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39
39화
“우리 전기를 만들어 볼까?”
인공이 빈말처럼 한 말에 용하는 귀를 후비적거렸다.
그리고 곧 비관적으로 대답했다.
“지금 뭔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너는 왜 내가 무슨 말만 하면 발끈해서 지랄이야?”
“뭐, 발끈해서요? 제가 보기엔 형님이 더 발끈하신 것 같은데요.”
“무어라, 내가?”
음,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인 것도 같다. 인공은 두어 차례의 헛기침으로 목청을 가다듬고 차분하게 다시 입을 뗐다.
“음, 그러니까 그게. 음, 우리가 전기를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우리는 이미 전기의 발전 원리를 알고 있지 않은가.”
인공의 말이 전혀 타당성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곳 무림은 발전기를 만들기엔 너무 인프라가 열악하다.
“형님, 전기를 만들자고요? 여기… 무림…에서?”
용하는 조금 전 장난기 섞인 말투에 비하면 꽤 진지했지만, 여전히 의구심이 가득한 얼굴로 되물었다.
인공의 반응은 자신감에 넘쳤다. 그 정도는 껌이라는 듯.
“왜, 못 할 것 같으냐?”
“아니, 그런 건 아닌데…….”
하고 생각해 보니 아닌 건 아니었다.
“에이, 형님! 거, 말 같은 소리 좀 하세요. 전기를 만들 만한 과학적 자료가 아무것도 없는데 무엇으로 어떻게 전기를 만들어요?”
“태초에 문명의 발상을 되새겨 보아라. 그에 비하면 이곳 무림은 훨씬 발달 된 세상이 아니겠느냐. 철을 연마해 검을 만드는 세상이다. 못 할 것이 뭐가 있겠느냐.”
인공의 자신감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하는 갸웃한 기색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용하와 잠시 시선을 주고받으며 인공은 직감했다. 지금부터 질긴 신경전이 시작되는 거라고.
그래서 생각한 게 논리로 한번 붙어보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이러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맨몸으로 말 일백 필을 끌고 에베레스트를 간다는 건, 불가능이야.”
자신의 계획이 이룰 수 없는 것이라 단언하자 용하는 발끈했다. 제대로 걸려든 것이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지만 연륜은 세월만큼이나 쌓이고 또 쌓이는 것.
“형님, 우리가 21세기로 돌아가겠다는 건 가능한 일인가요? 그리고 수 세기를 거슬러 무림으로 오게 된 건요? 이건 가능한 일이었습니까? 거기에 비하면 말 일백 필을 끌고 에베레스트에 가는 건 현실이잖아요. 물론 힘은 좀 들겠죠. 하지만 분명 현실 아닙니까?”
“알았다. 내가 잘못했다. 그런데 너도 좀 이상하구나. 매사에 그렇게 긍정적인 녀석이 어찌 전기를 만들자는 말에는 그렇게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냐?”
“그건 말이죠. 저는 이 무림이라는 곳에 와서 전기를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서 전기를 사용하겠다는 생각 같은 건 애초에 없었으니까요.”
“전기를 본 적이 없다?”
“네. 제발 좀 한 번만 봤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무림에 온 이후, 비가 내린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말이냐?”
“한 번도 없긴 뭐가 없어요. 몇 번 오긴 왔었잖아요.”
“그중에 큰비가 내린 적이 없었느냐?”
“큰비요? 음, 한 두어 번 내렸죠.”
“그때 천둥 번개가 치지 않았느냐?”
“당연히 쳤죠. 그것도 아주 무시무시하게.”
바로 그 순간 아무 생각 없이 수동적인 대답만 하던 용하의 표정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천둥 번개?’
무엇인가 불현듯 뇌리를 스쳤기 때문이다. 용하는 눈을 들어 인공을 직시했다. 인공을 보는 용하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뒤늦게 인공의 말을 인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형님!”
“호들갑 떨지 말아라. 뭐 그만 일로.”
인공은 잠시 우쭐한 기색을 보였지만, 예전처럼 역겨울 정도는 아니었다.
“형님이 생각하는 바를 말씀해 주십시오.”
“내 생각에는 말이다. 개방에서 가장 큰 나무를 찾아, 그곳에 전기를 모을 수 있는 장치를 설치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전기를 모을 수 있는 장치라…….”
“…….”
“전기를 모을 수 있는 장치는 어떻게 만들죠?”
“그건 창의부흥원 원장인 네 녀석이 지금부터 연구해야지.”
잔뜩 부풀었던 기대감이 한순간에 사라지며 긴 한숨이 새 나왔다. 인공의 발상이 얼토당토않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었지만, 한 가지 분명했던 건 그의 발상을 그냥 지나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뜻을 둔다면 충분히 실현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만약 전기를 모을 수만 있다면, 지금보다 모든 일이 수월해지는 건 자명한 일이다.’
좀 엉뚱한 가설을 세워 보기로 했다. 이 모든 건 천문학에 능한 소희가 있어서 시도해 볼 수 있는 일이다. 일기예보! 소희의 예보가 얼마나 맞아떨어질지 아직은 모르지만, 막연하게 비가 내려주기만을 기다리는 것보다는 한결 낫지 않은가.
“시간이 없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하지 않았던가.”
용하는 한달음에 소희의 별채 쪽으로 향했다. 그의 걸음걸이가 마치 축지법을 쓰는 듯했고, 그것은 곧 용하의 마음이 얼마나 조급한지를 대변해 주었다.
“소희 낭자! 부탁 하나만 하겠습니다.”
“원장님. 무슨 일이라도 있으셨습니까? 안색이 왜 그리 창백하신지요?”
“제 안색은 괘념치 마시고, 비가 내리는 날을 찾아 주십시오.”
“비 내리는 날? 그건 왜요?”
“아무것도 묻지 말고 그냥! 그냥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왕이면 요란하게 천둥 번개가 치는 최악의 날로 말입니다.”
“참으로 이상합니다. 사람들이 제게 그런 부탁을 할 때, 대부분 가장 화창하고 좋은 날이 언제겠느냐고 묻는데, 원장님은 그와는 정반대이니 말입니다.”
“실은 제가 가설을 하나 세웠는데, 그 가설이 너무 뜬금없어 아직은 말씀드릴 수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가설?”
“네. 그게 너무 엉뚱한 가설이어서, 일단 실험부터 해 보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엿보이면, 그때 공식적으로 발표하고 소희 낭자와 함께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해 볼까 합니다.”
“아,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저도 서역에서 공부할 때, 그렇게 했었습니다.”
“그럼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아니, 이대로는 할 수 없습니다.”
“이대로는 할 수 없다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여태 설명을 드렸는데 이렇게 거절하시는 겁니까?”
“거절이라고 단정 짓지는 마십시오. 무엇이든 좋으니, 작은 증거라도 보여 주십시오. 그래야 저도 목적의식을 가지고 일에 전념하지 않겠습니까?”
그리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니, 반드시 거쳐야 하는 절차였다. 용하는 일순 머릿속이 다 하얘지는 듯했다.
‘이를 어쩐다. 전기를 모으겠다는 말을 과연 이 무림에서 누가 알아들을까? 설령 알아들었다 해도, 그 말을 과연 누가 믿어 줄까? 아니, 어쩌면 전기라는 말 자체를 아예 모를 수도…….’
그렇다면 보여 주는 수밖에 없었다. 직접 느끼게 해 준다면 믿어 줄 것이다.
“소희 낭자! 혹시 연회장 하인들에게 말해 신맛이 나는 과일을 구해 줄 수 있겠습니까?”
“지금이요?”
“네, 지금이요. 최대한 신맛이 나는 거로요.”
소희는 바로 실행에 옮겼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연회장 하인이 가져온 과일은 다름 아닌 매실이었다. 실험하기 좋은 과일이라는 생각에 입꼬리가 움직였다.
용하는 개방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구리동전과 은자를 이용해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과일 전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 가며 설명까지 유창하게 해 주었다.
“소희 낭자! 이것은 이온화 경향이 다른 두 금속을 이용한 산화와 환원 반응입니다. 이온화 경향이란 금속 원자가 전자를 방출해 양이온이 되려는 성질을 말합니다.”
과일 전지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소희. 그녀는 금세 그 어려운 말을 이해하고는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자, 그럼! 여기다 손을 대 보십시오.”
소희는 몇 번이나 용하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구리동전에 손을 가져다 댔다. 소희의 표정에 두려움과 호기심이 엇갈렸다. 그러고는 곧.
“앗!”
소희는 미간을 좁히며 깜짝 놀랐다. 그런 소희와는 달리 용하는, 재미있어하며 물었다.
“어떤 느낌이었습니까?”
“따가웠습니다.”
“그게 다였습니까?”
“찌릿했습니다.”
용하는 깊은 눈으로 소희를 직시했다. 그러고는 설명했다.
“방금 느꼈던 것을 말로 하자면, 전기라고 합니다.”
“전기?”
“아까 말씀드렸던 이온화 경향이란 말 기억하십니까?”
“네, 기억하고 있습니다.”
“비 오는 날 하늘에서 내리치는 번개도 같은 원리입니다.”
“번개가 같은 원리라고요?”
“네. 궂은 날씨와 맑은 날씨가 맞부딪쳐 이온화 경향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전자를 방출하고, 그것이 우리 눈에 플라스마라고 하는 낙뢰로 보이는 것입니다.”
당대 사람이 이해하기에 그리 쉬운 말들은 아니었다. 하지만 소희는 그 어려운 말들을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다시 말해 조금 전 과일 전기에서 경험한 느낌이 발작을 일으킬 정도로 커져야 비로소 우리 생활에 유익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겁니다.”
“발작을 일으킬 정도면 너무 위험하지 않습니까?”
“물론 위험합니다. 허나! 세상의 모든 것들이 잘 사용하면 유익할 것이고, 잘못 사용하면 위험한 거 아니겠습니까? 전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아, 알겠습니다. 그런데 원장님. 전기와 비 오는 날이 대체 무슨 상관이 있어서 소녀에게 그런 부탁을 하신 겁니까?”
“신맛 나는 과일의 산화와 환원으로 사람이 발작을 일으킬 정도로 큰 전기를 만들어 낼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이미 강한 전력을 지닌 번개를 모아 보려는 겁니다.”
용하의 말에 입이 떡 벌어진 소희의 표정에 걱정이 앞섰다.
“원장님, 그 위험한 일을 굳이 하셔야겠습니까?”
소희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하지만 용하는 담담하게 등을 돌려 먼 곳에 시선을 두고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광경을 목도하는 소희는 용하가 이미 심지를 굳혔다는 것을 인지하고 더는 아무도 용하를 말릴 수 없음을 깨달았다. 소희는 모든 걸 체념한 채 다소곳이 말했다.
“돌아가 계십시오. 예상 날씨가 나오는 대로 창의부흥원으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 * *
그날 이후 창의부흥원의 시계는 빠르게 돌아갔다.
용두방주의 눈을 피해 전기를 만드는 데 전력투구하는 용하. 밤잠을 설쳐 얼굴은 엉망이 돼 갔지만, 표정만큼은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검을 수련할 시간도 없어 검객으로의 면모는 온데간데없었다.
“하나를 얻기 위해선 다른 하나는 내줘야 하는 법!”
그사이 낙뢰를 한곳으로 모을 수 있는 몇 개의 장치들이 만들어졌다. 이렇게 준비된 장치들은 그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전 용하는 비단을 서로 비벼 만들어 낸 정전기를 장치에 수차례나 가져다 댔다.
―타닥! 타닥! 탁! 탁!
아직은 약한 전기여서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정전기 소리로 지금 전기가 통하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이제 남은 건 끌어 당겨진 전기를 한곳에 모으는 것이다.
“이를 어쩐다… 혼자 힘으로 전기를 저장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든다는 건 좀…….”
한계에 부딪힌 듯했다. 지금 용하에게 간절히 필요한 건 모든 걸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누군가였다. 그순간 몇몇 사람이 떠올랐지만, 딱히 물망에 오르는 사람은 없었다.
“참, 날씨는 어떻게 돼 가고 있는 걸까?”
불현듯 소희가 떠올랐다.
“무심한 사람 같으니. 일기예보가 나오는 대로 찾아온다고 하더니 코빼기도 안 비추네.”
급기야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온 용하는 소희의 별채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늘 그랬듯 사람들 눈을 피해 뒷길로 걸었다. 여느 때처럼 빠른 걸음은 아니었다.
“수련을 소홀히 해서 그런가, 땅을 딛는 느낌이 달라졌는걸.”
산책하듯 걸어 마침내 소희의 별채에 도착했다.
“소희 낭자 안에 계십니까?”
용하의 말에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빠른 반응이 왔다.
“네, 원장님.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곧 뒷문 쪽으로 종종걸음치는 소희의 발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마침내 뒷문이 왈칵 열리며 소희가 나와 다짜고짜 용하의 품에 안겼다. 갑작스러운 소희의 행동에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소희를 밀쳐낸다거나 할 의사는 없었다.
소희는 용하의 귀에 대고 간지럽게 속삭였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니, 오해는 안 하셨으면 합니다. 최근 연구에 몰두하느라 아버지 못 본 지가…….”
변명이라고 하기에도 궁색하기 짝이 없었다. 용하도 그 사실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굳이 그 사실을 들춰내 소희를 난처하게 할 이유는 없었다.
“굳이 변명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렇지 않아도 연구에 매진하는 소희 낭자가 안쓰러워 응원의 뜻으로 한번 안아 주려고 했습니다.”
“다행입니다. 혹 발칙하다 생각하지 않을까 걱정됐는데, 그리 말씀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용하를 끌어안은 소희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