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54
54화
“찾아주세요. 부탁입니다.”
간절히 바랐지만, 요양병원에 미숙이는 없었다.
어쩌면 만날 수도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끝내 그 병원에서 미숙이를 만날 수 없었다.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인지 기운은 좀 빠졌지만 크게 실망하지는 않았다.
‘힘내자. 이제 시작인데 뭐.’
첫 번째 병원에서 미숙이를 만날 거라는 기대는 애초에 하지도 않았으니까. 그렇다고 절망감이 아예 없지도 않았다.
“병원장님! 파주시 요양병원 전산망을 이용하면, 어느 병원에 입원해 있는지 알 수도 있지 않을까요?”
“파주시 요양병원 전산망?”
“네. 제가 기본적으로 알고 있는 데이터를 토대로 조금씩 좁혀가다 보면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전산망이라면, 보건복지부 전산시스템 자료가 더 방대하고 정확하지 않을까요?”
“보건복지부 전산망은 전국에 소재한 병·의원과 그 병·의원의 관계자들을 찾는 건 빠르지만, 환자 데이터를 관리하지는 않습니다.”
병원장은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곧 반응을 보였다.
“아! 그렇겠네요. 죄송합니다. 제가 미처 거기까지 생각을 못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의사로 평생을 살아서인지, 아는 거라고는 이 병원과 의학적 지식밖에 없습니다.”
“그러시겠지요. 보통 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다 그렇더라고요. 물론 한 분야에 신념이 있으셨으니까 전문가가 될 수 있었겠지요. 그건 그렇고 김미숙 씨를 찾는 데 협조하시겠습니까?”
병원장의 생각을 떠보느라 말끝에 끼워 넌지시 던진 말에 병원장은 냉큼 반응했다.
“그럼요, 제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 협조하겠습니다.”
용하는 흡족한 표정으로 병원장을 바라보는가 하면, 아닌 척하면서도 요구 사항을 조목조목 늘어놓았다.
“고맙습니다. 그럼 우선 파주시 소재 요양병원을 대상으로 [30대 여성 김미숙, 공황장애, 분노조절장애, 대인기피], 이 3종 세트로 입원한 환자가 있는지 확인하시고, 그들의 자료를 있는 대로 찾아 제게 넘겨주십시오. 입원하고 있는 병원 이름까지도요.”
“그런 건 염려하지 마십시오. 제가 할 수 있는 건 알아서 다 챙겨드릴 겁니다. 그러니 믿고 기다리십시오. 그런데 그렇게 해서, 그다음은 어떻게 하시려는 겁니까?”
“그렇게 해서 나온 명단에 적힌 사람을 일일이 만나 볼 생각입니다.”
“몇 명이 될지도 모르는데, 그 많은 사람을요?”
“그 많은 사람이라뇨, 그걸 병원장님께서 어떻게 아십니까? 아직 찾아보지도 않았잖아요.”
“아, 그건… 선생께서 찾으시는 김미숙이라는 환자가 워낙 많은 성씨에, 워낙 흔한 이름이어서요.”
맞는 말이었다. 김미숙. 길 가다 발에 채일 만큼 흔한 이름이다.
용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옛날 사람들은 태어난 달을 이름으로 썼다는.
삼월에 태어나면 삼돌이, 삼월이. 오월에 태어나면 오복이, 오월이. 칠월에 태어나면 칠복이, 칠월이.
병원이 없었거나 병원 문턱이 높았던 게 오히려 다행이다. 이런 이름으로는 데이터를 만드는 데 적잖이 어려움이 있었을 테니까.
“네, 인정합니다. 하지만 제가 조금 전 말씀 드린 정도까지만 좁혀져도 지금보다는 훨씬 일이 쉬워집니다. 그렇게 해주신다면 남은 건 그들의 얼굴을 일일이 확인하면 되는 거잖아요. 얼굴을 확인하는 과정은 피해 갈 수 없는 일이고요.”
“아, 듣고 보니 그러네요. 지금 찾으시는 분은 한 사람으로 특정돼 있으니까요.”
그 순간 아부쟁이 병원장에게서 총기 넘치던 젊은 시절을 보았다.
‘병원장, 고스톱이나 치면서 거저 된 건 아니었어. 저렇게 초롱초롱한 사람이 어쩌다가.’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새하얀 수건 같았던 사람들이 이 세상에 와서, 이리 채이고 저리 채여, 더러운 수건이 돼 저세상으로 돌아가는 게 우리가 말하는 삶이라는 것인가. 불현듯 회의감이 물밀듯 다가왔다.
* * *
용하는 조금 전 병원장에게서 자료를 받아 밖으로 나왔다.
“참나, 사람이 이렇게 간사하다니까. 아직 미숙이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면서 말이야. 이깟 자료 몇 개 받았다고 벌써 찾은 기분이라니.”
주차장 쪽으로 터덜터덜 걸음을 옮기는데 왠지 꼭지가 당겼다. 보건복지부 공무원 사칭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용하는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양심이 시키는 대로 고개를 돌려 병원장이 지금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내려다보고 있을 병동을 올려다보았다.
“저 인간, 내가 가는 거 확인하고 여기저기 부리나케 전화통 돌리겠지?”
최대한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을 꺼내 셰어링카 앱을 눌러 열림 버튼을 터치했다.
―삐욕!
노랑 등을 깜박거리며 차 문이 열렸다. 차 문을 여는데 셰어링카임을 표시하는 로고가 유독 눈에 띄었다. 이런 젠장! 용하는 저도 모르게 병동 쪽을 다시 한번 올려다보았다.
“제기랄! 로고가 왜 이제야 보이는 거야? 쳇, 곧 소문나겠네. 보건복지부 공무원은 셰어링카 타고 다닌다고.”
에라, 모르겠다. 들키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서둘러 차를 몰아 병원을 벗어났다. 눈 깜박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어쩌면 셰어링카 로고를 아무도 못 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편으로는 마음이 놓였다.
병원이 보일 듯 말 듯 멀어졌을 때 차를 갓길에 세웠다. 그리고 병원장이 건넨 자료를 펼쳐 거리순으로 동선을 그려보았다. 그다음 가장 가까운 요양병원 주소를 내비게이션에 찍었다.
“가자! 최대한 빨리 움직여 오늘 중에 모두 만나야 한다.”
바로 기어를 드라이브 모드로 이동시키고 가속기를 밟았다. 비록 수퍼카처럼은 아니지만, 셰어링카치고는 제법 괜찮은 굉음을 토해내며 쏜살같이 질주해 나갔다.
가성비 갑! 만족스러웠다.
차로 약 15분쯤 달려 두 번째 요양병원에 도착했다. 조금 전 도움 받은 첫 번째 요양병원에 비하면 보잘 없는 시설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병원에 마음이 갔다.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걸까? 혹시…….”
걸음이 빨라졌다. 작은 입구에 들어서니 로비라고 하기는 좀 어중간한 작은 공간이 보였고, 두어 걸음 옮기니 바로 원무과 앞이었다. 척! 파일을 펼쳐 빠르게 훑어 내리는 시야에 두 명의 미숙이가 보였다.
“김미숙 씨 좀 만나러 왔는데요.”
“잠시만요.”
병원 원무과 여직원의 움직임치고는 꽤 굼떠 보였다. 마우스를 잡은 손도 그렇고 타이핑도 그렇고.
“힘들게 찾을 것 없이 이 병원에 김미숙이라는 이름을 가진 환자는 딱 두 명입니다. 둘 다 30대 여성으로 공황장애, 분노조절장애, 대인기피…….”
“아! 여기 있네요. 2층 관찰 병동에 계세요.”
“관찰 병동은 또 뭡니까?”
“환자의 상태가 세심하게 관찰해야 하면, 벽이 아닌 통유리로 된 병실에 격리합니다.”
격리라는 말이 왠지 귀에 거슬렸다. 이 요양병원은 환자를 정신질환자 취급한다는 말인가.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공황장애, 분노조절장애, 대인기피증. 이 3종 세트는 일종의 정신질환이니까.
“지금 찾으시는 환자분은 세심하게 관찰해야 하는 질환을 앓는 환자여서…….”
“좋아요. 일단 봅시다. 내가 찾는 사람이 맞는지.”
용하가 좀 도도하게 굴어도 아무도 불만스러워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호의적으로 협조하는 분위기였다. 예상했던 대로 첫 번째 방문했던 요양병원 원장이 찌라시를 뿌린 덕분이다.
‘훗, 제대로 협조하는군. 21세기에서 이런 행운이 있을 때도 있었던가.’
복도를 걷는데 가슴이 두근거렸다. 알 수 없는 기대감과 조바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원무과 여직원의 걸음은 답답하리만치 느렸다.
‘대체 이 여자가 일하러 가는 거야, 나들이를 가는 거야?’
여직원의 투철한 아니, 이기적인 선비정신을 지켜보고 있자니, 속에서 무엇인가 울컥 치밀었다.
“여보세요! 2층 관찰 병동이라면서요.”
“네, 맞습니다. 고객님.”
“그럼 나 혼자서 둘러봐도 되는 거 아닙니까?”
“그게 말입니다, 요양병원 근무자는 병원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지켜야 할 매뉴얼이란 게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 우리 요양병원 원무과 직원이 지켜야 할 매뉴얼에 충실하게 임하는 중이랍니다.”
매뉴얼! 그거 좋은 제도지. 많은 직원을 한꺼번에 관리 감독하기엔 편하지만, 속전속결이나 임기응변이 필요할 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알겠습니다. 어서 안내나 하십시오.”
여직원은 금세 새초롬해졌다. 용하는 내심, 이제 좀 빨리 가겠지? 라는 기대감이 앞섰다. 그런데 이 여직원은 좀 달랐다. 보통은 살짝 약을 올리면 자기도 모르게 걸음이 빨라지게 마련인데, 여직원의 걸음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그래, 내가 순응하자. 조바심 낸다고 다 됐으면 지금 내가 이러고 있지는 않겠지.’
마음을 달리 먹어서인지, 마음의 여유가 조금은 생겼다. 2층 복도를 걸으며 스치는 광경에 눈길을 보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 마음을 좀 여유 있게 해야 시야가 넓어지는군.’
저만치에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보이는 두 명의 30대 여인이 보였다.
‘저 두 사람이 김미숙이란 이름을 가진 30대 여인인가 보군.’
용하는 저도 모르게 마음만 조급해졌다. 그래서인지 목을 쭉 빼고 이리저리 살폈다. 그때였다. 손을 뻗으면 닿을 만한 곳에 한 여인이 보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달음에 다가갔지만, 기대했던 미숙이는 아니었다. 일순 실망감이 느껴졌다.
두 사람 다 이름만 같았지, 용하가 찾는 미숙이는 아니었다.
일단 확인했으니 서둘러 그 병원을 빠져나와야 했다. 삐걱거림 없이 가장 자연스럽게.
‘이럴 때 전화라도 한 통 와주었으면… 아니, 그냥 희망 사항이다. 21세기에서 한 번이라도 내 생각대로 돼 준 게 있었던가.’
그런데 무슨 주문처럼 스마트폰 벨 소리가 울렸다. 믿기지 않아서인지 받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여직원이 의아한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전화 안 받으세요?”
“네?”
“스마트폰 벨 소리 울리잖아요.”
그제야 주머니를 뒤적여 스마트폰을 꺼냈다.
“어! 진짜네?”
쉽게 믿기지 않았다. 정말 바라던 전화가 온 것이다. 무엇 하나 제 뜻대로 된 적 없는 21세기에서 말이다.
“아 네, 전화 좀 받겠습니다.”
적당히 예를 갖추고 스마트폰 화면의 통화를 터치했다.
“여보세요?”
―네, 강진상입니다.
“강진상?”
강진상이 누구야?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곧, 그가 누구인지 떠올랐다.
“아, 병원장님?”
―네, 기억하시는군요.
“그런데 무슨 일로…….”
얼핏 불안했다. 혹시 정체를 알아낸 건가. 그때였다.
―그게 말입니다. 아까 찾던 김미숙이란 사람 직업이 혹시 어린이집 선생님입니까?
“네!”
용하는 저도 모르게 병원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러 대답했다.
―아, 맞는군요. 김미숙 환자, 찾은 것 같습니다.
“아, 그래요? 고맙습니다.”
―제가 지금 주소 하나 문자로 보내드릴게요. 그쪽으로 가보세요.
“네,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어떻게 하면 이 병원을 빠져나갈까 고민하던 차에 갑자기 전화가 오더니, 거기에 전혀 예상치 않은 미숙이가 있다는 반가운 소식까지 전해들을 수 있었다.
용하는 21세기에서 딱 두 번 환희를 느껴보았다. 대학에 가게 해준 전국대회 단체전에서 우승했을 때와 지금.
전화를 끊고 지금 병원의 여직원에게 인사도 하기 전이었다.
―띠링!
병원장이 보낸 문자가 도착했다. 무엇보다도 급하고 반가운 문자였다. 황급히 스마트폰을 열어 문자 내용을 읽어보았다.
‘음, 아까도 느꼈지만, 고스톱 치면서 의사 된 건 확실히 아니야. 어쩌면 이렇게 문자 하나도 논리적이고 세심하게 보냈을까?’
그 순간 몸이 먼저 움직였다. 용하는 1층으로 향하는 계단 쪽으로 성큼 걸음을 내디디며 건성으로 인사의 뜻을 전했다.
“고맙습니다. 제가 좀 급해서 이만!”
병원 규모가 작아서인지, 차까지 오는 데 불과 2, 3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황급히 차를 몰아 병원장이 알려준 병원으로 갔다. 조금 전에 들렸던 병원보다는 좀 큰 규모였지만, 위치로 봐선 너무 외진 곳이었다.
아마도 병원장의 도움이 없었다면 절대 찾을 수 없는 그런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어느 때보다 확신이 서는 순간이었다. 게다가.
> 김미숙
> 30대 여성
> 공황장애, 분노조절장애, 대인기피증
> 어린이집 선생님
이 모든 퍼즐 조각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져서 더욱 그랬다.
그렇게 달려간 병원에서 비로소 미숙이를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가까이에서 볼 수는 없었다. 통유리창 너머에 있는 미숙이를 먼발치서 바라보아야 했다.
“미숙아!”
그렇게라도 미숙이를 만날 수 있었으니 만족할 만한 성과였다.
그런데 미숙이를 보는 순간 그녀의 얼굴에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모습이 겹쳐졌다.
다름 아닌 연회장 하녀의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