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61
61화
‘에효― 저 날카로운 눈빛들… 편집부 넘들! 예상은 했지만 역시 만만치 않겠는데.’
편집부 직원들이 보내는 따가운 눈초리는 쐐기와도 같았다.
그들이 보내는 쐐기의 눈초리들이 매섭게 날아와 온몸에 알알이 박히는 듯해 몸 군데군데 따끔거렸다.
‘사람이 어떻게 저런 눈빛을 보일 수가 있을까. 어디서 못된 것들만 배워서 말이야. 사람이 무슨 돈이니?’
그들의 눈빛은 면면히 살펴보자면 마치 용하가 돈이 될 만한 인물인지 아닌지를 가늠하고 있는 듯했다.
용하는 저도 모르게 목이 움츠러들었다. 아마도 그들의 눈빛을 의식해서였을 것이다.
‘비굴함과 야비함과 대립각이 몸에 밴 사람들이 사는 세상…….’
자성의 의미도 없지 않았다. 용하는 생각했다. 과연 내가 이런 생각을 해도 되는 걸까. 그런 자격이 있는 것인가.
그동안 그 또한 저들 못지않게 체육관에 상담 온 수련생들을 돈 보듯 했기 때문이다.
아니 이런 생각을 했던 게 비단 과거의 일이 아니다. 지금도 수련생 대하기를 무슨 돈 세듯 하고 있지 않은가.
‘부끄럽다. 비굴함과 야비함의 대표 주자가 감히 누굴 비난할 수 있단 말인가.’
여기서 자성을 끝낸다는 게 아쉽기는 했지만 이렇게 빠져들 수만은 없었다. 이제 일을 해야 한다.
‘김용하! 이제 일을 시작해야지.’
우선 편집부 책임자를 만나야 했다. 직원들과 시간 낭비하고 하고 싶지 않아서 내린 결정이었다.
시야를 최대한 넓혀 편집부 전체를 순식간에 훑었다. 많은 사람 중에 누가 대빵인지 찾아내 그와 담판을 짓는 게 효율적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규모가 커서인지 부서 하나에 속한 직원만 해도 검도 체육관 수련생보다 많았다.
‘음, 내가 너무 출판사를 우습게 생각했군.’
그때였다. 범상치 않은 한 사람이 시야에 들어왔다. 저 안쪽에 보이는 누가 봐도 대빵으로 보이는 사내.
질서정연하게 배치된 직원들 책상 끝에, 약간 동떨어져 보이는 자리에 책상 하나가 보였다.
책상 위에 산더미처럼 쌓인 원고와 관련 서류들. 중년의 사내가 그 속에 파묻혀 있었다.
이쯤 되면 누가 보아도 그자가 편집부를 책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책상 옆에 배치된 커다란 회의 탁자가 짐작을 확신으로 바꿔놓았다.
‘역시 사람은 눈이 빨라야 한다니까.’
다른 건 몰라도 동체시력만큼은 어디에 내놓아도 자신 있었다.
‘자, 이제 담판 지으러 가자!’
좀 과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크게 걸음을 내디뎠다. 한시라도 빨리 편집부 책임자를 만나 출판 의사를 피력하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서너 걸음도 채 가지 못해 걸음을 멈춰야 했다. 누군가 앞을 막아섰기 때문이다.
“뭡니까?”
새파랗게 젊은 놈이 다짜고짜 날 선 눈으로 물었다. 용하는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상대가 젊은 놈이어서도 아니고, 앞을 막아서도 아니었다.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더러운 기분이 들었던 건 녀석의 눈빛 때문이었다. 지금 녀석의 눈빛은 누가 봐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마음에 안 들어. 뭐 이런 놈이 다 있지?’
끓어오르는 분을 억누르며 곱지 않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누구신지 모르겠지만 원래 말투가 그렇게 단답형입니까?”
“아니 이 사람이…….”
이번에는 눈까지 부라려 가며 젊은 혈기를 드러냈다.
“나 말입니다. 아니 이 사람 아니고, 이 출판사에 볼일이 있어서 온 사람입니다.”
용하의 말투는 따끔하게 충고라도 하겠다는 태도였다.
“무슨 용건으로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처음 보는 사람이라서 하는 소리입니다. 볼 일이 있으면 절차를 밟았어야죠.”
“절차? 그러는 그쪽은 뭐, 절차 밟았습니까?”
“아니 이 사람이 보자 보자 하니까. 대체 누구시길래 관계자 외 출입 금지 구역인 편집실을 허락도 없이 들어와서 행패를 부리는 겁니까?”
잠시 팽팽한 대립각이 오고 갔다.
“행패라니, 말이 좀 지나치네. 행패 아니고, 편집장님 좀 만나러 왔는데 무슨 문제 있습니까?”
“편집장님? 편집장님은 왜요?”
“편집장님이 이메일을 보내셨더라고요.”
“이메일?!”
젊은 사내는 난색을 드러내며 눈동자를 바삐 굴렸다.
“아이참,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허락은 받고 들어가셨어야죠.”
“허락? 아까 안내데스크에 방문 목적 이야기하고, 그 여직원에게 안내받아 들어온 건데, 뭐가 잘못됐습니까?”
녀석은 딱히 할 말이 없었던지, 쭈뼛거리며 시비조로 다시 물었다.
“그건 됐고.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더는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출판사에 무슨 일로 왔겠습니까?”
조금 전과 달리 좀 세게 맞서자, 직원은 살인귀 같은 눈을 훅 치켜떴다.
‘우― 역시 재수 없어.’
용하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이번엔 조금 부드럽게 말했다.
“아, 출판 문제로 긴히 상의를 좀 드릴 게 있어서요.”
“출판! 피드백 가지고 오셨습니까?”
“피드백? 그건 무슨 백이죠? 뭐, 뇌물이라도 달라는 뜻인가요?”
모르는 척이 아니고 진짜 몰라서 물어본 것이다. 별것도 아닌 말에 직원은 양손을 허리에 척 올려놓으며 얼굴을 붉혔다.
“아니, 그게 아니고 사전에 투고하셨느냐고요?”
“우리나라 1위에서 10위 자리에 올라가 있는 출판사에 제안했으니 받았겠죠?”
비록 부드러운 말투였지만, 출판사 직원의 귀에는 결정타로 들렸다. 안 받았다고 하면 업계 10위 안에도 못 드는 출판사로 전락하고 마는 순간이다. 직원 아니, 출판사가 외통수에 걸린 장기판에 놓인 장기알 같았다.
직원은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고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렸다.
‘저 눈빛!’
왠지 낯설지 않았다. 다른 건 몰라도 눈빛만큼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어디에선가 본 듯한 눈빛이라는 건 실제 보았다는 뜻이다.
조건이 달라 기억이 나지 않을 뿐, 같은 조건에 처한다면 분명 기억이 나겠지 싶었다.
놈이 기분 나쁜 눈으로 용하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용하도 놈과 똑같이 훑어보았다. 그 순간 놈이 내비친 표정은 딱 두 가지였다.
첫째는 출판과는 전혀 무관해 보인다는 눈초리였고, 둘째는 아무리 봐도 수상하다는 표정이었다.
이런 싸가지없는 출판사 놈! 마음 같으면 놈의 몸을 세로로 두 동강 내 버리고 싶었지만, 참고 또 참았다.
그때였다. 책 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러니까 출판사 근무 경력이 좀 있어 보이는 한 여직원이 그 앞을 지나가다가 놈에게 단호하게 주의를 주었다.
“편집장님께 모셔다드려. 딱 봐도 신입인 공태엽 씨가 상대할 사람은 아니잖아?”
녀석은 조금도 굽힘이 없이 날 선 눈으로 여직원을 바라보았다.
“왜, 내 말이 기분 나빠? 틀린 말한 거 아니잖아! 딱 보면 몰라?”
소름이 돋을 정도로 도도했다. 여직원은 도저히 말로는 안 되겠던지, 놈을 배제하고 직접 편집장에게 안내했다. 여직원을 따라가던 용하는 꼭지가 당겨 흘깃 돌아보았다.
그 순간 다시 한번 딱 마주친 놈의 눈빛.
‘아니! 저자는?’
저도 모르게 미간이 좁아졌다. 두고두고 신경 쓰이는 저 눈빛!
그러는 사이 여직원과 한 걸음쯤 거리를 두고 편집장 앞에 섰다.
“보현옥 팀장. 무슨 일입니까?”
편집장의 말에 용하는 절로 여직원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팀장? 팀장이라면 어느 작은 조직을 책임지고 있다는 말인데.’
그때였다. 일에만 파묻혀 있던 편집장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얼핏 눈길을 보냈다.
“아, 두 분 인사 나누세요. 이쪽은 편집부 디자인팀 보현옥 팀장. 그리고 이쪽은 우리에게 출판을 의뢰하신 저자님.”
보현옥 팀장.
편집장의 말에 보현옥에게서 조금 전 도도했던 태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대신 그녀는 목숨 건 노처녀가 소개팅이라도 나온 것처럼 온순하게 변해 있었다.
“보현옥 팀장. 이번 건은 자비 출판으로 갈지, 보장 인세로 갈지, 아직 결정된 게 없으니까 잘 모셔야 해요. 알겠죠?”
“네, 알겠습니다. 편집장님.”
여직원은 편집장에게는 물론, 내게도 다소곳하게 허리를 숙였다.
“그러지 말고 정식으로 인사하세요.”
편집장의 조금은 단호해진 말에 보현옥은 명함을 건네며 다시 한번 예를 갖췄다.
“처음 뵙겠습니다. 디자인팀장 보현옥입니다.”
두 사람이 예의상 악수를 했을 때였다.
‘아니, 이럴 수가!’
용하는 보현옥과 두 눈이 마주치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보현옥 팀장은 다름 아닌, 아미파 장문인 보현보살이었다. 바로 그 순간 미처 놀랄 틈도 주지 않고 편집장이 다음 말을 이었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출판하게 되면, 삽화가 많이 들어갈 겁니다. 그러니까 디자인팀에서 각별히 신경을 써야겠지요?”
“네, 편집장님.”
보현옥은 또 한 차례 허리를 숙였다. 사실상 출판은 결정된 거나 다름없었다. 이제 남은 건 인세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였다.
그래서였을까, 갑자기 머릿속이 보현옥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찼다.
‘보현옥… 대체 아미파 장문인 보현보살이 몇 바퀴를 돌고 돌아 여기까지 와 있는 걸까?’
불현듯 조바심이 샘물처럼 차올랐다. 보현보살의 환생했음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조금이라도 빨리 인공에게 알려야 했다.
그날 체육관으로 돌아와 오늘 본 보현옥에 대한 이야기를 인공에게 숨김없이 펼쳐놓았다.
“형님, 형님은 오랜 세월 부처님을 섬겨오셨잖습니까?”
“그런데?”
“불교의 기초가 되는 교리가 윤회 아닙니까?”
“그러니까, 뭐? 자꾸 말 돌리지 말고 용건을 말해. 용건을!”
“실은 제가 무림에서 돌아온 이후로 말입니다. 21세기에서 알던 사람들이 자꾸 낯이 익어 곰곰이 생각해 보니, 무림에서 보았던 사람들과 자꾸 얼굴이 겹쳐집니다.”
“얼굴이 겹쳐진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자세히 좀 말해 보거라.”
“그게 말입니다. 제 약혼녀 미숙이는 연회장 하녀와 얼굴이 겹쳐졌습니다.”
“연회장 하녀?”
“네. 용두방주의 궁에서 방주와 단둘이 힐링을 위한 작은 연회를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음, 나 모르게 혼자 즐긴 적이 있었다!”
“형님! 지금 그런 거 따질 때가 아닙니다.”
용하는 저도 모르게 짜증이 치밀어 목을 쥐어짰다.
“뭐라! 그런 거 따질 때가 아니라고? 인석아! 말이 다 같은 말인 줄 아느냐? 장설 형님과 나를 방주의 딸을 지키는 개로 던져놓고 네 녀석은 연회나 즐기고 있었다. 이 말 아니냐?”
“형님, 저라고 뭐 좋아서 했겠습니까? 그때 우리 처지를 생각해 보세요. 그게 최선의 처세술이었잖습니까.”
“음, 말수가 제법 늘었구나. 좋다! 인정하마.”
“그리고 형님. 일전에 제가 주금산에 갔을 때 말입니다. 형님과 함께 구도 중이던 보살님 말입니다. 그분의 얼굴은 남채화와 겹쳐졌습니다.”
“남채화?”
“왜 있잖아요. 맨 처음에 우리를 개방으로 안내했던 남채화 말입니다.”
인공은 한동안 기억을 거스르는 듯했다. 그리고 곧 기억이 났던지, 무릎을 탁! 치며 말했다.
“아! 그 경계석 앞에서 협객 놈에게 비명횡사한?”
“네, 형님.”
“난 또 뭐라고. 고작 그걸 가지고, 그렇게 잔뜩 분위기 잡은 거야?”
너무나도 태연한 인공. 아니 오히려 대수롭지 않은 듯 그냥 넘어가려 들었다.
“형님! 형님은 제 생각과 왜 이리 다른 겁니까? 저는 지금 심각합니다.”
“아, 이 사람아! 심각할 게 뭐 있어? 사람은 죽으면 자연으로 잠시 돌아갔다가 팔자에 따라 다시 환생하게 돼 있는 걸 가지고.”
“네?”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직도 모르겠느냐? 껍데기가 같으면 무엇하겠느냐? 속이 다른걸. 너와 내가 수 세기를 거슬러 과거로 갔다 왔으니, 평소 안 보이던 별별 게 다 보일 것이다. 그런데 그걸 다 일일이 신경 쓰면서 어찌 살겠느냐?”
일순 추락하는 기분이었다. 스카이다이빙 했는데, 낙하산이 안 펴져서 허둥대는 느낌?
“사소한 일로 시간 낭비하지 말자꾸나. 왜, 살다 보면 간혹 닮은 사람들 있잖아. 수 세기를 거슬러 과거로 갔다 왔는데, 그럴 수 있는 거지 뭐.”
인공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기색이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오늘 출판사에서 또 같은 현상을 느꼈습니다.”
그때까지도 인공은 그저 형식적인 태도였다.
“그래? 이번에 누가 누구와 겹쳐지더냐?”
“그게 말입니다, 형님…….”
막상 말을 하려니 망설여졌다.
인공이 별 관심도 보이지 않는 데다, 이런 말을 아무렇게나 막 해도 되는 건가 싶기도 해서였다.
용하는 잠시 말을 아끼며 생각했다.
‘이렇게 막 천기를 누설해도 괜찮은 것인가? 이제야 겨우 세상에 나온 내가 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