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44
44화
“장설 형님!”
꽤 묵직한 목소리였다.
“어떤 곳이 기를 모으기 좋은 장소입니까?”
용하의 목소리는 분명 묵직했지만, 얼핏 어린아이처럼 조르고 있었다.
“아니 가장 좋은 환경을 알려 주십시오. 어떤 곳이 기를 수련하기에 최적의 조건인지.”
용하의 하소연에 무겁게 침묵을 지키던 장설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환경이 무엇이 중요하겠느냐? 그보다는 시전자의 마음가짐과 기의 흐름이 어떠한가, 그것이 더 중요한 것이지.”
쉬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지만 용하는 장설의 말을 알아듣고 속으로 되뇌었다.
‘시전자의 마음가짐과 기의 흐름…….’
장설의 설명은 계속되었다.
“예를 들면 시전자가 건강하면 그만큼 크고 강한 기를 운용할 수 있을 테고, 그 반대면 작고 약하거나 아예 기를 운용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 순간 용하는 장설의 추상적인 말을 구체적으로 알기 위해 비교 대상을 만들어 척도로 삼고 싶었다.
“지금 형님 상태는 어떻습니까?”
“나? 나야 뭐, 이 나이에 이 정도면 건강하다고 자부할 만하지 않겠느냐?”
장설의 대답은 누가 들어도 수긍할 만했다. 그는 나이에 비해 건강했고 무공도 뛰어났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만약 용하 자네가 수련에 진심으로 열과 성을 다해 고수가 된다면, 아마도 나보다 훨씬 크고 강력한 기를 운용할 수 있게 될 걸세.”
“제가요? 그것을 어찌 장담하십니까?”
“자네는 아직 젊고 건강해. 뼈와 근육과 혈액이 이 늙은이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그뿐 아니라 오랜 세월 검도를 연마해서인지, 기의 흐름 또한 보통 사람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나다는 생각이 앞서기 때문이야.”
용하는 장설의 말이 칭찬으로 들렸다. 그래서인지 그의 말에 또 다른 희망이 생겼다.
원래는 장설의 기를 활용해 보조배터리를 충전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일이 이 지경이 된 지금, 굳이 그동안 몰래 해 온 계획들을 털어놓으면서 장설에게 매달릴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이제 창의부흥원에서 할 일은 전기를 만드는 일이다. 그것도 아무도 모르게 나만의 방법으로 기상천외하게.’
그날부터 용하는 열 일 제쳐두고 기 수련에 몰입했다. 소희가 개기일식의 시간과 관측 장소를 알아낼 때까지 기 수련에 매진한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시간은 충분하다. 소희 낭자가 개기일식이 있는 날을 찾는다는 게 하루 이틀에 될 일은 아니지 않은가.’
마음이 정해지자 용하의 발걸음은 조금도 망설임 없이 용두방주의 궁으로 향했다.
상담실에 도착한 용하는 대기 표식이 새겨진 동전을 받아 대기열 맨 뒤에 섰다.
마음은 조급했지만 더는 특혜를 받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런 이유로 예비 백의개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해서 좋을 게 없기 때문이다.
하인 중 하나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원장님, 앞줄로 모시겠습니다.”
“아니, 되었소. 오늘은 바쁘지 않으니, 예서 기다렸다 방주님을 만나고 갈 것이오.”
하인은 간결하게 예를 갖추고 스치듯 지나갔다.
한 시진(2시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아직도 용하는 뒷줄이었다.
물론 시간이 흘렀으니 한 시진 전처럼 맨 뒷줄은 아니었지만, 아직 중간도 못 온 것만은 사실이었다.
아까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던 하인이 지나가며 다시 한번 조심스럽게 물었다.
“원장님, 용두방주님께 아뢸까요?”
하인의 물음에 아까처럼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용하가 대답을 망설이자.
“아뢸 것입니다.”
하인은 결심이라도 듯 한마디를 내놓고는 상담실 문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용하는 얼핏 난처한 기색을 보였다. 하지만 더는 만류하지 않았다.
하인이 상담실로 들어간 지 일 다경(5분 남짓, 그러니까 차 한 잔 마실 정도의 짧은 시간)도 채 안 되었을 때였다.
상담실 문이 다시 열리며 용두방주가 모습을 나타냈다. 용하는 면목이 없었던지 고개를 돌렸다.
“앞장서거라!”
용두방주의 명에 하인이 용하를 향해 종종걸음을 쳤다.
하인이 거리를 좁혀 오자 웬일인지 용하는 안절부절못했다.
그런 용하를 바라보는 용두방주는 생각했다.
‘저 녀석이 또 무슨 수작을 부리려고 저렇게 안절부절못하는 게야?’
용두방주는 미간을 좁히며 회심의 미소를 떠올렸다.
‘영특한 녀석이 왜 저렇게 미련 맞게 고생을 사서 하는지, 원. 아무 소리 말고 우리 소희와 결혼만 해 준다면 개방의 모든 걸 다 누릴 텐데 말이야.’
이윽고 용하 앞에 선 용두방주는 심하게 꾸짖었다.
“이보게, 김 원장!”
“네, 방주 대인.”
“어찌하여 자네는 매번 이 용두방주의 말을 그리도 못 알아듣는 것이오?”
“…….”
“이 용두방주가 자네에게 부여한 창의부흥원 원장이란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아직도 모르고 있는 것이오?”
“송구합니다, 대인.”
“김 원장! 지금 사태파악이 안 되시오? 아님, 사람이 모자라는 것이오? 어찌하여 백의개도 못 되는 사람들 틈에 끼어서 이리도 미련 맞은 짓을 자행하는 것이오? 이 용두방주와 김 원장의 시간은 이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정녕 모르는 것이오?”
반박할 수 없는 말이었다. 지금 용두방주가 하는 말은 사람을 차별하자는 게 아니고, 하는 일이 다르니 시간도 다르다고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시간을 귀하게 쓰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송구합니다, 대인.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용하는 방주 앞에 납작 조아렸다. 그러자 대기열에 있던 상담 대기자들도 일제히 방주 앞에 조아렸다.
하는 꼴을 봐서는 괘씸하기 짝이 없었지만, 이쯤에서 사태를 수습하는 게 옳을 것으로 판단했다.
방주는 탁한 목소리로 호령했다.
“그만들 일어나시오!”
용두방주의 명에 사람들은 쭈뼛거리며 엉거주춤한 자세로 일어섰다.
“김 원장! 따라오시오.”
아직도 노기에 찬 목소리는 여전했다. 상담실 쪽으로 내디디는 발걸음 또한 그러했다. 용하는 고개를 살짝 숙여 대답하고 숨죽인 채 방주의 뒤를 따라 걸었다.
방주가 상담실 문 앞에 도착했을 때 문이 스르르 열렸다.
“들어오시오!”
용두방주의 목소리가 조금 전보다는 다소 누그러져 보였다.
‘이제 화가 좀 풀린 건가?’
비로소 긴장감을 살짝 늦출 수 있었다.
두 사람이 상담실 안으로 들어가자 문이 스르르 다시 닫혔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상담실 안에서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릴 듯 말 듯 새 나왔다.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대화는 일부러 귀를 기울여 듣지 않고서는 들리지 않을 만큼 아련했다.
두 사람의 은밀한 대화는 꽤 긴 시간 계속되었다. 그렇게 두 식경, 그러니까 보통의 사람이 평범한 식사를 두 끼 정도 하는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마침내 상담실 문이 스르르 열렸다.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방주 대인.”
“조만간 좋은 소식 기다리겠소.”
대체 어떤 대화가 오갔길래 조금 전 탁한 목소리는 온데간데없고,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인사말에서 좋은 기운이 느껴졌다. 용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복도를 걸었다. 그의 옆을 스치는 상담 대기자들의 표정은 의아해하거나 놀라고 있었다.
* * *
그날 이후 용하는 창의부흥원에 두문불출했다.
용하는 하루 중 대부분 시간을 동굴에 머물며 기 수련에 전념했다. 장설에게서 배운 태극권에 기초를 두고, 우주를 떠도는 기를 끌어들여 내공에 저장하는 수련을 반복했다. 그리고 그렇게 모인 기운을 운용하는 기의 흐름을 또 반복해서 수련했다.
처음에는 더디게만 느껴지던 기의 실체가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며 세포 하나하나에서 느낄 만큼 크고 구체적으로 전해졌다.
“이것이 물아일체라는 것인가?”
어느 순간 용하는 공기의 흐름에 아무런 저항 없이 동화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 기운은 마치 몸의 형체를 잃은 듯했다. 모습은 있으나 손에 만져지지 않는.
“자, 이쯤에서 기를 한번 시험해 볼까?”
용하는 동굴을 빠져나왔다. 밤하늘에 총총히 떠 있는 별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릴 듯했다. 그 광경을 보는 순간 용하는 욕심이 생겼다.
“저 수많은 별의 기운을 한번 모아 볼까? 어디까지 모을 수 있나 실험도 할 겸.”
용하는 즉시 실행에 옮겼다. 태극권의 초식을 조금의 흐트러짐 없이 시전했다. 그리고 곧 첫 번째 초식이 끝났을 때 별똥별 하나가 길게 꼬리를 물었다.
두 번째 초식이 시작됐을 때 작은 별 하나가 유난히 반짝이더니, 곧 두 번째 초식이 끝났을 때 조금 전 그 별이 별똥별이 되어 길게 꼬리를 물었다.
그렇게 태극권의 초식이 모두 끝났을 때, 용하의 단전 주변에서 기의 움직임을 볼 수 있었는데, 그 빛이 맑고 영롱하며 푸른빛을 띠었다. 그렇게 잠시 머물던 기는 곧 온몸을 타고 흐르며 신비감을 자아냈다.
용하는 다시 태극권 초식을 시전했다. 그러자 온몸을 타고 흐르던 푸른빛의 기가 다시 단전으로 모여들었다.
“자, 지금이다!”
용하는 단전에 모여든 푸른빛의 기운을 두 손으로 보냈다. 용하의 두 손에 모여든 기운은 둥근 구슬 모양을 띠며 옅은 진동을 시작했다. 우주의 회전 방향으로 돌고 있어야 할 기운의 흐름을 용하가 붙잡고 있어서였다.
“조금만 기다려라. 아직은 내가 너를 감당할 마음의 준비가 덜 되었으니.”
용하가 차가운 공기를 훅훅 내뱉으며 운기조식을 하자, 푸른 빛을 띠던 구슬이 붉은 빛으로 변하며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붉은 빛이 구슬이 사람의 얼굴만 해졌을 때였다. 용하는 동굴을 향해 기(氣)를 뿌렸다.
용하의 손에서 벗어난 기(氣)는 불꽃을 뿌리며 날아가 동굴 속에서 산산이 부서졌다.
그 광경을 굳이 말로 표현하자면, 시각을 망가뜨릴 만큼 눈이 부셨다.
그리고 뼈와 살이 녹아내릴 만큼 뜨겁고 강렬했다.
“저 정도면 쓸 만하지 않은가. 저 에너지를 전기로 전환할 수만 있다면.”
용하는 주머니에서 두 개의 보조배터리를 꺼내 들었다.
“하나는 버리는 셈 치고…….”
어금니를 질끈 깨물고는 보조배터리 한 개를 동굴 입구에 내려놓았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용하는 태극권 초식을 시전해 양손에 기(氣)를 모았다.
그 기운이 얼굴만 해졌을 때 용하는 주저하지 않고 보조배터리를 향해서 뿌렸다.
―스팟! 팍! 파파팍!
여러 차례 불꽃이 튀며 보조배터리가 이리저리 마구 날뛰었다.
그렇게 수차례나 허공을 향해 튀어 오르던 보조배터리가 죽은 듯 잠잠해졌을 때였다.
용하는 조심스럽게 보조배터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과연…….’
기대감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큰 기대감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다만 언젠가 성공할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이라도 간직할 수 있다면, 오늘의 시험에 만족할 수 있었다.
이윽고 용하는 보조배터리 앞에 섰다. 그의 표정이 적잖이 결연했다.
용하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보조배터리를 주워들었다.
그리고 혹시나 하는 심경으로 스마트폰에 케이블을 꽂아 보조배터리에 연결을 시도했다.
바로 그 순간 용하의 눈에 까맣게 그을린 보조배터리 출력단자가 보였다.
“뭐야? 다 타 버린 거야?”
용하의 표정에 얼핏 실망감이 스쳤지만, 곧 화사해졌다.
“이것이 나의 기운의 실체란 말인가? 사물을 태워 버릴 수 있는.”
그날 용하는 흡족한 기분으로 산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산에서 내려온 용하가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호위무사실이었다.
“형님! 장설 형님!”
해맑게 들려오는 용하의 목소리에 장설은 한달음에 달려 나가 그를 반겼다.
“목소리를 들어 보니, 끝내 해내고야 말았구나!”
“네, 형님. 제가 해냈습니다.”
용하가 해냈다고 대답한 이유는 기를 이용해 전기를 만들고자 했던 계획을 숨기기 위함이었다.
다시 말해 기 수련을 내세워 본래의 의도를 숨겨 보려는 노력이었다. 다행히 장설이 눈치채지는 못한 듯했다.
“그래, 그 결과를 보여 줄 수 있겠느냐?”
“밖으로 나오십시오. 지금 당장에라도 보여드리겠습니다.”
잠시 후 용하와 장설은 후원에 섰다. 용하는 주저하지 않고 태극권의 초식을 시전했다. 그런 용하를 묵묵히 지켜보는 장설은 마른침을 삼켰다. 인공 또한 입술에 침을 발라가며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첫 번째 초식이 끝났을 때였다. 검은 하늘에 별똥별 하나가 길게 꼬리를 물었다. 그 광경을 목도한 장설은 생각했다.
‘음, 그 짧은 시간에 우주의 기운을 운용할 수 있는 경지까지 도달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