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38
38화
―저벅, 저벅!
거침없는 발걸음이 거리를 좁혀왔다.
용하와 인공은 몸을 낮추고 숨소리를 죽였다.
힘을 모으면 세상 두려울 게 없는 두 사람에게도 두려운 게 있었다면, 그건 오직 한 사람 용두방주였다.
그럴 리 없겠지만, 아니 그런 일이 없기만을 간절히 바라지만, 이런 야심한 밤에 호위무사실을 찾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분명 난감한 상황을 만들 뿐이다.
더군다나 그 사람이 생각하기도 싫은 용두방주라면 일은 더욱 난처해진다.
아까부터 거리를 좁혀 오는 무거운 발걸음.
―저벅, 저벅!
계속해서 숨통을 조일 듯 거리를 좁혀 오던 발걸음이 이제 막 문 앞에서 멈췄다.
발걸음이 멈추자, 두 사람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서로의 놀란 눈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심장은 터질 듯 쿵쾅거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사람은 각자의 가슴을 움켜쥐고 제멋대로 나대는 심장박동을 달랬다.
그리고 나머지 손은 검지를 펴서 각자의 입에 가져다 댔다. 서로에게 건네는 일종의 응원이었다. 그리고 곧.
“예서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
장설의 목소리였다.
“후―”
그제야 두 사람은 안도하며 털썩 주저앉았다.
“뭘 그리 놀라느냐? 무슨 음모라도 꾸미고 있었던 것이냐?”
용하는 손을 뻗어 장설의 입을 막으며 칭얼거렸다.
“형님, 제발 좀, 네! 제발 목소리 좀 낮추세요!”
장설은 어리둥절했지만, 일단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대체 무슨 일로 이리 소란을 피우는 것이냐?”
“형님도 참, 소란이라뇨? 무슨 말씀을 그리 섭섭하게 하시는 겁니까? 정작 소란은 형님이 다 피우셔 놓고.”
“뭐, 뭣이라?”
“그렇잖아요? 지금 누구 목소리가 제일 큰지 한번 보세요. 쳇,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있는 사람들한테 소란이라니, 뭐 이런 경우가 다 있습니까?”
듣고 보니 용하의 말이 그리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알았다. 그만하고 안으로 들자꾸나.”
“아닙니다. 그냥 밖에서 인공 형님과 잠시 이야기만 나누고 돌아가겠습니다.”
그 순간 장설은, 왠지 따돌림당한다는 느낌이 들었던지 입을 씰룩였다.
“너희 둘! 대체 무슨 꿍꿍이인 게냐? 왜, 요즘 들어 자꾸 나 몰래…….”
“장설 형님! 무슨 생각으로 하시는 말씀인지는 모르겠으나, 저희 두 사람 그런 거 없습니다. 오히려 제 생각엔 형님이 예민해지신 것 같은데 혹시 무슨 일 있으세요?”
유연하게 받아치는 용하의 말솜씨에, 아주 잠깐이었지만, 장설 또한 그런가? 하는 착각에 빠졌다.
“하긴, 나도 요즘 호위무사와 기록원을 겸직하다 보니 신경이 날카로워진 건 사실이구나. 그럼 대충 하던 얘기 마무리하고 들어가서 눈을 좀 붙이도록 하거라.”
장설은 왔던 길로 되돌아갔고 용하와 인공은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온 두 사람은 후원을 지나 중앙 정원까지 갔다. 아무래도 넓은 곳이 보안에 탁월할 것 같아서였다.
나무숲까지 넓게 펼쳐진 잔디 정원. 은밀하게 담소를 나누기엔 최적이었다.
혹 누군가 암약한 밀정이 있다 한들 몸을 숨길 곳이 없으니 염탐을 당할 일 없으니 말이다.
“형님! 일이 시작되면 먼 길을 걸어야 합니다. 그러니 평소 체력 관리를 잘 해두셔야 합니다.”
“이 정도면 어디다 내놔도 봐줄 만하지 않으냐? 여기서 더 얼마나!”
“네. 좋아요, 좋아. 지금 형님 피지컬은 역대급입니다. 이대로만 쭉 잘 관리해 주세요.”
“그런데 말이다. 대체 얼마나 걸어야 하길래, 사람을 이렇게 지레 겁을 주는 것이냐?”
“그게 말입니다. 중국 서남부지역 티베트까지요.”
“티베트?”
티베트란 말에 인공은 경악을 금치 못하고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게 다가 아닙니다. 티베트에서 히말라야산맥을 등반해 에베레스트까지 올라가야 해요. 그것도 말 일백 필을 이끌고.”
앞으로의 계획을 간략하게 설명하는 용하를 바라보는 인공. 그렇지 않아도 부리부리한 그의 두 눈은 당장에라도 쏟아져 내릴 듯했다. 인공은 휘둥그레진 눈으로 용하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리고 떨어지지 않은 입을 겨우 열어 힘겹게 말했다.
“뭐, 에베레스트! 말 일백 필!”
21세기 뉴스에서 아무개가 에베레스트 등반에 성공했다고, 대서특필 되고는 했을 때만도, 까짓것 누군 못 해, 하며 비웃기 일쑤였다. 하지만 내심, 사람이 저길 어떻게 올랐을까, 하는 경이로움이 없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 어려운 걸 장비도 없이 맨몸으로, 그것도 말 일백 필까지 이끌고 해야 하다니, 어이가 없어 횡설수설이다.
“얘야, 용하야. 너는 어쩜 그렇게 하는 말마다 경이로운 것이냐? 지금 그게 다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형님, 정신 차리십시오. 우리 두 사람에게는 사패산터널 속에서 광채에 휘감기는 순간부터 말이 안 되는 삶이 시작된 겁니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그날 이후 지금까지 단 한 순간이라도 정말 마음 편히 살았는지.”
“무슨 말인지 알겠다. 겉은 멀쩡하지만 속은 늘 노심초사했었잖아. 자네나 나나.”
“그래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돌아가야 한다는 겁니다. 형님과 저는 무림의 사람이 아니지 않습니까? 절대 이곳 무림에 적응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알았다. 이래 죽나 저래 죽나, 언젠가 죽을 목숨. 죽어도 후회 없이 죽자꾸나.”
인공의 대답은 예의 결연했다. 하지만 그 속에 얼핏 참담함도 배어 있었다.
“죽을 각오로 한번 해 보자는 각오는 좋지만, 절대 죽어서는 안 됩니다. 죽더라도 21세기로 돌아가서 죽어야 합니다.”
“알았다. 그리하자꾸나.”
인공은 울먹이는 기색으로 대답했고, 그를 대하는 용하는 일순 숙연해졌다.
* * *
다음 날 식전부터 소희가 용하를 찾아왔다. 이렇게 일찍 소희가 찾아온 건 처음이었다. 그래서인지 용하는 적잖이 긴장된 표정으로 그녀를 맞이했다.
“소희 낭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게요?”
소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왔다. 그 발걸음이 얼핏 그녀의 쀼루퉁한 심경을 대신하는 듯했다. 용하는 종종걸음으로 그 뒤를 따르며 애가 타서 물었다.
“소희 낭자, 대체 왜 이러는 것이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이오?”
그제야 소희는 우뚝 멈추더니 휙! 돌아보며 쏘아붙였다.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시는 거 아닙니까?”
“너무하다니 무엇을 말이냐?”
용하는 어리둥절해서 아니, 어리둥절한 척 되물었다.
“원장님은 제가 보고 싶지도 않으십니까?”
보고 싶다니, 이 웬 생뚱맞은 말인가.
“소희 낭자, 대체 왜 이러시오. 밤사이 무슨 안 좋은 꿈이라도 꾼 것이오?”
“원장님 눈에는 제가 마냥 어린아이로만 보이시는 겁니까?”
“아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어정쩡하게 대답하는 용하의 뇌리에 21세기가 얼핏 떠올랐다. 최근 21세기에서는 빠르면 초등 3학년에서 5학년에 사춘기가 온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혹시! 용하는 말똥히 뜬 눈으로 소희를 바라보았다.
‘내가 21세기에서 이런 경험을 해결해 본 적이 있었던가.’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그런 경험은 없었다. 그래서 각종 채널의 사춘기 관련 프로그램과 애정촌 관련 프로그램을 떠올려 보았다. 사춘기, 그들은 무엇에 가치를 두고 사랑을 느끼는가.
용하는 소희가 왜 자기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생각하면 할수록 용하의 추론은 점점 미궁으로 빠져들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얘, 왜 이래? 아무리 생각해도…….’
소희가 떼를 쓰는 소리가 아련하게 들렸다.
“거짓말! 어른들은 늘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사는 것 같아. 언행일치는 개뿔! 실천할 자신이 없으면 말이라도 하지 말던가. 입으로는 뭐든 할 것처럼 하면서 행동은…….”
용하는 정신을 가다듬었다. 이대로 뒀다가는 무슨 일이 터져도 터질 것만 같았다. 그 순간 용하는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꺼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소희의 입을 막아야만 했다.
“소희 낭자!”
용하가 버럭 고함을 지르자, 떼를 쓰던 소희가 짐짓 놀란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그러는 통에 아우성은 잦아들었지만,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대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를 어쩐다.
그때였다.
“사람 불러 놓고 뭐 하시는 겁니까? 용건을 말하세요.”
잠시 기대감에 부풀었던 소희가 실망의 눈초리로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무엇을 하려는 게 아니고, 낭자께서 진정을 좀 하셔야 하는 순간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워~ 워~”
“참나, 이 사람이 진짜!”
요기까지는 들릴 듯 말 듯 입엣소리로 지껄였다. 그러고는 곧.
“지금 무슨 소릴 하시는 거예요? 뭐, 제가 진정을 해야 한다고요?”
세상이 떠나갈 듯 고함을 질렀다. 용하는 안절부절못해 소희의 입을 틀어막았다.
“워~ 워~ 제발, 제발 좀…….”
용하의 적극적인 만류에도 소희는 좀처럼 멈출 줄을 몰랐다.
“이 아저씨가 진짜! 제가 뭘 진정해야 한다는 거죠? 제가 진정해야 할 만큼 무슨 실수라도 했다는 겁니까?”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별 잘못한 것도 없이 괜히 무엇엔가 홀린 듯했다. 용하가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때였다. 불현듯 의아한 표정으로 용하를 바라보는 소희.
그런 소희를 바라보는 용하는 생각했다.
‘왜, 저런 표정으로 보는 거야?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여태 혼자 떠들어 놓고.’
그런데 정작.
“원장님! 왜 원장님은 제가 얌전하게 말하면 들어 주시질 않는 거죠?”
“네? 그게 다 무슨 말씀이신지…….”
“제가 언성을 높여야만 귀를 기울이고, 진지하게 들어주시고. 대체 저한테 왜 그러시는 거예요?”
“소희 낭자. 그것 때문에 아침부터 이렇게 찾아오신 겁니까?”
“밤새 약이 올라 한숨도 못 잤습니다.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날이 새자마자 찾아올밖에.”
“제가 설마 소희 낭자의 말씀을 무시해서 그랬겠습니까?”
“그게 아니면요?”
“워낙 일이 바쁘다 보니, 낭자의 말을 다 들어주지 못한 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무시한 적은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걸 가지고 억한 감정을 가지고 이렇게 행동하신다는 건…….”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닙니다. 원장님은 사람이 꼭 말을 해야만 알아들으십니까?”
“아니, 그럼 뭐 달리……. 소희 낭자! 사람은 말입니다. 사회적 존재로서 말을 해야 알아듣는 겁니다. 말을 하지도 않고 알아서 해 주기를 바란다는 건 비사회적 발상이라는 거죠.”
세상에 이럴 수가, 용하의 입에서 이런 말이 다 나오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용하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 하기엔 믿기지 않는 말이었다. 더 놀라운 건 그 어려운 말을 소희는 찰떡같이 알아듣는 기색이라는 사실이었다. 용하의 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소희는 불현듯 숙연해졌다. 그러고는.
“그래서 이렇게 온 것입니다.”
너무나도 진지한 소희의 말에 용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원장님! 원장님이 방금 말씀하셨듯이, 의사소통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오해도 안 생기고, 시간도 절약하고, 음, 그리고 또…….”
“그리고 또, 그다음은 무엇인지 말씀을 해 보십시오.”
“음, 불필요한 일에 감정을 낭비하는 일도 없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저는 무엇보다 시간 낭비를 안 했으면 하는 사람 중 하나이고, 낭자는 감정 낭비를 안 했으면 하는 사람 중 하나인 것 같으니, 이쯤에서 절충하는 건 어떠신지요.”
“절충이라니요, 그게 다 무슨 말씀입니까?”
“아, 좋은 뜻으로 드린 말씀입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바라는 내용이 있으면, 속 시원히 털어놓고 최대한 맞춰 주자는 의미죠.”
“그럼 어디 말씀해 보시죠. 그 절충안!”
“그건 아무렇게나 즉흥적으로 정할 게 아니고, 서로 심사숙고해서 일주일 뒤에 상대에게 바라는 요구 사항을 문건으로 작성해서 교환하도록 하는 건 어떻습니까?”
소희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곧 대답했다.
“그거 좋은 생각인데요! 그렇게 하도록 합시다.”
소희의 시원시원한 대답에 용하는 잠시나마 안도하며 어금니를 깨물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그때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