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58
58화
도포 자락 휘날리며 인공이 도착한 곳은 변두리 검도 체육관이었다.
웬일인지 검도 체육관 건물을 올려다보는 인공은 적이 감동한 표정이었다.
‘녀석이 겸손이 지나쳤네. 변두리 검도 체육관, 변두리 검도 체육관… 하도 나발을 불어서 아주 볼품없는 줄 알았는데…….’
인공의 입꼬리가 귀까지는 아니어도 그 반 정도는 오르락내리락했다.
‘크, 이 정도면 첫 직장치고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걸.’
감동과 함께 적잖이 흡족했다.
주금산의 인공사가 문득 떠올랐다. 비교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움막에 비하면 훌륭한 곳이었다.
“쳇, 모자란 놈! 이렇게 훌륭한 수련 시설을 두고 돈을 못 벌다니.”
혀를 끌끌거리는 인공. 불현듯 용하가 같잖아 보인다.
사실 인공이 앞으로 펼칠 활약을 생각하면, 용하 따위 같잖아 보여도 좋고 인공의 자신감이 지나치다 욕을 해도 좋다.
인공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펼쳐질 일들을 흐뭇하게 떠올렸다.
그리고 가볍게 한마디를 던졌다.
“모르긴 해도 이 정도 시설이면 수련생 최하 천 명은 모을 수 있겠다.”
천 명! 아마도 지금 인공의 말을 용하가 들었다면 분명 기절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결코 농담이거나 허풍이 아니었다.
인공은 그 기분 그대로 성큼 걸음을 내디뎌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한 걸음 들어섰던 인공은 두 걸음 뒤로 물러났다.
“어이쿠, 냄새!”
얼마나 오랜 세월 방치해 놨던지 메케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하지만 이 정도는 수련생들 모으고 사람들 들락거리면서 온기가 좀 채워지면 금방 해결될 문제였다.
“역시 사람이 문제로군. 서둘러 수련생을 불러 모아야겠어.”
관장 김용하가 기를 쓰고 해도 안 된 것을 인공은 너무 쉽게 입에 담았다.
저 자신감,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간판에 별다른 이름 없이 [검도체육관]이라는 다섯 글자만 덩그러니 걸려있었다.
왜 여태 이름도 갖지 못했을까. 이름 없는 검도 체육관이 인공의 눈에는 왠지 측은해 보였다.
“음, 때 되면 이름부터 하나 근사하게 지어줘야겠군.”
그 순간 인공의 뇌리에 스치는 이름이 하나 있었다. 대한검도협회 무림검도관武林劍道館.
대한민국 어디를 뒤져도 이름 없는 간판은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검도 체육관 간판이라면 [OOO검도체육관] 또는 [대한검도협회 OO검도관]이라는 자기 이름을 가지고 있다.
검도 체육관뿐 아니라, 정식 허가받고 영업하는 모든 간판은 자기 이름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김용하 관장의 변두리 검도 체육관은, 그냥 붉은색 간판에 두꺼운 글씨체로 쓰인 [검도체육관]이라는 다섯 글자가 전부였다.
“쳇, 이런 놈이 뭐? 홍보를 한다고? 중질하는 내가 해도 이보다는 낫겠다.”
극강의 비난이었다. 오죽했으면 의형제를 맺은 아우에게 이런 말까지 했을까. 안 그러려고 했는데 또 한숨이 나온다.
“일단 오늘은 그동안 묵은 때부터 씻어내는 것으로 부흥을 예고해 볼까.”
부푼 가슴으로 검도 체육관 문을 열었다. 온기라고는 눈곱만큼도 느껴지지 않았다.
게다가 인공을 반기는 것이라고는 정면에 보이는 벽면에 열 개 남짓한 죽도와 보호장구 몇 개가 전부였다.
“에효!”
인공은 자기도 모르게 옅은 한숨을 내뱉었다. 안쓰러운 심정으로 가슴 깊은 곳에서 눈물로 토하는 한숨이었다.
몸은 몸대로 정신은 정신대로, 혼자 힘들어했을 녀석을 생각하니, 가슴이 다 먹먹했다.
유리 벽으로 된 벽면을 응시하며 빈손으로 자세를 잡아보았다. 거울 속 인공은 게임 홍보용 스샷을 연상시켰다.
한동안 자기 자신의 자세에 심취했던 인공의 눈길이 [사무실]이라 쓰인 문에 가서 꽂혔다.
“사무실!”
인공은 곧 자세를 풀고 사무실 쪽으로 거리를 좁혀갔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는 인공의 발은 경계심으로 가득했다. 이윽고 문 앞에 도착했을 때였다.
안에서 옅은 인기척이 들렸다. 인공은 경계의 끈을 놓으며 슬그머니 문을 열었다. 소파에 널브러진 용하가 보였다.
“이 녀석이 지금이 몇 신데! 이러니 체육관이 제대로 돌아갈 리가 있나.”
인공은 혀를 끌끌거리며 죽도가 걸려있는 벽 쪽으로 황급히 다가가 열 개의 죽도 가운데 가장 실하게 보이는 놈을 들고 사무실로 급습하듯 치고 들어가 용하를 향해 무차별 휘둘렀다.
―휙! 휙! 휙!
“악! 악! 으악!”
궤적과 함께 죽도가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매서웠다. 그것과 뒤섞이는 용하의 비명에는 엄살이 도를 넘었다.
한동안 속수무책으로 매질을 당하던 용하는 사력을 다해 인공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사무실을 뛰쳐나왔다.
그리고 죽도가 꽂힌 벽 쪽으로 전광석화처럼 다가가 가장 실하게 보이는 한 자루를 뽑아 들었다.
―척!
자연체에서 곧 중단자세를 잡자 인공은 상단자세로 맞섰다.
“상단자세를 취하다니. 형님! 저를 죽일 작정이십니까?”
“마음 같아선 죽여버리고 싶구나.”
“왜요? 왜 의형제인 저에게 살의를 갖는 겁니까?”
“네 녀석 하는 꼴을 보니 배신감이 느껴져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베 버리고 싶구나.”
“제가 뭘요? 뭘 잘못했다고 이러는 겁니까?”
“의지할 사람도 필요하고, 돈이 필요하다는 녀석이 해가 중천에 떴는데, 여태 자빠져 자고 있어?”
죽도를 잡은 손에 힘이 풀렸다. 입이 열 개여도 할 말이 없어서였다. 용하는 곧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니다, 형님.”
“죄송해할 거 없다. 난 이대로 산으로 올라갈 것이니 그리 알거라.”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삼고초려를 방불케 하는 간절한 애원으로 겨우 동의를 구했는데, 이렇게 돌려보낼 순 없었다.
최대한 납작 조아리고 간절히 매달렸다.
“형님! 어제 늦은 시간까지 일을 좀 했습니다. 그래서 늦게 잠이 드는 바람에…….”
“늦은 시간까지?”
“네, 형님.”
“대체 무슨 일을 하느라 잠을 못 잤느냐?”
선뜻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인공은 조금 더 커진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늦은 시간까지 무슨 일을 하느라 잠도 못 잤느냐고 묻지 않느냐?”
“저… 그게 말입니다… 오늘 형님 오시면 맛있는 식사라도 대접해야 하겠기에, 몇 푼이라도 벌어볼까 하고 대리운전 나갔었습니다.”
그 말에 인공은 더욱 격노해 소리쳤다.
“지금 정신이 있는 것이냐, 없는 것이냐? 그것이 큰일을 앞둔 자의 덕목이라 할 수 있겠느냐?”
지축을 울리는 우렁찬 목소리 뒤로 울먹이는 소리가 뒤섞였다. 비참한 현실 앞에 서러움이 복받쳤다. 인공은 샘솟는 눈물을 더는 참을 수 없어 잠시 말을 아꼈다.
“형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만 노여움 푸십시오.”
인공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뒷짐 진 손을 까딱까딱 움직일 따름이었다.
“형님…….”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인공의 침묵이 길어지자 더 불편해졌다. 아니, 불편하다기보다는 불안했다.
혹 저러고 있다가 그냥 가버리면 어떡하지? 차라리 땡강 부리고 윽박지르는 게 속은 편했다.
피를 말리는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인공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자네가 말했던 그 입소문 말일세. 그거 해서 수강생 모으는 데 어림잡아 얼마나 걸릴 것 같은가?”
머릿속에는 모든 계획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데, 막상 얼마나 걸리냐고 물으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즉답을 못 하는 걸 보니,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는 모양이구나.”
“아닙니다. 분명 계획이 있습니다. 하지만 수강생을 모으는 데 얼마나 걸리느냐고 물으셨을 땐 잠시 당혹스러웠습니다.”
“야단치려고 물은 것이 아니니 긴장하지 말고 대답해 보거라.”
“그게 말입니다. 운 좋으면 그날 바로 효과를 볼 수도 있고, 재수 없으면 한 달 넘게 걸릴 수도 있습니다.”
“수강생 모으는 게 운빨이란 말이냐?”
차마 대답할 수 없었다. 인공은 그런 용하가 한심했던지 혀를 찼다.
인공은 다시 뒷짐을 진 채 등을 돌리더니 한동안 침묵했다. 가시방석 같은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마침내 인공이 입을 열었다.
“그럼 이렇게 하자꾸나. 네 녀석이 하도 보채니 더는 산으로 가자고는 하지 않겠다. 허나! 일단 급한 대로 밥값은 벌어야 하니, 당장 나가서 기(氣)에 관심이 있는 수련생을 모아 올 것이다. 그러니 자네는 기에 대한 실체를 공개하는 데 주저하지 말아야 할 것이야.”
합리적인 제안이었다. 도랑 치고 가재 잡고, 임도 보고 뽕도 따고.
“네, 형님. 그리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말하는데, 오늘부터 절대 대리운전 나가는 일 없도록 하거라.”
인공의 말에 믿음이 없어서가 아니고, 대리운전만 한 부업거리가 어디 있겠느냐는 생각에 잠시 망설여졌다.
“어허, 그래도 이 녀석이! 소탐대실이라는 말이 있다. 그거 몇 푼 벌겠다고 잠을 설쳐 해가 중천에 뜬 것도 모르고 자빠져 자면, 일은 언제 할 것이냐?”
“죄송합니다, 형님.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자꾸 변명 늘어놓지 말거라. 그릇 작아진다.”
용하는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감사의 뜻을 대신했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니 준비하고 기다리거라.”
“형님, 준비라면… 시범 말씀입니까?”
“당연하지! 시범 보일 준비 아니면 뭐가 더 있겠느냐?”
* * *
인공이 체육관을 나간 후, 한 시간도 채 안 되었을 때였다. 체육관 입구가 갑자기 시끌시끌했다. 용하는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한 채 기를 운용하는 데 집중하고 있었지만 더는 그럴 수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람?”
체육관 개업식이 있었던 날 이후, 지금처럼 소란스러웠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의아했다.
집중력이 흐트러지자 플라스마를 일으키며 절정으로 치닫던 기(氣)의 실체가 공기 속으로 순식간에 흩어져 버렸다. 처음 겪어보는 경험이어서 당혹스러웠다. 그동안 기를 운용하며 이런 적이 있었던가.
‘내 의지와 상관없이 기가 사라지다니.’
개방에서 수련할 때와 무슨 차이가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무림과 21세기, 대체 무슨 차이가 있어서 이런 현상이 일어난 걸까?’
한참을 고민한 끝에 결국 원인을 찾아냈다. 정제 된 기가 갑자기 공기 중으로 사라진 이유는 집중력이 흐트러져서였다.
‘그렇다면 기란 외부의 에너지가 아닌, 시전자 자신의 속에 존재하는 에너지란 말인가. 정말 그런 거라면 정말다행이지 않은가.’
그런데 만약 기의 실체를 무림에서만 운용할 수 있는 거라면 이보다 더 난처한 일은 없을 것이다.
‘아닐 거야. 아니어야 해.’
그때였다.
“관장님!”
인공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로 보아 무언가 자랑할 만한 것이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
그 기대감 때문이었을까, 서둘러 매무새를 가다듬고 입구 쪽으로 다가갔다.
“네, 사범님.”
그 순간 문이 열리며 인공과 함께 일단의 무리가 급습하듯 들어왔다.
“사범님!”
예상치도 않은 일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이십여 명 남짓 돼 보이는 건장한 체격의 사내들.
그들은 한눈에 보기에도 무도인임을 알 수 있었다.
“사범님!”
조금 전보다는 안정된 목소리였지만, 아직도 격앙된 기색은 가시지 않은 목소리였다.
“관장님, 오늘 행사가 벌써 시작된 건 아니겠지요?”
인공은 눈치껏 하라는 뜻으로 한쪽 눈을 깜박거리며 들어왔다.
“네, 때마침 잘 오셨습니다.”
인공은 함께 온 사람들에게 너스레를 떨었다.
“그것 보게, 이 사람들아. 지금 가면 딱 맞을 거라고 하지 않았는가. 멀뚱히들 서 있지 말고 어서 들어가 자리를 잡게나. 자리를 잘 잡아야 시범을 제대로 볼 걸세.”
그제야 인공이 체육관을 나가면서 했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한 시간 만에 이십여 명이 넘는 사람을 모아 올 수 있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인공… 대체 정체가 무엇이란 말인가.’
검도 체육관 개업했을 때가 전광석화처럼 스쳤다.
개업 행사는 물론 지속적인 홍보에도 불구하고, 6개월 동안 최선을 다해 모은 수련생 수가 열 명 남짓이었는데.
‘게다가 인공을 따라온 저 사람들. 저 사람들의 정체는 또 무엇이며, 어디서 저렇게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데리고 왔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