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65
65화
새로 난 대로변에는 눈이 부시게 반짝거리는 최첨단 빌딩들이 즐비했다.
인공은 즐비하게 늘어선 최첨단 빌딩을 둘러보며 무엇인가 고심하는 기색이었다.
대체 무슨 고민이 그리도 많았던 걸까. 그것은 다름 아닌 보는 이로 하여금 위축될 수밖에 없게 하는 가장 큰 빌딩을 선정하기 위함이었다.
얼핏 그게 뭐 그리 중요해?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기 싸움에 있어서 미묘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만고만한 빌딩들 사이를 수차례나 오가며 고민하던 인공은 마침내 한 빌딩을 낙점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예상했던 대로 좀 더 있어 보이는 첨단 중에 첨단, 최첨단 빌딩이었다.
로비를 들어서는 순간 인공은 예감했다. 쉽게 적응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사실을.
눈 앞에 펼쳐진 안내데스크의 여직원들도, 엘리베이터 앞에 마네킹처럼 서 있는 보안요원들도.
게다가 로비를 오가는 말쑥한 옷차림의 선남선녀들에게서 전해지는 이질감까지.
모든 게 낯설고 어색했다.
“아이고, 뭐 하나 만만한 게 없네그려……. 적응하려면 시간 좀 걸리겠는걸.”
첩첩산중 인공사가 주 생활 공간이었던 인공에게는 지금 눈 앞에 펼쳐진 모든 것들이 장애물이나 다름없었다.
인공은 그 모든 환경 앞에서 작아지는 자신을 추스르려 무던히 애썼다.
헛기침을 해봐도 소용없었고, 운기조식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참담한 상황.
“이 사람아, 정신 차리고 일하러 왔으니까 일을 해야지!”
혼자 하는 말 치고는 좀 과했다. 하지만 지금 실추된 자신감을 추스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오히려 잘된 일이다. 이 정도는 돼야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겠지?”
이번에도 혼잣말치고는 다소 큰 목소리였지만, 빌딩 규모가 웅장해서 아무도 인공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여기저기 둘러보며 적응하다가 이 빌딩이 편안하게 느껴지면 그때 용하 녀석에게 알려주면…….”
인공의 자기도 모르게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음, 우선 협상하기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고 주변에 CCTV 위치도 확인해 둬야지.”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시야를 넓혀 협상하기 적당한 장소가 어딜까 살피기 시작했다.
“협상의 반은 기 싸움이다. 기 싸움에서 이기려면 주변 환경에 빨리 적응해야 한다. 하물며 강아지도 자기 집 울타리 안에선 한 수 먹고 들어간다는 말이 있듯이.”
흠, 흠!
두어 차례의 헛기침은 객기를 부린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크고 요란했다.
그러고는 마치 만반의 준비라도 했다는 듯 축구장만 한 로비 이곳저곳을 어슬렁거렸다.
뒷짐을 지고 팔자걸음으로 최대한 거만하게.
하지만 인공의 주변을 오가는 사람들 누구도 그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워킹데이는 일하기 바쁜 시간이었다. 이들에게 인공의 객기 따위에 관심을 둘 아량은 어디에도 없었다.
다만 보안요원의 눈에는 인공의 행태가 적잖이 거슬리거나 혹은 관심의 대상으로 비치는 모양이었다.
로비를 몇 차례 오가던 인공은 군데군데 설치된 CCTV를 눈여겨본 후, 로비 정중앙에 코끼리처럼 자리 잡은 에스컬레이터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언제부터인가 보안요원들 시선이 하나둘 인공에게로 쏠렸다. 그들의 시선이 자기를 예의 주시한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는 인공이었다.
인공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에스컬레이터에 발을 올렸다. 전철 역 에스컬레이터에 비하면 눈에 띄게 느린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탄 인공의 입가에 이번에는 흡족한 미소가 피었다. 답답하게 느껴질 만큼 느린 움직임이 문명의 이기에 익숙지 않은 인공에게는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뒷짐을 진 채 묵묵히 정면을 바라보는 인공. 하지만 그의 몸은 조금도 기운다거나 흔들리지 않았다.
‘쳇, 에스컬레이터! 이거 별거 아니구먼.’
로비의 보안요원들. 그들의 카멜레온 같은 시선이 인공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 막 2층 플로어에 발을 내딛는 인공은 보안요원들의 시선이 자기를 따라오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별안간 자세를 맞췄다. 바로 그 순간 로비 보안요원들은 일제히 제각각 귀에 꽂은 인터컴으로 손을 옮겼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은 인공은 아무렇지 않게 다시 몸을 일으켜 2층 플로어를 유유자적 걸었다.
인공은 로비에서와 마찬가지로 2층 플로어를 여전히 뒷짐을 진 채 팔자걸음으로 여기저기 기웃거렸다. 일부러 의심을 사기 위해 하는 행동 같았다. 아니, 어쩌면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한 행동처럼 보였다.
로비에서 은밀하게 2층을 주시하는 보안요원들. 그들은 저마다 인터컴을 통해 인공의 동선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조금 전 중앙통제실에서는 2층 여기저기 서성거리는 인공을 모니터링하기 시작했다.
“옷차림도 그렇고, 걸음걸이며 생김새도 그렇고, 여러모로 수상합니다. 어떻게, 연행해서 수사기관에 넘길까요?”
“아니, 조금만 더 지켜보자. 아직 특별히 범죄라고 할 만한 행위가 드러난 건 아니잖아.”
“알겠습니다. 일단 지켜보겠습니다.”
“만에 하나 범죄행위가 드러날 경우, 즉각 현행범으로 체포해 수사기관에 넘겨!”
“네, 알겠습니다!”
인터컴 속에서 일제히 흘러나온 보안요원들의 목소리였다.
이렇게 CCTV에 눈도장을 찍은 인공은 카메라 시야각에 가장 잘 들 수 있는 장소를 찾아 또 기웃거렸다. 그곳이 커피숍이든 레스토랑이든 술집이든 상관없었다. 그냥 카메라에 정확히 잡히기만 하면 되는 곳으로 자리만 잡으면 그만이다.
고급스럽고 은밀한 장소를 찾는다는 건 이제 의미가 없었다. 지금 인공이 있는 빌딩 자체가 고급스럽고 은밀한 장소가 돼 줄 테니까. 여기서 출판사의 결정적인 약점을 하나라도 잡아낼 수 있다면 인세는 부르는 게 값이다.
‘용하 녀석이 생각하는 정공법으로는 절대 뜻을 이룰 수 없을 거야. 그렇다고 해서 약점을 잡아 턱없이 많은 인세를 뜯어내려는 건 결코 아니다. 다만 받아 내고자 하는 인세를 취하기 위해서 흔히들 말하는 보험 하나 들어 두려는 것뿐이야.’
인공은 CCTV가 가장 잘 비추는 곳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용하에게 문자를 보냈다.
한편 출판사 편집부 한쪽에는 용하와 편집장 그리고 보현옥 팀장, 이렇게 세 사람이 이미 검술 수련 도감 출간 방향에 대해 논의를 시작했다.
용하의 표정은 한눈에 보기에도 마지못해 앉아 있는 기색이었다.
‘아이참, 이게 아닌데.’
용하는 어떻게든 편집장을 데리고 인공에게 가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혔다.
우선 편집장이 눈치채지 못하게 인공이 지금 있는 곳을 확인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그냥 맛집 찾는 척하며 걸어도 7, 8분!’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 아침을 못 먹고 와서 배가 고프다고 할까? 아니, 그건 좀 없어 보이거나 구차할 수 있다.
스마트폰 화면 속 시계를 확인했다. 이제 겨우 열 시를 좀 넘긴 시간이었다. 아무리 궁리를 해봐도 점심때까지 시간을 끌기란 어려워 보였다.
이런저런 생각에 편집장이나 보현옥의 목소리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혹시 어디 불편하십니까?”
좀처럼 대화에 집중을 못 하자 편집장이 물었다. 하지만 용하는 이번에도 편집장의 질문에 바로 반응을 보이지 못했다. 머릿속이 온통 편집장을 인공에게 데리고 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김용하 선생님!”
편집장이 조금 목소리를 높여 물었지만, 용하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김용하 선생님, 김용하 선생님!”
이번에는 보현옥이 조금은 앙칼진, 그러니까 자극적인 톤의 목소리로 용하를 불렀다.
그제야 뭉글뭉글해졌던 용하의 눈동자가 초점을 되찾으며 반응을 보였다.
“아, 네!”
편집장은 아직도 어리둥절한 용하를 유심히 살피더니, 마침내 제정신이 돌아왔음을 확인하고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많이 어수선하죠? 원래 출판사라는 곳이 좀 시끄럽습니다. 자리를 옮겨서 이야기를 나누는 건 어떻겠습니까?”
앗싸!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아, 그럴까요? 근처에 혹시 맛집이나 조용하게 뭐 좀 먹으면서 담소를 나눌 만한 장소가 어디 없을까요?”
용하는 목적을 은폐한 채 흔히 하는 말로 인공이 만들어 놓은 협상 테이블로 한 걸음 가까이 편집장을 유도했다.
“아, 그럴까요? 제가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 했습니다. 출판사 분위기는 너무 시끄럽고, 건조해서 담소를 나누기엔 아무래도 좀 그렇죠?”
“그게 다가 아닙니다. 제가 보기엔 여긴 왠지 비장하기까지 하네요.”
말꼬리를 흐리며 편집장의 눈치를 살폈다.
“아, 맞습니다. 출판이란 게 원래 순간의 판단이 회사의 사활을 결정합니다. 이다, 아니다, 그 여부만이 있는 냉혹한 곳이죠. 그래서 항상 긴장을 늦출 수가 없는 곳 맞습니다. 어차피 오늘 인세 문제도 결정해야 하니까, 어디 조용한 데로 나가도록 합시다.”
편집장은 주섬주섬 서류를 챙기면서 보현옥에게 단호히 지시했다.
“보현옥 팀장! 계약서 두 부씩만 챙기세요. 출판과 디자인 그리고 삽화에 대한 계약을 따로따로 진행할 거니까, 각각 두 부씩요.”
“네, 말씀하신 대로 준비하겠습니다.”
그 순간 용하는 내심 쾌재를 질렀다. 계약서를 준비하겠다는 건, 웬만하면 저자가 제시하는 조건을 받아들이겠다는 무언의 대답이 아닌가. 그 순간 불현듯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말이 뇌리를 스쳤다.
용하는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자연스럽게 인공이 있는 곳으로 편집장과 보현옥을 데리고 가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누구도 의심하지 않게 인공을 저작자라고 소개만 해주면 되는 것이다.
“에효…….”
한숨인지 안도인지 모를 넋두리가 새 나왔다. 어렴풋하게나마 고지가 보여서였다. 조금만 더 가면 된다.
‘젖 먹던 힘을 다해 고지에 보이는 저 깃발만 잡으면 된다.’
* * *
이제 막 출판사를 나왔다.
용하는 편집장과 보현옥이 모르게 내비게이션을 맞추고 블루투스 이어폰을 켰다.
‘자, 이제 어깨 쭉 펴고 최대한 당당하게…….’
도로를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그런데 아직 GPS 수신이 안 되는지, 내비게이션 안내 음성이 들리지 않았다. 마음 같으면 스마트폰을 꺼내 어찌 된 영문인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럴 순 없는 노릇이었다.
‘이런!’
최대한 감췄지만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었다.
“저기, 편집장님 잠깐만요.”
“왜요, 무슨 일 있습니까?”
“저 잠깐 화장실 좀 갔으면 하는데…….”
“아, 난 또… 얼른 다녀오세요.”
용하는 일부러 급한 체하며 출판사 사옥 안으로 종종걸음쳐 들어갔다.
사옥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화장실 방향으로 이동해가며 스마트폰을 보았다. 아직도 내비게이션이 버퍼링 중이었다.
“뭐야, 대체 뭐가 문제야. 이런 번화가에서 GPS가 이래도 되는 거야?”
답답한 마음에 화장실 앞을 이리저리 서성거렸다.
“우주 시대, 우주 시대… 그런 거 다 개소리야. 내비게이션 위치 파악 하나 제대로 못 하는 인공위성으로 무슨 우주 시대를 열겠다고.”
그때였다.
―띠링!
문자 한 통이 들어왔다. 인공이 보낸 문자였다.
[얘기가 길어져?]바로 답장을 보냈다.
[GPS가 안 잡혀요.]문자를 보내자마자 바로 인공에게서 전화가 왔다.
“네, 형님.”
―GPS가 안 잡힌다니, 그게 다 무슨 소리야? 그럼 진작 전화를 했어야지.
인공은 속사포처럼 제 할 말만 단숨에 쏟아부었다.
“그게 말입니다, 형님! 전화할 틈이 없었어요.”
―전화할 틈이 없었다니, 그게 다 무슨 소리야?
“편집장님하고 보현옥 팀장이 옆에 딱 붙어 있어서.”
그제야 인공은 지금의 상황을 이해했다는 듯 시원스럽게 다음 말을 이어 갔다.
―알았어, 알았어, 그건 됐고. 여기가 어디냐 하면…….
위치를 설명하려던 인공이 갑자기 말문을 닫고 우왕좌왕하는 기색이었다.
“형님, 왜 그러세요? 왜, 말을 하려다 마는 겁니까?”
다급해서 물었지만, 휴대전화 건너편에선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았다.
찰나에 불과한 짧은 시간은 마치 시간이 멈춰 버린 듯했다. 시간이 멈췄다는 건 곧 두려움이었다.
―야, 용하야! 그런데 출판사는 대체 어디에 있는 거니?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용하는 인공이 있는 빌딩 위치를 모르고,
인공은 출판사 위치를 모르니,
누구 하나 서로에게 길을 알려줄 수 없어서였다.
‘이런 낭패가…….’