 건지, 그건 그렇고 어차피 연구에는 이미 방해가 됐다고 책망을 하는 건지.’
아무 말도 안 하는 게 용하가 반나절을 고민한 끝에 만들어 낸 가장 효과적인 답변이었다. 용두방주와 독대할 때 가장 유효적절한 전략전술. 그것은 다름 아닌, 용두방주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었으니까.
“그래, 하는 일은 잘돼 가시오?”
앗싸, 첫 번째 질문 적중! 그렇다면 미리 준비한 모범 답안 나가신다.
“네, 대인.”
“일하는 데 불편하다거나, 뭐, 필요한 것은 없으시오?”
앗싸, 두 번째 질문도 적중! 그렇다면.
“염려해 주신 덕분에 큰 차질은 없습니다만, 비밀리에 하는 일이다 보니, 진행이 너무 더뎌 아직은 보여드릴 만한 게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용두방주의 입을 막기 위해 미리 준비한 수정 답안을 제시했다.
‘수정 답안도 적중해야 할 텐데…….’
가슴 조이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방망이질하듯 두들겨 대는 심장박동을 견뎌야 했다.
―콩닥콩닥……!
“음, 바쁜가 보군. 얼굴 봤으니 이만 가 보겠소.”
방주의 말에 콩닥거리던 용하의 심장이 잠시 멎는 듯했다. 뜻밖에도 예상이 크게 빗나갔기 때문이다. 분명 심사가 뒤틀려 궤변을 늘어놓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렇게 순순히 물러가겠다니.
“죄송합니다. 마음 같으면 대인과 담소를 나누며 그동안 쌓였던 궁금증을 풀어드리고 싶습니다만, 그럴 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는 소인배를 너그러이 용서하십시오.”
“아, 괘념치 마시오. 여기까지 온 김에 소희의 별채에 들러 여식과 담소를 좀 나누다 갈 것이오.”
용두방주의 말에는 많은 계산이 내포돼 있었다.
‘흠, 김용하! 자네가 우리 소희와 창의물을 함께 연구한다고? 그렇다면 어지간한 정보는 공유하겠네? 아무렴, 당연히 공유하겠지.’
방주가 음습한 생각을 하는 사이, 용하는 불안에 떨지 않을 수 없었다.
‘아, 소희가 조금의 실수라도 하는 날엔.’
아무리 영특하다 해도 처세술로 아비를, 그것도 용두방주를 이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타이밍. 그것 때문에 용하는 더욱 불안에 떨어야 했다. 새총에 빗대 소희에게, 앞으로 펼쳐질 계획을 설명하고 그에 맞춰 일을 진행해 줄 것을 당부하자마자 용두방주의 전갈을 받게 됐다는 게, 왠지 찜찜했다.
‘대인의 방문 예정을 알리는 전갈이 조금만 빨리 왔더라면, 소희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얘기하지 않았을 텐데. 그랬더라면…….’
잠깐 뒤로 미룬다고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소희가 정말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아무것도 모른다면, 방주의 처세술에 넘어가 비밀을 흘릴 이유도 없다.
그러면 지금처럼 불안에 떨거나 긴장할 이유 따위 전혀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