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52
52화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셰어링카를 이용하기로 했다.
정확한 정보가 없으니 얼마나 시간을 허비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검도 체육관이 있는 변두리에는 셰어링카 주차장이 없어 신도시 쪽으로 가야 했다.
아무리 급해도, 그러니까 미숙이를 만나기 위해 어린이집으로 갈 때 말고는, 정말이지 지긋지긋해서 쳐다보기도 싫었던 신도시.
그런데 지금은 그런 거 따질 때가 아니다. 내게 필요한 게 무엇이고 어떤 게 더 이익인지를 따져야 하는 순간이었다.
왜 미숙이가 요양병원에 있는지도 모르고, 그 병원이 파주 어디라는 것도 모른다. 그러니 대중교통이나 택시를 이용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셰어링 카 주차장에 들어서니 미리 예약해 둔 차와 같은 차들이 즐비하게 주차돼 있었다. 마치 고객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 사열이라도 하듯 말이다.
“뭐야, 다 똑같잖아? 이래서야 내가 예약한 차가 어떤 건지 찾을 수가 있나…….”
미숙이를 찾아야 한다는 급박함을 잠시 뒤로한 채 지금 눈앞에 펼쳐진 상황에 구시렁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였다. 셰어링카를 이용하는 다른 사람이 보였다.
평소 셰어링카를 이용하지도 않았고, 낯선 사람과의 교류도 없었던 터였다.
그런데 오늘은 그 사람이 반갑게 여겨졌다.
“저기요!”
그 사람은 시큰둥하게 바라보았다.
“뭐 하나만 여쭙겠습니다. 차량은 예약했는데, 와 보니까 다 똑같아서요.”
“셰어링카 처음 이용하세요?”
“네.”
“회원 가입자 본인이세요?”
“네, 그렇습니다.”
“그럼, 어플 열고 예약 차량 터치해 보세요.”
그 사람이 하라는 대로 따라 해 보았다.
―삑!
그러자 정말 용하가 예약한 차가 ‘나 여기 있어요.’라고 대답이라도 하듯 노랑 등을 깜박거렸다. 그것을 본 용하는 저도 모르게 입이 헤벌어졌다.
용하는 조금 전 셰어링카 찾는 방법을 알려준 사람을 향해 꾸뻑 인사를 하고 차에 올랐다.
차에 오르자마자 내비게이션을 켰다. GPS 수신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꽤 지루했다. 그리고 마침내.
―두르르르~ 쥐뉘!
시그널과 함께 내비게이션이 열렸다. 검색란을 터치해 [파주요양병원]이라고 입력했다.
그리고 돋보기 아이콘을 클릭하자 로딩이 시작되었다. 금방 찾을 거로 생각하는데, 꽤 시간이 걸렸다.
한동안 버퍼링을 하느라 시간을 지체하더니 마침내 열린 파주시 소재 요양병원은 대략 30여 군데.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화도 좀 나고 난감해서였다.
“이를 어쩐다… 뭐 하나 만만한 게 없네. 평소 눈에 띄지도 않더니 우리나라에 요양병원이 이렇게 많았나. 그것 한 지역에만 서른 군데나…….”
생각했던 것보다 더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야 했다.
“학교 다닐 때도 쓰지 않던 머리를 이렇게 쓰게 될 줄이야.”
쓰지 않던 머리를 써서인지 관자놀이가 일순 띵했다. 잠시 난색이었지만 곧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머잖아 어느 정도 판단 기준도 세웠다. 우선 규모가 큰 병원부터 찾아보고 그다음은 국립, 도립, 시립 순으로 찾아보기로.
이렇게 마음 정하고 나니 대략 10여 군데로 압축되었다.
그 가운데 검색 순위가 가장 높은 요양병원을 터치하고 잠시 기다렸다.
그리고 곧 최적의 경로가 정해져 안내가 시작되자 차를 출발시켰다.
최대한 빨리 도심을 벗어나는 데 주력했다. 그렇게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복잡한 도심을 벗어나 수도권 제1 외곽순환고속도로 위에 차를 올렸다.
평소보다 좀 밀린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평균 시속 80km 이상은 유지할 수 있었다. 낮 시간대의 도로 사정치고는 어떤 불만도 허락하지 않을 만큼 훌륭하다.
“최대한 시간을 아껴 써야 한다.”
용하는 저도 모르게 가속기를 밟은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될 수 있으면 길게 열린 차로를 찾아 이리저리 차선을 넘나들자 여기저기서 클랙슨이 난무했다. 남의 속도 모르면서.
물론 자신에게 잘못이 있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니었다. 하지만 세상이 조금은 원망스러웠다.
“미안, 미안. 앞으로 절대 과속하는 일 없을 테니까, 오늘만 좀 봐주라, 주라, 주라~”
심각한 상황임에도 주책스럽게, 어느 대중가요의 선율이, 마음 한구석에서 뒤섞였다.
“김용하, 정신 좀 차리자!”
조금 전 머리 위로 지나간 이정표가 2km 전방에 자유로 나들목이 있음을 알렸다. 이정표를 보았기 때문일까? 용하는 저도 모르게 가속기를 깊이 밟았다.
―부우우우우우웅~
차는 내연기관이 낼 수 있는 극강의 굉음을 내며 까맣게 깔린 아스팔트를 찍어 차며 질주했다.
―퓨우우우우우웅~
눈 깜박할 새 자유로 나들목 앞에 도착했다. 평소보다 유독 램프 곡선이 휘어져 보였다.
수퍼카가 아니고서는 이 정도 곡선을 돌려면 속도를 줄이는 수밖에 없다.
약간의 두려움과 함께 본능적으로 브레이크 쪽으로 발을 옮겼다.
차가 한쪽으로 쏠리는 듯했지만 무난하게 자유로 나들목을 빠져나왔다.
고양시를 벗어나자 [평양, 개성, 남북출입사무소]라는 이정표가 보였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주변에 다른 차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그 도로를 달리는 동안 왠지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는 듯해 기분이 묘했다.
가속기를 밟은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인공위성이 보내는 내비게이션 정보만 믿고 가속기를 끝까지 밟았다.
엔진룸에서 터질 듯한 굉음이 들렸다.
―부부부부부우웅~
속도 게이지가 순식간에 160km를 지나 180km 향해 가늘게 떨었다.
이제 200km를 행해 다시 한번 속도를 올리려고 할 때였다.
[시속 90km 과속 단속 구간입니다!]내비게이션이 앞길을 막았다. 바로 그 순간 본능적으로 갓길을 흘깃 바라보았다.
찰나에 불과한 짧은 시간 용하의 시선이 닿은 곳에, 노란색 표지판이 보였다. 고정식 과속 단속을 알리는 표지판이었다.
마음은 급했지만 어쩔 수 없이 가속기에서 발을 뗐다. 그리고 곧 카메라를 지났을 때 다시 가속기를 끝까지 힘껏 밟았다.
―우우우우우웅~ 부릉 부르르르르릉~
금방이라도 엔진을 터져 버릴 듯 굉음을 토했다.
핸들의 떨림이 얼핏 느껴졌지만, 이 정도 속도를 견디는 데는 크게 무리가 없어 보였다. 역시 자동차 강국, 대~한민국! 짝짝―짝―짝짝!!
잠시 후 내비게이션 화면이 성동나들목 램프를 빠져나가라는 도식화된 그림을 띄워주었다.
77번 국도, 그러니까 자유로를 벗어나라고 알려주는 걸 보니, 거의 다 왔다는 생각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미숙아, 거의 다 왔어. 조금만 기다려~”
아무도 들어주는 사람 없는 차 안에서 왜 그렇게 혼자 중얼거렸는지 모르겠다.
그러다 문득 이게 무슨 청승이냐 싶어 괜히 백미러를 두리번거렸다. 건물 하나 보이지 않는 도로를 한동안 달렸다.
야트막한 야산이 길게 보이는가 하면, 갑자기 논이나 밭이 펼쳐지더니, 야산으로 둘러싸인 요양병원이 멀리 보였다.
흰색 건물에 병원 이름이 적힌 간판이 매달려 있었는데, 너무 멀리 있어 아직은 무슨 글자인지 식별할 수 없다.
그런데 내비게이션이 그 요양병원이 도착지임을 알리고 있었다.
“음, 다 왔나 보네.”
내심 그곳에 미숙이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미숙이가 어떤 병으로 어떻게 입원했으며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염려는 뒷전이었다.
어린이집 원장에게서 우울증으로 시작된 3종 세트라는 사실을 이미 들었기 때문이다.
3, 40대 3종 세트 ―――> 공황장애, 분노조절장애, 대인기피증
5, 60대 3종 세트 ―――> 고혈압, 고지혈, 당뇨
무엇보다도 지금은 미숙이를 찾는 게 우선이었다.
조금 전 병원 입구를 지났다. 서울에 있는 다른 병원에 비해 한가로워 보였다. 주차장도 거의 비어있었다.
“이 병원은 병문안 오는 사람도 없나 봐.”
혼자 중얼거리며 주차를 한 후 서둘러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서자마자 환자와 병문안 온 사람들이 만날 수 있는 테이블이 몇 개 놓여있었다. 그리고 그곳을 지나 오른쪽에 원무과가 보였다.
“아, 여기 있네.”
용하는 빠르게 눈을 굴려, 가장 친절해 보이는 직원을 찾았다. 여직원들은 대부분 차가운 표정이었다. 그들의 표정에서 대충 이 병원이 어떤 곳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 또한 용하를 이상하게 여겨졌던지, 여직원 하나가 쌍심지를 켜고 용하를 바라보았다. 선택의 여지도 없이 그 여직원으로 잠정 결정됐다. 선택하려다 찍혀버리다니.
“저기요! 뭐 좀 여쭤볼게요.”
“말씀하세요.”
생긴 거하고 똑같이 쌀쌀맞았다.
‘원래 요양병원이 이런 거야? 변두리여서 이런 거야?’
용하는 속으로 구시렁거리며 입을 뗐다.
“환자 좀 찾으려고 그러는데요.”
“어느 기관에서 오셨죠?”
다짜고짜 던지는 여직원의 질문에 찔끔했다.
“기관…이라뇨?”
“어디, 경찰? 검찰?”
그 순간 머릿속을 빠르게 스치는 게 있었다. 내 인상이 그런 사람들처럼 보였거나 아님, 이 병원에 그런 기관들과 연루된 사람들이 많이 입원해 있거나. 그래서 얼른 기지를 발휘했다.
“아 눼, 보건복지부에서 나왔습니다.”
얼핏 평범하게 들리는 말이었지만 병원으로선 그렇지 않았는지 그 여직원뿐 아니라, 내 말을 들은 병원 관계자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태도를 바꾸었다. 깍듯이 예의를 갖추고 서 있는 직원들을 보자, 그제야 비로소 이곳이 병원이구나 싶었다.
먼 훗날 공무원 사칭으로 처벌받게 될지언정 지금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이가 좀 들어 보이는, 그러니까 이 병원에서 입김 좀 쏘일 것 같은 여직원 하나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여직원은 제대로 걸려들었다 싶어서인지 살짝 태도를 바꿔 거드름이라도 피울 것 같은 자세로.
“고객님, 무슨 일로 우리 병원을 찾으셨습니까? 우리 요양병원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병원 홍보를 하려고 들었다. 아니 그동안 저지른 비리를 발뺌하려고 선수를 치는 것처럼 보였다.
“됐고! 사람 하나만 찾읍시다.”
거칠게 말문을 열었다. 진짜 보건복지부에서 나온 사람처럼 권위 있게 보이기 위해서였다.
굳이 이렇게 했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이런 사람들 특성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동을 상대로 체육관을 운영하다 보면 별별 사람들이 다 찾아온다. 지자체, 단체, 중앙 정부 등등.
아마도 그런 사람들을 하도 상대하다 보니 그렇게 됐을 것이다.
“사람이라…뇨? 행정적인 일로 오신 게 아니셨나요?”
“네, 오늘은 일단…….”
여직원은 대체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태도가 조금 달라진 듯했다.
‘아, 약발이 사라진 모양이군. 그렇다면…….’
“오늘은 일단 개인적인 용무만 보고 돌아갈 겁니다. 그리고 조만간 정식 절차 밟아서 다시 한번 오도록 하죠.”
정식 절차라는 말 때문인지 다시 온다는 말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여직원은 아부라도 하듯 낮은 자세로 살랑거렸다.
“환자들 가운데 김미숙 씨라고 있습니까?”
“김…미…숙?”
여직원이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다른 여직원들을 바라보았다.
다른 여직원들 역시 서로를 둘러보며 긴가민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 그… 그게 말입니다. 지금 찾으시는 환자분 성함이 워낙 흔한 성씨에 이름도 흔해서 좀 찾아봐야 할 것 같은데, 괜찮으시겠어요?”
“괜찮으냐니, 찾는 데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겁니까?”
“아, 문제가 있는 건 아니고,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서요.”
“시간이 걸리다니, 얼마나요?”
“글쎄요, 얼마나 걸릴지 예측하기는 좀…….”
“그 정도입니까? 입원 환자가 많은가 봅니다.”
“네. 한 삼백여 명 정도…….”
여직원의 말에 내심 막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단 이 병원뿐 아니라 물망에 올라 있는 파주시 소재의 다른 요양병원 십여 곳의 상황을 생각하니 아찔한 숫자였다. 그렇다고 해서 선택의 여지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얼마든지 기다릴 테니, 시간 구애받지 말고 찾아주세요.”
“네. 그럼 이쪽으로 오시겠어요?”
여직원이 안내한 곳은 국회의원 정도는 돼야 들어갈 수 있는 VIP 대기실이었다.
한편 좀 색다른, 그러니까 조금은 특별하게 보이는 병실 복도를 빠르게 이동해가는 일단의 발걸음이 있었다.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VIP 대기실이었다. 지금 심각하게 VIP 대기실로 향하는 그들의 정체는 다름 아닌 이 병원의 원장과 과장급 이상의 의사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