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57
57화
“형님! 수양이든 수련이든, 다 좋습니다. 허나! 밥벌이는 해야 하지 않습니까?”
너무 단도직입적이었을까. 인공은 치켜뜬 눈으로 용하를 곱지 않게 바라보았다. 항상 그랬듯 그의 부리부리한 눈은 일단 피하고 보는 게 좋았다.
아마도 이런 행동이 인공의 눈에는 자신감이 없어 그러는 것으로 보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허점을 찾기 위한 전략으로는 이만한 게 없었다. 물론 용하만의 방법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제 말은…….”
의도치 않게 조금 전과 같은 톤의 목소리를 내고 말았다.
‘이런 목소리로는 협상에서 절대 이길 수 없다.’
어금니를 질끈 깨물었다. 그리고 아랫배에 힘을 주고 목청껏 다시 입을 열었다.
“네! 까놓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저 좀 도와주십시오.”
그제야 인공은 부리부리하게 떴던 눈에 힘을 풀며 굳게 다물었던 입을 뗐다.
“진작 그럴 것이지. 그래, 어찌 도와주면 좋겠느냐?”
인공의 말에 일단 예부터 갖추었다. 그리고 전술 전략이 농후한 화법으로 접근전을 펼쳤다.
“예전에 말씀드렸던 검도 체육관 말입니다. 비록 변두리지만 형님이 저를 좀 도와주신다면 승산이 있을 것 같아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그러니까 자네 말은, 나더러 자네가 운영하는 검도 체육관에 와서 사범이 되어 달라, 뭐 그런 것이냐?”
“얼추 비슷합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뭐 수련생을 가르치는 일뿐만 아니라, 이왕 오시는 거 두루두루 체육관 일을 좀 봐주신다면, 더 바랄 게 없고요.”
“두루두루 체육관 일을 좀 봐 달라? 좋다! 그건 그렇다 치고. 내가 자네 체육관에서 사범으로 일하면, 자네에게 대체 어떤 도움이 되는지 자세히 한번 말해 보거라.”
“우선 수강생을 늘릴 수 있습니다.”
“무슨 수로 수강생을 늘린단 말이냐?”
“지금 신도시에 몰려들어 터줏대감 노릇을 하는 기업형 체육센터들은 이미 식상해졌습니다. 더는 색다를 게 없단 얘기죠.”
“그래서 그게 어떻다는 말이냐?”
“유행은 돌고 돈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유행은 돌고 돈다는 말에 토를 달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 유행이 돌게 만들 동력이 없지 않으냐?”
“있습니다.”
“뭐라? 그 동력이 있다고?”
“네.”
“그것이 무엇이냐?”
“그건 바로 인공 형님입니다.”
“뭐라, 내가? 자네 오늘 나를 여러 차례 놀라게 하는군.”
“형님의 이력을 신도시 사모님들에게 홍보하면 그들은 더 놀랄 겁니다.”
“그래? 그렇다 치고 좀 더 자세히 말해 보거라.”
인공다운 접근전이었다.
“지금 신도시의 기업형 체육관을 운영하는 관장들은 대부분 체대 나와서 대학원에 진학해 교육학을 전공하고, 그 이력으로 신도시 사모님들을 솔깃하게 해서 수강생들을 독식했습니다. 물론 막대한 자본이 투입된 것도 사실이지만, 그건 우리와는 무관하니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인공이 조금 전과 확연히 다른 눈빛을 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들이 첨단과학과 마케팅 그리고 막대한 자본으로 특기 교육 시장을 장악했으니, 우리는 그와는 반대로 신선한 바람을 일으켜야죠.”
“자꾸 밑밥 뿌리지 말고, 시원시원하게 좀 얘기해 봐. 대체 무엇으로 어떻게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겠다는 건지.”
갑자기 무슨 심경의 변화가 생겼는지, 인공은 조바심을 내며 징징거리듯 말했다.
“널리 좀 알려볼까 합니다. 입소문 말입니다. 강호를 떠돌며 전설 속의 검객, 장설의 수제자로 검술을 연마한 인공! 마침내 세상에 그의 실체를 드러내다. 어떻습니까?”
“음, 그럴듯하구나. 근데 어째 좀 게임이나 영화 홍보 같지 않으냐?”
“바로 그거죠! 그러고서 강호의 검술이 검도와 어떻게 다른지, 시범을 보이는 공연을 할 것입니다. 그 공연에서 형님이 검술뿐 아니라, 영춘권과 경공술도 좀 보여주면 충분히 눈길을 끌 수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그 잠깐 사이에 거기까지 계산하였느냐?”
“이건 빙산의 일각입니다. 앞으로 펼쳐질 일은 상상을 초월할 것입니다.”
“거기까지는 충분히 공감이 가는구나. 그런데 자네 계획대로 공연이니 뭐니 하려거든 돈이 필요할 텐데, 그건 어찌할 생각인 게야?”
“형님을 내세워 스폰서를 만들 것입니다. 물론 그 전에 수도권의 각급 학교를 돌며 시범을 보여 학생들 눈길을 사로잡아 SNS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말입니다.”
“그것보다는 차라리 신도시를 장악하고 있다는 대형 체육센터들 말이다, 그곳으로 급습해 들어가서, 거기 대빵들과 대거리를 붙는 건 어떻겠느냐? 내 생각엔 말이다, 그편이 훨씬 빠르고 효과적이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어찌 생각하느냐?”
인공의 말에 난색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자신감은 마음에 쏙 들지만, 지금은 세상이 달라지지 않았는가. 감히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법치국가 대한민국에서, 남의 사업장에 무단 침입해 도장 깨기를 하자니, 이게 어디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형님! 무슨 말씀 하시는지 잘 압니다. 하지만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만약 그랬다간 시작도 해 보기 전에 경찰에 붙잡혀 가서 처벌받게 될 겁니다.”
저도 모르게 또 단도직입적이었다. 인공은 심사가 뒤틀려 버럭 고함을 질렀다.
“세상이 달라지면 진리도 달라진다는 말이냐?”
“네?”
용하는 얼떨떨했다. 진리라니? 대체 뭐가 진리고 뭐가 그 반대란 말인가.
“형님, 진리라는 게 무엇을 말씀하시는 건지요?”
“힘 말이다. 힘센 자가 부를 차지하는 건 당연한 이치가 아니냐? 개방에서 그렇게 보고도 여태 그걸 모른단 말이냐?”
“형님, 그 시대는 힘이 곧 정의이고 법인 세상이 아니었습니까? 지금은 법을 지켜야 하는 세상입니다. 그리고 그 법을 지키지 않으면 처벌받습니다. 여긴 21세기라고요.”
“대체 누가 만든 법을 누구보고 지키라는 것이냐? 게다가 지키지 않으면 처벌한다?”
“네, 형님.”
“그건 그 법이란 걸 사람들이 다 알고 있을 때 얘기지. 아무것도 모르는데 뭐가 옳고, 뭐가 그른지를 어떻게 판단하고 지킨다는 것이냐?”
용하는 왠지 밀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인공의 말에 틀린 구석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21세기는 법을 아는 놈들만 살아남아 권력을 쥐는 세상이니까.
법!
얼핏 법을 좀 알고, 그것을 지키며 살아온 줄 알았는데, 실은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었다. 비근한 예로 법전에 나오는 단 한 줄조차도 모를 정도로 말이다. 스스로 운동밖에 한 게 없어, 아는 바가 없다고 인정했으면서도 용하는 법을 좀 안다는 착각 속에 살았다.
결국 인공에게 고개를 숙였다.
“형님, 방법은 달리 찾아보겠습니다. 일단 체육관에 오셔서, 제가 의지라도 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대충 얼버무릴 생각 말고 확실하게 말해 보거라. 의지할 사람이 필요한 것이냐, 돈이 필요한 것이냐?”
“둘 다 필요합니다.”
“그럼 이건 어떻겠느냐?”
용하는 한번 들어는 보겠다는 뜻으로 성의 없이 고개를 끄덕했다.
“자네가 여기로 오는 거 말일세.”
“네에?! 제가요? 제가 왜 여길 옵니까? 여기서 무슨 할 일이 있다고.”
전혀 예상치도 못한 인공의 제안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자네가 이곳으로 들어와 기 수련을 가르치는 건 어떻겠느냐는 말이야. 그렇게만 해준다면, 수련생은 내가 모아 올 테니.”
“이 산꼭대기에서 기 수련을요?”
산꼭대기에서 수련생을 가르친다는 발상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이곳까지 수련생을 모집해 오겠다는 말에는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형님! 형님이야 시주 다니느라 이곳을 하루에도 수없이 오르락내리락했으니, 이곳이 어떤 곳인지 감이 떨어졌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곳은 해발 813미터 주금산 산꼭대기입니다. 세상 어느 누가 자기 돈 내고 여기까지 오르내리겠습니까?”
“당연히 안 하겠지. 그래서 염두에 두고 있는 게 합숙일세.”
“합숙을요? 형님, 여기가 무슨 소림사입니까?”
일단 발상은 기발했다. 인공이 아니고서 어느 누가 합숙이라는 발상을 하겠는가.
“소림사만 수련생을 합숙시켜 돈을 벌라는 법이 세상 어디에 있다더냐?”
쩌렁쩌렁 자기 소신을 피력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누가 뭐래도 나는 이곳 인공사에 수련생을 불러 모아 합숙 훈련을 시킬 걸세. 수련생들이 일정한 경지에 오를 때까지는 합숙하고, 그 이후엔 스스로 찾아오는 수련생만 받아 가르칠 것이다.”
“아, 기를 직접 경험해 본 수련생은 자발적으로 배우려 들 테니, 이보다 더 험난한 곳이라도 배우러 올 것이다?!”
“그렇지! 1기를 수련시키고 합숙소가 비는 사이, 2기 수련생을 모아 목돈을 만들고. 어때, 내 생각이?”
“아이디어는 끝내줍니다. 저도 마음 같으면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무슨 할 말이 그리도 많은 것이냐? 돈 벌 기회라 생각되면 이 악물고 한번 해 보는 거지, 뭘 그리 군소리가 많아!”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제가 생각하고 있는 건 단순히 수련생을 끌어모아 잔돈푼이나 뜯어내려는 게 아니어서, 그건 좀…….”
“누군 수련생들에게서 잔돈푼이나 뜯어내고 싶어서 이러는 것이냐? 자네가 힘들어하니까, 일단 자네 계획을 실천하기 위해 목돈을 좀 만들자는 것일세.”
“목돈을요?”
“그래 목돈! 자네만 이곳으로 와준다면 내게 생각이 있는데, 어찌하겠느냐?”
인공의 말은 점점 구체적으로 치달았다.
“구체적인 계획은 있습니까?”
“인공사를 확장해 합숙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고, 대대적으로 홍보할 생각일세.”
“홍보를요?”
“일단 기에 대한 실체를 보여줘야 할 거 아냐?”
“실체? 실체를 어떻게 보여주려고요?”
“아이참, 왜 그래? 아마추어처럼. 자네가 그 시범 한 번만 보여주면 다들 지린다니까.”
“제가요? 무슨 근거로 그런 말씀을……. 저는 그저 장설 형님에게 기 수련법을 배웠을 뿐인데, 기 수련을 가르치는 것 말고 무엇을 더 할 수 있겠습니까?”
“에이 그러지 말고… 개방에서 다 봤거든. 자네가 기를 모아 전기로 전환하는 광경을…….”
인공이 불현듯 내뱉은 단 한마디에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그것을 보았습니까?”
“어디 그뿐이야? 에베레스트산에서 윙슈트의 마지막 동력 말이야. 폭약에 불붙인 것도 자네 아니야.”
“다 알고 계셨군요. 그래서요, 그다음은요?”
“기수 체제로 수련생을 모을 생각이다. 1년 수강료 1인당 3,000만 원에 딱 열 명씩만.”
헉! 인공의 말에 용하는 숨이 턱 막히며 입이 쩍 벌어졌다.
“3, 3억! 형, 형님 지금 제정신입니까? 그게 지금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말이 안 되면! 한 5,000만 원으로 올려 받을까? 한 5억은 돼야 뭘 해도 할 것 아니냐.”
인공은 이미 마음을 굳혔던지, 한 마디 한 마디에 확신이 담겨 있었다.
‘대체 뭘 믿고 저러는 걸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이 사회가 돈의 가치가 땅에 떨어지고, 입만 벌렸다면 억! 억! 하는 세상이 됐다고 해도, 실체도 보이지 않는 기 수련을 하겠다고 생업까지 포기해가며 3,000만 원을 들고 이런 험준한 산에 올라올 사람이 어디 있겠느냔 말이다.
용하는 인공의 사업 계획에는 충분히 공감이 갔지만, 괜히 짜증이 났다.
“형님! 제가 지금 형님과 협상이나 하려고 여기까지 올라온 줄 아십니까?”
“네 녀석이 내 협상 상대가 된다고 생각하느냐?”
용호상박. 누구 하나 한 치도 물러설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말해 보거라.”
인공답지 않게 앙토라져 대답했다.
“일단 제가 먼저 제안했으니, 1년씩 나눠서 해 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1년씩?”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세월. 그리 나쁜 제안은 아니었다.
“좋다. 그럼 내일부터 내가 검도 체육관으로 출근하도록 하마. 단 월급은 절대 밀리지 말고 따박따박 내놓아야 한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될 걸세.”
“그런 건 염려하지 마십시오.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에 정확히 최저임금이 명시돼 있고, 그것을 지급하지 않으면 법으로 처벌받게 돼 있습니다.”
용하가 가진 것 한 푼 없이 자신감 있게 말했던 이유는, 인공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의 무공이라면 충분히 수련생들을 매료시킬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알았네. 그럼 내일부터 뜻을 모아 일 한번 저질러 봄세!”
“고맙습니다, 형님. 그럼 아까 하던 말, 마저 하겠습니다.”
“아까 하던 말이라니, 그게 무엇이더라?”
“입소문 말입니다. 그게 형님이 말씀하신 도장 깨기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남의 체육관을 일일이 찾아가지 않을 뿐이지, 제가 말씀드린 입소문 내는 방법도 일종의 도장 깨기입니다.”
“입소문 내는 게 도장 깨기라니, 쉽게 이해할 수 없구나.”
“아무튼 제 얘기는 법에 저촉되지 말고 도장 깨기를 하자는 겁니다. 지금 세상에 걸맞게 입소문 내는 방법으로 말입니다.”
용하는 확신에 차 있었다. 인공은 무슨 말인가 할 말이 있었지만 더는 거론할 수가 없었다.
‘이보게, 용하! 기수련 수강생을 먼저 모아서 목돈을 좀 만든 다음에 검도 체육관을 살리는 편이 현명하지 않을까?’
인공은 끝내 자기 의견을 피력하지 못한 채 마른침을 삼키며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