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64
64화
“뭐야, 기 수련이라고 하지 않았나?”
예비 수련생 가운데 누군가의 입에서 적잖이 실망한 기색과 함께 비난하는 듯한 말이 새 나왔다.
그리고 곧 누군가 또 비난이 섞인 말로 맞장구를 쳤고, 비난의 말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여기저기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기 수련하는 데 웬 볏단?”
“그러게, 말이야. 간판이 검도 체육관이던데, 괜히 검도 수련생 끌어모으려고 기 수련이니, 기의 실체니, 하는 말로 수작 부리는 거 아냐?”
2기 수련생 모집은 이렇게 실패로 끝날 것인가.
그때였다.
“다들 조용히 해. 카페지기님이 소개한 거잖아. 그러니까 믿어야지. 게다가 1기 수련생들 반응을 좀 봐. 다들 혀를 내두르잖아. 아직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속단하지 말자고.”
“그래, 괜히 밉보이지 말고 입들 다물어.”
개중에는 인공에 대한 믿음으로, 비난하는 다른 예비 수련생을 나무라는 사람도 있었다.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며 들려오는 소리들이 적잖이 신경은 쓰였지만, 인공은 못 들은 체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불안에 떨며 제발 회원들이 폭발하기 전에 용하가 무엇인가 긍정적인 액션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지켜볼 뿐이었다.
‘제발 용하야… 아무리 회원과 카페지기가 돈독하다 해도, 저들도 사람이니 인내에 한계가 있지 않겠느냐……. 제발…….’
인공은 두 손을 모아 합장한 채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순간 인공의 이마에 땀이 맺혔고 합장한 손에는 힘이 들어갔다. 무엇인가 간절히 바라는 구도의 자세.
바로 그 순간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던 용하가 마침내 작은 움직임을 보였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예비 수련생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드디어 뭔가 하려나 보다!”
“당연한 거 아냐? 여태 기다렸는데… 이제 뭔가 보여 줘야지.”
“맞아. 너무 오래 기다리게 했어.”
“그만큼 대단하다는 거 아냐. 정말 우리가 인공 스님께 들은 대로 기의 실체만 볼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오래도 기다릴 수 있는 거 아냐?”
예비 수련생들의 웅성거리는 소리에 인공의 두 눈이 번쩍 열렸다. 바로 그 순간 용하가 기를 운용하기 시작했다.
후―
‘저 물건은 꼭 사람 애간장을 태워야 직성이 풀리는 녀석이라니까. 진작 좀 할 것이지. 사람 속을 새카맣게 태우고서 이제야…….’
원망의 소리도 잠시 곧,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미안하네, 용하. 비록 잠시였지만, 자네를 의심했었네.’
그 순간 용하의 눈길이 인공에게로 흘렀고, 두 사람은 눈이 딱 마주쳤다.
그들의 눈빛에 강한 신뢰감이 엿보였다. 두 사람 사이엔 남들은 이해하지 못할 보이지 않는 신뢰감이 자리 잡고 있었다.
‘형님…….’
‘김 관장…….’
용하의 눈길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곧 두 손을 벌려 손바닥이 하늘을 향하게 들어 올렸다. 서서히 아주 서서히.
그 광경을 인공은 물론 2기 수련생들도 마른침을 삼키며 목도했다.
마침내 기를 운용하기 위한 초식이 시작되었다. 기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태극권의 첫 번째 초식이었다.
첫 수련에 참여한 2기 수련생들 표정에 얼핏 실망감이 스쳤다.
“후우―”
누군가의 입에서 한숨이 흘렀다. 어이없다는 속내를 표출하는 한숨이었다. 그것은 곧 전염이라도 된 듯 여기저기서 새 나왔다.
한창 원기 왕성하게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사범이나 관장들. 그들은 어떤 무공이 됐든 핫한 것을 좋아했고, 그것을 배우고자 인공을 따라왔다. 그런 그들 눈에 지금 용하가 시전하는 태극권은 그저 노인들이 무병장수나 하려고 매일 아침 공원에 모여서 하는 무공 아니, 체조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사실 인공의 눈에도 용하가 하는 행위는 한심해 보일 뿐이었다.
‘용하야… 제발… 제발 좀 뭔가 깜짝 놀랄 만한 것을 보여다오. 제발 제대로 한 번만……. 이 최강땡추인공이 그동안 피땀으로 쌓아 온 명성을 추락시켜선 안 돼. 나 이래 봬도 셀럽이라고.’
인공은 간절히 기도했다.
그 뜻이 하늘에 닿았던지, 이제 막 용하의 두 손바닥 사이에 작은 플라스마가 반시계 방향으로 둥글게 회전하며 점점 크기를 더해갔다.
말로만 듣던 광경을 눈앞에 두고 지켜보는 2기 수련생들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탄식을 토했다.
‘후― 다행이다.’
인공 또한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근데 저 녀석은 꼭 이렇게 사람 간담을 꽉꽉 쥐어짜야 속이 후련하단 말인가.’
은근히 약이 올랐다.
‘기다려라, 김용하. 때가 되면 두고두고 교훈이 될 만한 앙갚음을 반드시 해주마.’
도대체 인공이 무슨 마음으로 이런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어금니를 으득 갈아가며 한 말이 괜한 얘기는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고 그것이 복수의 칼을 갈겠다는 건 결코 아니었다.
용하의 손아귀에서 점점 커지던 기의 실체가 마침내 축구공만 해졌을 때였다. 그 밝기가 어찌나 강렬했던지 이제 눈으로는 볼 수 없을 만큼 강한 빛을 발산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미처 놀랄 틈도 주지 않았다. 용하는 손에서 빠르게 회전하는 뜨거운 광채에 몇 번의 예비 동작으로 마지막 기를 불어넣었다. 그러고는.
“얍!”
용하의 손아귀를 벗어난 불덩어리는 볏단을 향해 힘차게 날아갔다. 용하는 그 광경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마치 피구왕 통키가 불꽃 슛을 쏜 것 같은 희열을 안겨 주었다. 이윽고 불덩어리가 볏단으로 날아가 닿았고, 그 순간 이리저리 불똥이 튀며 순식간에 불이 볏단으로 옮겨붙어 타오르기 시작했다.
“와~우!”
“와~”
“세상에 이런 일이!”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졌다. 놀람을 금치 못해 떡 벌린 입을 다물 줄 모르는 2기 수련생들.
용하가 기를 운용해 만들어 낸 불덩어리는 풍년을 기원하던 쥐불놀이처럼 볏단을 활활 태웠다.
용하와 인공은 각자 소화기를 하나씩 들고 볏단이 완전히 연소할 때까지 지켜보았다.
2기 수련생을 위한 이벤트는 이렇게 끝을 맺었다.
이벤트를 관전한 수련생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입관 서류에 서명하고 수강료를 입금했다.
대체로 만족스러운 하루였고, 그 하루가 끝나갈 무렵 휴대전화 벨 소리가 울렸다.
“여보세요, 김용하 관장입니다.”
* * *
다음 날 용하는 아침반 수련을 마치고 인공과 함께 출판사로 향했다.
출판사로 가는 동안 가슴이 벅차 숨이 막힐 지경이었지만, 인공이 눈치채지 못하게 무던히 노력했다.
인공이 그런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중요한 일을 앞두고 집중력을 흩트려서 좋을 리 없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비록 자신이 협상 테이블에 앉는다 한들, 집중력을 흩트린다는 건 전투력 손실이기 때문이다.
“하늘이 유난히도 맑구나!”
“그러게, 말입니다.”
“아침반 수련생들 가르치는 걸 보니 자신감이 넘치더구나.”
“아, 제가요? 제가 그랬습니까?”
용하는 갑자기 온몸에 청량감이 돌았다. 언제 들어 봤는지 기억도 잘 안 나는 칭찬.
“다들 감동 먹고 입을 못 다물던데!”
“아, 그랬어요?”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기분이 좋아지니 머리도 맑아지는 듯했다.
“형님. 이런 컨디션이면 뭘 해도 해낼 것 같은데요.”
“그래? 그럼 오늘 협상 테이블에 자네가 앉아 볼래?”
인공의 말에 용하는 머리가 다 쭈뼛해져 고개를 내저었다. 어떤 말보다 강한 부정의 의미였다.
“왜? 이번 기회에 해 보는 것도 괜찮잖아. 내 생각엔 말이야. 그냥 앉아 있기만 해도 아무 탈 없이 체결될 수 있는 사안이거든.”
“형님! 저는 말입니다. 협상에서 밀리는 게 아니고, 몇백억을 제시할 배짱이 없는 겁니다. 선인세를 일시금으로 말입니다.”
“음, 그러니까 자네 말은 200억을 선지급으로 달라는 말을 할 배짱이 없다는 거잖아.”
“그렇지요.”
“그런데 나는 그걸 던질 만한 배짱이 있어 보인다! 이거지?”
“아, 당연하죠. 형님이라면 그 이상도 아무렇지 않게 부를 사람이니까요.”
“너 개방에서 질러 대던 배짱은 다 어디 간 게냐?”
“그건 형님. 강가에 사는 개가 호랑이를 어찌 알겠습니까? 아무것도 모르고 겁 없이 들이댔던 거죠.”
“그런데?”
“지금은 간이 떨려서 못 하겠습니다. 특히 여기는 21세기잖아요.”
“글쎄다… 난 그때나 지금이나 도대체 뭐가 달라졌는지 통 모르겠구나.”
“형님은 21세기로 오더니 물 만난 고래 같습니다. 엄청난 일들을 척척 해내고 있거든요.”
“그 말은, 무림에서는 별 볼 일 없었다! 뭐, 그런 얘기냐?”
“솔직히 좀 그랬잖아요. 뭐 하나 제대로 한 거 있어요?”
인공은 속에서 무엇인가 욱하고 치밀었지만, 달리 항변할 말이 떠오르진 않았다. 스스로 생각해 봐도 무림에서는 왠지 기를 못 폈던 게 사실이니까.
그 순간 용하의 눈에 비친 인공은 얼핏 자신감을 잃은 사람처럼 보였다. 분명 불호령을 내려야 할 사람이 아무 말도 못 하기 때문이다.
용하는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인공을 흘깃 바라보며 생각했다.
‘어, 갑자기 왜 저래? 이렇게 찌그러져 있으면 안 되는데.’
용하의 눈에 비친 인공의 표정은, 무림에서의 기억이 되살아나 얼핏 자신감이 실추된 사람처럼 보였다.
지금은 누구를 나무라고 핀잔줄 때가 아니었다. 독려하고 응원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용하는 얼른 태도를 바꿨다.
“흠, 흠!”
일단 분위기 전환을 위해 두어 차례 헛기침을 한 후 입을 뗐다.
“형님! 제가 하는 말 다 곧이듣지는 마십시오. 형님이 눈에 띄게 두각을 나타내시니까 제가 괜히 심통이 나서 드렸던 말씀입니다. 저는 항상 형님의 지략과 처세술이 부럽습니다. 그래서 늘 생각합니다. 저 형님의 처세술을 반만 닮을 수만 있다면,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고생하지는 않을 텐데…….”
말꼬리를 흐리는 것까지, 완벽한 연기력이었다. 그 말에 인공은 즉각 반응을 내놓았다.
“이보게, 용하! 자네가 나를 그렇게까지 우러러보는 줄은 몰랐네. 이 보잘것없는 땡추를 롤모델로 삼았다니, 오히려 내가 미안할 따름이야.”
“형님!”
절규하는 듯한 목소리에 울먹이는 숨소리까지. 오늘 제대로 메소드 연기력이 발휘되고 있었다.
이제 종지부를 찍을 일만 남겨두었다.
“형님, 오늘 일은 형님께서 잘 마무리 지으실 거죠?”
평소 같으면 버럭 고함을 질렀을 인공이지만 용하의 연기력을 이겨 낼 장사가 없었다.
“알았어. 아무 걱정하지 말고 자네 할 일이나 잘 처리해. 돈은 내가 책임지고 받아 낼 테니까.”
인공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역시 듬직했다.
“참 그리고 형님.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한 복병이 있을 수 있으니, 협상 테이블이 꾸려지면 그때 등장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복병? 무슨 복병.”
“보현옥 팀장 말입니다. 형님이 그러셨잖아요. 불심이 깊은 자 중에 간혹 전생을 기억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고. 전 그 말이 왠지 마음에 걸리네요.”
“아, 자네 말 잘했어. 그걸 깜박 잊고 있었네그려. 지금이라도 일깨워 주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했어.”
두 사람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용하가 입을 뗐다.
“형님, 이렇게 하는 게 어떨까요?”
“자꾸 내 의견 묻지 말고 자네 얘기를 해. 그럼 내가 들어 봐서 합당하면 하자는 대로 하는 거고, 그렇지 않은 건 딴지를 걸어주면 되잖아.”
“아, 좋아요. 굿 아이디어네요. 일단 형님은 근처 커피숍에 있으세요. 좀 비싸 보이고 은밀히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만한 곳에서요.”
“그래서?”
“제가 분위기 좀 띄운 다음에, 검술 도감의 실질적인 저자께서 조용한 데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한다고 하면서 편집장을 데리고 나올게요.”
“옳거니, 그거 좋은 생각이구나. 그 머리로 공부했으면, 판검사가 되고도 남았겠는걸.”
“형님도 참. 제가 제일 싫어하는 인간들이 판검사인 줄은 어떻게 알고서, 적시에 비수를 꽂습니까?”
인공이 괜히 한 말이 아닐 거로 생각해 한 말이었다. 그가 호시탐탐 앙갚음하기 위해 기회를 엿본다는 걸 알았던 용하에게는 인공이 하는 말은 늘 곱게 들리지 않았다.
“그럼 그렇게 하는 거로 하고, 자리 잡으면 문자로 주소 찍어놓을게.”
“네, 형님.”
비장한 각오로 결의를 다진 두 사람은 각자의 길로 걸음을 내디뎠다.
한 사람은 출판사 사옥 안으로, 다른 한 사람은 초고층 첨단 빌딩들이 즐비한 대로 쪽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