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48
48화
어느덧 개기일식 예정일을 보름 남겨 두고 있었다.
말 일백 필과 마부. 그리고 짐을 나를 인력들이 철저한 준비 태세를 갖춘 채 대기하고 있었다. 물론 이 사실을 용두방주의 궁에선 전혀 모르고 있었다. 대열의 맨 앞을 차지한 용하와 소희 그리고 장설과 인공의 얼굴에 결연함이 짙었다.
‘제발 티베트고원을 통과할 때까지만 용두방주에게 이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으면…….’
물론 욕심이었다. 정보에 강한 개방의 방주의 귀에 이런 사실이 들어가는 시간문제였다.
용하 일행이 서역으로 출발하고 머지않아 용두방주가 이끄는 그의 무사들이 곧 뒤따를 것이다. 그리고 또 머지않아 그들에게 생포되고 말겠지.
그들에게 생포돼 혹독한 벌을 받더라도 욕심을 내야 하는 순간이었다.
용두방주가 아는 날엔 이번 일에 가담한 모든 사람이 능지처참을 당할 것이다. 아니, 딱 한 사람은 살아남을 수도.
이때까지만 해도 장설은 서역으로 배움의 길을 떠나는 소희를 호위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장설 형님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에베레스트산 정상에 올라갔을 때, 각자의 역할에 대해 일괄적으로 브리핑할 것이다. 그때까지는 장설 형님은 모르게 할 것이다. 그게 오히려 장설 형님에게는 약이 되겠지.’
사실 장설이 용하의 계획을 전혀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이 21세기로 간다는 것까지는 알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용하와 인공이 21세기에서 왔다는 사실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으니 말이다.
“자, 출발합시다!”
용하의 목소리는 전장에 나가는 장수와도 같았다.
“넵!”
마부들 또한 장수를 따르는 군사들을 연상시키듯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간결하게 예를 갖춘 마부들이 고삐를 잡자 일백 필의 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푸루푸루, 푸루루룻! 푸훅― 푸훅―
훈련이 잘된 말들임을 자랑이라도 하듯, 일백 마리가 내는 소리치고는 꽤나 조용했다.
떡 벌어진 가슴과 터질 듯한 근육 위로 선명하게 보이는 굵은 핏줄들이 힘센 말들로 선별했음을 보여 주었다.
일백 마리의 말들은 등에 각자 자기가 먹을 건초를 지고 있었고, 말을 이끄는 마부가 하나씩 붙어 있었다.
서남부지역으로 이동하기 시작한 일백 필의 말들. 그들의 움직임은 전쟁터를 향해 진군하는 군대를 연상시켰다.
이제 막 중앙 정원을 지나고 용두방주의 궁에서 어느 정도 멀어지자, 장설이 인공에게 나직하게 물었다.
“이보게, 자네 서천서역으로 간다는 게 어떤 것인지는 알고 따라나선 게야?”
“뭐, 대충은요. 하지만 직접 가 보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무사히 살아 돌아오면 세상을 보는 눈이 한 치쯤 넓어지는 것이고, 만약 그렇지 못하면…….”
장설은 말을 하다 말고 몸서리를 쳤다.
“왜요, 형님. 왜 말씀을 하다 마는 겁니까?”
“왜 그렇겠어. 끔찍해서 그러지.”
“끔찍하니, 뭐가요?”
“낸들 알겠느냐. 살아 돌아온 놈은 봤어도, 죽은 놈은 못 봤으니 말이다.”
“그러면서 뭐가 끔찍하다는 겁니까?”
“그야 살아 돌아온 놈들 하는 말이…….”
장설은 다시 한번 몸서리를 쳤다.
‘이 형님이 노망이 나셨나. 오늘따라 왜 이렇게 겁을 먹고 난리야.’
마음 같으면 당장에라도, 형님, 그런 캐릭터 아니잖아요? 라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어 그저 흘긋 바라보았을 때였다. 장설이 물었다.
“고생할 각오는 되었느냐?”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물음이었다.
‘쳇, 지금 누가 누굴 걱정해!’
인공은 속으로는 비난의 소리를 내면서도, 겉으로는 이렇게 말했다.
“이미 죽을 각오까지 하였습니다. 그런데 형님 표정을 보면 두려움이 엄습합니다.”
“두려움이 엄습하거든 망설이지 말고 운기조식을 하여라.”
“형님 안색이 그 정도인데, 운기조식을 한다고 뭐 달라지는 게 있겠습니까?”
“내 말을 가볍게 듣지 말거라. 운기조식을 하면 기의 흐름이 따뜻해지니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차가운 기운을 몸 밖으로 밀어낼 것이다.”
장설의 말을 찰떡같이 알아들은 인공이 두 눈을 크게 뜨며 반색했다.
“아아, 그러면 육체에 온기가 느껴져 두려움이 조금이라도 사라지겠군요?”
“옳거니, 이제 제법 척척 알아듣는구나.”
“제 스승이 누굽니까? 하나뿐인 제자가 형님의 말을 못 알아들으면 어찌하겠습니까? 형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인공은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게 고개를 살짝 숙이는 것으로 예를 갖췄다.
“서남부지역은 가는 길도 험하지만, 잠깐이라도 정신을 놓았다간 방향감각을 잃고 헤매다 온몸에 정기가 소진해 죽는 일이 허다하다. 그래서 그 많은 사람이 서천서역을 향해 길을 나섰으나 무사히 그곳을 다녀온 사람이 없는 것이다.”
장설의 말에 인공은 소희 쪽으로 흘깃 시선을 주며 물었다.
“소희 낭자는요?”
인공이 묻자 장설은 껄껄거리며 대답했다.
“처음 용두방주에게 소희 낭자 얘기를 들었을 때 말이다, 도저히 그 말이 믿기지 않았거든. 왜냐하면, 어른들도 못 해낸 일을 자기 딸이 저잣거리 드나들 듯 해왔다고 자랑삼아 떠벌리지 않았느냐?”
“용두방주를 처음 만났을 때가 생생합니다.”
그러는 사이 용하가 이끄는 티베트행 대열은 개방의 경계를 벗어나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 용두방주의 궁으로 빠르게 이동해 가는 의문의 발걸음이 있었다. 바람을 일으킬 듯 움직인 의문의 발걸음이 상담실 앞에 멈춰 섰을 때였다.
“용두방주님! 장로께서 뵙기를 청하십니다.”
“들이거라!”
방주의 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상담실 문이 스르르 열렸다. 아직 문이 완전히 열리기도 전이었다. 안으로 성큼 발을 내디디는 장로의 몸에 계급을 알리는 짧은 새끼줄이 보였는데, 일곱 개의 매듭이 선명하게 지어져 있었다.
* * *
중원을 벗어나자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그냥 바람이 아닌 흙먼지를 동반한 강한 바람이었다.
“전원 두건으로 얼굴을 가리시오!”
용하의 지시에 말을 끄는 마부들은 일제히 두건을 내려 얼굴을 가렸다. 그리고 준비해 온 도포를 풀어 말의 얼굴을 덮었다. 눈이 가려진 말들은 각자 자기를 이끌어 주는 마부의 손에 이끌려 척박한 광야를 이동해 갔다.
흙바람이 불고 해가 뜨고 지기를 수어 차례. 달이 뜨고 지기를 또 수어 차례. 용하가 이끄는 일단의 대열은 낙오자 하나 없이 척박한 광야를 무사히 벗어날 수 있었다.
모두 안도하며 서로를 격려하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한숨 돌릴 틈도 없이 이번에는 모래바람이 눈을 가렸다. 설상가상으로 척박했던 광야는 순식간에 모래사막으로 변해 있었고, 말들은 더는 모래 위를 걸을 수 없었다.
그 무렵 용하 일행이 조금 전 지나온 흙바람 날리는 척박한 광야를 달리는 일단의 무리가 있었다. 그들은 다름 아닌 용두방주가 이끄는 최정예 무사들로 구성된 무리였다. 하지만 제아무리 최정예 고수들이라 한들, 그리고 훈련이 잘된 말들이라 한들,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득달같이 달리던 말들의 속도는 점점 줄어들었다.
한편 모래사막을 지나는 용하 일행은 아비규환이었다. 말들은 물론 사람들마저 모래 속으로 속수무책 빠져들었다. 말과 같은 유제류(발톱이 발인 동물)의 발로는 모래사막을 지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안간힘을 쓰며 걸음을 옮기는 말들은 다리가 엉키고 중심을 잃어 모래 속으로 머리를 처박았다.
“준비해 온 덧신을 서둘러 말의 발에 씌우도록 하시오!”
소희의 지시가 떨어지자, 마부들은 한 몸처럼 움직였다.
그 광경을 본 용하는 소희에게 나직하게 물었다.
“낭자께서 준비시킨 것입니까?”
“네, 제가 미리 준비시켰습니다. 그동안 같은 길을 수차례나 오갔기 때문에 이런 악재를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습니다.”
소희의 말에 용하는 적잖이 감동했다.
“고맙습니다. 항상 든든한 버팀목이 돼 주셔서…….”
“별말씀을요. 원장님을 돕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할 각오가 돼 있습니다.”
“말씀은 고맙지만,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무리한 일은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아닙니다. 위험을 무릅쓰더라도 원장님을 도울 수 있다는 게, 제게는 가장 큰 기쁨입니다.”
그 순간 용하의 두 눈에 눈물이 핑 고였다. 어린 것이 보이는 충직함에 한 번, 게다가 얼마 후 소희가 느끼게 될 상실감에 또 한 번. 먹먹해지는 가슴을 달랠 길이 없어서였다.
“왜 그러십니까?”
용하의 눈에 고인 눈물을 본 소희가 물었다.
“무, 무엇을 말입니까?”
“지금 눈물을 흘리고 계시지 않습니까?”
“눈물이라면, 어디 저뿐이겠습니까? 모래바람이 부는 사막이니 말들까지 눈물을 흘리고 있지 않습니까?”
“아뇨, 그 눈물과 지금 원장님 눈 속의 눈물은 다릅니다.”
소희의 목소리는 적잖이 냉담했다. 그래서인지 더는 반박할 수 없었다.
“실은…….”
무슨 말인가 하려고 입을 열었던 용하는 웬일인지 망설이는 기색이었다.
“말씀하십시오. 왜 말을 하려다 마는 것입니까?”
궁금증이라면 잠시도 참지 못하는 소희는 다그치듯 몰아붙였다.
“아, 그게 말이오. 만에 하나 일이 잘못돼, 이 많은 사람이 겪게 될 일을 생각하니…….”
“원장님, 설령 일이 잘 안 될지언정 그런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낭자…….”
적잖이 떨리는 목소리였다. 그뿐 아니라 눈물을 닦으며 훌쩍거리기까지 했다. 반면 소희는 더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다 잘될 겁니다. 잘되기 위해 제가 밤잠을 설쳐 가며 위험에 대비한 많은 준비를 했습니다. 그러니 저를 믿고 부정적인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고맙소. 낭자의 말을 들으니 힘이 솟는 것 같습니다.”
소희는 용하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척박한 모래사막의 시간도 거침없이 흘렀다.
이제 막 티베트고원을 지나기 시작한 용하 일행은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래사막을 지나는 동안 말 일백 필 가운데 삼십여 마리를 잃고 말았다.
“이제 어찌해야 합니까?”
“무엇을 말입니까?”
“동력이 되어 줄 말을 삼십여 마리나 잃었습니다.”
“그것 때문이라면 염려 마십시오.”
“무슨 대안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활시위를 원래 계획보다 더 단단히 묶는다면, 나머지 말로도 필요한 만큼의 동력을 충분히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게다가 폭약을 유효적절 사용한다면, 유실된 말 때문에 못 할 일은 없었다. 용하는 결연한 눈으로 대열을 둘러보았다.
‘더는 손실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직까지 사람이 다치는 일은 없었지 않은가.’
그사이 소희는 결연히 대열을 둘러보는 용하를 바라보며 어금니를 깨물었다.
티베트고원을 얼마나 걸었을까. 잠시 평온했던 마부들이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그들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용하는 두 눈이 휘둥그레져서 외쳤다.
“왜들 그러시오?”
이렇게 말하는 용하 또한 얼마 전부터 갑자기 숨이 차오르는 것을 느낀 게 사실이다.
“놀라지 마십시오.”
처연한 소희 말에 용하는 의아해서 바라보았다.
“이곳은 중국 서남부지역의 히말라야산맥에 자리 잡은 티베트고원입니다. 평균 고도 4,000m 이상 되는 고원이니, 숨쉬기가 편치 않은 것입니다.”
“그럼 어찌합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사람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견뎌야 합니다. 이 정도를 견디지 못한다면 에베레스트산엔 절대 오를 수 없을 테니까요.”
그 순간 용하의 뇌리에 불현듯 무엇인가 떠올랐다. 복식 호흡법이었다.
“잠깐 멈추시오!”
용하의 지시에 마부들은 일사불란하게 멈췄다.
“지금부터 내 말 잘 듣고 그대로 따라 해 주시오.”
“네, 그리하겠습니다.”
마부들은 입을 모아 대답했다.
“지금부터 복식호흡을 할 것인데, 기존에 여러분이 알고 있는 운기조식과는 다른 것이니 잘 듣고 따라 해 주시오. 그것만이 지금 여러분이 느끼는 답답함을 이겨 낼 수 있을 것이오.”
“네, 그리하겠습니다.”
이번에도 마부들은 입을 모아 대답했다.
“먼저 숨을 3초 동안 코로 들이쉬며 배를 부풀리시오.”
“하나, 둘, 셋!”
“그다음은 2초 동안 숨을 참아야 하오.”
“하나, 둘!”
“그다음은 입으로 5초간 천천히 숨을 내쉬며 배를 밀어 넣으시오.”
“하나, 둘, 셋, 넷, 다섯!”
“처음에는 좀 이상하고 어색하겠지만, 이렇게 숨을 쉬면 지금 여러분이 느끼는 호흡곤란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오.”
지도자의 말에 잘 따르도록 길든 개방의 구성원은 용하의 지시를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그대로 따라 했다.
“어떻소?”
용하의 물음에 여기저기서 마부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훨씬 숨쉬기가 편해졌습니다.”
마부들의 반응에 용하는 비로소 안도했다.
그렇게 열흘을 밤낮으로 걷고 또 걸었을 때였다. 급기야 눈앞에 빙하로 덮인 에베레스트산이 펼쳐졌다. 가슴이 벅찼다.
‘기다려라, 21세기!’
그 순간 용하의 뇌리에, 공기는 더럽고, 사람들은 혼탁하고, 도로는 복잡한, 21세기의 이모저모가 파노라마처럼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