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50
50화
에베레스트 정상을 눈앞에 두었을 때였다.
아직 대낮인데 별안간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세상이 뒤집어지기라도 했단 말인가. 갑작스러운 시간의 변화.
소희는 멈춰 버린 시간 속에 있는 사람처럼 굳은 눈으로 세상을 찬찬히 둘러보며 생각했다.
‘개기일식이란 이런 것인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장엄해.’
그리고 곧 경악해서 소리쳤다.
“서두르세요! 시간이 없습니다.”
소희의 카랑한 목소리에 용하가 경직된 목소리로 물었다.
“개기일식이 시작된 겁니까?”
적잖이 긴장된 목소리였다.
세상의 변화를 목도하는 사람들은 다소 겁에 질려 있었다.
소희는 다급한 목소리로 꾸짖듯 외쳤다.
“지금 그런 거 따질 시간이 없습니다. 산꼭대기까지 이동하면서 하늘로 날아오를 준비를 동시에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소희의 카랑한 목소리에 용하와 인공은 속이 타들어 가는 듯했다.
지금 자기들이 경각에 처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용하였다.
데스존과의 사투를 벌이며 하늘을 날아오를 준비를 동시에 한다는 건, 사실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되었다.
“그게 가능할 거로 생각하십니까? 이렇게 깎아지른 듯한 빙벽을 오르면서 어찌…….”
“시끄럽습니다. 목적을 위해 무조건 해야 합니다.”
“목적을 위해?”
“네.”
소희는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용하는 가늘게 떨리는 눈으로 소희를 바라보았다.
소희와 잠시 눈이 마주쳤을 때 용하는 생각했다.
‘목적을 위해 무조건 해야 한다니… 저 아이가 말하는 목적이란 대체 무엇인가. 설마…….’
용하의 눈이 다시 한번 가늘게 떨렸다. 그 순간 소희는 다짐이라도 하듯 결연하게 종지부를 찍었다.
“가능하든 가능하지 않든, 여기까지 온 이상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지금으로서는 그것이 세상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사안입니다.”
소희의 말은 무조건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우선하여 해야 할 일.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첫 번째와 두 번째 동력인 말과 활을 일찌감치 포기했다는 것이었다.
만약 말과 활을 가지고 왔다면 아직 반도 못 올라왔을 것이고 더 많은 희생을 치렀어야 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하지만 첫 번째와 두 번째 동력을 포기하는 대신 세 번째 동력원인 폭약을 이용해서 활을 쏘아 올린 것만큼 날아올라야 하니, 그 또한 쉬운 일은 아니었다.
두 개의 동력원이 지원하는 힘만큼의 동력을 얻으려면 원래 계획했던 것보다 열 배가 넘는 폭약을 몸에 달고 비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말과 활에서 얻었어야 할 동력을 이제 폭약으로 채워야 합니다. 그러니 원래 계획보다 열 배는 더 많은 폭약을 몸에 달고 날아올라야 하는데, 계량 윙슈트가 그 무게를 견뎌 낼 수 있겠습니까?”
“그건 염려 마십시오. 일전에 윙슈트에 대해 발표했던 것 기억하시겠습니까? 애초에 세 번째 안이었던 개량 윙슈트 말입니다. 그 세 번째 윙슈트는 전투용으로 설계했습니다.”
“전투용?”
“네, 전투용이요. 이를테면 윙슈트를 입은 병사가 폭약을 몸에 지니고 상대 진영으로 날아가서 폭약을 전진을 향해 떨어뜨린다면 과연 그 결과는 어떨 것 같습니까? 한시도 잊지 않고 그 광경을 상상하며 만들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몸무게까지 합해 대략 200근은 충분히 견딜 수 있을 것입니다.”
“200근이라, 잘하셨습니다. 그럼 원장님의 몸무게는 얼마나 됩니까?”
“한 59kg 정도! 그러니까 100근이 넘지 않습니다.”
용하가 대답하자, 뒤이어 인공이 대답했다.
“저도 그쯤 됩니다.”
인공의 대답에 용하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사이 몸무게를 반으로 줄였다니, 믿기지 않아서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인공이… 매끼 고기를 안 먹으면 현기증이 나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인공이 몸무게를 반으로 줄였다는 건, 기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불가사의.
“좋아요. 윙슈트가 견딜 수 있는 나머지 무게는 폭약으로 채울 것이니, 그리 아십시오.”
소희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폭약에 심지를 꽂기 시작했다. 빙산을 오르며 하기에는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힘겨워 보였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용하는 차마 더는 볼 수가 없었던지, 곧 고개를 돌려 버렸다.
‘열정이야, 집착이야? 대체 왜 저렇게 빠져드는 거람? 안쓰러워서 도저히 볼 수가 없네.’
용하는 미간을 좁히며 어금니를 깨물었다.
마음을 굳게 먹은 용하는 서둘러 두 개의 윙슈트를 펼쳐 그중에 하나를 인공에게 건넸다.
그 광경을 본 소희는 생각했다.
‘윙슈트가 두 개뿐이네. 호위무사 인공은 무림에 남겨 두고 가려는 건가?’
바로 그 순간 소희의 눈길이 인공 쪽으로 흘렀다.
‘그런데 조금 전 인공은, 묻지도 않았는데 자기 몸무게를 말했잖아. 그럼 혹시 나만 모르는 모종의 음모가 저들 두 사람 사이에 오갔던 건 아닐까?’
소희는 자기 일에 몰두하는 체하며 날카로운 눈으로 용하와 인공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무엇이 있었든 상관없다. 나는 절대 원장님 아니, 용하 公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으득! 소희의 어금니 깨무는 소리가 에베레스트의 빙벽을 투명하게 울렸다.
말하자면, 소희는 어느 순간 용하가 21세기로 돌아가기 위한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리고 소희는 용하의 계획에 편승해 그곳이 어디든 따라가겠다는 마음의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어느덧 세 사람이 에베레스트산 정상에 도착했을 때였다. 지금까지 역사에 기록된 적 없는 장엄한 개기일식이 절정에 이르렀다.
해와 달과 지구가 정확히 일직선 상에 놓여 세상은 온통 암흑기라 할 만큼 짙은 어둠에 휩싸였다.
짙은 어둠 속에서도 용하와 인공 그리고 소희의 움직임은 멈출 줄을 몰랐다. 그리고 이제 막 개기일식이 원래의 자리를 찾으려 하자, 어둠에 휩싸였던 세상은 서서히 빛을 되찾기 시작했다. 소희가 그 장관에 잠시 감동하고 있을 때였다.
용하와 인공은 21세기로 되돌아갈 만반의 준비를 하고 벼랑 끝에 나란히 서 있었다.
그 광경을 목도한 소희는 생각했다.
‘아니, 저자가 왜 윙슈트를 입고 저기 서 있는 거야?’
소희의 시선이 인공에게로 예리하게 꽂혔다.
‘더 이상 두고 볼 수만은 없어!’
소희는 인공이 서 있는 쪽으로 빠른 걸음을 내디뎠다.
벼랑 끝에서 활강할 준비에 여념이 없는 용하는 머리카락을 뽑아 허공에 날렸다. 소희의 말대로 곡풍이 불고 있었다.
용하는 또 하나의 머리카락을 뽑아 좀 더 멀리 날려 보냈다. 조금 전보다 좀 멀리 날아간 머리카락이 어느 순간 강한 바람에 휘감기며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그 광경을 목도한 용하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허공에 몸을 실었다.
거의 동시에 인공 또한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바로 그 순간.
“안 돼!”
소희의 카랑한 목소리가 허공을 가르며 히말라야산맥에 메아리쳤다. 거의 동시에 몸을 날린 소희는 가까스로 인공의 다리에 매달렸다.
인공의 다리에 매달린 소희. 곡풍을 만난 윙슈트는 순식간에 땅에서 멀어졌다. 속수무책 하늘로 날아오르는 인공과 소희.
용하라는 한 남자를 향한 소희의 일편단심은 이제 돌아올 수 없는 운명의 다리를 건너고 만 것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휘히잉~
한 차례 곡풍이 불었다. 이번에 불어온 곡풍은 여느 곡풍에 비해 매섭고 강했다.
용하와 인공이 입고 있는 윙슈트가 강한 곡풍을 타고 하늘로 더 높이 치솟았다.
바로 그 순간 그 광경을 본 사람들이 있었다. 다름 아닌 용두방주 일행이었다.
“아니, 저것들은 무엇이냐?”
노기 가득한 용두방주의 목소리가 에베레스트산의 빙벽을 울렸다.
“글쎄요, 제 눈에는 매가 아닌가 싶습니다만.”
수장 중 하나가 한 말이었다.
웅장하게만 느껴졌던 개기일식은 어느 순간 빠르게 진행되었다. 곡풍 또한 더욱더 거세게 불었다. 그때였다.
“소희 낭자! 고집부리지 말고 어서 손을 놓으시오! 계속 매달려 있다가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될 것입니다.”
인공의 절규가 히말라야산맥에 메아리쳤다. 소희를 염려해 한 말에 소희는 오기가 생겼다.
“가만두지 않을 거야. 뭐, 지금 나더러 손을 놓으라고? 그럼 자기 혼자 살겠다는 거잖아.”
소희는 더 억척스럽게 인공의 다리에 매달렸다. 인공은 안간힘으로 소희 밀쳐내는 데 주력했다. 두 사람의 끈질긴 사투는 한동안 지속되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용하는 누구 편을 들어야 할지 답답하기만 했다.
에베레스트산 중턱에 매달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속수무책 지켜봐야만 하는 용두방주는 답답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지금 인공의 다리에 매달려 생사를 오가는 작은 생명체의 정체가 소희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다급해진 용두방주는 무사들을 향해 피를 토할 듯 외쳤다.
“무사들은 서둘러 소희를 구할 방도를 찾아라!”
피를 토하는 용두방주의 명이 떨어지자, 무사들은 일사불란하게 삼으로 만든 실이 매달린 석궁을 빙벽에 쏘았다.
석궁을 벗어난 셀 수 없이 많은 화살이 빙벽으로 날아가 꽂히자, 순식간에 그물망 하나가 뚝딱 만들어졌다.
그렇게 만들어진 그물망이 에베레스트산의 북벽에 촘촘하게 채워졌다.
그 광경을 본 용두방주는 안도하며 소희를 향해 외쳤다.
“소희야! 그만 손을 놓고 내게로 오거라!”
바로 그 순간 개기일식을 마친 태양이 화사하게 얼굴을 드러냈다. 예상했던 대로 세상 둘도 없이 밝은 빛을 발산했다.
그 순간 용하는 기를 모아 인공의 몸에 달린 폭약을 향해 쏘았다.
불꽃으로 변한 용하의 기가 폭약에 닿자 폭약들은 폭발을 일으키며 추진력을 만들어 냈다.
폭약이 만들어 내는 추진력은 인공을 총알처럼 빠르게 태양 가까이 날려 보냈다.
폭발의 충격으로 인공의 다리에서 떨어져 나온 소희는 에베레스트산의 빙벽으로 하염없이 추락했다.
“으아아아악~”
세상에 마지막을 알리는 듯한 소희의 비명은 한 줄기 메아리가 되어 히말라야산맥에 기나긴 여운을 남겼다.
반면 태양을 향해 더 가까이 날아간 인공은 광채 속으로 한없이 빨려 들어갔다.
그 광경을 본 용하는 이번에는 자기 자신에게 매달린 폭약을 향해 기를 보냈다. 폭약에 용하가 만들어 낸 기가 전달되자 곧 폭발을 시작했다.
폭약이 터지면서 생긴 동력으로 용하의 윙슈트 역시 태양이 만들어 놓은 광채 속으로 유영하듯 빨려들었다.
그동안 해 온 고생에 비하면 너무나 짧은 순간에 허무하게 벌어진 일이었다.
개기일식이 끝났을 때였다. 세상은 언제 그랬냐는 듯 일상을 되찾았고 무림 또한 그러했다.
그날 어떤 서책에도 기록되지 않은 거센 곡풍이 불었고, 소희의 비명은 어느 곳에서도 더는 들을 수 없었다.
* * *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믿기지 않았지만, 아무튼 용하와 인공은 현실로 돌아왔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활기찬 21세기. 그토록 그리워하던 21세기의 품으로 돌아온 용하와 인공. 두 사람은 각각 다른 곳에 우뚝 서 있었다.
용하는 무림으로 가기 전 운영했던 변두리 검도 체육관 현판 앞에, 인공은 포천 주금산의 인공사 현판 앞에.
가슴이 벅찼다. 용하는 한달음에 검도 체육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서자마자 아버지와 마주친 용하는 눈물이 앞을 가렸다.
“아버지…….”
가슴이 벅차서인지 목소리조차 떨렸다. 당장에라도 덥석 끌어안고 싶어서였을까. 있는 힘을 다해 아버지를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이제 막 두 팔을 벌렸을 때였다.
―철썩!
미처 아버지 품에 안겨 보기도 전, 눈앞에 불똥이 튀었다.
“아버지!”
“이 새끼가 어디서 수작질이야? 그동안 어디 처박혀서 잠수 타다 이제 나타나서는, 뭐?”
“아버지…….”
“그동안 밀린 이자는 내가 어떻게 막았으니까, 체육관을 팔든 네 녀석 몸을 팔든 나머지는 알아서 해!”
용하의 아버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체육관을 나가 버렸다.
냉혹한 현실. 21세기는 달라진 게 하나도 없었다. 그토록 그리워했던 21세기로 돌아온 용하는 눈앞에 직면한 냉혹한 현실과 다시 싸워야만 했다.
‘죽음과 맞서며 21세기로 돌아오려 기를 쓴 이유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한꺼번에 밀려오는 허탈감을 달랠 길이 없었다.
용하는 뛰쳐나오듯 검도 체육관을 나와 미숙이가 근무하는 어린이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