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62
62화
“어찌하여 망설이는 것이냐?”
“그게 말입니다, 형님. 이번엔 좀 센 인물이어서…….”
“센 인물? 왜, 용두방주의 환생이라도 본 것이냐?”
“음, 용…두방주보다 음, 더… 강할 것 같은데요.”
확실한 근거가 있어 한 말은 아니었다. 그런데 인공은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곧,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러고는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물었다.
“무어라! 용두방주보다 세다고?”
인공의 갑작스러운 태도에 용하는 마른침을 삼키며 정신 나간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인가 잘못되고 있다는 불길한 생각에 입이 떨어지지 않아서였다.
그 순간 인공은 생각했다.
‘용두방주보다 세다면 아홉 개 정파의 장문인 중 누군가를 보았단 얘긴데, 용하 녀석이 본 건 아미파 장문인뿐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혹시 보현을 본 것이냐?”
정확히 찍어내는 인공의 실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용하가 경악한 눈으로 인공을 바라보았을 때였다. 그의 얼굴에 불현듯 강한 의구심이 드리워졌다. 그리고 그 속에 얼핏 두려움도 엿보였다. 게다가 눈가엔 옅은 경련까지 일으켰다.
인공에게서 좀처럼 볼 수 없는 표정이다. 조만간 심상찮은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이다. 용하는 두려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형님, 갑자기 왜 그러세요?”
“보현이 너를 알아보더냐?”
“아뇨. 다른 사람들, 그러니까 남채화나 연회장 하녀처럼 저를 못 알아보는 눈치였습니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인공은 길게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형님, 왜 그러시는데요?”
“불심이 깊은 자들 중에 간혹 전생을 기억하는 자가 있다. 아홉 개 정파 가운데 소림사와 아미파 장문인 정도면, 혹시 전생을 기억하지 않을까 해서, 잠시 걱정이 되었구나.”
두 사람은 비로소 안도할 수 있었다.
“형님. 일전에 제가 말씀드렸던가요?”
“무엇을 말이냐?”
“연회장 하녀가 남긴 검술 수련 일지(日誌) 말입니다.”
“그거라면 지나가는 말로 언급을 한 적이 있지 않으냐. 그런데 그게 뭐 잘못되기라도 했단 말이냐?”
“하녀가 남긴 검술 수련 일지를 토대로 도감을 만들려고 합니다.”
“도감?”
“네. 지금까지 배워 온 일본의 검도가 아닌, 본국검 말입니다.”
수긍이 갔던지 인공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형님. 저는 오랜 세월 검도를 수련했습니다. 물론 일본의 검도와는 전혀 다르지만, 세인들에게는 제가 하는 검도가 사파의 무예라는 인식이 있습니다.”
이번에도 인공은 묵묵히 고개만 끄덕였다.
“그런데 연회장 하녀의 수련 일지에는 검도를 재해석한 검술이 담겨 있었습니다. 본국검을 연상시키는 우리 전통 검술 말입니다.”
그제야 인공이 입을 뗐다.
“음, 그 하녀가 무림에서 본 것과 자네의 검도를 잘 재구성한 모양이구나.”
“그래서요! 그래서 연회장 하녀가 남긴 수련 일지와 정조 때 편찬한 무예도보통지의 본국검 수련 편을 참조해 새로운 본국검 수련 도감을 만들어 보려고요.”
“아, 그래서 스무스카 회원 수가 얼마니, 그들이 운영하는 체육관 수련생이 얼마니, 그런 게 궁금했구먼. 책 팔아먹으려고.”
“책 팔아먹으려고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출판사에 운을 띄워 봤는데 반응이 신통치 않아서 예상 판매 부수를 제시해서 혹하게 만들어 볼까 하는 계산이었습니다.”
“그래서! 갔던 일은 잘된 게야?”
“현재로선 그럭저럭 잘 진행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뭐가 문제인 게야?”
“자비출판을 할 것인지, 보장인세로 갈 것인지, 뭐 그런 문제에 부딪혔습니다.”
“그걸 뭘 고민해. 예상 판매 부수가 최소한 2, 3천만 부잖아. 그럼 그냥 한 방에 땅겨 달라고 해도 말 들을 텐데.”
“한 방에요?”
“그래, 한 방에. 지들이 계산기 두드려 봐서 그게 났겠다 싶으면 쏘겠지 뭐.”
“그럼 얼마나 부르면 될까요?”
“뭘 그걸 고민해! 대략 스무스카만 계산해도 2, 3천만 부잖아. 그냥 작게 2,000만 부로 보고, 권당 인세 2,000원씩 잡으면, 400억!”
헉!
숨이 막혔다.
“형님! 출판사에 400억 달라고 할 배짱 있으세요?”
“배짱이 뭐가 필요해. 리스크 감안해서 그중에 딱 반만 요구하면 되는 거지.”
“2… 200억이요?”
“왜, 뭐가 이상해? 최소한인데, 그것도 배팅 못 하는 출판사라면 협상이 안 되는 거지.”
“한 방에 받아 낼 수 있을까요? 만약 책 나오면 팔아서 주겠다고 하면요.”
“지저분하게 나오면, 원고 확 빼앗아 오면 그만이지, 뭐가 걱정이야. 널린 게 출판사고, 다들 뭐 꺼리 좀 없나 쌍심지를 켜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게, 게네들 하는 일인데.”
“형님! 그러면 말이죠. 조만간 출판사에서 연락이 올 겁니다. 그때 함께 가 주세요. 보현도 확인할 겸, 겸사겸사 말이에요.”
보현도 확인할 겸이라는 말에 인공은 솔깃해하는 기색이었다.
“그럼 그럴까……. 보현이 나를 알아보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말이야.”
“그렇게 해주세요. 그럼 제가 편집장에게 형님이 실제 수련 일지를 쓴 저자라고 소개하고, 형님이 협상 테이블에 앉으면 되잖아요.”
“나를 협상 테이블에 앉히려는 이유가 무엇이냐?”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그렇게 큰돈을 부를 만한 배짱이 없습니다.”
“그래? 음,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런데 그 큰돈을 받아서 어디에 쓰려고 그러는 것이냐?”
“그걸 꼭 들으셔야겠습니까?”
“우리가 무슨 장사꾼도 아니고, 타당하지 않은 일에 내가 나설 이유가 있겠느냐?”
듣고 보니 인공의 말이 천 번 만 번 맞는 말이었다.
“무림에서 약혼녀에 대해 말씀드린 적 있지 않습니까?”
“왜, 그 돈으로 결혼이라도 하려고?”
인공은 대뜸 그것부터 물었다.
“아뇨, 실은 미숙이가 지금 많이 아픕니다.”
“아파? 어디가? 죽을병이야?”
“죽을병은 아니고요. 제가 갑자기 사라진 후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공황장애와 분노조절장애 그리고 대인기피증까지……. 그래서 지금 요양병원에 있습니다.”
“그래서 약혼녀 병원비를 만들어야 해서 그러는 게야?”
“아뇨! 병원비로 그 많은 돈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병원비는 형님이 몰아주는 수련생만으로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뭐가 문제더냐?”
“제 욕심이라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미숙이에게 유치원을 만들어주고 싶습니다. 부설로 어린이집도 함께요.”
인공은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마침내 입을 열었다.
“한 가지 우려되는 게 있어서 묻는 것이니, 오해는 말거라.”
“네, 말씀하십시오. 형님.”
“유치원 차려주고, 선심 쓴 대가로 마누라한테 빌붙을 생각은 아니고?”
“아, 미리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미처 말씀드리지 않은 게 있습니다.”
“이거 봐, 이렇다니까! 뭔가 구리다 했어.”
“구릴 거 1도 없고요. 실은 아직 미숙이를 만나 본 건 아닙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미숙이를 먼발치에서만 봤습니다.”
“엥! 그건 왜?”
“의사선생님 말이, 미숙이가 공황장애가 온 게, 저 때문이랍니다. 그래서 저를 만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르니, 당분간 안 보는 게 좋을 것 같답니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내 생각엔 자네가 곁에 있어 주면, 치료에 오히려 도움이 될 것 같은데 말이야.”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의사선생님 말은 괜히 잘못 시도했다가 영원히 못 보게 될지도 모른다고 하더군요.”
“영원히 못 보다니. 죽는단 말이냐?”
“아뇨, 죽는다기보다는 미숙이 머릿속에 나란 존재가 영원히 적으로 인식될 수도 있다는 거죠.”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던지, 인공은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좋다. 나를 협상 테이블에 앉히거라. 보기 좋게 담판을 지어주마.”
“감사합니다, 형님!”
용하는 허리를 깊이 숙여 감사의 뜻을 표했다.
“그리고 형님. 출판이 결정되면 무엇보다도 보현과 아니, 보현옥 팀장과 자주 접촉하게 될 겁니다.”
“보현옥 팀장! 여자냐?”
“아, 보현옥 팀장을 보면 알겠지만, 그녀가 보현보살입니다.”
“아이참, 내 정신도……. 보현보살이 겹쳐졌다고 했지. 보현옥! 무슨 한정식집 이름 같구나.”
“도감에는 삽화가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디자인팀과 긴밀히 의견이 오가야 한다고 합니다. 보현옥은 디자인팀이 팀장이고요.”
“음, 무슨 말인지 알겠구나. 소통이 잘돼야 책도 잘 나오겠지.”
“그렇죠! 그러니까 그쪽하고 일이 잘 성사되면, 보현옥 팀장과도 사이좋게 지내야 합니다. 당장은 눈에 거슬리더라도 참아야 한다는 얘기죠. 출판이 끝날 때까지는.”
“글쎄다. 거기까지는 장담을 못 하겠구나. 예전에 보현이, 자기 호위무사들 시켜서 나를 죽이려 했던 게 너무 생생해서 말이다.”
“저라고 뭐 보기 좋겠어요. 그년이 보낸 7인의 협객이 장설 형님과 우리를 객잔의 노예로 만들지를 않았나, 개방으로 가는 길을 얼마나 방해했습니까? 하지만 지금은 우리에게 목적이 있으니, 그 목적이 달성될 때까지는 모른 척해야죠.”
본능적으로 구레나룻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 * *
며칠이 지났다.
지루하게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띠리리리리링~
이른 아침부터 전화벨이 울렸다. 용하는 잠결에 알람인 줄 알고 전화기를 꺼 버렸다. 그리고 다시 잠을 청하려 할 때였다.
“김 관장!”
돼지 멱따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인공이었다.
“어서 문 열어! 오늘부터 한 타임 늘리기로 해놓고 체육관 문도 안 열고 뭐 하는 짓이야?”
그제야 벌떡 상체를 일으키며 상기된 표정으로 휴대전화를 보았다.
배터리가 방전된 듯 까맣게 꺼져있는 휴대전화기를 보는 순간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부리나케 휴대전화기 전원을 눌렀다. 잠시 후 전화기가 완전히 부팅됐을 때였다. 두 통의 부재중 전화 메시지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한 통은 편집장에게서, 다른 한 통은 보현옥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
“아뿔싸!”
무엇부터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잠시 우왕좌왕했지만 곧, 체육관 문부터 열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네, 형님. 지금 나가요.”
문 쪽으로 종종걸음쳐 철컹! 끼기기긱― 문을 열었다. 인공은 급습하듯 들어서면서 용하의 정수리에 일격을 가했다.
악!
“저 버르장머리!”
저도 모르게 막말이 나가고 말았다. 이제 주워 담을 방법이 없다. 에라, 모르겠다, 이럴 땐 그냥 한 걸음 더 나가는 게 상책이다. 옛다! 사약 한 사발 더 받아라, 하는 식으로 용하는 말했다.
“거,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더니 말이야. 그 못돼먹은 손버릇은 언제쯤 고칠 작정이쇼? 장설 형님이라도 모셔 와야 정신 차리실 거유?”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미친 놈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인공은 잠시 멍해 보였다. 그 순간 용하는 고층 건물에서 발을 헛디뎌 추락하는 순간에나 느껴 볼 만한 막막한 기분을 느꼈다.
‘이를 어쩐다! 뒷감당을 어찌하려고.’
인공에게 가격당한 정수리가 예전 같으면 온몸이 돌처럼 굳어 버릴 만큼 치명적이었겠지만, 오늘은 왠지 치명적이지는 않았다. 눈물이 찔끔 날 만큼 고통스러웠던 건 사실이지만.
그리고 곧 현실감을 되찾았다.
“죄송합니다, 형님.”
“너, 제정신이냐?”
어이없다는 말투였다. 이럴 땐 그냥 입 뚝 다물고 있는 게 상책이라는 것쯤, 선수 생활할 때 단체생활 하면서 일찍이 배워 잘 알고 있다. 인공의 눈에는 그런 용하가 충분히 반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됐다. 수련생 받을 준비나 서두르거라.”
역시 예상대로 위험했던 순간은 그냥 넘어갔다. 이제 공적인 말로 완전히 무마시킬 차례다.
“그런데 형님. 저와 상의도 없이 수련 시간을 잡으시는 건…….”
“왜, 그래서 떫으냐?”
“체육관 수련 시간은 굉장히 중요한 사안입니다. 그런 중요한 문제를 관장인 저와 상의도 없이 결정했다는 건…….”
“다 생각이 있어서 그리 한 것이니, 토 달지 말고 따르도록 하라.”
단호했다.
“아무리 그래도 한마디 언급 정도는 해 주셨어야죠.”
“제발 부탁이니 징징거리지 좀 말고 일단 듣거라. 될 수 있으면 아침 시간하고 밤 시간을 잘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요?”
“그래야 남들 일하는 시간에 우리도 일을 볼 수 있지 않겠느냐!”
인공의 말을 듣고 보니 입이 열 개여도 할 말이 없었다.
간혹 인공이 무모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곧 그의 말이 옳았다는 생각을 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형님. 형님 뜻에 따르겠습니다.”
“알았으면 냉큼 수련생 받을 준비를 서두르지 않고 뭘 꾸물거리는 것이냐!”
“네, 알겠습니다. 우선 전화부터 한 통화 하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온 전화를 못 받아서요.”
“그런 거라면 내버려 두거라! 급하면 지들이 또 전화하겠지.”
아무렇게나 내뱉는 것 같았지만, 실은 인공에게 나름대로 계산이 있어서 한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