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42
42화
인기척이라 생각했던 건, 사람이 아닌 들짐승이었다.
잠시 긴장의 도가니였던 동굴 속 분위기는 마치 일시 정지됐던 동영상이 다시 플레이라도 된 듯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왔다.
잠시 숨죽였던 세 사람은 거친 숨소리와 함께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다시 한번 정지된 듯한 시간이 흘렀다. 찰나에 불과한 시간이 흐르고 용하가 대뜸 물었다.
“우리가 왜 긴장했던 거죠?”
용하의 물음에 장설이 앞다퉈 시치미를 뗐다.
“긴장! 누가? 혹시 용하 너, 긴장했었느냐?”
장설의 능구렁이 같은 처세에, 용하는 진저리를 치며 한술 더 떠 능청을 떨었다.
“제가요? 제가 왜? 에이, 그럴 리가요? 형님은 어쩌면 그렇게 발상도 독특하세요?”
발뺌하는 게 눈에 훤히 보였지만, 장설은 모른 척 인공에게 물었다.
“그럼, 너냐?”
“형님도 참, 제가 어디 그럴 깜냥이나 됩니까?”
“깜냥이라니, 그건 또 무슨 말이냐?”
“아, 제 말은요. 제가 뭔가 감지했어야 긴장하든 말든 했을 텐데, 형님도 아시다시피 제가 좀 둔하잖아요.”
“그러니, 네 녀석 말은 감지조차 못했다?”
“네, 형님.”
“감지조차 못했으니, 긴장할 일이 없었다?”
“그렇습니다, 형님.”
“말솜씨가 일취월장이로구나.”
“네?”
“뭘 그리 놀라느냐? 별말 아니니, 괘념치 말거라.”
그때 용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한마디 거들었다.
“그럼, 우리 셋 중에 긴장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얘기네요?”
“그렇지!”
인공과 장설은 입을 모아 대답했다. 그리고 곧 장설이 입을 열었다.
“음, 심각하지 않을 수 없구나!”
“왜요? 심각하지 않을 수 없다니, 그럼 심각할 이유라도 있다는 말씀인가요?”
정말 모르는 건지, 알면서 모른 척하는 건지. 아무튼 용하의 엉뚱한 질문에 장설이 처연하게 대답했다.
“잘 듣거라. 분명 들짐승이 나타나지 않았었느냐? 그런데 우리 셋 중에 누구도 그 사실을 감지하지 못했다고 자랑스럽게 고백하고 있지 않으냐? 이러고도 우리가 호위무사라고 할 수 있겠느냐?”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호위무사인 우리가 무술을 수련하는데, 왜 남의 눈을 피해야 하는 것이냐? 오히려 그동안 수련을 게을리했던 걸 부끄럽게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니냐?”
장설의 처지로는 당연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용하와 인공에게는 장설에게 말 못 하는 다른 속사정이 있으니, 사람의 눈을 피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용하는 서둘러 변명거리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형님, 너무 노여워 마십시오. 제 생각이 또 잘못됐을 수도 있겠으나, 제 소견으로는 기(氣)에 대한 신비감 취해 제가 좀 지나친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지나친 생각?”
“네, 형님. 그것이 너무 신비로워 은밀하게 간직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기를 운용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형님밖에 없다고 생각하여 우리끼리만 간직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니까 용하 너는, 세상이 모르는 능력을 갖췄으니 그 수련 또한 비밀스럽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뭐, 그런 말이냐?”
“네, 형님.”
“알았다. 이제 오해가 풀렸으니, 그만 내려가자꾸나.”
그 순간.
“형님!”
인공이 다급하게 장설을 부른다.
“앞으로 말입니다. 계속 이렇게 어둠이 내린 후에 수련할 계획입니까?”
“용하, 자네가 대답해 보게.”
“네, 그리할 것입니다. 기가 무엇인지 온전히 깨닫고, 저 스스로 수련할 수 있을 때까지는 말입니다.”
그제야 인공이 본래 하고 싶었던 말을 꺼낸다.
“만약에 소희 낭자나 용두방주가 알게 된다면, 그에 대한 무슨 대안이라도 있는 것이냐?”
“현재로선 없습니다. 하지만 내일 중으로 대안을 찾겠습니다.”
“그 말은 내일부터는 수련할 때 남의 눈을 피하지 않고 떳떳하게 할 수 있게 만들겠다는 말이냐?”
“네, 형님.”
“알겠다. 항상 듬직한 모습 보여 줘서 늘 고맙구나.”
* * *
다음 날 용하는 식전부터 용두방주의 궁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용두방주는 자진해서 자기를 찾아온 용하를 의아하게 여기는 기색이었다. 용하를 보는 그는 경계와 의심의 눈초리였다. 그런 용두방주를 대하는 용하는 그의 반응을 당연시했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것 같소.”
“죄송합니다. 진작 찾아뵈어야 했는데, 이제야 뵙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스스로 나를 찾아오다니, 오히려 내가 반가울 따름이오. 그나저나 우리 소희를 호위하는 일에 차질은 없는 것이오?”
“네, 방주 대인. 그 문제는 호위무사실 장설과 인공 두 무사와 함께 차질 없이 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입니다만…….”
용하가 잠시 말을 멈추자 방주가 말했다.
“왜, 그 문제로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 것이오?”
방주의 말투가 얼핏 덤비는 듯해, 용하는 마른침을 삼키며 대답했다.
“그동안 제가 간과했던 것이 있었습니다.”
“간과했던 것이 있었다! 어서 말해 보시오.”
“아무리 무공이 출중하다고 해도 수련을 게을리해서는 소희 낭자를 온전히 호위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당연한 말이 아니오.”
“그런데 송구하게도 그동안 그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지 않았다니, 그게 다 무슨 말이오? 호위무사가 무공을 게을리했다는 건 능지처참을 당해야 마땅한 일이 아니오?”
“네, 그렇습니다. 그동안 장설과 인공, 두 호위무사만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을 뿐, 저는 창의부흥원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무공을 게을리하였습니다.”
“그건 당연한 일 아니오. 김 원장은 창의부흥원 일이 주력업무이고, 호위무사실은 장설과 인공, 두 사람이 책임지는 것 아니었소?”
“네, 물론 그랬습니다. 하지만 호위무사실은 창의부흥원 부속시설입니다.”
“그야 물론 그렇지요. 그러니 창의부흥원은 호위무사실을 지휘만 하면 되는 것 아니겠소. 그런데 무엇이 문제인 것이오? 김 원장은 그냥 창의부흥원 일에 몰두하며 두 사람을 지휘만 하면 되는 것 아니오.”
“네, 대인. 저도 처음엔 그리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난 지금 돌이켜 보니, 아무리 고수라 해도 수련을 게을리하니 몸이 달라지는 걸 깨달았습니다.”
“몸이 달라지다니, 어떻게 달라졌다는 말이오.”
“의복에 가려 보이지는 않지만, 지금 제 몸은 한때 검술을 연마했다고 하기에는 부끄러울 만큼 야위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백의개만도 못한 체격으로 되고 말 것입니다.”
용하의 말에 용두방주의 눈이 커졌다. 찰나에 불과한 시간 용두방주의 뇌리를 스친 건 다름 아닌 소희였다. 소희를 평생 책임질 낭군이란 자가 백의개만도 못한 체격이라면, 이보다 더 큰 일은 없는 노릇이 아닌가.
“무어라! 백의개만도 못한 체격으로 변했다고? 그래 어찌하면 좋을 것 같소? 방법은 찾은 것이오?”
앗싸! 용하는 내심 쾌재를 질렀다. 그리고 대답했다.
“몸을 다시 세우는 데는 수련만 한 게 없습니다. 그래서 금일부터 호위무사실 무사들과 함께 일정한 시간을 정해 놓고 그 시간엔 무슨 일이 있어도 수련에 매진할까 합니다. 그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허락하다마다요. 모름지기 협객은 몸이 서야 마음도 서고 정신도 서는 것이 아니오.”
“그럼 매일 해가 지는 저녁, 후원은 물론 후원에서 이어지는 야산 주변까지, 아무도 출입할 수 없도록 손을 써 주십시오.”
“내 그리하겠소. 호위무사들이 수련하는 인근에는 개미 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못하도록 손을 쓰겠소.”
“그리고 방주 대인께서도 근처에 얼씬거리시면 아니 됩니다.”
그 말이 쓴소리로 들렸던지 방주는 미간을 좁힌 채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곤 대답했다.
“아니, 그건 좀 곤란할 것 같소.”
“왜요?”
용하는 미간을 좁히며 두 눈을 크게 떴다.
“왜 그리해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소.”
“달리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닙니다. 단지…….”
“매일도 아니고 일주일에 한 번쯤 우리 소희와 함께 구경 좀 하겠다는데 그게 그리 어려운 것이오?”
“호위무사가 수련하는 걸 구경하시겠다! 타당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나 방주 대인과 소희 낭자는 좀 각별한 분들이시니 허락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그리하십시오.”
용하의 말에 방주는 호탕하게 답했다.
“허락해 주어 고맙소이다.”
“단, 그 또한 정해진 시간에만 가능한 일입니다.”
용하가 또 단서를 달자, 방주는 곱지 않은 말투로 물었다.
“좋소이다. 어느 날이 좋겠소?”
“그날은 방주 대인께서 정하십시오. 단, 한 번 정해진 날은 절대 변동 없이 그날에만 구경할 수 있습니다.”
“알겠소. 그럼 가장 한가한 일요일로 하겠소.”
용하는 내심 입이 찢어졌다. 일요일! 그날은 아마도 호위무사들에게 명상하는 날이 될 것이다.
예상보다 일이 수월하게 해결됐다. 창의부흥원으로 돌아오는 용하의 발걸음은 여느 때보다 가벼웠다. 승자가 느끼는 기분이 이런 것일까?
이제 막 창의부흥원에 앞에 도착한 용하는 안으로 들어가려다 멈칫했다. 그리고 발걸음을 돌려 호위무사실 쪽으로 향했다. 더는 뒷길을 이용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날 이후 용하의 기(氣) 수련에 속도가 붙었다.
* * *
시간은 빠르게 흘러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하루도 빠짐없이 수련에 매진한 덕에, 용하는 작은 기를 만들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
아직 주먹보다 작은 그러니까, 아이들 놀이용 구슬만 한 기였지만, 보통 사람은 절대 할 수 없는 경지에 최단 시간 내 도달한 것이다.
“이보게, 김용하! 자네는 대체 정체가 무엇인가?”
장설이 이렇게 물은 이유는, 한날한시에 시작한 인공은 아직 기를 모으기는커녕 바람조차 일으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말투로 보아, 장설은 지금 의심이 아닌, 감동과 놀라움을 내비치고 있었다. 그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 없는 무한한 설렘.
“장하다, 김용하!”
인공이 용하에게 한 말이었다. 목소리에 가슴 벅찬 그의 심경이 담겨 있었다. 예전 같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의 인공은 패배를 인정할 줄 아는 용기와 아량을 지닌 사람이 돼 있었다. 또한 용하를 지지하며 그가 잘되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사람이 돼 있었다.
그사이에 네 차례 방주와 소희 낭자가 호위무사들의 수련을 구경하러 왔지만, 세 사람의 명상을 지켜보다 크게 하품만 하고 돌아가기 일쑤였다.
“자, 그럼 일전에 약속했던 대로 오늘은 주안상을 차려놓고 기를 운용할 줄 알게 된 용하를 축하하며 그동안의 회포를 풀었으면 하는데, 어찌들 생각하느냐?”
“현명하신 처사입니다. 주안상이라 하여 식욕을 억제치 못하고 막 먹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오늘은 용하를 축하하는 의미라 생각하고 본연의 뜻은 해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제 인공 자네도 어른이 다 되었어.”
“형님, 저 원래 어른이었습니다. 철없는 어른.”
“아, 내 말은 철이 들었다는 뜻이야.”
“알고 있습니다. 그냥 농담한 것입니다. 그리고 참!”
“무엇이냐? 또 할 말이 있는 것이냐?”
“형님, 외람되지만 제가 기를 운용할 줄 알게 되는 날, 작은 연회라도 열어 주십시오.”
인공의 말에 용하가 화사한 미소로 대답했다.
“인공 형님, 그건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용하 자네가? 거, 말이라도 고맙구나.”
세 사람은 흐뭇하게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만 내려가시지요.”
“그러자꾸나.”
세 사람은 산에서 내려왔다. 산에서 내려온 세 사람이 향한 곳은 용두방주의 궁이었다.
“이 시간에 어인 일들이시오?”
“연회장을 좀 사용했으면 합니다.”
“이 시간에 연회장을?”
“네, 방주 대인. 가능하면 허락해 주십시오.”
“연회의 목적이 무엇인지 말해 줄 수 있겠소?”
“장설과 인공, 두 호위무사에게 그동안의 회포를 좀 풀어 주었으면 합니다.”
“그동안의 회포라… 만약 그 부탁을 들어준다면 김 원장은 내게 무엇을 해 주겠소?”
“글쎄요, 대인의 부탁 한 가지를 저도 들어드려야 하겠죠?”
“그래서 들어주겠다는 것이오, 말겠다는 것이오?”
“제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들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좋습니다. 거절하지 말고 나도 그 자리에 좀 끼워 주시오.”
용두방주의 부탁치고는 보잘것없었다. 하지만 용하는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 연회를 여는 궁극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사실 연회를 하다 보면, 말이 오가는 건 당연한 일이고, 그게 길어지면 앞으로 계획이나 은밀해야 말들이 새 나오게 마련이다.
“방주 대인, 대인의 부탁이 그리 어려운 건 아닙니다. 하지만 저 혼자 내릴 결정은 아닌 것 같아 장설과 인공, 두 호위무사의 생각을 좀 물어보고 결정하겠습니다.”
용하의 말에 방주의 표정에, 얼핏 서운한 기색이 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