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63
63화
“형님…….”
출판사에서 온 전화를 받지 못한 게 끝내 마음에 걸렸다.
‘설마 전화 안 받았다고 이대로 끝내지는 않겠지?’
어떤 말로든 스스로 위로해 보려 했지만, 근심은 깊어만 갔다.
‘만약 이대로 출판 제안이 거절된다면… 거절된다면 그땐 어떡하지?’
내심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지만, 매번 벼랑 끝에 섰을 때 지푸라기가 돼 준 인공을 믿어 보기로 했다.
그래 이번에도 믿어 보자, 인공의 말대로 출판사는 많으니까.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얼굴에 드리워진 그늘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안색이 왜 그 모양인 게야?”
나무라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인공 또한 확신이 있어 했던 말은 아니란 말인가. 아님…….
종잡을 수 없는 인공, 그의 성품은 다른 사람에게 쉬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다. 서로 알고 지낸 지 꽤 됐지만, 아직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인공의 물음에 용하는 지체하지 않고 곧 반응을 보였다. 그것은 다름 아닌.
“네?”
되묻는 듯한 성의 없는 한 글자였다. 하지만 이 반응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었다.
첫 번째는 짐짓 놀람을 내비치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왜, 내 안색이 어때서?’라고 되묻는 반응이었다.
이런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최대한 숨겼음에도 제 속내를 인공이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제 안색이 뭘요?”
다소 불량스러운 태도에, 인공의 말투 또한 야멸찼지만, 그 내용은 위로의 말투였다.
“왜, 걱정되느냐?”
“걱정되다니, 무슨 걱정이요?”
“출판사에서 매정하게 거절할까 봐 말이다.”
인공의 정확한 통찰에 용하는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걱정하지 말거라. 출판사는 말이다. 돈 될 만한 원고를 절대 포기하지 않으니까.”
내심 위안이 되었다. 하지만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걱정될 게 뭐가 있습니까. 형님 말대로 발 차이는 게 출판사잖아요.”
비록 말은 이렇게 했지만,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이왕이면 국내 1위인 출판사에서 책을 냈으면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래야 뉴스에도 좀 오르내리고 매스컴도 좀 탈 수 있을 테니까.
인공은 초점 없는 눈으로 용하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곧 서서히 원래대로 돌아온 그 눈빛이 너무나 강렬해서, 용하는 차마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인공은 처연하게 입을 뗐다.
“출판사에서 아침 일찍 무슨 일로 전화했을 것 같으냐?”
“글쎄요.”
“전혀 예상이 안 되느냐?”
“네, 솔직히…….”
“음, 전혀 예상할 수 없다면, 차라리 전화를 못 받은 게 다행이구나.”
“네? 그건 또 무슨 말씀입니까?”
“왜 전화를 했는지 전혀 감도 못 잡으면서, 그쪽 반응을 어찌 대응하려 했던 것이냐? 만약 그쪽에서 전혀 예상치도 못한 제안을 해 왔다고 가정하자. 그리고 그 제안이 나와 전혀 맞지 않는다면 어찌했겠느냐?”
“뭐, 그럼 일단 한 걸음 물러서서 다시 생각해 봐야죠.”
“다시 생각하다니, 무엇을 말이냐?”
“바짓가랑이를 잡고서라도 출판해 달라고 매달려야죠.”
“그게 출판이냐? 구걸이지. 너 그동안 세상 그렇게 살았냐?”
인공의 마지막 질문에는 할 말이 없었다. 그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이다. 인공은 아마도, 그렇게 약한 모습으로 이 험한 세상을 대했으니, 네 녀석 인생이 그것밖에 안 됐던 거야, 뭐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라고 용하는 짐작했다.
인공의 처지에서 그의 생각을 한번 정리해 보았다. 그리 오래 생각하지 않았을 때 인공의 생각을 헤아릴 수 있었다. 이렇게 조금만 차분하게 생각했더라면 어리석은 말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을 텐데.
“아아, 그러니까 형님 말씀은, 출판사에서 왜 전화했는지도 모르면서 괜히 전화를 받아서 허점만 보이느니, 차라리 안 받는 게 나았단 얘기죠?”
“그렇지! 그리고 네 녀석이 바로 전화하면, 상대는 뭐라고 생각할까?”
“고맙게 생각하겠죠! 아님, 전화 안 받는다고 짜증 내고 있다가 좀 사라지거나.”
“그러니까 네 녀석이 하수인 게야. 그런 자세로는 어느 출판사와도 아니, 어떤 사람하고도 협상할 수 없을 거야.”
용하는 저도 모르게 길게 한숨을 토했다. 대다수 사람은 자기처럼 생각하는 게 상식 아닌가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인공은 달랐다.
“그 말은 상식적으로 접근해서는 협상을 할 수 없다! 그런 말씀인가요? 엄밀하게 따지면 협상도 상식 아닌가요?”
“당연히 상식이다. 상식을 벗어나선 협상을 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협상 테이블에 앉은 사람은 그 상식을 차지하기 위해 팽팽하게 신경전을 벌일 수밖에 없는 게지. 너희들이 말하는 그 밀당 말이야. 그것도 알고 보면 사랑이라는 상식을 차지하기 위한 협상 아냐?”
이번에도 인공의 승리였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연인들도 알고 보면, 사랑이라는 상식을 쟁취하기 위해 팽팽한 신경전으로 협상을 하는 게 아닌가.
“지금쯤 네 녀석 머릿속에도 출판사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답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오늘 중에 둘 중 하나는 확실해지지 않겠느냐?”
“둘 중 하나가 확실해지다니요, 그게 다 무슨 말씀입니까?”
“전화가 다시 오면 출판 의사가 확실해지는 거고, 안 오면 장난친 거지 뭐.”
듣고 보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전화 한 통화에 인공은 협상 테이블에서 어떻게 처신할 것인지까지 미리 준비했다. 역시 고수는 세상을 놀이터쯤으로 생각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고 용하는 생각했다.
‘전화 한 통으로 이렇게 명확하게 상대를 읽어 내다니.’
용하는 인공을 보면 간혹, 리스펙트한 감성에 멍해지고는 했는데, 지금이 바로 그런 순간이다.
“넋 놓고 있지 말고 수련생 받을 준비해!”
“네, 형님. 아니, 사범님.”
서둘러 단련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오늘은 어떤 이벤트로 수련생을 감동하게 해줄까를 고민했다. 체육관을 빠르게 둘러보는데, 승급 심사 때 시범 보이기 위해 준비했던 볏단 몇 개가 보였다.
볏단을 보는 순간 웬일인지 울음이 차올랐다. 검도 체육관 개관할 때가 불현듯 떠올라서다. 용하와 그의 아버지 그리고 미숙이, 이렇게 셋이서 초록색 병에 든 막걸리 한 통 사다가 돼지머리도 없이 고사 지냈던 그때가.
“형님! 저 볏단 말입니다. 너무 오래 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그걸 내가 어찌 알겠느냐? 오래 있었는지, 내가 오기 직전부터 있었는지, 그걸 내가 알아야 할 이유는 없지 않으냐?”
“저게 말입니다, 우리 검도 체육관 초대 소품입니다. 검도 수련생들 엄청나게 모여들 줄 알고, 승급 심사 때 학부모 앞에서 시범 보이려고 사다 놓은 건데, 아직도 제구실을 못 하고 저렇게 구석에 처박혀 있네요.”
“음,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하는 것이냐?”
“오늘 새로 오는 수련생들에게 기의 실체를 확실히 보여주려고 합니다.”
“기의 실체를 보여주는데 검술 단련용 볏단이 필요한 게냐?”
“정확히 말해 기의 실체가 아니고 플라스마의 힘이죠.”
“플라스마?”
“네, 형님. 뿔뿔이 흩어져 있을 땐 정전기에 불과하지만, 그것들이 모이면 불을 일으킬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요.”
“아, 그래? 그거 좋은 생각이다. 그때 에베레스트 상공에서 폭약에 불붙이던 장면은 정말 멋있었어. 설마 했는데 말이야, 그게 성공하다니.”
“그래서 말인데요. 형님이 가서 소화기 몇 개만 사 오세요. 지금 체육관에 있는 건 검열을 위해 최소한의 비용으로 준비했고, 오래돼서 작동이나 제대로 될지 몰라서요.”
“알았다. 내 얼른 다녀오마.”
인공이 나가자 저도 모르게 휴대전화에 손이 갔다. 용하는 스마트폰을 열어 부재중 전화를 다시 확인했다. 그리고 전화벨 소리를 최대한 크게 키우고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제발, 제발 오늘 중에 다시 전화해다오.”
바로 그때였다. 조금 나갔던 인공이 다시 들어왔다.
“형님! 여태 안 갔어요?”
“그러는 넌 시범 보일 준비 안 하고 뭐 하고 있었느냐?”
인공의 양손에 커다란 소화기가 하나씩 들려 있었다.
“형님! 손에 들린 게 소화기가 맞습니까?”
“소화기가 아니면 뭐라고 생각하느냐?”
인공은 얼핏 우쭐거렸다. 그리고 그의 말에서 조롱이 엿보였다.
“형님! 자백하세요. 그거 어디서 난 겁니까?”
“뭐, 자백?!”
인공은 노기에 찬 표정으로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아니란 말입니까? 그럼 소화기 어디서 쌔빈 겁니까?”
“아이참, 너는 말을 해도 꼭 그렇게 싸가지없이 하냐? 쌔비다니, 내가 그런 사람이냐?”
“그럼요! 그런 사람이지, 아닌 줄 알았어요? 손 빠르고 주먹질 잘하고. 아주 딱이네. 어쩐지 너무 일찍 왔다 했더니.”
소방용품은 아무 데서나 취급하지 않는다. 청계천엘 가야 살 수 있는 걸 무슨 수로 부재중 전화 한 통 확인하는 사이에 구해 왔겠는가. 서둘러 원래대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
인공은 아직 속세를 잘 모르는 모양이었다. 물건을 잃어버린 사람이 분명 신고를 할 테고, 그렇게 되면, 특수절도로 형사처벌 받을 것은 자명한 일인데 말이다.
“여러 소리 말고, 어서 있던 곳에 가져다 놓으세요. 소화기 주인이 알기 전에요.”
“아니, 왜 그래야 하냐고. 이거 불나면 급히 쓰라고 설치해 놓은 거 아니야?”
“그 말은 맞지만, 아직 불난 게 아니잖아요.”
“알았어. 갖다 놓으면 되잖아.”
인공은 주억거리며 다시 나갔다. 그리고 한숨 돌리기도 전에 다시 들어왔다.
“아, 왜 다시 들어와요? 얼른 소화기 제자리에 갖다 놓으라니까요?”
“아, 갖다 놨어. 지랄 좀 그만 떨어.”
“네! 갖다 놨다고요?”
“그래! 요 앞 계단에 있던 건데, 새것이라서 잠깐 사용하려고 그랬지.”
“이 건물에 있던 거예요?”
“아니면! 내가 무슨 수로 대형 소화기 두 개를 그렇게 빨리 구해 왔겠니?”
“아이참, 형님도… 진작 말씀하시지. 이 건물에 있던 거면, 그거 다 우리가 쓰려고 준비해 놓은 거잖아요. 어쩐지 하는 것도 없이 왜 그렇게 관리비를 많이 걷나 했네.”
“다시 가져와?”
“네.”
김새는 소리로 대답했다. 인공은 다시 나가려다가 우뚝 멈추더니, 용하를 훅 흘겼다.
“왜요, 왜?”
“생각해 보니까 네 녀석이 가도 될 것 같다.”
“왜요? 형님이 갖다 놨으니까 형님이 가져와야죠.”
“갖다 놓으라고 한 놈이 누구냐? 그놈이 가져와야지.”
“형님도 참, 이 체육관 관장이 누굽니까? 여러 말씀 마시고 얼른 가져오세요.”
“알았어, 인마! 너 나중에 내가 좋은 자리에 가면 두고 봐라.”
“형님이 좋은 자리에 갈 일은 없을 것 같은데요.”
“아니, 너 이 녀석…….”
“사범님, 어서 소화기 다시 가져오세요. 소화기 얼른 갖다 놓고 불연재로 된 장판이나 좀 사 오세요.”
형님이라 했다가 갑자기 사범님이라 부르니, 인공도 어쩔 수 없었다. 호칭의 변화는 서열을 강조하기 위함일 테니.
이 정도 했으면 속이 부글부글 끓겠지? 그런데 왜 인공 형님을 상대로 이런 짓을 하는 거지? 용하는 특별한 목적도 없이 그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인공은 내키지 않은 걸음으로 뻑뻑한 알루미늄 샷시 문을 밀고 나갔다.
체육관에 홀로 남겨졌을 때였다. 갑자기 후회가 물 밀듯 다가왔다.
‘하,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한 거지? 굳이 불 쇼까지 하지 않아도 수련생들은 수강료를 꽂을 텐데 말이야. 막상 하려니까 왠지 내키지 않아.’
갑자기 약해진 이유는, 무림에 비하면 혼탁하기 그지없는 21세기, 이곳에서 과연 불을 일으킬 만큼의 불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의구심이 생겨서였다.
‘수련생들이 몰려오기 전까지 명상이라도 해서 마음을 진정시키자.’
명상을 하기로 한 이유는, 그동안 여러 가지 문제들로 흐트러졌던 집중력을 고취하기 위해서였다. 집중력과 평정심은 기를 운용하는 토대이니.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기혈을 타고 흐르던 에너지가 무거운 지구의 대지를 딛고 우주와 어우러지기 시작했다. 물론 그것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김용하 자신뿐이었다.
서서히 자신감이 되살아났다.
어느새 체육관에 하나둘 수련생들이 모여들었다.
하지만 용하는 그런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 처음 경험해 보는 우주의 기운에 심취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인공이 별안간 미간을 좁혔다.
‘설마 주화입마(走火入魔)에 빠진 건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